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은혜를 입어라
창 6:5-8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
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 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
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
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세상은 타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새싹이 자라면 세어 억세어지듯이 세상은 속화되어 악하고 억세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처음 새싹이 돋아날 때 얼마나 부드럽습니까. 죽순을 보세요. 사람들이 그 싹을 잘라다 먹습니다. 부드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그 부드럽던 싹이 아주 억센 대나무가 됩니다. 동물도 새끼 때에 보면 얼마나 온순합니까. 사람들이 호랑이 새끼들과 사자새끼들을 안고 함께 놀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호랑이 새끼가 자라면 그 사나운 맹수가 됩니다.
아이들도 보면 참 천진난만 합니다. 아이들의 눈동자를 보면 참 맑고 신선합니다. 천사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도 자라면서 속화되고 세상을 알면서 점점 타락하게 되어 눈에 핏발이 서고 그 눈 속에 온갖 탐욕과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보면 탐욕과 억셈과 위선으로 가득 배어 있습니다.
술을 너무 좋아하는 여인이 외국에 나가서 300년 된 프랑스산 포도주 두병을 사서 숨겨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세관원들은 아무나 붙잡고 조사하지 않습니다. 숨겨가지고 들어오는 사람은 걸음걸이가 다르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여인을 조사했습니다. 바로 그 술병을 들고 들어오는 여인이었습니다. 세관원이 말했습니다. “그 가방 속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성수 두병을 사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그래요 그냥 물이라고 하면 될 텐데 앞에 성자를 붙인 것을 보니 의심이 가는군요. 한번 봅시다.” 보니까 300년 된 포도주입니다. 세관원은 “이래도 거짓말을 하겠습니까.”하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어머나 물리 포도주가 되었다더니 그동안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네요.”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렇듯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합니다. 억세 집니다. 불순해집니다.
세상도 처음에는 참 아름다운 세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니 얼마나 신선했겠습니까. 그래서 그 세상을 에덴이라고 불렀습니다. 에덴이라는 말은 파라다이스 즉 낙원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세상도 타락해 갔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이 세상을 보시고 한탄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하나님은 그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십니다. 홍수를 통해서 그 세상을 다 쓸어버리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정만 남겨서 새로운 세상을 세우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으로부터 선정된 가정이 노아의 가정입니다. 노아가 그 시대에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았습니다. 오늘 성경 끝머리를 보면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이 세상이 물로 심판을 받고 노아의 가정만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몇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노아만 은총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 모든 사람들이 다 멸망당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악했습니다. 막 살았습니다. 그래서 모두 심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그때 노아의 가정만 은혜를 입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노아에게 세상을 심판할 계획을 다 말씀하시고 빨리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래서 노아가족은 모두 멸망당하는 그 시대에 홀로 살아남게 됩니다.
여기서 “은혜”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러분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하난”이라는 말인데 그 말은 “아래 사람에게 호의를 베푼다,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라는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이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이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이 은혜가 얼마나 큰 은총이고 은혜입니까.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도 이 은혜를 입어야 하고 긍휼을 입어야 살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사업에서, 학교에서, 사회생활하면서, 교우관계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신앙생활에서도 이 은혜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이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복 받기를 원하고 그 복을 찾아 헤매는 사람도 많은데 여러분, 복이 무엇입니까. 집을 사고 아들을 낳고 승진하고 사업 잘되고 일류대학 가는 것 그것도 복입니다. 그것을 이생적인 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복은 지극히 일시적인 복입니다. 일류고등학교 일류대학 가는 것이 꼭 복은 아닙니다. 오늘은 상고를 가야 합니다. 또 앞으로는 공고를 졸업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고정관념이 깨지는 세상입니다. 좋은 집을 사고 일류대학을 가고 출세하는 것이 반드시 복은 아닙니다. 그 보다 훨씬 더 소중하고 고급스런 복은 영적인 복입니다. 그래서 복중의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이 은총을 입고 안내를 받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다가 결정적일 때 마다 하나님의 안내를 받고 지혜를 입고 피할 길을 인도받는 삶 그것이 진정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노아는 그 시대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은혜를 입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여 다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셨다. 그런데 노아는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은혜이고 복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께로부터 입고 살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두 번째 생각할 것은 “그러면 노아는 왜 은혜를 입었나.”하는 문제입니다.
