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경고 / 고린도전서 10:1~13
이 시간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만지시고 귀를 열어주셔서, 오늘 말씀을 단순히 어떤 한 사람의 설교로 듣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게 되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싫어하시는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구원 받은 자기 자녀가 도중에 잘못되고 나중에 망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망한다는 말은 세상에서 잘못된다는 의미이거나, 나중에 구원도 받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전제하는 말입니다. 또 한가지는 복음을 듣지 못해서 아까운 사람들이 영원히 멸망 당하도록 내버려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기 때문에 특별히 자기 자녀들에게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마가복음 13장 33절 같은 말씀이 아주 대표적입니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6절도 같은 의미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니라." 잘못되지 않으려면 깨어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잠 들거나 혼몽한 상태에 빠지면 자신도 모르게 실수하고, 잘못된 길로 발을 들여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로 하여금 잘못되지 않도록, 깨어있도록 하기 위해 2가지 경보시스템을 마련하셨습니다. 하나는 역사적인 경고이고 또 하나는 현실적인 경고입니다.
역사적인 경고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아마 오늘 읽은 고린도전서 10장 말씀이 가장 선명하고 핵심적으로 정리해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 한절 한절을 여러분에게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어떻게 이 말씀이 우리를 깨우기 위해 기록해 놓은 역사적인 경고인지를 깨달으면 됩니다.
10장에 나오는 말씀은 출애굽기와 민수기에 나오는 사건들을 통합해서 요약해놓은 말씀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얼마나 긴 세월입니까? 우리가 38년을 다른 나라 식민지로 있어도 국민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위기를 만났는데,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한 민족이 독립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미 동화될 때로 동화된 민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라는 위대한 지도자를 세워 오랫동안 종살이하면서 고통 당한 자기 백성을 불러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기에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하셔서 그들을 애굽에서 끌어냈습니다. 어린 양의 피로 그들을 애굽 사람과 구별하여 그들의 죄를 씻으시고, 모세를 앞장세워 2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것입니다. 애굽을 떠나자마자 하나님께서는 혹독한 더위와 햇살을 피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름기둥으로 덮었습니다. 그리고는 홍해에 이르자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길을 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다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지나자마자 영원히 애굽과 결별하는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다시는 애굽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애굽 사람을 다시 만날 필요도 없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소위 우리가 말하는 출애굽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일컬어서 1절 이하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세례를 받고." 애굽에서 나와 이제는 구름 기둥아래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바다를 건너갑니다. 지도자 모세에게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속하여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구름 기둥의 인도를 받고, 바다를 통과하는 것이 세례가 됩니까? 세례는 누구에게 속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우리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 나는 예수님의 백성이다'라는 것을 전세계에 공포하는 하나의 의식이 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모세의 인도대로 바다를 통과하여 모세와 완전히 하나가 된 것을 세례로 표현한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량한 땅, 시내산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는 먹을 것, 마실 것도 없습니다. 더욱이 200만 명이 넘는 숱한 사람들과 수백 마리나 되는 가축들을 먹여 살린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침마다 만나라는 귀한 음식을 제공해서 40년 동안 먹게 하셨습니다. 또 큰 바위를 지팡이로 쳐서 갈라놓으시고 그 틈에서 솟아나는 생수를 40년 동안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사람들이 노력해서 얻은 음식도 아니고, 땅을 파서 마시는 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래서 신령한 식물, 신령한 물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출애굽 사건은 앞으로 예수 믿고 구원받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되는 사건을 미리 예고한 것입니다.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 양의 피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르키는 예표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린 만나와 바위에서 터진 생수를 마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이요, 생명의 생수가 되신 예수님을 먹고 마시면서 우리가 구원 받는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에 일어난 모든 사건들은 오늘날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과 사건으로 미리 가르쳐준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단 2사람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사람들이 다 광야에서 죽어 모랫바닥에 장사되고 맙니다. 이제 그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서 중요한 경고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없다. 바로 우리가 만든 금송아지가 하나님이니라.'고 하면서 그 앞에서 뛰고 잔치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우상숭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죽었습니다. 그래서 7장에서 '너희는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민수기 25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간음죄를 범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은 자신들이 불리해지자 미인계를 썼습니다. 아름다운 처녀들을 이스라엘 사람들 틈에 끼어 넣어, 여기에 미혹받은 이스라엘의 건장한 젊은이들이 전부 다 성적 타락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보시고 참다 못해 그들을 징계함으로 하루에 23,000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민수기 25장에는 24,000명이라고 나와있습니다. 그런데 왜 여기는 23,000명으로 나와 있습니까? 지금 바울은 자기가 읽고 기억한 것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는 참고할 만한 책이나 성구사전이 없으므로 기억력에 의존할 뿐이었습니다. 큰 양피지 두루마리에 민수기서를 써놓았는데, 그것을 다시 바울이 들춰 가면서 23,000명이 있는 곳을 찾아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장, 절로 구별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기억을 더듬어 적다 보니 어느 정도 오차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여튼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벌을 받고 죽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저들과 같이 간음하지 말자'고 합니다.
