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명령이다
요 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
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
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선물은 친히 몸을 상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적극적인 사랑일 것입니다. 생각하면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한 정신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정신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정신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예수님이 주신 대표적인 정신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화신이고 표준이고 기준입니다. 또 예수님은 사랑의 샘입니다. 예수님에게서 샘물처럼 사랑이 솟아났고 울어났고 표현되고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요 12장에 보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였다는 것은 이제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3장에 와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지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요한복음 17장까지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 유명한 고별설교를 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고별설교 내용 중에 오늘 본문 말씀이 들어있습니다. 특히 이 말씀은 고난주간 목요일 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있었던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목요일 날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배반할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만찬을 하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십니다. 그때 예수님은 너희 중에 한사람이 나를 팔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때 심정은 참으로 비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오늘 읽은 본문에서 말씀한 것처럼 제자들에게 새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이 말씀은 유언이라고 보아도 좋은 말씀입니다. 유언은 참 중요한 뜻을 지니는 마지막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성경의 말씀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뜻을 지니는 그런 말씀이라고 보아도 좋은 말씀입니다. 그 마지막으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그냥 교훈용이 아니고 명령입니다. 이 사랑하는 일을 새로운 계명으로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왜 예수님은 마지막 명령으로 주신 말씀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일까를 깊이 음미하게 됩니다. 그것은 사랑에 큰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장 좋은 정신
성경에서 가장 많이 말씀하는 것은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은 다함이 없는 정신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정신이 사랑의 정신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주신 새 계명이 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모습은 다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성적인 사랑도 좋습니다. 젊은 청춘이 짝을 만나 사랑을 나눕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보기에 좋은 모습입니까. 그렇게 사랑하다가 결혼을 합니다. 그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자식 사랑도 좋은 사랑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부모의 자식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또 자식의 부모사랑도 끝이 없습니다. 할수록 좋습니다. 이웃사랑은 더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성경에서는 이 사랑이 가장 좋은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사랑은 그 사랑하는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모두에게 전염됩니다. 사랑은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사랑의 모습이 있는 곳에 감동이 있고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주변으로 전염되고 파급되기 때문입니다.
미국 네바다 주립대학은 매년 인근 대학과 농구시합을 한다고 합니다. 어느 날 농구시합을 하는데 관중이 입추의 여지없이 모여 들었습니다. 전반전이 끝나고 휴식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때 관중석 한쪽에서 하얀 스크린 천이 펴지면서 큰 글씨가 나타났습니다. “Susan, will you marry me (수잔, 나와 결혼해줘요). 어느 남학생이 여자 친구에게 공개사랑을 고백하고 결혼을 신청한 것입니다. 그 순간 장내는 고요해졌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Say yes” (예라고 대답하세요)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관중 모두가 함성을 질렀습니다. “예라고 대답하세요, 예라고 대답하세요.” 그때 관중석에서 어느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yes I will (예 당신과 결혼하겠어요).
이것은 연극이 아니고 연출한 것도 아니고 실제상황입니다. 그러니 그때 상황이 얼마나 극적이었겠습니까. 가장 극적인 것은 꾸미지 않고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상황입니다. 그때 모든 관중이 일제히 일어나서 박수를 치며 서로 옆 사람끼리 포옹하고 키스하고 환호하고 야단이었다고 합니다. 이 사랑은 이렇게 전염됩니다. 모두를 행복하게 해 줍니다. 모두를 즐겁게 해 줍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발견한 정신가운데 이 사랑을 능가하는 정신이 없습니다. 사랑이 가장 좋은 정신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유언으로 당부를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여러분, 우리들이 이 세상을 부드럽고 아름답게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모습이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사랑은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정신입니다. 극복하게 하는 정신입니다. 포용하게 하는 정신입니다. 모든 문제를 풀고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이 교훈을 주셨을 것입니다. 이 땅의 성도들의 아름다운 모습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가장 선하신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사랑하는 일입니다.
호젓한 곳에서 남녀가 속삭이는 그런 사랑도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형제간에 서로 사랑하고 우애 있게 살아가는 모습도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밤에 아이가 울면 몇 번이고 주저하지 않고 달려가는 어머니의 마음도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침몰해 가는 배안에서 사람은 많고 구명조끼는 몇 개 안 될 때 자기를 포기하는 모습에서도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 우리들이 죄인이었을 때 주저 없이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 사랑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 사랑이 최고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 밤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면서 제자들에게 명령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좋은 섬김
