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합의 믿음처럼! (수 2:1-7)
한 사람 아간 때문에 아간 식구 전체가 아골 골짜기에서 돌에 맞아 죽었고, 한 사람 노아때문에 8식구 전체가 홍수에 멸망되지 않고 구원받았습니다.
한사람 요나때문에 배가 흔들려 전체 사람이 고생하였고, 한 사람 롯 때문에 롯의 가정이 구원받았습니다. 본문은 한 사람 라합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발을 딛게 되었고, 한사람 라합 때문에 온 그의 가족이 복받은 이야기입니다.
남이 보기에는 보잘것 없고 쓰레기 같은 인생 라합 그녀는 창녀였습니다. 70인역 성경에는 매춘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그만 디노는 “창녀는 드러누워 돈을 버는 직업이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직업중 가장 비참하고 천한 직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괄목할만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라합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라합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1. 바꾸는 믿음
라합은 주변을 온통 바꿀 줄 아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어떤 것을 바꾸었습니까?
(1) 민족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여리고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약속의 땅”이었지 “고국의 땅”은 아니었습니다. 남이 살고 있는 땅입니다.
여호수아가 파견한 두 정탐꾼은 여리고에 들어가 제일 접근하기 쉬운 술집에 들어가 라합을 만났습니다. 놀랍게도 라합은 이 땅이 이스라엘 백성의 땅이 될 것을 알고 있었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누구도 거스릴 수 없음을 알고 전적으로 협력하였습니다.
라합 하나 때문에 여리고 민족의 역사가 비극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소망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2) 기독교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 46명중에 라합의 이름이 등장합니다(마 1:5). 그 중에 5명이 여자입니다. 라합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이방인입니다.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거룩한 여자가 아니라 창녀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데 공헌한 5대 여걸 중에 하나입니다.
(3) 가정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여리고 사람이 모두 죽었습니다. 그러나 라합 가정만 살았습니다. 한 사람 라합 때문에 가정 전체가 생명을 구원하였습니다. 라합 하나 때문에 민족의 역사가 바뀌고, 기독교의 역사가 바뀌고, 가정의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나 하나 때문에 주변이 바뀌도록 하여야 합니다.
2. 칭찬받는 믿음
라합의 믿음은 칭찬받는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칭찬하신 믿음이 몇 번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가버나움의 백부장 믿음을 주님이 칭찬하셨습니다. 그 백부장이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마침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을 방문하시게 되셨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은 못 고치실 병이 없으신 분임을 소문을 듣고 알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장로 몇 명을 예수님에게 보내어 자기 종을 고쳐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장로들이 예수님 앞으로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눅 7;4-5)
예수님은 회당을 지은 백부장이라는 말을 들으시고 그 집으로 향하셨습니다. 그 때 백부장이 친구들을 보내어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게 하였습니다.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눅 7;6-8)
예수님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칭찬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지 못하였노라>(9) 이렇게 예수님이 칭찬하신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라합의 믿음도 칭찬받는 믿음이었습니다. 라합의 믿음은 바울이 칭찬한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히11;31)
히브리서의 저자는 루터는 아볼로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터틀리안은 바나바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하르낙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설이 제일 유력합니다.
히브리서 11장 믿음 장에서 바울은 16명의 믿음의 거성, 신앙의 거목, 일꾼의 거인들이 등장합니다. 누가 인정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바울이 인정한 16명입니다. 그중에 15명이 남자입니다. 단 한명 라합만이 여자입니다. 바울은 얼마나 라합을 높이 보고 있는 것일까요?
굉장한 바울이 놀랍게 라합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칭찬한 믿음입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수아 2장에서 온통 라합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행함있는 믿음이라고 라합을 칭찬했습니다. 마태는 메시야 믿음이라고 라합을 칭찬하였습니다. 바울은 종합적으로 라합을 칭찬하였습니다. 칭찬받는 믿음이 참 믿음입니다.
김제에 가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한국 교회사에 기록될 만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탐정리 섬에서 출생한 이 자익이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집은 너무나 가난하였습니다. 끼니 구경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집 저 집을 다니면서 얻어 먹었습니다. 그는 결심을 하고 가출하였습니다. 이리 저리 다니다가 온 곳에 곡창지대 김제였습니다. 그는 어느 부자집을 찾아가서 통사정을 하였습니다.
"밥만 먹여주면 머슴이 되겠습니다. 시키는 일을 다 하겠습니다" 주인은 그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머슴으로 써주었습니다. 그는 죽을 둥 살 둥 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집을 떠나면 굶어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 때 미국 남장로교 최 의덕 선교사가 김제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이 일찍 들어 간 곳입니다. 이 선교사가 마방을 드나들면서 전도하다가 이 자익을 만났습니다.
