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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길은 있습니다

by 【고동엽】 2021. 12. 10.

언제나 길은 있습니다
창세기 29장 31-35절

< 인생을 속단하지 마십시오 >

현재 미국의 TLC(The Learning Channel)란 방송사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중에 ‘당신이 없었을 때에(While You Were Out)’란 방송이 있습니다. 그 방송은 부부 중의 한 명이 은밀하게 방송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만나 배우자가 일이나 여행으로 없을 때에 집에 있는 방 하나를 완전히 다르게 만드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때 출타한 배우자는 방을 꾸미는 사실을 전혀 모르지만 그 일을 계획한 배우자는 그 방을 아름답게 만들려고 열심히 일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도 유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일을 전혀 모를 때 우리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현재 눈에 보이는 것으로 모든 상황을 판단하지 말고 환경과 역사의 커튼 뒤에서 깜짝 선물을 주시려고 우리를 위해 열심히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믿음으로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공평과 정의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얼마 전 한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목사님! 요새 병원운영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개업했다가 망하는 의사들도 많습니다. 사람을 잘 고치는 실력 있는 의사라고 돈을 잘 버는 것이 아닙니다. 병원이 잘 되려면 첫째는 장소가 제일 중요하고, 둘째로는 친절이 중요하고, 셋째가 실력입니다.” 그만큼 장소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요새는 교회도 성장하려면 첫째는 장소가 중요하고, 둘째는 인맥이 중요하고, 영력은 세 번째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목사님 중에는 말씀과 기도에 목숨을 걸기보다는 교회 건축이나 신도시 입주에 목숨을 거는 일도 있습니다. 결국 좋은 장소를 선점할 수 있는 큰 교회는 더욱 커지고, 그렇지 못한 작은 교회는 더 작아지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삶이 불공평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인생을 속단하지 마십시오. 신앙도 속단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땀 흘리며 인내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선한 일을 이루어주십니다. 승리는 갑자기 주어지지 않고 오랫동안의 고뇌와 눈물과 아픔과 고통을 통해서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당해도 실망하지 말고, 응답이 늦어도 기도를 중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 불공평을 이기게 하는 고백 >

본문은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잘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본문 31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하였더라.” 레아는 동생 라헬보다 미모가 모자라서 야곱의 총애를 받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은 레아의 태를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얼마나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어느 한쪽을 막으시면 반드시 다른 한쪽을 열어주십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만 완벽한 축복을 주지 않습니다. 행복하기만 할 것 같은 재벌에게도 불행의 씨앗이 있습니다. 그처럼 우리에게도 행복의 씨앗과 불행의 씨앗이 동시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게 있는 축복과 행복의 씨앗을 발견하고 감사하는 자세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새로운 축복을 얻는 것'보다는 '축복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 속에 있습니다.

살다 보면 삶이 불공평하게 느껴질 때가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신하고 그 상황을 극복해내야 합니다. 어떻게 불공평한 상황을 극복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인내하며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을 위해 4가지 고백이 필요합니다.

1. 르우벤의 고백

본문 32절 말씀을 보십시오. “레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레아는 첫 아들을 낳고 “이제 내 남편이 사랑할 거야!”라고 희망이 담긴 말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르우벤의 고백’이란 희망의 말을 많이 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을 뜻합니다.

살면서 레아처럼 외롭고 힘든 상황에 처하면 무엇보다 희망의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레아는 아들을 낳을 때마다 그 아들에게 믿음과 희망이 담긴 이름을 붙였습니다. 본문 33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둘째 아들을 주셨을 때 “여호와께서 내 탄원을 들으셨다!”는 감사의 고백을 담아 아들 이름을 시므온이라 지었습니다.