그것은 그 시대를 아주 성결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창 7:1을 보면 “내가 너의 의로움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시대에 모두 타락해서 살아갈 때 노아는 혼자서 의롭게 살았습니다. 그 모습을 하나님이 보셨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모습을 보시고 그를 인정하여 그에게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그런 시대를 혼자서 거룩하게 살았으니 얼마나 고독하고 갈등이 많았겠습니까. 그도 인간 아닙니까. 그런데도 혼자서 그 고독함 다 감수하고 의롭게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입었던 것입니다. 모두 함께 살아가기는 쉽습니다. 그런데 나 혼자서 나를 지키며 살아가기는 힘든 일입니다. 나 혼자서 그렇게 살면 그 사회로부터 왕따 당합니다. 여러분, 왕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십니까. 왕따당해서 자살하는 아이들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노아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의롭게 살기 위해서 왕따 당하고 하늘에서는 은혜 입는 것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고민이 많고 갈등이 많고 자기시험이 많은 것입니다. 술자리에 가서 술 안마시고 그냥 앉아 있어 보십시오. 술맛 안난다고 얼마나 비아냥댑니까. 사람들이 앉아서 남의 말을 막 한때 나만 가만히 앉아있어 보십시오. 아주 괘씸하게 생각합니다.
어느 일본군에 있던 사람이 후에 참회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전선에 있을 때 위안부들이 부대에 왔습니다. 병사들이 모두 줄지어 위안소에 들어갔다 나옵니다. 이 병사가 나는 그 짓을 할 수 없다 하여 혼자 안갑니다. 그때 그에게 말할 수 없는 위협이 있었고 협박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왜 남들 다 하는데 너무 안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시대 노아가 얼마나 고독했고 외로웠고 갈등이 많았겠습니까. 그때 시대가 얼마나 타락했으면 하나님이 그 세상을 멸망하시기로 작정했겠습니까. 그러니까 노아는 세상에서는 왕따 당했지만 하늘에서는 은혜를 입었던 것입니다. 노아는 그래서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다 망하는데 노아의 가정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알고 보면 오늘도 그때 못지않은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오늘을 말세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오늘도 직장생활을 사회생활을 나 혼자 의롭고 정직하게 살려고 하면 아주 힘든 세상입니다. 그렇게 살면 왕따당합니다. 외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불이익도 당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두려워하면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신앙인으로 은총 입는 생활은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런 수고 없이는 갈수 없는 나라입니다. 신앙인이 그런 것을 두려워하면 맛 잃은 소금이나 다름없습니다. 불 꺼진 촛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금년 한해는 신앙적으로도 용기 있고 성숙해지는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세 번째는 “은혜를 입은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원입니다. 노아의 가정은 다 멸망하는데 그 가정만 구원받습니다. 노아의 가정만 든든하게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노아가 은혜 입은 결과입니다. 세상이 심판받아 멸망당해서 망해도 보호받는 것 그것이 은혜이고 구원입니다. 그래서 은혜 입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노아의 때도 심판이 있었지만 앞으로도 이 심판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 심판도 노아의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모르게 어느 날 갑자기 올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도적같이” 라는 말로 그 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암이 무서운 것은 기습적으로 오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전 자각증세가 있다면 암이 왜 무섭겠습니까. 암이 도적같이 기습적으로 오기 때문에 무서운 것입니다. 암이 퍼져서 자각증세를 느낄 때가 되면 이미 강도만난 꼴이 됩니다.
