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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 피하고 기뻐하라(시 5:1-12) / 이수영 목사

by 【고동엽】 2021. 12. 16.

<주께 피하고 기뻐하라> 시5:1-12
새문안교회 주일예배


설교 이수영 목사




본문에서 우리는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본문의 첫 세 절은 그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1절에서 그는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합니다. 상반절에서는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했지만, 하반절에서는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합니다. 여기서 "심정"이라고 한 것은 말못할 심정, 너무 기가 막혀서 말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이 속에서 터져나오는 신음이나 탄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것은 거의 울부짖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2절에서는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하고, 3절에서도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합니다. 이렇게 그의 기도는 말과 탄식소리가 뒤섞인 간절한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또 너무나 괴로워서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이른 아침 일어나 하나님께 무릎을 꿇은 것 같습니다. 3절 말씀이 그것을 암시합니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그러면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렇게 간절한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이겠습니까? 8절에서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라고 한 것으로 보아 그를 대적하여 해하려는 무리들 때문임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5-6절에서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한 것도 다 그의 원수들을 가리켜서 한 말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들은 첫째로 오만한 자들입니다. 시편에서 "오만한" 자들이라 할 때에는 주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기에 주의 목전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기에 온갖 악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5절에서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한 것은 그것을 말합니다.






6절은 또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여 피흘리게 만들기를 즐기는 자들임을 보여줍니다. 특히 그들은 거짓되고 악한 말로써 이 시편기자를 음해하고 괴롭힌 것 같습니다. 9절이 그것을 드러내줍니다: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시편기자는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모함과 중상을 당하여 기가 막히고 억울한 심정을 하나님께 고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전적으로 거짓되고 그래서 너무나 억울한 중상모략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그런 중상모략은 보통 살인보다도 더 악한 짓입니다. 우리는 이 시편기자가 왜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이른 아침부터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말과 탄식소리가 뒤섞인 간절한 기도를 들여야 했을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9절 끝에 보면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한 말은 주목할 만 합니다. 이 시편기자의 원수들은 그가 보는 앞에서 대놓고 거짓말을 하고 험악한 말을 했다기보다는 훨씬 더 교활한 방법으로 그를 중상하고 음해했음을 엿보게 합니다. 9절 상반절에서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한 것 보면 그들이 앞에서 하는 말과 돌아서서 하는 말이 달라서 믿을 수 없으며, 겉으로 하는 말은 듣기 좋은 말이나 속 생각은 매우 악하기 이를 데 없는 자들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악한 자들이 혀로 아첨한 대상이 이 시편기자라면 그들은 그의 앞에서는 온갖 듣기 좋은 말로 아부해놓고는 돌아서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온갖 험한 말과 거짓말로 그를 욕하고 중상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면전에서 대놓고 폭언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악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배신감을 느끼게 하며 당혹하게 하고 격분하게 하는 것입니다. 믿었던 사람에 의해 등에 도끼 맞는 것 같이 비통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내 등에 도끼를 내리찍고 내 허리에 비수를 꽂는 그 사람이 그 누구보다 가깝고 가까워야 할 동료나 제자라면 그 슬픔과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그 악한 자들이 혀로 아첨한 대상이 시편기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라면 그것은 이 시편기자와 다른 사람들 사이를 이간시키는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시편기자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듣기 좋은 말로 그 환심을 사면서 그에 대한 거짓말과 악담을 늘어놓음으로써 그를 고립시키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원한과 미움을 사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간질은 그 어떤 거짓말이나 중상모략이나 배신행위보다도 더 악한 짓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어떤 한 사람을 음해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다른 원수들까지 만들어주는 짓이고, 그것도 가장 가까웠던 친구를 철천지원수로 돌려놓는 일이며, 많은 사람에게 배신감과 분노와 원한을 안겨주는 노릇이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함을 당할 뿐 아니라 이간질까지 당하여 사랑하는 친구를 잃고 절친했던 동료들이 원수로 돌변하게 함을 당하는 것보다 더 기가 막히고 원통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 시편기자는 이러한 모함과 이간질을 당했던 것 같습니다. 다들 돌아서서 누구 하나 그의 해명을 들어주거나 믿어주려고 하지 않음을 겪었을지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뿐 그에게 남은 이는 아무도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그는 이른 아침 하나님께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미루어볼 수 있습니다.






이 시편기자가 당한 모함과 이간질은 그만의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종종 있으며 우리 자신이 당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시편기자의 기도와 그 기도하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는 우리에게 귀한 가르침을 주고계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시편기자를 통해서 배울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그 극심한 분노와 원통함을 기도로 해결하려하고 하나님께 그 해결을 의탁하는 믿음입니다. 본문 1-3절에서 그는 매 절마다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1절에서도 "여호와여", 2절에서도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3절에서도 "여호와여"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께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외치고 있습니다.






7절은 또한 우리에게 이 시편기자의 매우 소중한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그 억울함과 비통함을 안고 거리로 뛰쳐나가거나 사람들을 향해 달려가 복수나 한풀이나 또는 해명을 하려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을 붙잡고 성전을 향했으며 예배를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즉 모든 문제를 믿음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 시편기자가 그러한 믿음이 그에게 있음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견디기 힘든 문제를 믿음으로 해결하려는 마음을 가진 것 자체가 오로지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은 때문이라는 그의 고백입니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이것은 놀라운 은혜이며, 위대한 믿음이고, 한없는 복입니다.






둘째는 그에게 있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가 그렇게 오직 하나님께만 아뢰며 매달릴 수 있는 것은 그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과 공의에 대한 근본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4-6절은 그의 그 신뢰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또 12절은 이렇게 그의 신뢰를 표현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와 같은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와 같은 은혜로 그를 호위하실 것이라는 신뢰입니다. 그래서 그는 결론적으로 11절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어떤 처지에서도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와 같은 은혜로 그를 호위하실 하나님께 피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3절 끝에서 그는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했는데 "바라리이다" 한 것은 기도할 뿐 아니라 기도한 것을 이루어주실 줄로 믿고 맡기고 기쁘고 평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는 이 시편 5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던지시는 경고의 말씀에도 귀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4절에서는 하나님은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라 했고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한다 했으며, 5절에서는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라 했고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신다 했으며, 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고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신다고 했으며, 10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 새문안공동체 안에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열린 무덤 같은 목구멍과 아첨하는 혀로 남을 모함하고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하다가 자기 꾀에 빠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습니다.






혹 그런 자들이 있다 하드라도 그들의 모함 때문에 격분하고 원통해서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함으로써 그들과 꼭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운 길, 곧은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 8절에서의 시편기자의 기도가 곧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공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그리고 7절과 11-12절의 기도가 우리의 믿음이요 찬송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와 같은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주께 피하고 기뻐하라", 이것이 언제 어디서나 어떤 일을 만나도 우리가 취할 믿음의 자세로서 오늘 우리의 결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께 피하는 이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시31:19-24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 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주께서 그들을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말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의 놀라운 사랑을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내가 놀라서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마지막 절을 반복합니다: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악으로 악을 갚는 것은 악에게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피하며, 그 안에서 강하고 담대하며, 그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믿음만이 모든 악을 이기는 힘이요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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