본문 3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셋째 아들을 주셨을 때 “이제 남편이 나와 연합할 것이다”라는 소망의 고백을 담아 아들 이름을 ‘레위’라고 지었고, 넷째 아들을 낳고는 “이제는 항상 여화와를 찬송하며 살리라!”는 고백을 담아 아들 이름을 ‘유다’라고 지었습니다. 그처럼 희망이 없어 보일 때마다 더욱 희망의 말을 하면 정말 희망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민수기 14장 28절 말씀에서 “네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행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안 돼!”라고 하면 하나님은 안 되게 하시고, 우리가 “될 줄 믿습니다!”고 하면 되게 하십니다. 믿음의 말에는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5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의 쓴 못에서 하나님을 원망할 때,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대로 나뭇가지 하나를 쓴 물에 던지자 쓴 물이 달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라의 쓴 물에 던진 나무는 ‘십자가’를 상징하지만 ‘믿음의 말’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잠언 15장 4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온량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좋은 말을 하는 혀는 생명나무입니다. 그 생명나무를 어려운 환경에 던지면 어려운 환경은 곧 좋은 환경으로 변합니다. 요새 사람들은 “힘들다!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믿음의 말을 통해 희망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2차 세계 대전 때, 제일 처음으로 독일의 폭격을 당한 곳이 영국 런던입니다. 그때 신문들은 “어제도 무수히 폭격을 당했습니다!”는 식의 부정적인 보도 일색이었습니다. 그런 신문보도를 보면서 시민들은 더욱 낙심하고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런던 신문편집장들이 모여 “이제 희망을 보도하자!”고 했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런던의 신문들에는 자국 군인들의 늠름한 모습과 후방에서는 피해 복구를 위해 애쓰는 모습, 교회에서 기도하는 모습들이 실렸습니다. 그 신문을 보면서 점점 국민들은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고, 결국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절망을 말하면 더 절망하게 되고, 희망을 말하면 진짜 희망을 붙잡게 됩니다.

2. 시므온의 고백

본문 33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총이 없음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도 주셨도다 하고 그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레아는 둘째 아들을 낳고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셨다.”는 고백을 담아 이름을 ‘시므온’이라고 지으면서 더욱 하나님을 붙잡고 기도하기로 새롭게 작정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므온의 고백’이란 기도생활을 새롭게 하겠다는 다짐을 뜻합니다.

때로 레아처럼 사람의 총애를 받지 못하면 사람이나 환경을 붙들고 씨름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붙잡고 기도로 씨름해야 합니다. 기도가 깊어지면 점점 하나님은 크게 보이고 사람은 작게 보입니다. 사람이 작게 보이면 사람이 밉게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기도를 통해 얻는 가장 큰 축복은 자기 극복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실 레아가 라헬과 다툰다고 야곱을 마음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은 싸우면서 억지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내가 먼저 사랑할 때 얻어집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더 받으려고 경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사랑하라!”고 명령했지 “사랑 받으라!”고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있다면 더 받을 것이 없다는 마음을 가지고 ‘더 사랑 받으려는 자신’을 극복하고 사랑하며 살 때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우리는 대적 목표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대적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미혹하고, 우리에게 미움과 질투와 분노를 심는 사단입니다. 사무엘상 30장을 보면 시글락이 아말렉에 의해 폐허가 되자 백성들은 분노해서 다윗을 돌로 치자고 했습니다. 그때 다윗은 분노의 대상이 자기가 아니고 아말렉임을 이해시키면서 그 분노를 아말렉에게 쏟게 해서, 결국 아말렉을 뒤쫓아 가서 큰 승리를 거둡니다.

살면서 분노가 생기면 그 분노를 대적인 사단을 향해서 쏟아 부으십시오. 우리의 극복해야 할 대상은 남이 아니라 바로 사단 마귀이고, 그 사단 마귀에 조종되는 나 자신입니다. 힘든 일이 생길 때 남을 미워하지 마십시오. 불행의 근본 이유는 남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입니다. 즉 내 안에 있는 죄와 욕망이 큰 문제입니다.

신앙생활에서 남과 경쟁해 이기는 것보다 내 안의 불신앙적인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실 가인이 싸워야 할 상대는 아벨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미움과 분노였습니다. 사울의 싸움 상대도 다윗이 아니라 자기의 시기심이었습니다. 그처럼 자기를 극복해야 환경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으신다!”는 시므온의 고백을 가지고 꾸준히 기도함으로 자기를 극복하며 나가야 합니다.

3. 레위의 고백

본문 34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레아는 셋째 아들을 낳고 “남편이 나와 하나가 될 것이다.”라고 고백하면서 남편과 하나 되는 삶을 새롭게 다짐했을 것입니다. 그처럼 레위의 고백이란 하나가 되려고 조용히 사랑을 실천하며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을 뜻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말없는 헌신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사랑은 축제(Ceremony)가 아니고 헌신(Commitment)입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쉽지만 함께 사는 것은 어렵습니다. (Falling in love is easy, living together is hard). 진정한 사랑은 ‘함께 사는 것(living together)’입니다. 함께 살려면 무엇보다 이기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윌리엄 베닛(William Benett)이 쓴 ‘도덕적 나침반(The Moral Compass)’이란 책을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독일 내전으로 뿔뿔이 흩어진 군인들 중에 한 기병대장이 부하들과 함께 먹을 것을 찾다가 계속 옆에서 작은 오두막집을 발견했습니다. 문을 두드리자 다리를 절며 지팡이를 의지하는 한 노인이 나왔습니다.

