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대로 구하는 사람들
요한1서 5:13-17
사람마다 생각이 있고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투정을 부리거나 낙심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일이란 내 뜻대로 되는 것보다 되지 않는 일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내가 바라고 구한 것이 액면 그대로 응답되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응답이 없는 경우도 있고 내가 기도한 것과는 다른 응답이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라고 기도하는 내 뜻과 응답하시는 주님의 뜻이 같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뜻대로 구하거나 내 뜻대로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 가, 어떻게 기도해야 응답 받는 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1. 믿어야 합니다.
13절을 보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이라고 했습니다. "믿는 너희"라는 말은 믿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믿는 사람들이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믿음은 구원의 조건이고 기도 응답의 조건입니다. 그리고 문제 해결의 조건입니다.
마가복음 9:14 이하를 보면 귀신들린 아들은 예수님께로 데려온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말하자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11:23을 보면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고, 24절을 보면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의심하지 않고 믿어야 응답 받는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1을 보면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서 1:6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의심이라는 말의 뜻은 "철저하게 분리하다", "반대하다", "주저하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심하면 불신앙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고 맙니다.
남편을 의심하면 의부증이 되고 아내를 의심하면 의처증이 됩니다. 친구나 이웃을 의심하면 관계가 깨지고 맙니다. 자기 자신을 의심하면 성공이 어렵습니다.
어느 고등학교에서 영어 시간이 끝난 후 한 학생이 영어 선생님을 찾아 왔습니다.
"어떻게 왔니?"
"선생님, 저는 영어에 자신이 없어요. S를 제대로 발음할 수가 없어요"
그 말을 듣고 있던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학생은 선생님이 자기를 비웃는 줄 알고 교무실을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 때 선생님은 "얘야, 너는 방금 그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S라고 발음했다. 너는 영어에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자신을 의심했던 것입니다.
의심은 모든 것을 흔들어 놓고 분리시킵니다. 의심하지 말고 믿고 기도합시다.
2. 뜻대로 구해야 합니다.
14절을 보면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5:7을 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거하고 그 뜻을 따르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내 뜻대로 구하면 내가 응답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 뜻대로 기도하면 주님이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36-46을 보면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37절을 보면 "고민하고 슬퍼하사"라고 했고, 38절을 보면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고 했고, 누가복음 22:44을 보면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이상의 구절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기도하셨는가를 설명해 줍니다. 고민하시고, 슬퍼하시고, 간절히 핏방울 같은 땀을 흘리시며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불가의 염불이 아닙니다. 기도는 외침이며 부르짖음이며 생명을 건 영적 전투인 것입니다.
얍복 강가에서 야곱이 천사를 만났습니다. 때는 깊은 밤입니다. 절망과 실의에 빠져있던 야곱으로서는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 될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가 붙잡은 사람이 천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밤새도록 야곱과 천사의 씨름이 계속되었습니다.
"날이 새려한다 나를 놓아라" "못 놓습니다."
"왜 못 놓느냐" "저를 축복해 주셔야 합니다."
"날이 새려 한다. 나를 놓아라" "축복해 주시기전엔 놓을 수 없습니다."
"정말로 놓지 못하겠느냐" "축복하시기 전엔 죽어도 안됩니다."
그때 천사는 야곱의 환도뼈를 쳤습니다. 야곱은 일격에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천사를 놓을 순 없었습니다. 그 날 그 고된 씨름 후에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있었던 예수님의 기도 역시 피와 같은 땀을 흘리며 드린 결사적인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린 기도의 내용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였습니다.
예수님의 뜻과 소원은 십자가의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신의 뜻을 유보하고 하나님의 원하심과 뜻을 따르기로 하신 것입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찬송가 431장 "내 주여 뜻대로"는 독일 루터교회 목사였던 벤자민 슈몰크(Benjamin Schumolk) 목사님이 지은 찬송입니다.
1618년에 시작된 구라파의 신구교전쟁은 1648년 전쟁이 끝나기까지 30년 동안 구라파를 피로 물들였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신구교의 대립은 여전했고, 건물은 폐허가 됐고 흑사병이 유행하면서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1730년 슈몰크 목사님은 과로로 쓰러져 오른손을 쓰지 못하게 되었고 백내장으로 실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넓고 넓은 교구를 심방하며 살펴야 했습니다.
어느 날 슈몰크 목사님 부부가 심방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집이 완전히 불타고 여기저기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집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잿더미를 파헤치자 그 속에 어린아들 형제의 시체가 있었습니다. 그때 두 아들의 시체를 앞에 놓고 울면서 드렸던 기도를 훗날 시로 옮겨 만든 찬송이 바로 "내주여 뜻대로"인 것입니다.
영어 가사를 그대로 직역하면,
"나의 예수님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당신의 뜻이 내 뜻이 되게 하소서. 슬픔 중이나 기쁨 중에 당신의 것으로 날 인도하시고 "내 주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 지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하소서"라는 것입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아멘.
내가 내 뜻을 관철하려고 하면 그것은 아집이 되고 고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뜻을 따르고 순종하려고 하면 위대한 믿음이 되고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과 내 뜻, 주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결코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의 생각과 뜻이 내 생각이나 뜻보다 천만배 크고 높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편 139:17을 보면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운 지요"라고 했고, 이사야 55:8-9을 보면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29:11을 보면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결과는 분명합니다. 내 생각대로 해야 되겠습니까? 주의 생각을 따라야 하겠습니까?
내 생각이 하나라면 주님의 생각은 천만, 억 천만이 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은 한치 앞을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고 산보다 큰 것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더 선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믿고 원망하거나 절망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고 좋은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임을 고백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3. 무엇이든지 구해야 합니다.
15절을 보면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 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 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신다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기도하는데 특별항목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것은 구해도 되고 어떤 것은 안 된다는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요한복음 14:13을 보면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구하든지,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신다는 것입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구해야 하고, 하나님 뜻에 맞게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경일 행사에 참석한 지방도시의 시장이 기념사 끝에 "이 자리에 모이신 시민 여러분에게 예수님과 부처님과 공자님이 은총 내려 주시기를 기원합니다."라며 인사를 했습니다. 이것은 소위 종교 다원주의적 발상입니다. 예수 믿어도 되고, 석가 믿어도 되고, 공자 믿어도 된다는 것이고 누구에게 기도해도 은총 내려 준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뿐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인 프리츠 크라이슬러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연주할 때 손동작에 대해선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내 영혼 속에서 울려 퍼지는 영감에 집중한다. 기교 역시 생각할 겨를이 없다. 기교만을 생각한다면 그는 아직 연주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다."라고.
무엇이나 기도해도 됩니다. 단 믿고 의심을 버리고 뜻대로 구해야 합니다.
연주가가 영감을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우리는 주의 뜻을 생각하며 내 뜻을 주장하거나 관철하려 하지말고 하나님의 뜻을 소중히 여기고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한 구절로 결론을 삼겠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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