또 민수기 14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정탐꾼을 보내셨습니다. 그 정탐꾼이 돌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나쁜 정보만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자 금새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원히 하나님의 축복을 놓치는 비극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저들처럼 주를 시험하지 말자고 합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때 물과 양식이 없어 원망하다가 불뱀에게 물림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습니다. 그 사건을 보면서 우리도 저들처럼 원망하지 말자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사건들을 구약에 기록해 놓으셨을까요? 그것은 '역사를 놓고 배우라.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경고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 경고를 받으므로 우리가 잘못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6절을 보면, 구약에 기록된 이런 일은 우리에게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의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11-12절을 보십시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우리가 스스로 선 줄로 생각하다가 넘어지는 불행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역사적인 사건을 성경에 기록해놓으시고, 시시때때로 그 말씀을 통해서 경고를 받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말세가 가까이 오지 않습니까? 우리도 잘못하면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지기 쉽습니다. 저나 여러분에게는 우상이 없습니까? 하나님만을 섬긴다고 입으로는 대단히 요란하게 신앙을 고백하고 찬송하지만, 마음속에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어떤 우상들이 자리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돈입니까? 쾌락입니까? 야망입니까? 아니면 이 인간세상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어떤 목적입니까? 무엇인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우상이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하면 나도 모르게 잘못되고, 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적 타락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은 없습니까? 오늘날 얼마나 음란한 세상입니까? 웬만한 것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옛날에는 처녀가 아이를 낳으면 웃음거리가 됐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만큼 음란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육적인 쾌락의 종이 될 수 있는 위험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펴놓고 역사적으로 교훈을 받는 것입니다. '나도 음란하다가, 간음하다가 망한다'는 하나님의 경고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하진 않습니까? 하나님께 불평하진 않습니까? 하나님을 시험하진 않습니까? 혹시 마음 속으로 '세상에 성경 말씀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어? 그 말씀대로 벌받거나 복 받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다 성경이 하는 이야기지, 사실은 달라.' 하면서 은근히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을 테스트하는 교만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까? 이런 사람을 놓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을 빠짐없이 기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깨어 자신도 모르게 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경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두 번째 경고 시스템이 있습니다. 그것은 현실적인 경고입니다. 곧 당장 눈앞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이 누가복음 13장 1절 이하에 나옵니다. 누가복음 13장을 보면 적지 않은 수의 갈릴리 사람들이 멀리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제사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갈릴리, 유대나라를 다스리던 로마 총독 빌라도가 군사를 보내 이유없이 제사 지내는 사람을 살육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제사 지내다가 전부 칼에 맞아 피를 토하니까 그 피가 전부 제단에 올려놓은 제사에 튀고 난리법석이 났습니다.
이 끔찍한 사건을 보고 온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달려가 물었습니다. "예수님. 갈릴리 몇 사람들이 지금 제사를 지내다가 죽임을 당했고, 제물에 피가 섞여 부정한 제물이 되어버렸는데,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한 마디로 희생당하는 사람의 죄 값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이 죄가 있어서 그런 일을 당한 줄 아느냐? 아니야. 너희들도 그들처럼 회개하지 않으면 똑같이 망하리라." 하나님께서 그 사건을 놓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누구의 죄냐?' 그런 것은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건을 놓고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을 경고한다는 말입니다. 너희들도 정신차리지 아니하면 망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이 실로암 망대, 요즘 말로 높은 망대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공사가 부실했는지 그만 망대가 붕괴되어 여러 명이 함께 추락해서 희생을 당했습니다. 그 사건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습니다. "예수님. 망대에 올라간 사람들이 다 죽었습니다. 누구의 죄 값으로 저렇게 되었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누구 죄 값으로 된 것이 아니다. 그들이 너희들보다 죄가 많아서 죽은 줄 아느냐? 그렇지 않다. 너희들도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느니라." 눈앞에 벌어지는 사건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경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실적인 경고 시스템입니다.