대장이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저희가 지금 식량이 필요합니다. 혹시 근처에 추수할만한 밭이 있나요?” 그러자 노인은 그들을 계곡 사이로 인도했습니다. 그들이 약 1마일 정도 가자 저 앞에 산들바람에 넘실대는 밀밭이 보였습니다. 그것을 보고 대장이 흥분하며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이곳에서 식량을 준비하겠습니다.”

그때 노인이 말했습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조금만 더 따라오세요.” 그리고 계속해서 약 1-2마일을 더 나가자 두 번째 밀밭이 보였습니다. 그곳에서 대장은 부하들과 함께 충분한 식량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면서 대장이 노인에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왜 이렇게 멀리 우리를 오게 했나요? 첫째 밀밭이 여기보다 더 좋은데요.” 그때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대장 말처럼 첫 번째 밀밭이 좋지만 그 밀밭은 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기주의가 만연해 있습니다. 남의 손해는 즐기면서 자기는 절대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성도들도 이기주의가 심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상처와 갈등은 커집니다. 주님의 삶은 완벽한 이타주의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 되어 살려면 무엇보다 하나님께 마음을 향해야 합니다.

미국에 제프 반 폰더렌(Jeff Van Vonderen)이란 상담가가 있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잭과 조앤(Jack and Joan)이란 부부가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결혼 후 1년 동안은 행복하게 지냈지만 그 다음부터는 항상 좌절감과 공허감에 젖어 살았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반 폰더렌은 그들에게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당신의 행복을 위해 무엇이 달라졌으면 좋겠는지 각각 적어오세요.”

일주일 후에 두 부부는 각각 거의 책 한 권 분량의 리포트를 적어왔습니다. 거기에는 상대 배우자가 어떻게 달라지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묘사만 가득했습니다. 그처럼 남이 변화만 요구하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자존심과 욕심을 버리고 내가 변화되어 하나 되기를 추구할 때 주어질 것입니다.

4. 유다의 고백

본문 35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생산이 멈추었더라.” 레아는 넷째 아들을 낳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영원히 감사하며 살겠다고 아들 이름을 유다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다의 고백이란 하나님께 찬송하고 감사하며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을 뜻합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다 채워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노력이 없는 삶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는 열심히 예배도 드리고 열심히 땀도 흘려야 합니다.

사랑은 행동입니다(Love is a Conduct).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성공하려면 지혜도 짜내고, 정보도 얻고, 발품도 팔아야 합니다. 그처럼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삶이 진짜 하나님 중심적으로 사는 삶입니다.

어느 날, 한 처녀가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를 자신의 집에 데리고 갔습니다. 저녁 식사 후, 그녀의 아버지가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자네 계획이 뭔가?”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성경학자가 될 것입니다.” “성경학자? 좋은 꿈이네. 그런데 살 집은 준비하고 있나?”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실 것입니다.”

아버지가 또 물었습니다. “결혼식 반지는 어떻게 살 것인가?” 청년은 또 대답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실 것입니다.” 아버지가 또 물었습니다. “나중에 아이들은 어떻게 키우려고 하는가?”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아버님!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열심히 공부하면 하나님께서 다 공급해주실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청년은 그날 밤에만 “하나님이 공급해주실 것입니다(God will provide).”라는 말을 6번이나 했습니다. 대화 후에 처녀의 어머니가 남편을 보며 걱정스럽게 말했습니다. “여보! 이 결혼을 어떻게 하지요? 그는 직장도 없고 계획도 없으면서 우리가 하나님인 줄 알고 있어요.” 그때부터 딸의 결혼 문제로 두 부부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얼마 후에 딸이 남자의 무책임에 스스로 질려서 그 남자와 헤어졌습니다.

성도는 아무 계획도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내세워 “하나님이 공급해주실 것입니다.”란 말을 남발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은 관념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강력한 촉매제입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 카드빚을 대신 막아주거나 게으른 사람이 하지 않은 일을 대신해주지 않습니다. 계획이 없고 게으른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마음의 소원이 있고 변화의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고 그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을 철저히 믿되 열심히 땀도 흘려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 중심적으로 사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변화의 역사를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 언제나 길은 있습니다 >

살다 보면 레아처럼 사람의 외면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처럼 어려운 일을 만나면 그 일의 의미를 살피고 기도하면서 다시 새롭게 일어서야 합니다. 아무리 현실이 힘들어도 “이제 틀렸다! 너무 늦었다!”고 하지 마십시오. 나는 늦은 것 같아도 하나님은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무개야! 너무 속단하지 말고 인내하며 지켜보라. 다만 네 할 일만 최선을 다하라.”