드디어 이 자익이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인 가족도 함께 전도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두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때 무식한 이 자익은 주인 아들이 독방에서 한문자 읽는 소리를 듣고 그것을 암송하면서 한문자를 배웠습니다. 어깨 넘어로 공부한 것입니다.
최 의덕 선교사는 김제를 중심으로 크게 활동하였습니다. 교인들이 점점 늘어 나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교회가 바로 금산교회입니다. 선교사는 주인 조 덕삼과 머슴 이 자익을 교회 일군으로 함께 임명하였습니다.
최 의덕 선교사 선교 활동 반경이 점점 넓어졌습니다. 이제는 주일 예배를 인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는 이 자익 청년을 설교자로 임명하였습니다. 너무나 믿음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또 맡길 만 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조덕삼은 말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머슴으로 일하던 일꾼이 교회의 설교자가 된다니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그는 진심으로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앉아서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교회를 열심히 섬겼습니다. 은혜도 충만히 받았습니다. 조금도 시기질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1908년이었습니다. 금산교회에서 장로를 선출하는데 조 덕삼과 이 자익이 장로로 추천이 되었습니다. 투표를 하였습니다. 투표 결과 이 자익은 장로로 피택되었습니다. 그러나 조 덕삼은 장로 투표에서 떨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투표 결과를 놓고 웅성거렸습니다.
그때 조 덕삼이 일어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 교우들이여! 참 감사합니다. 저는 나이가 많아서 교회에 봉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자익은 장로로 선출하여 일하게 하였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그는 젊습니다. 지혜가 있습니다. 열심히 있습니다. 우리 이 자익을 장로로 잘 받들어 교회를 성장시키십시다."
모두가 감격속에서 박수를 쳤습니다. 1년 후에 조 덕삼도 장로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자익 장로는 평양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한국 장로교의 총회장을 세 번이나 역임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낮아져서 머슴인 이 자익 목사를 잘 받들어 섬겼던 조덕삼 장로는 집안 대대로 하나님께 크게 세움을 받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모두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모두 칭찬받아야 할 믿음들입니다.
라합도 어느 누구에게나 칭찬받는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그 사람이 이름이 떠오를 때 칭찬의 이미지가 떠오르게 하여야 합니다.
3. 지혜롭게 혀를 놀리는 믿음
우리는 말 잘 하는 사람보다 잘 말하는 사람을 더 좋아 합니다. 하나님도 물론 그렇습니다. 라합은 지혜로운 혀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정탐꾼이 숨어 들어와습니다. 여리고 왕이 정보를 알고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라합은 이미 지붕위 삼대속에 2명의 정탐꾼을 숨겨 놓았습니다.
이제 2명의 정탐꾼의 운명은 라합의 혀에 달렸습니다. 이때 라합이 대답하였습니다.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 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4-5)
처음에는 긍정하였고 나중에 부정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고, 나중에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지혜의 입술이었습니다. 모두 부정하면 라합이 죽을 것이고, 모두 긍정하면 두정탐꾼이 죽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모두는 따라갔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지혜의 입술을 가집니다. 남에게 혀로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육체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아물지만 마음의 상처는 오래가는 법입니다. 나이가 지긋이 들은 최 상필이라는 백정은 장터에 푸줏간을 경영하며 고기를 팔았습니다.
양반 두 명이 고기를 사러 왔습니다. 그 중에 한 명 "얘! 상필아! 쇠고기 두 근을 다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고기 두 근을 잘라 주었습니다. 함께 온 다른 양반은 자기보다 나이가 지긋하게 든 이에게 반말하기가 미안하여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최 서방! 고기 두 근만 주게나" 기분좋게 대답한 최 상필은 큰 칼로 고기를 선뜻 베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먼저 산 양반의 고기보다 두 배나 많았습니다. 먼저 고기를 산 양반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놈아! 넌 눈도 없냐? 같은 고기 두 근인데 어째서 이렇게 두 배 차이가 나냐?" 그러자 최 상필이 대답하였습니다. "예. 그야 손님 고기는 상필이가 자른 것이고 이 어른신네 고기는 최 서방이 자른 것이니까요" 사람이 무엇이든지 심는 대로 거둡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지혜로운 말만 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라합은 지혜로운 입술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내 말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아파하여서는 안 됩니다.
4. 아는 것을 행하는 믿음
라합은 아는 것을 행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라합은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이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으미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 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부모님과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 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 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
모든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일을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①간담이 녹았습니다.
②마음이 녹았습니다.
③정신을 잃었습니다. 그 정도로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고 행하여 하나님께 돌아온 자는 라합 하나뿐이었습니다. 정직하게 살아야 한 다는 것을 알면서 정직하게 사는 이는 얼마나 될까요? 사실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이길 확률은 1/100입니다.
