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없는 주님의 사랑
누가복음 15장 1-7절
< 지금도 계속되는 사랑 >
스코틀랜드에 헨리 로더(Henry Lauder)란 유명한 코미디언 겸 가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1차 세계 대전 때 전쟁으로 25살 된 외아들을 잃었습니다. 그 후 신경쇠약에 걸렸습니다. 병원에서는 그에게 철저한 휴식을 권고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연예활동을 멈추고 해변으로 휴양을 가서 그곳에서 독서와 묵상을 하며 지냈습니다.
휴양 중에 그는 몇 명의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꼬마 소년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꼬마 소년과 함께 바닷가를 거닐었습니다. 그때 마침 해가 막 지고 있었는데, 그들은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주위의 경관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때 소년은 바닷가를 따라 있는 몇몇 집의 창문에 별이 그려진 깃발이 걸린 것을 보았습니다.
소년이 로더에게 물었습니다. “아저씨! 저 집들에는 왜 깃발이 걸려 있어요?” 로더가 말했습니다. “깃발이 걸린 집은 그 집에서 아들을 전쟁터로 보냈다는 뜻이란다.” 그 말을 듣고 소년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어떤 깃발에는 은색별이 그려져 있고, 어떤 깃발에는 금색별이 그려져 있나요?” 로더가 말했습니다. “은색별이 그려진 깃발은 아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는 뜻이고, 금색별이 그려진 깃발은 아들이 전쟁터에서 죽었다는 뜻이란다.”
그 말을 마치고 조금 더 걷자 해가 완전히 져서 어두워졌습니다. 곧 하늘에 첫 번째 별이 떴습니다. 그 별을 보고 소년이 말했습니다. “아저씨! 저 하늘을 보세요. 별이 떴어요. 그런데 별이 금색별이에요. 그러면 저 금색별은 하나님이 아들을 전쟁터로 보냈는데, 그 아들이 전쟁터에서 죽었다는 뜻인가요?‘
그 소년의 말을 듣고 로더는 무엇인가 가슴에 어떤 깊은 감동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곧 음성을 가다듬고 말했습니다. “네 말이 맞다! 저 금색별은 하나님이 그분의 아들을 전쟁에 보냈다는 뜻이야. 그런데 그 전쟁은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이었어. 그 전쟁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죽어서 저 별이 금색별이 된 거야.” 그 말을 할 때 그에게 깊은 평안이 임하며 신경쇠약이 순식간에 치유되는 체험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영적인 전쟁 중에 있습니다. 그 전쟁은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전쟁보다 훨씬 큰 전쟁입니다. 그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기꺼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는 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힘을 내십시오. 그 하나님의 사랑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 사랑이 무엇입니까? >
본문의 비유는 주님의 무한한 사랑을 잘 보여줍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말씀을 하실 때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왔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못마땅해서 주님이 죄인을 영접하고 같이 음식을 먹는다고 원망하고 비판했습니다. 그때 의인임을 자처하는 그들의 잘못된 사고를 깨우쳐주려고 본문에 나오는 ‘잃어버린 양의 비유’를 하게 됩니다. 이 비유는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잘 가르쳐줍니다.
사랑이 무엇일까요? 지난주에 3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사랑은 ‘가능성을 보는 것’입니다. 주님이 왜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했습니까? 그들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랑은 ‘한 사람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목자의 모습은 한 사람의 중요성을 말해줍니다. 셋째,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은 대개 허물이 많습니다. 그런 양에 대한 인내가 있어야 그 양을 찾습니다. 그 외에 본문이 가르쳐주는 사랑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4. 직접 찾아나서는 것
본문 4절 말씀 하반부를 보십시오.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본문에서 목자는 사람을 동원하여 찾을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 직접 양을 찾아나섰습니다. 참 사랑이란 직접 찾아나서는 것입니다. 그런 실천이 없는 말뿐인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사랑은 사랑을 말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말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말과 충고와 논리를 줄이고 행동을 늘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잃어버린 죄인을 찾으려고 처음에는 선지자와 사도를 보냈지만 결국 스스로 직접 영광스런 하늘 보좌를 내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처럼 찾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보물찾기를 할 때 어떤 사람은 잘 찾지 못하지만 어떤 사람은 잘 찾습니다. 왜 그런 차이가 생깁니까? 시력 차이 때문이 아니라 관심과 열정의 차이 때문입니다. 영혼을 찾을 때도 무엇보다 찾으려는 끈질긴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태국 산악지역에 바나나를 숭배하는 한 종족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싱싱한 바나나 잎을 이용해 거처를 짓는데, 잎사귀가 마르면 새로운 거처를 찾아 매번 이동했습니다. 한 선교사가 그 종족을 전도하려고 수소문해서 그들의 거처를 찾았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이미 그곳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그런 식으로 그 종족을 찾아 그 선교사는 40년간 집요하게 추적했고 마침내 그 종족을 찾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종족의 이름이 피똥누아 족속입니다.