이런 경고성을 가진 사건들은 말세가 되면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마태복음 24장 6, 7절에 보면 난리와 난리가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말세가 될수록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고, 나라가 나라를 대적해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끔찍한 사건들은 진짜 사건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진짜 사건들이 일어나면 엄청난 비극들이 우리 역사의 현장에 나타날 것이라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현장의 경고입니다.
지난 100년 동안에서 엄청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지만, 앞으로는 더 무서운 사건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사건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를 경고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로 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교회를 깨우기 위해서, 불신자들을 각성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징조의 성격도 있습니다. 이 세상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는 사인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사인입니다. 이런 사인으로 하나님께서 현실적인 경고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지난 9월 11일, 우리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지켜보았습니다. 미국의 부와 번영의 상징이자 미국 문명의 첨단을 상징하는 세계무역회관 쌍둥이 빌딩이 여객기와 충돌하여 불과 1~2시간 만에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수천 명의 생명이 소리없이 사라져버린 끔찍한 사건을 지켜보았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그 사건을 자주 반복해서 보았습니까? 어떻게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잠을 자지 못하면서 고민했을 정도입니다. 그 사건을 한마디로 말하면 20세기 고층문명의 첨단인 쌍둥이 빌딩과 20세기 고속문명의 첨단인 제트 여객기가 충돌로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자랑하는 이 두 가지가 함께 파괴되고 붕괴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아마 비행기 1대가 중간에 추락하지 않았다면 백악관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백악관만은 지켜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절대로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많은 것을 시사하는 하나님의 현실적인 경보입니다. 이것을 단순히 보아 넘길 수는 없습니다.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백악관으로 향하던 비행기가 중간에 추락했습니다. 그런데 그 비행기안에는 믿음이 좋은 32세의 청년과 그의 친구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휘튼 대학 출신으로 건장한 청년들입니다. 미국의 휘튼 대학은 기독교 대학 가운데 가장 우수한 대학입니다. 많은 인재들이 나왔습니다. 빌리 그래함을 비롯하여 많은 인재들을 배출함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대학입니다. 이 토드 비머라는 청년은 컴퓨터 기사입니다. 그리고 어느 교회에서 충실하게 봉사하는 평신도로서, 앞으로 선교사로 나가고자 준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믿음 좋은 사람과 똑 같은 믿음을 가진 친구들이 그 비행기를 탔습니다.
만일 이 엄청난 테러사건이 일어나는 와중에, 백악관마저 습격을 받고 무너졌다고 하면 3차대전이 일어날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막으셨습니다. 이 믿음 좋은 비머와 그의 친구들이 휴대폰으로 가족들에게 기내 상황을 전한 후, 자신들은 주기도문을 같이 외우는 것을 신호로 테러범에게 돌진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테러범들이 의도한 대로 워싱턴에 진입하지 못하고 중간에 추락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미국을 지키신 것을 봅니다. 이 비머의 아내는 내년 1월에 셋째 아이를 얻을 예정이었는데, 남편의 뜻을 이어서 세 자녀를 선교사로 키우겠다고 이야기하는 신문보도를 보았습니다.
여러분, 이런 사건이 어떻게 우연한 사건입니까? 우리는 이런 현실적인 사건을 놓고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머리를 속이면서 '하나님, 주께서 무엇을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번 테러사건을 놓고 어떤 목사님이 신문 지면에 다음과 같이 해석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세계무역회관이 붕괴되고 펜타곤이 파괴된 것은 클링턴 대통령이 재임시절에 여자들과 스캔들을 많이 일으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벌하기 위한 징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식으로 속 좁은 해석을 하면 안됩니다. 클링턴 대통령이 잘못했으면 그를 벌할 것이지, 왜 수많은 영혼들이 죽임을 당해야 합니까? 마치 망대가 무너져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것을 보고 "저들에게 무슨 죄가 있어 저런 일이 일어납니까?"라고 묻는 사람들과 똑같지 않습니까?
