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제자 삼아라> 마28:16-20
언더우드 학술강좌 2001 "선교와 문화" 이수영 목사
금년 언더우드 학술강좌의 주제가 "선교와 문화"입니다. 그래서 먼저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그 이해 위에서의 우리의 선교에 관한 입장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문화"가 무엇입니까? 사람마다 그 이해와 정의가 조금씩 다르리라 봅니다. 사전에 올라있는 문화의 정의나 설명들도 다양합니다. 우리는 "문화"를 "인류(혹은 어떤 특정 사회나 공동체)가 그 이성, 감성, 의지 등의 능력을 통해 이룩한 종교적, 윤리적, 사회적, 기술적, 학문적 진전과 그 결과 및 특성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로 이해하면서 이러한 의미의 문화에 대한 성경적·신학적 관점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우리는 인류가 창출하고 발전시켜온 문화를 인정해야 하고 그 문화를 일구어낸 인간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철학이나 과학 같은 학문들과 각종 예술의 발전 및 온갖 제조기술의 발달 등 인류가 이루어 놓은 놀라운 결과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어야 하며, 타 피조물에 비교해서 인간이 지닌 탁월한 능력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달나라에 사람을 보내는 등 우주를 탐사하고, 한 자리에 앉아서 순식간에 지구상의 모든 곳에 문자나 음성 및 화상으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오늘날의 과학기술 등 인간이 이룬 놀라운 업적들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사고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연적 인간과 그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평가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간이 가진 능력은 무한하지도 않으며 또 그 유한한 능력조차도 자연적 인간 스스로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에 대한 근본적 이해를 신학적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참된 인간이해는 신학적 인간이해입니다. 신학적 인간이해란 인간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고 봅니다. 따라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고려하지 않는 인간이해는 참될 수 없음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신학적 인간이해는 죄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죄는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심하게 손상시켰지만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에게서 완전히 소멸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형상의 불티가 남아있다고 보는데, 그것은 모든 인간에게 심겨져 있는 종교의 씨와 양심과 그 밖의 여러 가지 능력들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그에게 범죄한 인간이기는 하지만 그 인간을 단숨에 악마나 짐승 같은 존재로 만드시거나 인간사회를 도저히 살 수 없는 혼란과 무법천지의 세상으로 만들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남겨주신 그 "자연적 은사들"을 통해서 인간은 가정과 사회, 국가를 이루고 그 질서를 유지하며 공공의 복지를 도모하고 삶의 편리를 위한 발명과 개발을 거듭하며 보다 유쾌한 삶을 향유하기 위해 예술을 발전시키고 온갖 학문의 발달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편적 은혜이며, 문화는 이 하나님의 보편적 은혜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이, 따라서 문화는 하나님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그러나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일들"에 관한 이러한 인간의 능력들은 결코 온전한 것이 아니라 상당한 정도 죄로 말미암아 손상받고 오염이 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얼마만큼의 지각과 판단력과 의지는 많은 어두움에 싸여 있어 온전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비록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일들에 관한 것이라 하더라도 인간이 사고하고 판단하고 행하고 이루어 놓은 것들을 모두 옳고 좋고 완벽한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문화는 비판적 검토의 대상임이 또한 분명합니다.
다른 한편, "천상적이고 영적인 일들"에 관해서는 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능력이 전적으로 무력해졌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의 뜻과 그의 나라의 진리, 구원의 비밀, 영적 삶 등에 관한 한 인간은 완전히 눈이 멀고 길을 잃은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 안에 남겨두신 종교의 씨도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막연하게 느낄 수 있는 정도의 능력에 그치며, 양심도 지극히 상대적인 선을 알고 행하는 근거는 되나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케 할 수 있는 기능을 갖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자연적 인간이 그들에게 남겨진 자연적 능력을 가지고 만들어 놓은 문화는 근본적으로 불신앙적이며 반신적(反神的)이고 하나님의 나라와는 무관한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무조건 수용될 것이 아니라 신앙적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함이 또한 분명해집니다.
이상과 같은 인간과 그 문화에 대한 기본적 입장은 우리의 종교개혁자 깔뱅의 다음과 같은 짤막한 한 마디 문장 속에서만도 충분히 드러납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는 기술은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나는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과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사람들에게 주신 것이 무질서한 오용에 의해 타락하고 오염되지 않도록, 또 그것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황폐에로 돌아서지 않도록 그 사용이 순수하고 적법하게 지켜질 것을 요구한다". 이 문장 속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문화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관계된 거의 모든 주요사항이 간결하게 요약, 함축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것들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문화를 일으키는 인간의 능력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능력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러므로 그 능력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질서있게, 바르게, 순수하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만일 그렇지 못할 때에는 문화는 인간의 번영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황폐화를 의미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인간과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며 성령으로 날마다 성화시키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진정한 문화, 즉 이 세상과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본래대로 바르게 질서 잡힌 문화는 오직 기독교적 문화(이 말이 서구 기독교 국가들의 문화로 동일시되지 않기를 바랍니다)일 수밖에 없음이 자명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문화를 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기독교적 문화를 적극적으로 창출해 나가야 하리라 봅니다.