저도 가끔 현재의 모습을 보면 실망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을 한국에 소개하겠다는 웅대한 꿈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현재의 교회 크기를 보면 실망이 됩니다. 그러나 교회가 작기에 너무 바쁘지 않아 말씀에 집중해서 현재까지 22 세트의 방대한 설교파일을 완성했습니다. 이제 9월 말에 ‘치유 말씀 40편’이 완성되고, 10월 말에 ‘베드로전서 강해 18편’이 완성되면 24세트가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설교파일 세트를 방대하게 만들어도 작품성이 떨어지면 전혀 소용이 없습니다. 저도 작품성이 없는 것들을 많은 목사님들에게 공개해서 공개적으로 창피를 당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그 설교파일을 구입한 수많은 목사님들이 설교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수많은 감사메일을 보냈습니다. 공짜로 드리는 것도 아닌데 공짜로 드리는 것 이상으로 감사의 메일을 보내오십니다. 거기에서 파일사역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미션퍼블릭에서는 현재 설교파일 외에 2권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랑칼럼을 모은 ‘상처는 인생의 보물지도’와 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하나님과 깊은 만남’입니다. 처음에 저희 미션퍼블릭 팀은 첫 번째 책이 독자들에게 더 어필할 줄 알았지만 책을 다 읽어본 분들은 두 번째 책이 더 깊은 감동이 있다고 하면서 많은 분들이 선물용으로 대량으로 구입합니다. 그런 반응을 보면 저희들의 문서선교 사역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저는 앞으로 19년 후인 만 65세 이후의 계획이 따로 있습니다. 65세까지는 성경 66권 전체 파일세트와 34개의 주제별 설교세트를 완성해서 대략 100개의 설교파일 세트를 완성하고, 사랑칼럼을 비롯해서 약 30권의 책을 내고, 기독교 선교연맹의 창시자인 심슨 목사님의 책을 약 20권쯤 번역해 출간할 것입니다. 그리고 65세 이후에는 제가 그때까지 썼던 책과 파일을 영어로 하나씩 직접 번역해 천국 갈 때까지 그 작업을 할 것입니다.

얼마 전에 몽골의 임준호 선교사님이 사랑칼럼의 몽골어 번역 판권을 요청해서 그냥 드렸습니다. 그때 선교사님이 판권을 그냥 받아도 되느냐고 물었을 때, 제가 다른 언어 판권은 다 무상으로 드려도 영어 판권만은 제가 가지고 있겠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65세 이후에 펼쳐갈 저의 비전 때문입니다. 장로교의 창시자 칼뱅은 26세에 ‘기독교 강요’를 써서 전 세계에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교회 문서의 힘은 교회 건물의 힘보다 크고 지속적입니다.

저는 은퇴할 나이인 65세 이후에 본격적으로 저의 글을 영어로 번역해 출판할 것입니다. 요새 저는 설교 자료도 축적하고 앞으로의 비전을 준비하려고 매주 50편 이상 영어설교를 보고 있습니다. 거의 책 한 권 분량입니다. 청년보다 언어 습득능력이 많이 부족하기에 더 많이 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비전을 준비하니까 현재 교회가 작아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부족해도 열심히 준비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적절한 때에 교회도 키워주실 것입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항상 희망의 말을 하십시오. 짙은 구름이 드리워 세상이 캄캄하고 희망이 없을 것 같지만 구름 뒤에는 해가 있고, 비가 그치면 다시 해가 비칩니다. 하나님은 어려움 뒤에서 더 좋은 것을 예비해주시고 내어주십니다. 독수리처럼 믿음의 시야를 높게 가지면 산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축복의 세계가 보입니다. 하나님은 선하고 공평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언제나 길이 있습니다.

어느 날, 아프리카에서 사역하는 한 선교사가 밀림에서 길을 잃어 헤매다가 간신히 그곳 원주민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길을 안내해 달라고 해서 가는데 그 원주민이 길은 찾지 않고 그냥 밀림을 헤치면서 앞으로 걷기만 했습니다. 그러자 선교사가 원주민에게 물었습니다. “여보세요! 지금 제대로 가는 것입니까? 왜 길은 안 찾고 밀림만 헤치고 갑니까?” 그때 원주민이 대답했습니다. “밀림에는 길이 없습니다. 제가 곧 길이라고 보면 됩니다.”

아무리 인생의 길을 잃고 암담해도 주님만 믿고 나가면 길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주십니다. 그러므로 현실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열심히 사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길이 열릴 것입니다. 희망의 뿌리가 죽지 않으면 생명은 죽지 않습니다. 이제 넘치는 희망을 가지고 더욱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 http://www.john316.or.kr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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