이것은 먼저 미국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오만불손하고, 방종하고, 물질을 우상으로 섬기는 미국을 향한 하나님의 엄한 경종입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종입니다. 미국 교회는 갈수록 세속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잘살아서 자신도 모르게 영적으로 잠이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40만개 가까운 교회 중 교역자가 없는 교회가 지금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목회자가 되면 박봉에 시달리며 고생을 해야 하는 탓에 똑똑한 젊은이들이 이제는 신학교를 안 들어 갑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비어있습니다. 이와 같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미국 교회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경고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국을 보세요. 국민소득 35,000불로 우리나라보다 5배나 잘사는 나라입니다. 최강의 나라입니다. 세계 에너지의 50%이상을 북미가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세계를 오염시키는 주범이 바로 북미입니다. 그 나라는 자원이 풍부하여 이런 말까지 할 정도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200년 동안 놀고 먹어도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복을 받은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서 라면 그 어떤 일도 거침없이 행했습니다. 귀찮게 여겨지면 이웃나라 국가 원수도 자기 법정에 출두 시키는 나라입니다. 파나마의 국가 원수를 자기 나라에 끌고 와 재판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소수민족에 대한 인종차별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들은 흑인 및 동양인을 차별합니다. 지나친 자국민 우월의식에 젖어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적인 잘못된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주변에 있는 팔레스타인들을 무차별 살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옆에 끼고 돌면서 전세계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우산 아래서 온갖 범죄를 키워 세계 도처에 퍼뜨리는 죄악의 병원체가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은 죄악의 소굴이요,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의 대명사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지금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보아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미국이 자랑하는 것 때문에 망합니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망합니다. 이번 테러범들이 사용한 것들을 보십시오. 미국의 첨단 기술의 상징인 여객기, 초현대식 고층빌딩, 크레디트 카드, 렌터카 시스템, 인터넷... 미국이 자랑하는 모든 과학, 그들이 우상으로 여기는 최첨단의 과학을 전부 이용해서 이번 테러가 저질러졌습니다. 미국이 자랑하는 민주주의, 개방성, 자유, 이 모든 좋은 것들을 악한 세력들이 이용해서 미국을 파괴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신화를 다시 한번 입증한 것입니다. 작은 손가락 하나만 들고도 MD(Missile Defense: 미사일 방어)로 상징되는 미국의 철통 같은 방어망을 뚫을 수 있음을 입증한 것입니다.
미국은 흥분해서 보복만 앞세우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가 무엇인가를 깊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12절의 '선 줄로 생각하면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씀은 개인은 물론 국가, 교회에도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미국 교회가 정신차려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준엄한 경고를 받는데도 영적으로 깨어나지 못한다면 미국과 미국교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11일 사건이 터지자마자 그 다음 주일날, 사람들이 교회로 많이 몰렸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제일 크다고 하는 윌로우 크릭 교회의 통계를 봤습니다. 그 교회는 지금 저희 교회 규모정도입니다. 주일에 약 18,000명 모이는 교회이니다. 그런데 그 사건이 터지자마자 그 다음 주일에 5,000명이 더 몰려와서 23,000명이 모였습니다. 교회마다 사람들이 몰려갔습니다. 그러나 일회성으로 끝나리라 생각됩니다. 충격과 흥분이 점점 가라앉으면 또다시 교회를 멀리할 것입니다. 미국 교회가 회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이 어떻게 미국과 미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로서 끝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한국교회에 대한 경고는 아닐까요? 대한민국에 대한 경고는 아닐까요?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는 아닐까요? 우리는 곰곰히 생각해봐야 합니다. 오늘 우리도 미국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의식구조가 점점 미국 사람을 닮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생활 패턴이 점점 미국 사람을 흉내내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우상을 한번 보십시오.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보다도 더 크게 생각하고 있는 우상이 뭔지를 보십시오. 돈은 아닙니가? 좋은 건물은 아닙니까? 명예가 아닙니까? 목사들은 자기의 야심이 아닙니까? 이와 같은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경고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은 경고를 잘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인 경고를 듣고도 사람들은 경고를 잘 듣지 않습니다. '옛날 고대 시대에 있었던 사건인데, 지금 나하고 지금 무슨 상관이야. 신앙생활 잘 안 해도 잘 사는 사람이 허다한데 뭘 그렇게 사람 겁주는 말만 자꾸 할까?' 쌍둥이 빌딩 같은 것이 10개가 무너져도 꿈쩍도 안 할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많습니다. 여전히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건이 일어나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나 즐기는 데만 아주 바쁩니다. 교회 안에도 얼마든지 잠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흔들어도, 흔들어도 깨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담배 때문에 1년에 8~900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담배갑에 담배의 해악성에 대한 경고문을 표기한들 소용없습니다. 