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은 버티는 것 눅21:19 09.12.11. 세미나 녹취(1)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눅21:19
'신앙생활의 실상'이 끝부분에 공개되는데, 이런 면이 반드시 있는 것 같습니다.
▲‘신앙생활은 마치 여행과 같다' 라고
제럴드 싯처 목사님이「하나님의 뜻」책에서 말했다.
‘여행과 같다’는 말은.. 늘 아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전혀 모르는 데를 가보고, 모르는 사람과 사건을 만나는 과정에서,
나의 실력과, 나의 준비된 만큼
내가 처음 만나는 그 환경과 조건을 대응하게 된다.
▲신앙생활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대응’, ‘반응’하는 자세이다.
지금 한국교회 분위기는,
몇 가지의 성공적인 공식 때문에
모든 것을 그런 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데..
저는 우려를 표한다.
신앙을.. 무슨 수학이나 과학처럼..
어떤 원리/공식을 발견하고.. 그 공식에 따라 우리 삶을 대입하면
답이 딱딱 떨어져 나오는 식으로 ※예를 들면, 행복한 삶의 7가지 비결 등
(신앙생활은) 그렇게 ‘이성적으로 명확하게’ 결코 설명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신앙생활은 언제나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평생을 신앙생활하면서, 성경을 연구하고, 설교로 가르치지만,
지금까지도 신앙생활이 내 머리로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내가 무슨 문제를 만나면 ‘이게 뭔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의아하게 여겨진다.
예를 들면, 제럴드 싯처 목사는, (「하나님의 뜻」책에 보면)
교통사고로 자기 어머니, 아내, 딸을 동시에 잃는다.
그 때 자기가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은, 주위에서
‘하나님의 뜻이 있으실 거야!’ 하면서 자기를 위로해 주는 말이었다고 한다.
자기는 딜레마에 깊이 빠져 있는데,
주위에서 너무 쉽게 해석하고/말하는 것이 듣기 싫었다는 것이다.
(결국 신앙은, 다 설명하고, 다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버텨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평소에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나가서 승리하리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막상 위의 제럴드 싯처 목사님과 같은 상황을 만나면
내 신앙이 깊은 딜레마에 빠진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떤 공식에 대입해서/어떤 교리로 쉽게 설명되어지지 않는다.
‘몰라서 안 되는 게 아니라, 답(말씀)은 알지만.. 그래도 신앙이 모호하다. 쉽게 설명이 안 된다.’
(결론을 미리 말씀 드리면, 딜레마의 답을 알려고/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무조건 버텨나가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늘 처음 방문한 여행지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판 낯선, 복잡한 멕시코시티 한 복판에 던져져서, 지도를 손에 들고도
온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것이다. 그렇게 모호하고, 당황스러운 것이다...
수 십 년을 믿어도, 금년의 여행이 또 전혀 새롭고 낯설다...
▲부인→원망→수용의 단계
여러분, 어느 날 갑자기 ‘말기암’ 판정을 받은 사람은, 이런 반응을 나타낸다.
‘아니야, 절대 그럴 리 없어!’ (부인)
다른 병원에서 재검사해도 맞으면.. 하나님을 원망한다. ‘주여, 어째 이런 일이..’
그러다가 결국 체념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수용)
신앙생활도 이런 과정과 비슷하다.
평소에 성경공부를 통해 무슨 원리, 무슨 공식으로 무장해서 잘 살아가다가도,
내가, 교통사고로 한 순간에 가족을 잃는 것 같은, 무슨 큰 난관에 부딪히게 되면..
단순한 공식으로 그 사건이 설명되지 않는다.
(단순한 공식으로 설명해 주려는 주위 사람을 만나면, 위의 싯처 목사처럼 짜증만 난다.)
그래서 우리가 실제로 삶의 큰 문제를 만나면..
마치 암환자처럼 먼저 ‘현실을 부인’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결국 ‘체념하고 현실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하는’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그럼 뭘 어쩌란 말인가? 신앙생활은 그럼 뭐냐?
(나/설교자의 표현으로는) 신앙생활은 자폭하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여러분, (형통하고 기쁜 일에는 도움이 필요 없지만)
슬프고 억울한 일,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일을 당하시면,
무슨 답도, 성경의 어떤 구절도.. 내게 일단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 갈림길에 처하게 된다.
-자폭하고, 포기하고, 주저앉아버리는 길과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견디고 버티는 길이다.
나중에 하나님의 뜻, 섭리를 발견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무조건 버텨내야 한다.
그래서 ‘시간이 빨리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 이런 기도도 해볼만하다. 효과 있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 나가보니,
나중에 상당한 세월이 지나서 뒤돌아보니,
그제야 상상하지도 못했던 선한 결과로, 내가 인도되어져 왔음을 깨닫는다.
결국 하나님의 행하심이 가장 옳더라는 것이다.
결국 감사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버텨야 하는 것이다!
▲‘버틴다’은 ‘내가 몸소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신앙생활이란,
성경공부나 설교를 통해서, 원리나 공식 몇 가지를 알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내 몸으로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원리나 공식 몇 가지를 내가 알았다고 해서,
신앙생활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내 몸으로 버텨내고, 통과해 냄을 통해서.. 내가 신앙생활을 이해해 나간다.
군대생활을 예로 들어보자.