이 세상의 문화들을 비판하는 기준이 되는 주된 물음들이 있습니다. 첫째로는, 창조주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이 가려지지 않고 드러나는 문화인가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와 그에 대한 신앙고백이 담겨진 문화인가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갈망과 그 도래에 대한 확신적 기대가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문화인가 하는 것입니다.
또 문화가 참된 문화 즉 기독교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로는 자연적 인간의 이성이나 감정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으로 조명되고 변화된 이성과 감정, 양심과 의지의 산물로서의 문화이어야 합니다. 둘째로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뜻에 따른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문화, 즉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는 문화이어야 합니다. 셋째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과의, 사람들 사이의, 자연과의 화해와 삶을 추구하며 실현하는 문화이어야 합니다.
이로써 세속문화나 다양한 전통문화 혹은 토속문화와 기독교신앙이 어떤 관계 속에 있어야 할 것인가 하는 해묵은 문제에 관한 우리의 답변은 이미 주어졌다고 봅니다. 모든 문화는 범죄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자비와 깊은 섭리 속에서 남겨주신 능력들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모든 문화는 인간들이 하나님의 자연적 은혜의 선물들을 어떻게 사용(또는 어떻게 오용)하고 어떻게 발전(혹은 부패)시켜 왔는가를 더듬어 살펴볼 수 있는 자기성찰의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의해 조명되지 않은, 즉 믿음으로 변화되지 않은 인간의 능력들로 말미암은 문화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줄 수 없으며 결국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우리 민족의 고유전통문화라고 하여도 신학적 검토와 신앙적 여과 없이 무조건 모든 것을 수용하고 예배나 교회의식 속에 무분별하게 도입, 혼합하려는 시도는 잘못될 가능성이 많음을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전통문화 속에서도 참된 종교성이나 기독교적 신앙의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인간에게 심겨진 종교의 씨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부인할 수 없는, 그래서 나중에 스스로의 불신에 대하여 핑계할 수 없게 하는, 어렴풋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뿐이며, 참된 하나님 인식에 이르게 하는 힘은 전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 종교의 씨에 근거해서 나온 문화 속의 종교현상들은 참된 구원의 진리를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화를 하나님 인식의 원리로 삼으며 신앙의 출발점으로 삼으려는 모든 시도 또한 거부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시도들은 죄로 말미암아 이성, 감정, 의지 등 영육간의 모든 부분이 부패하고 오염되었으며 더더군다나 하나님을 아는 일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무력해지고 눈멀고 길을 잃었다는 성경적 사고에 의해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것입니다. 부패한 인간의 자연적 이성, 감정, 의지의 산물로서의 문화는 따라서 하나님 인식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문화는 신앙의 출발점이 아니라 그 변화를 향하여 신앙이 나아가야 할 목표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종교는 결국은 다 참 하나님의 진리와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는 사고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에게 계시하지 않으신 진리는 참 진리가 아닙니다. 아무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께로 나아올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참 진리이고 구원의 길이며,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주로 고백하는 종교만이 참 구원의 종교라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6).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는 것이 성경의 선언입니다(행4:12). 다른 모든 종교들은 만인에게 심겨진 종교의 씨를 가지고 사람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왜곡된 종교적 사고일 뿐입니다. 기독교국가가 아닌 다원적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에게는 타종교를 존중하며 살아야 하는 시민적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자유로운 신앙의 주체로서의 우리가 모든 종교를 참 구원의 진리로 인정하고 우리의 기독교신앙의 절대성을 포기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배타주의라고 비판받을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본문 19절) 한 것은 "내 제자" 곧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지, 공자의 제자나 석가의 제자나 마호멧의 제자를 삼아도 상관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엡4:5)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한 분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본문 20절)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모든 민족에게로 가서 가르치고 지키게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이지 다른 어떤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 선교이며, 그것은 다른 민족들의 문화와 전통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그들의 문화 속에 있는 불신앙적·반신적 요소들을 발견하도록 도우며,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향하여 결단하도록 안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교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 이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졌고 또 이 일을 위해 이 세상에로 보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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