1941. 12. 7. 일본군이 항공모함에 전투기를 싣고 태평양을 건너 진주만으로 향했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기습작전으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됩니다. 그날 미군들은 주말이라 놀고 취했습니다. 그날 레이더를 지키는 경비병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경비병 대신 견습병이 혼자서 보니까 태평양 바다에 비행기가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습니다. 급히 상부에 보고하니까 아군 연습기니 염려 말라고 묵살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모두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한순간에 진주만은 불바다가 되어 버렸습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심판도 그렇게 올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다는 소식이 구약에만 353번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할 것이라는 약속은 구약에 1517번, 신약에 318번 모두 1835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성경 다섯 구절 마다 한번 꼴로 예수님이 장차 재림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재림하십니까.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노아의 때 심판도 그렇게 왔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노아만 미리 알고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노아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의 은혜는 입체적으로 주어집니다. 우선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으면 나의 현재의 삶을 인도받게 됩니다. 오늘의 이 혼돈스러운 세상에서 인도를 받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유혹으로부터 나를 보호하십니다. 노아가 그런 은혜로 그 시대를 홀로 의인으로 남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렇게 현재에 임하십니다.
또 그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장래와 앞길을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들의 앞길을 염려해서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을 안전하게 구원해 내셨습니다. 현재의 인도하심도 중요하지만 이 앞날을 인도받는 삶은 더 소중합니다. 사람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은 장래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앞날을 몰라서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이민도 가 보고 노후 준비를 2중 3중 장치로 마련해 보기도 합니다. 건강에 좋다면 아무리 비싼 약이라도 구해다 먹습니다. 그래도 미래가 불안하기는 매 한가지 입니다. 삶 가운데서 가장 불안한 것이 우리의 장래문제입니다. 이 장래문제를 인도받고 살아가는 삶이 복입니다.
이런 미래의 불확실함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인도받고 살아가는 삶은 은혜 중 은혜입니다. 그것도 확실한 인도를 받는 은혜입니다. 이사야서 41장을 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너의 하나님임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내 오른손으로 너는 붙들리라.” 이보다 더 확실한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이것이 우리 미래를 인도 받고 살아가는 은혜의 삶입니다.
또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입으면 종말도 인도받게 됩니다. 장래 죽음의 문제, 얼마나 심각한 문제입니까. 기도할 문제입니다. 반드시 은총 입어야 할 일입니다. 죽는 문제가 심각한 것은 죽는 모습이 아주 힘들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잠을 자다가 조용히 죽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4-5년씩 병석에 누워있게 된다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이 종말의 문제까지도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우리교회 이인호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도 성경을 보고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시던 날 밤에 저녁 식사도 잘하시고 가족들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까지 하시고 한밤중에 조용히 가셨다고 합니다. 사람이 세상에 깊숙이 묻혀 살면 이렇게 조용히 갈수 있겠습니까. 은총을 입어야 합니다. 평상시에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그날을 위해서 준비를 다 하였기 때문에 그런 은혜를 입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감각이 아주 무디어졌기 때문에 모르고 그냥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불행을 당하는 것일 것입니다.
이 감각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노년에 가면 이 종말의 문제를 생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신앙인은 우리들이 늘 묵상생활을 하며 말씀을 상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종말의 시간도 하나님께서 알려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이 그 시간을 모르니까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정상적으로 우리들이 신앙의 삶을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앞길을 아주 선하고 아름답게 안내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노아는 그 시대의 의인이었습니다. 그 시대를 의롭게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고 나니까 하나님이 때를 따라 그의 길을 안내하셨고 미리 알리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그가 가야할 길을 안내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확실한 은혜의 삶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내가 은혜 입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내가 은혜를 입으니까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도 함께 은혜를 입습니다. 그 자녀들도 그 사위들도 모두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 삶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우리는 노아에게서 신앙인의 삶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새해는 이렇게 하나님께로부터 은혜 입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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