군대생활을 잘 하는 원리, 군대생활을 쉽게 하는 공식을 달달 외우고 있다 하더라도
그게 군대생활을 잘 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군대생활을 잘 마치고, 제대하려면,
자폭(스스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버텨내야 한다.
그 원리, 이론, 공식이 영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군대생활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크게 도움 되는 것은 아니다.
군대생활이 무엇이냐?
원리나 공식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원리, 공식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님)
자기 몸으로 버티고 견뎌내면서.. 그것을 차츰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저는 원리, 공식.. 이런 것으로 기독교 신앙을 단순하고 쉽게 설명하지 않는다.
어떤 분은 쪽집게 강의를 하시더라도.. 저는 그렇게 못 한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의 실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 신앙생활의 실상
지금까지 60년 여행을 했더라도, 금년의 여행이 또 완전히 새롭더라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주님의 선하심을 믿고 버텨 나가시라는 것이다.
여러분, 과거에 해병대 같은 극한의 훈련을 하는 곳에 가면,
군인들이 버티는데, 사실 자살할 용기가 없어서, 죽지 못해서 버티는 것이다.
신앙생활도, 우리 인생여정도,
다만 하나님이 버틸 힘을 공급해 주셔서, (죽지 못해) 자폭하지 않고 버티는 것이고,
그 결과, 세월이 지나서, 아름다운 결과를 보게 된다.
(물론 성령충만해서 감사할 때가 있지만, 엄청난 고난을 당하면 악착같이 버텨나가야 할 때도 있다.
이 글은.. 햇볕이 아니라, 구름 낀 날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우리가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 다같이 화이팅!’
'이렇게 하면 성공하고, 이렇게 하면 다 잘 된다!'
이렇게 단순하고 쉽게 설교하시는 분이 부러운데.., 나는 그렇게 못 하겠다.
우리 신앙생활이란, 그리고 우리 삶이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는 그런 단순하고 쉬운 설교가.. 우리 실제 삶에 거의 도움이 안 된다고 본다.
오히려 실상을 호도함으로써, 신자들을 낙심/냉담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믿어 봐도 별 수 없더라’ 라는 식으로 냉담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신앙의 길이 이 따위냐?’ 라고 외치실 것이다. (형편없다는 뜻)
신앙생활 하면.. 뭔가 삶이 쉽고 편안해질 줄 알았는데,
이를 악 물고 버텨내야 하는 생활이 연속된다면.. 여러분, 이런 불평이 나오실 것이다.
(그래서, 사회에서 1% 성공한 사람들, 어쩌면 운이 좋아서 그럴 수 있었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예를 들면서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는 것은,
성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 준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기도 하지만,
우리 현실과 실상을 왜곡하는 설교라고 본다.
또한 ‘성공’이 신앙의 목표도 아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사기를 치지 않고) 신앙생활의 진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다른 분이 ‘사기 친다’는 뜻은 결코 아님. 각자 받은 은혜와 은사대로 섬기는 것임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결코 녹록하지 않다는 것이다.
군대생활에 대한 이론을 다 공부하고도, 군대생활이 어렵다는 예를 들어서, 앞서 설명했다.
우리가 공식과 원리를 배우더라도, 그것과 현실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이다.
‘예수 믿으면 다 잘 될 줄 알았는데.. 사기 당한 것 같다’ 이런 생각이 간혹 드실 것이다.
(※이것을 인과율로 ‘네 죄 때문에 고난이 많다’고 단순하게만 설명하는 분들도 있다.)
이때 자폭하고, 주저앉아 버리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이 은혜/믿음 주셔서, 버텨내는 사람이 있다.
제가 ‘실상’을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것은,
자폭하지 말고, 버텨내는 사람이 되시라고.. 말씀드리는 것이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눅21:19
이게 솔직하고 진솔한
신앙생활에 대한.. 나의 개관적 설명이다.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고.. 입술 꽉 깨물고, 주먹 불끈 쥐고, 일단은 버텨내는 것이다.
주님이 버텨나갈 힘을 주신다. 그리고 나중에 뒤돌아보면, 주님의 선하신 인도를 감사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 요즘 너무 '적용'이 강조되고 있다.
제 설교에 있어서, 성도들이, 현실의 삶에 딱딱 맞아 떨어지는 어떤 '적용의 원리, 공식'을 가르쳐 달라고 요구한다.
제 대답은, 삶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공식이 있어도, 공식에 따라 그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식을 배우시더라도, 깊은 딜레마에 빠지게 될 때, 그냥 믿음으로 버텨내시라는 것이다.
지금 현실을 다 이해하려고 하지 마시고..
.............................................
질문)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11:30
이 말씀과, 위 설교는 상충(서로 충돌)되지 않나요?
대답)
물론 신앙생활에는, 햇볕 날 때와 검은구름 낀 날이 교차로 옵니다.
위 설교문은 '구름 낀 날'을 설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내 짐은 가볍다'고 하신 것은,
세상 죄짐에 비교하면 가벼운 것이지, 그 멍에 자체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예수님이 각자 '자기 십자가(=멍에)를 지고 나를 좇으라' 하실 때
그 '자기 십자가'는 결코 가볍다고 말할 수 없죠. '십자가'는 무거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함께 멍에/십자가를 져 주신다는 차원에서는 '가볍다'고 말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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