우리 주변 어디를 보아도 나의 환경과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 입장과 다른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주변에는 상처 입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음이 상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갈등에 휘말려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거운 어려운 짐을 지고 있는 이웃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그 짐이 얼마나 무거우면 때로 자기 목숨을 스스로 포기하기까지 하겠습니까. 그런 사람들로 하여금 잘 일어설 수 있도록 주위에서 섬기는 모습이 사랑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섬김이고 행동입니다. 그때 우리들이 모두 영적으로 성장하고 영적으로 회복되고 인격적으로 승화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왜 이 세상에 그렇게 불행한 사람들을 두시는 것일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은 왜 이 시대 나를 부르셨고 직분을 주셨고 그들보다 좋은 환경에서 살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여러분은 이 두 가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그 불행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음으로 인해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며 살아가도록 하신 것이고 또 하나님이 나를 좋은 환경에서 살게 하시고 나를 일찍 부르셨고 나에게 직분을 주신 것을 그들을 섬겨서 일어나도록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를 한번 되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의 손길이나 배려나 섬김이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동안 나로 하여금 영적으로 성장하게 하셨고 신앙을 성숙하게 만드신 이유는 그렇게 누군가를 세우고 일어나게 하는데 사용하게 하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세움이 바로 나의 세움이 되고 나의 영적성장으로 이어지도록 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섬겨 보십시오. 우리 주변을 보면 내가 섬겨야 할 이웃들이 너무 많습니다. 먼저 아내를 섬겨 보십시오. 그리고 남편을 섬겨 보십시오. 또 이웃도 섬겨보십시오. 교우들을 섬겨보십시오. 그러면 섬김을 받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느끼고 있던 것 보다 아주 다른 모습으로 내게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고 분위기가 틀리고 관계가 달라지고 느낌이 다르고 감정이 다르게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섬기면 체면도 자존심도 다 사라지게 됩니다. 이렇게 섬기다 보면 진정 행복을 느끼게 되고 그 행복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행복은 이웃으로 옮겨지고 전염되어 세상으로 펴져나갈 것입니다. 이것이 섬김의 삶이 주는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섬김의 삶을 유언으로 명령으로 주셨습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섬기는 마음은 더 아름답습니다. 섬김이 있는 곳에 나도 감동하고 너에게도 감동이 주어지고 보는 사람들에게도 감동이 주어집니다.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서부 개척 당시 영국 청교도로 미국 필라델피아 보스턴에 어느 부부가 도착합니다. 이 부부는 참 사랑이 지극했습니다. 그런데 가난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되자 서로 선물을 사기 위해서 각각 백화점엘 갑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의 선물을 사기 위해서 백화점에 가서 무엇을 살까 생각하다가 아내의 빗과 작은 거울을 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남편은 손목시계를 팔아 그 돈으로 아내 선물을 사 가지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남편에게 줄 선물을 고르다가 남편의 시계 줄이 다 닳아서 낡은 것을 알고 남편의 시계 줄을 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내에게도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그 좋은 머리를 잘라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남편의 시계 줄을 사 가지고 집에 돌아 왔습니다. 저녁식사를 함께 합니다. 그리고 식사 후에 각각 준비한 선물을 내어 놓는데 남편은 시계를 팔고 아내는 머리를 잘라 팔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때 이 부부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상상을 한번 해 보십시오. 그래서 이 부부는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립니다. 이 정도면 가난해도 행복하지 않습니까. 이 정도이면 섬김의 극치가 아닙니까. 그래서 세상에 사랑이 최고이고 섬김이 최고인 것입니다.
이런 사랑은 마침내 부부사랑의 개인적인 차원을 훨씬 넘게 만듭니다. 이 사랑의 힘은 마침내 이웃을 사랑하게 하는 사랑으로 발전하게 하고 이 사랑은 또 마침내 인류 사랑의 정신으로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발전시킬 것입니다. 이 사랑이 있는 곳에 감동이 있고 행복이 있고 변화가 있고 영광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비장한 시간에 마지막으로 이 사랑을 강조하셨을 것입니다. 사랑은 얼마나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모릅니다.
엊그제 신문에 난 기사를 보니까 부부가 함께 살면 얼굴이 닮아지는 것이 증명되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부부가 오랜 세월동안 같이 살게 되면 감정이 같아지고 같이 웃고 똑같은 환경이 주는 영향을 받기 때문에 주름살이 같아지고 표정이 같아진다고 했습니다. 또 이런 부부는 살아가다가 배우자가 크게 아프게 되면 같이 아파지는 경향이 있고 한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얼마 못가서 또 세상을 떠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오늘 부부로 오래 살았으면서도 서로 닮지 않은 부부가 있으면 뭔가 생각 좀 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돈이 많으면 뭘 합니까. 오늘 돈 많은 부부들은 이런 감정이 없습니다. 이런 섬김도 없습니다. 이런 행복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집집마다 갈등이 가득하고 원망이 가득하고 불화가 가득한 것입니다. 돈이 많으면 뭘 합니까. 집이 좋으면 뭘 합니까. 신앙생활 오래했으면 뭘 합니까. 무엇보다 사랑과 섬김이 행복의 원천입니다.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정신은 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사랑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이 뭐냐 하면 사랑은 섬김입니다.
가장 높은 기준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랑에는 아주 신비한 힘이 들어있습니다. 사랑 속에는 무례하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온유하고 교만하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정신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언으로 이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유언도 차원이 있습니다. 보통 부모들이 주시는 유언은 잘 살라는 유언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유언을 보통 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아도 유언이 나옵니다. 야곱은 아들 요셉에게 내가 죽거든 조상의 묘에 묻으라고 유언했습니다. 요셉도 조상의 묘에 묻으라고 유언했습니다.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고 유언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너를 절대로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꼭 지키라고 유언했습니다. 여러분은 마지막으로 무슨 유언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여기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은 참으로 높은 뜻을 지닌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보여주신 예수님의 사랑은 이기적이지 않고 지극히 희생적인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한 사랑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들이 흉내 내기조차 어려운 높은 뜻을 지닌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되 사랑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사랑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사랑을 시도도 해 보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부부끼리도 원만하게 삶을 유지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형제들끼리도 교우들끼리도 원만하게 삶을 유지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더구나 이웃을 조건 없이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더욱 힘든 일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지니고 있는 수준이고 한계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그냥 한번 사랑하라고 말해 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명령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랑의 삶에 모든 것의 해답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 안에 모든 삶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지혜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 안에 모든 삶의 이유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번 사순절까지는 이 섬김의 삶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 사순절이 끝날 때쯤이면 여러분의 모습이, 삶이, 관계들이 뭔가 변화가 일어났으면 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강조하신 사랑의 복음이 여러분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되고 나타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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