전도를 하다 보면 피똥누아 족속처럼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귀찮고, 때로는 자존심도 상해서 전도를 포기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잃어버린 양을 포기하지 않고, 심지어는 고난을 주어서라도 선택한 양을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시험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고난과 시험을 계기로 하나님께 더 가깝게 나가면 됩니다.
춘천에 한 달에 한번 정도만 교회에 나오는 한 집사가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에 목사님이 너무 속이 상해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나오려면 차라리 나오지 말라.” 그런데 그 생각이 그만 현실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집사가 사라진 것입니다. 나이가 38세였고, 다른 어떤 문제도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했고, 마침내 그가 3개월 만에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납치된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 집사는 자신이 운영하던 우유대리점을 팔려고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누가 가게를 산다고 해서 만났다가 잘못된 계약서에 싸인하고 납치되어서 외항선에 끌려가 노예처럼 일하다가 3개월 만에 극적으로 탈출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배 안에서 철저히 자신의 형식적인 신앙을 회개하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라도 포기하지 않고 택한 자녀의 신앙을 회복시키는 분입니다.
5. 기쁘게 수고하는 것
본문 4절에서 “찾도록 찾아다닌다.”는 표현은 목자의 희생을 잘 보여줍니다. 목자는 길이 험하고, 깎아지른 벼랑이 있고, 험악한 계곡이 있어도 양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고, 때로는 가시에 찔리거나 넘어져서 산길에 피를 흘려도 양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목자에게는 어떤 것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무서운 것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양을 찾기 전에 사랑했던 양이 죽는 것입니다. 얼마나 사랑이 넘치는 목자입니까?
본문 5절을 한번 보십시오. “또 찾은 즉 즐거워 어깨에 매고”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드디어 목자가 양을 찾았습니다. 그때 어떻게 합니까? 찾은 양을 야단치며 끌고 오지 않고 양을 어깨에 메고 오면서 모든 고생을 잊고 즐거워합니다. 얼마나 지극한 사랑입니까? 참된 사랑은 아무리 큰 수고를 해도 “내가 당신을 찾기 위해 이토록 고생했소”라고 밝히지 않고, 그저 찾은 것만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가끔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공치사를 합니다.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데 너는 이렇게 하냐?” 그 말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런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말은 할수록 참 사랑의 의미가 퇴색됩니다. 준만큼 받으려고 하면 갈등이 생기고 섭섭한 마음이 생깁니다. 진정한 사랑은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기꺼이 주는 것입니다. 크게 수고하고도 사람의 칭찬이 없으면 그때 더욱 기뻐하십시오. 왜냐하면 더욱 큰 하나님의 칭찬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목자가 양을 찾고 얼마나 기뻐합니까? 그 모습에 대해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계속해서 본문 7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왜 하나님이 한 영혼을 찾고 그렇게 기뻐합니까? 죄의 결과와 지옥의 참상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천국에서는 국경일이 선포되고 축제가 열릴 것입니다. 스펄전은 말했습니다. “한 영혼이 구원받을 때 하늘의 예루살렘 거리는 주님의 기쁨의 눈물로 강물이 되고 천사들과 성도들은 그 강물에서 함께 헤엄칠 것이다.” 그런 주님의 기쁨을 생각하면 전도를 위해 죽을 고생을 해도 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어느 날, 선교사가 되기로 헌신한 데이빗 리빙스턴에게 누군가 물었습니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때 리빙스턴이 말했습니다. “그것이 전진이라면 어떤 곳도 가겠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나중에 리빙스턴이 잠시 귀국했을 때 기자들이 말했습니다. “당신의 희생적인 삶이 존경스럽습니다.” 그때 리빙스턴이 말했습니다. “희생이라뇨? 하나님의 큰 사랑에 빚진 제가 적은 일 한가지 한 것은 희생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까? 가장 큰 목적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희생이 기쁨으로 느껴질 때, 그는 자신의 삶의 목적대로 살아간 가장 복된 존재가 될 것이고, 그의 천국 상급은 누구보다 크게 될 것입니다.