앞으로 20년 후에는 세계적으로 1,000만 명이 담배 때문에 희생당한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서 700만 명은 개발도상국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런 끔찍한 경고를 받으면서도 유유히 담배를 피우면서 그 연기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이와 같은 현실적인 경고를 듣고도 듣지 않는다는 것은 실로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경고를 놓고 한가지 꼭 생각합시다. 도대체 왜 하나님은 자꾸 이렇게 경고를 하실까? 왜 끔찍한 사건으로 우리를 흔들어 깨우려고 하실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를 끔찍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잘못하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구원도 못 받는 불행한 자가 되지 않도록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에 있습니까? 자녀가 잘못되는 것이 뻔한데 경고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에 있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잠을 자면 깨우기 위해 경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위험한 벼랑에 서게 되면 어떤 방법,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우리를 깨우고 우리를 그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심령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 있는 것이 없습니까? 개인적으로 잘 살펴보십시오. 이렇게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거창한 사건을 가지고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우리 개개인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가 지금 없습니까? 여러분의 자녀에게 어떤 문제가 일어납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을 경고하는지를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예고하지 아니한 사건이 일어납니까? 거기에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왜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일들을 경험하게 하시는지 거기에 해답이 있습니다. 나에게 우상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잘못된 더러운 생활에 지금 발목이 잡혀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실제로 죄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 마음으로는 하나님보다도 월등히 사랑하는 돈과 명예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경고 시스템이 어떻게 발동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그래서 '아,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깨우기 위해, 그리고 나로 하여금 돌아서도록 신호를 주시는구나' 하고 무언가 느껴지면 반드시 순종해야 됩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스쳐 지나가면 그 다음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절대로 여러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여러분, 신앙적으로 조금이라도 교만이 있고, '나는 괜찮다'고 스스로 선 것처럼 생각되면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내 주변을 살피면서 하나님께서 크고 작은 일들을 통해 경고를 할 때마다 나를 돌아보는 깨어있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무리 경고를 해도 꿈쩍도 하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걸어가는, 자기 갈 길을 달려가는 불쌍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꼐서는 그들도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들로 하여금 정신차리도록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지진, 기근, 테러, 전쟁을 통해 사람들을 경고합니다. 그런데도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을 구원하라고 우리를 먼저 구원해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찾아가서 하나님의 경고를 전해야 합니다.
쌍둥이 빌딩이 붕괴되기 직전, TV에 방영된 한 장면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빌딩 위쪽에서 창문을 열고 하얀 보자기를 계속해서 흔드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는 빌딩 아래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화염과 연기 속에서 구조의 손길을 절박하게 기다리며 있는 힘을 다해 보자기를 흔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탈출할 수도, 구조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3~40분 후 빌딩이 무너지면서 그 사람도 무서운 폭음과 함께 우리 눈에서 사라졌습니다.
보자기를 흔드는 그 사람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오늘날 우리 주변에 예수 안 믿는 사람의 모습과 같지 않습니까? 그들이 지금처럼 살면 마지막 날 아무리 보자기를 흔들어도 건져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어두움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는 불쌍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보자기를 흔들며 살려달라고 아우성 칠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영의 눈으로 그들을 보아야 합니다. 아직도 구원의 문이 열려있는 지금, 그들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경고를 전하고 그들이 구원받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은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 앞에는 유토피아가 없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것만이 이 땅의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마지막 보자기를 흔들면서 살려달라고 하는 비참한 꼴을 보여주기 전에 그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오늘 메시지 잘 정리하십시오. 우리 눈 앞에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내 자신이 경고를 받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주변에 아직도 주를 모르는 사람들, 하나님께서 아무리 경고해도 꿈쩍도 하지 아니하는 사람들을 복음으로 구원해야 합니다. 내 사랑하는 남편, 자녀, 친구, 그리고 이웃이 그런 비참한 꼴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 주신 이 모든 경고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영적으로 깨어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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