바클레이의 견해입니다. 이스라엘은 40년 광야 생활에 지쳐 있었고 여리고는 안정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공격해야 하고 여리고는 방어하면 족합니다. 이스라엘은 무기가 없지만 여리고는 무기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점령할 것이라는 믿음은 조롱거리의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라합의 믿음에는 동의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라합의 결단에 박수치는 이도 없었습니다. 라합의 생각에 박수치는 이도 없었습니다. 라합의 방향에 따라오는 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정말 믿었기에 확고하였고, 확고하였기에 양보할 틈이 없었습니다.
초대교부 크리소스톰의 외침을 들어보십시오. “온 세상이 나를 반대하느냐? 좋다. 그러면 내가 온 세상을 반대하리라.” 라합은 정말 믿었기에 참으로 행동하였습니다. 미국 뉴욕 뉴저지에 한 교회가 있습니다. 한인교회에서 되어진 일입니다. 여선교 회장이 대단한 부자였습니다.
그는 3 에이커 그러니까 3,600 평 대지에 잔디밭이 있고, 풀장이 있는 으리으리한 집을 가진 사람입니다. 어느 주일에 이 회장이 이런 광고를 해달라고 목사님에게 부탁했습니다. "목사님! 폐품을 모아서 돈을 모으고 싶습니다. 주의 선교사업을 위해서 쓰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광고를 좀 해 잘 해 주시죠."
그 날 아침 목사님은 이렇게 광고를 했습니다. "본 교회 여선교 회장님께서 이 시간 폐품을 모집하기를 원합니다. 바라기는 회장을 위해서 폐품 수집을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버려둔 폐품을 전부 가지고 오십시요. 가져오시면 교회에서는 그것을 팔아서 여선교 회장의 생활비와 용돈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 광고를 들은 여선교 회장이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말자 목사님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목사님, 저를 거지로 알았습니까? 제가 언제 폐품 팔아서 먹고 산다고 했습니까?"
목사님이 여선교 회장에게 말했습니다. "놀라지 마시오. 당신은 예수님보다 부자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예수님을 거지로 알았습니까? 폐품이나 쓰레기같은 것 주워다가 예수님께 드리려 합니까? 이 말을 들은 여선교 회장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회개하였습니다.
"오 주여,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소서." 목사님도, 여선교 회장님도 다 훌륭한 사람입니다. 보통 분들이 아닙니다. 바르게 책망하고 즉시로 받아 드리는 자세가 얼마나 좋습니까? 라합의 믿음은 아는 것을 행할 줄 아는 믿음이었습니다. 언행일치의 믿음이었습니다.
5. 모험의 믿음
믿음이라는 말 자체가 모험이라는 뜻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모험을 합니다. 모험을 하는 사람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리고왕이 라합의 집에 군사를 보내었습니다. 정탐꾼을 찾아내기 위해서입니다. 라합이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만일 이 때 군사들이 온 집안을 뒤져 두 정탐꾼을 찾아냈다고 하면 라합은 민족적 배반자로 극형에 처해졌을 것입니다. 공개 처형감이었습니다. 간첩 동조죄였습니다. 참된 믿음은 정말 믿기에 미친듯이 일하기에 타인이 보면 마치 모험같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모험을 감행합니다. 믿음의 별명은 모험입니다. 6. 온 가족을 구원하는 믿음 믿음의 사람은 온 가족을 구원합니다. 라합은 온 가족의 생명을 구원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려고 합니다. 어느 정신과 의사의 경험담입니다. 어느 날 공부를 죽도록 하기 싫어하는 자식 때문에 속을 썩고 있는 부모가 찾아 왔습니다. 자식이 공부를 그렇게 안 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정신과 의사가 말했습니다. "나는 박사에 의사에 교수입니다. 다른 사람에 비하여 훌륭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네. 나는 당신이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 다시 묻겠습니다. 지금 철길 건널목을 철부지 아이 하나 가 건널려고 하고 있습니다.
기차가 달려 들고 있습니다. 그 옆 거의 비슷한 거리에 시장에서 허레 일을 하는 지게꾼과 내가 서 있습니다. 당신 생각에는 누가 아이를 구하려고 먼저 뛰어 들 것같습니까?" "지게꾼이 먼저 뛰어 들 것같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보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지요" 아무리 기생이라도 라합은 여리고성에 살고 있는 이중에서 미래에 소망을 바라보는 가장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라합의 믿음은 6가지 특징이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1. 바꾸는 믿음 2. 칭찬받는 믿음 3. 지혜롭게 혀를 놀리는 믿음 4. 아는 것을 행하는 믿음 5. 모험의 믿음 6. 온 가족을 구원하는 믿음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 신28:1~10 (0) | 2021.12.16 |
---|---|
예후의 심판의 교훈 (0) | 2021.12.16 |
한 여인이 살린 조국! (엡4:13-17) (0) | 2021.12.16 |
옳다는 것 때문에 성질부린다 (0) | 2021.12.16 |
끝이 없는 주님의 사랑 (0) | 2021.12.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