6. 후회함이 없는 것
본문 6절 말씀을 보면 목자는 양 한 마리 찾았다고 즐거워하며 양 몇 마리 값이 드는 잔치를 벌입니다. 그만큼 전도는 가치 있는 일입니다. 사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즉 우리의 지성과 간판, 그리고 우리의 물질과 시간 등 모든 것은 전도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한 영혼을 구하는 것은 성전 하나를 짓는 것보다 낫습니다. 성공도 결국 복음 전파의 도구가 되려는 성공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후회 없는 삶이 됩니다.
스탈린 때에 보리스 콘펠트란 젊은 유대인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시베리아 수용소에 수용되었을 때 보조 의사로 지내다가 전도 받아 주님의 증거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느 날, 수용소의 한 죄수가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콘펠트는 수용소 법을 어기고 그를 수술해 살렸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알려져 그가 대신 처형당하게 되었습니다. 처형 전날 간수가 물었습니다. “후회가 없는가?” 그가 대답했습니다. “사랑에는 결코 후회가 없습니다.”
그는 주님의 뜻을 따라 사랑하며 산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살아난 사람이 바로 유명한 알렉산더 솔제니친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과 기술과 물질을 주셨습니까? 주님 사랑을 실천하며 후회 없는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그렇게 의미 있게 써야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랑과 헌신을 도전할 때마다 “주님! 저를 써 주소서!”라고 기쁘게 응답해야 합니다. 그때 인생의 의미는 커지고 깊어집니다.
일본에 미우라 아야꼬란 유명한 여류작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척추에 결핵균이 침투하는 불치병에 걸렸지만 그녀의 관심은 항상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였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주요 기도제목도 “하나님! 저를 고쳐주옵소서!”가 아니라, “하나님! 병약한 저도 써 주소서!”였습니다. 그처럼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부족한 저를 써 주소서!”라고 할 때 가장 목적에 합당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 됩니다.
항상 사랑을 실천하는 후회 없는 삶을 사십시오. 예수님은 영원히 죽게 될 우리 영혼을 찾아 이 땅에 오셔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처럼 우리도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나서야 합니다. 사람의 행복은 하나님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이 될 때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언제 가장 큰 행복과 기쁨을 느낍니까? 잃어버린 영혼이 하나님 앞에 돌아올 때입니다. 그러므로 보다 많은 영혼을 구함으로 어느 누구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십시오.
이제 끈질기게 전도하십시오. 그런 끈질긴 사랑의 수고가 없으면 잃어버린 영혼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예수 믿으시오” 하고 그냥 지나가는 것보다는 진국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결국 전도와 사랑은 함께 갑니다. 본문의 목자는 한 마리의 양을 잃었다고 해서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놓아두고 한 마리의 양을 찾습니다. 얼마나 바보스럽습니까? 그러나 그런 바보스러운 사람을 주님은 누구보다 기뻐하실 것입니다.
<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시오 >
20세기 초에 미국 버지니아의 한 산골마을에 반이 하나밖에 없는 작은 학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반 학생들 사이에서도 나이 편차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들은 너무 거칠어서 어떤 선생님도 그곳에 부임해서는 몇 주를 버티지 못하고 사임하고 떠났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한 젊은 선생님이 그 학교에 지원했습니다. 그 지원서를 받고 교육감이 말했습니다. “선생! 정말 그 학교로 가겠소? 경험이 아주 많은 노련한 선생도 그 학교에서는 2달 이상 버티지 못하고 다 떠났소! 그 거친 학생들을 통제하기에는 선생은 너무 젊소!” 그 얘기를 듣고 젊은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그 얘기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마침내 그 젊은 선생님이 그곳에 부임했습니다. 부임하던 첫날, 전체 학생들의 골목대장처럼 지내던 몸집이 큰 톰이란 학생이 반 뒤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얘들아! 이번 젊은 선생님은 내가 혼자서 상대할게. 아마 그 선생님은 오늘 수업이 끝나고 내일은 더 이상 이곳에 나타나지 않을 거야.”
선생님은 그 말을 들었지만 묵묵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업을 시작하면서 말했습니다. “얘들아, 만나서 반갑다! 나는 이곳에 대해서 많이 들었다. 이제 이 학교를 좋은 학교로 만들고 싶은데 솔직히 말해서 너희들의 도움이 없으면 이 일을 할 수 없단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학교에 규칙이 필요한 것 같다. 너희들이 스스로 규칙을 세워보라. 어떤 규칙이 필요하겠니? 너희들이 내게 말하면 흑판에 그것들을 써 넣겠다.”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교육하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한 학생이 소리쳤습니다. “훔치지 않기!” 선생님이 흑판에 썼습니다. 다른 학생이 또 소리쳤습니다. “늦지 않기!” 그 규칙도 흑판에 썼습니다. 마침내 10개의 규칙이 생겼고, 학생들은 다 웃으면서 그 규칙을 지키기로 동의했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얘들아, 어떤 법이든지 그것을 깼을 때 주는 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 규칙을 깨면 어떤 벌을 줄까?”
그때 덩치 큰 톰이 벌떡 일어서서 호기 있게 말했습니다. “누가 우리가 만든 이 규칙을 깹니까? 만약 그런 학생이 있다면 외투를 벗기고 그의 등을 10번 매질하기로 해요.” 그 얘기를 듣고 다른 학생들은 기가 죽은 채로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자, 톰의 말대로 하기로 너희들도 동의하니?” 다른 아이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표시를 했습니다. 그렇게 무사히 첫날 수업이 끝났습니다.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수업 중에 갑자기 톰이 달려 나와 말했습니다. “선생님, 누군가 제 도시락을 훔쳤어요.”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제 규칙을 세웠는데, 하루 만에 이 규칙을 깼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구나!” 그리고 한 명 한 명 철저히 조사했습니다. 마침내 도둑이 밝혀졌는데, 도둑질한 학생은 10살밖에 되지 않은 짐(Jim)이란 학생이었습니다. 짐이 고백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그 도시락을 훔쳤어요. 너무 배고파서 참을 수 없었어요.“
그때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이제 도둑을 찾았으니까 너희들이 직접 정한 규칙을 따라서 외투를 벗기고 등에 10번 매질을 하겠다. 짐! 앞으로 나와라!” 짐이 떨면서 큰 외투를 목까지 덮어쓴 상태로 나오면서 간청했습니다. “선생님! 저를 마음껏 무섭게 때려도 좋아요. 그러나 제발 외투만은 벗기지 말아주세요.” 그러나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짐! 외투를 벗어! 너도 규칙을 만드는데 함께 했었다.”
결국 그는 단추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외투를 벗자 짐은 셔츠도 입지 않고 바로 러닝과 팬티만 입고 있었는데, 거의 뼈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선생님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 아이에게 매를 댈 수 있는가? 그래도 그냥 지나치면 나는 학생들을 결코 다스릴 수 없을 텐데. 어떡하나?”
잠시 반 전체에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침묵을 깨고 물었습니다. ”짐! 어떻게 셔츠도 입지 않았니?“ 짐이 대답했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 너무 가난해서 셔츠를 살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제게는 셔츠가 단 한 벌만 있는데, 엄마가 오늘 그것을 빨았어요. 그래서 형의 외투를 입고 왔어요.“ 그 말을 듣자 선생님은 더욱 매를 댈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갑자기 톰이 나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짐 대신에 매를 맞겠습니다.“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톰! 훌륭하구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받을 수도 있단다. 너희들도 모두 이 조치에 동의하니?”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곧 톰의 외투가 벗겨졌습니다. 선생님은 그때 아이들에게 질서와 권위의 중요성을 교훈하는데 꼭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하고 마음이 아파도 강하게 톰을 매질했습니다.
5번의 강한 매질이 있은 후에 매가 부러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곳곳에서 흐느껴 울었습니다. 특별히 어린 짐은 더욱 서럽게 울면서 톰에게 말했습니다. “톰! 도시락을 훔쳐서 정말 미안해! 너무 배가 고팠어.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은혜를 결코 잊지 않을게.” 그 모습을 보고 선생님은 은혜의 중요성도 교훈하려고 매질을 거기에서 그쳤습니다. 그날 톰은 짐의 구원자가 되었고, 그 이후로 그 산골마을 학교는 다른 어느 학교보다 사랑과 우애가 넘치는 학교로 변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짐처럼 하나님의 규칙을 어긴 죄인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서 주님은 우리 대신 채찍을 맞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 사실을 믿고 주님을 자신의 개인적인 구세주로 받아들일 때 구원을 받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사실을 믿고 구원받으셨습니까? 지금 입술과 마음으로 “아멘!” 하신 분들은 항상 이런 고백으로 사십시오. “주님! 저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저를 구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주님의 은혜를 평생 잊지 않고 주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며 살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은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주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최고의 축복인 줄 아는 것이 최고의 신앙이고, 최고의 영성이고, 최고의 성공입니다. 사람들은 선물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신앙도 받는 것을 신앙으로 아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그리스도의 선물(Christ‘s present)’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임재(Christ's presence)’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 죄를 대신하고 구원해주신 주님을 마음속 깊이 영접하고, 머리와 가슴으로는 항상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느끼며 사십시오, 또한 주님 뜻대로 잃어버린 영혼을 구하려고 더욱 힘쓰고, 한이 없는 주님의 사랑을 가는 곳마다 전파하고, 주님의 사랑을 힘써 실천함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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