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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죄지으며 살 수 없는 이유! (시 26:1-12)

by 【고동엽】 2021. 12. 10.

도저히 죄지으며 살 수 없는 이유! (시 26:1-12)

주님, 나를 변호해 주십시오. 나는 올바르게 살아왔습니다. 주님만을 의지하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주님, 나를 샅샅이 살펴보시고, 시험하여 보십시오. 나의 속 깉은 곳과 마음을 달구어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진리를 따라서 살았습니다. 나는 헛된 것을 좋아하는 자들과 한자리에 앉지 않고, 음흉한 자들과도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악인들의 모임에서 그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하고, 한자리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주께서 나에게 해주신 놀라운 일들을 모두 다 전하겠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계시는 집을 내가 사랑합니다. 주님의 영광이 머무르는 그곳을 내가 사랑합니다. 나의 이 목숨을 죄인의 목숨과 함께 거두지 말아 주십시오. 나의 이 생명을 살인자들의 생명과 함께 거두지 말아 주십시오. 그들의 왼손은 음란한 우상을 들고 있고, 그들의 오른손은 뇌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깨끗하게 살려고 하오니, 이 몸을 구하여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 내가 선 자리가 든든하오니, 예배하는 모임에서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설교를 준비하려고 시편 26편을 읽을 때, 처음 1절을 읽으면서 “나는 올바르게 살아왔습니다.”하는 구절을 읽는데, 숨이 막힐 정도로 강한 도전을 받는 것과 동시에 어쩔 수 없는 거부감이 드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다윗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다윗은 감히 이런 고백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 “주님, 나를 샅샅이 살펴보시고, 시험하여 보십시오. 나의 속 깊은 곳과 마음을 달구어 보십시오.” 하면서 3절에서 “주님의 진리를 따라서 살았습니다.” 6절에서 “내 무죄함을 드러내며” 12절에서 “내가 선 자리가 든든하오니” 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장로님께서 주일에 기도하면서“나는 말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지난 주간 또 죄 중에 살다가 왔습니다.”“저희를 용서해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하면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나는 올바르게 살았습니다. 나는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나는 죄가 없습니다. 나는 너무나 든든합니다.”라고 기도하면 얼마나 거부감이 들겠습니까?“저 장로님, 어떻게 된 것 아니야, 너무 교만하잖아!”하지 않겠습니까?

성경도 사람은 어느 누구나 죄인이 아닌 사람이 없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시 14:3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그렇다면 시 26편의 다윗의 고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입니까?

저는 몹시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묵상하면서 어쩔 수 없이 죄인일 수 밖에 없는 다윗이 분명히 “나는 올바르게 살아왔습니다.”고백한 것이 주님이 주시는 메시지라고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가?”

이것은 다윗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결코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다 압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 다윗에게서 이런 고백이 나오게 만드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냐 하는 것입니다.

시편 26편을 찬찬히 읽어 보면 다윗 자신을 드러내는 교만한 말이 아니라 주님을 드러내는 간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시 26:1 …나는 올바르게 살아왔습니다. “주님만을 의지하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히 주님만 의지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7에서는 분명히 이 모든 일이 다 주님이 자신에서 해주신 것이라고 분명히 간증하고 있습니다.

7절 “감사의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르며, 주님께서 나에게 해주신 놀라운 일들을 모두 다 전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죄짓지 않으려고 얼마나 몸부림쳐 보았습니까? 회개하고 결심하고 노력하였지만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우리는 죄덩어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놀라운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죄인일 수 밖에 없는 우리가 “나는 올바르게 살았습니다.” 하고 고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삶을 변화시키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면 우리에게서도 다윗과 같은 간증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떻게 하나님을 믿었기에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까?

신명기 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신 후 호렙 산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처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드러내셔서 하나님의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모세에게 나아와 우리가 도저히 무서워 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할 수 없으니 모세 혼자 하나님께 나아가서 말씀을 받아가지고 오고 자신들은 돌아가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했으나,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바라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의 압제로부터 건져내신 이유는 오직 하나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오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가까이 오시는 하나님 앞에서 뒤로 물러가 버렸습니다.

그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신명기 5장 30절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가서 그들에게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라 이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바로 다음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신 5:31 너는 여기 내 곁에 서있으라

놀랍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셨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아가라고 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는 아픔이었을까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기가 막힌 말을 합니다.

말 1: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안타까운 말씀을 예언자를 통하여 하셨습니다.

렘 7:13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를 꺼려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출 20: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서 해방하신 진정한 목적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였습니다, 그리고 죄의 종이 아니라 진정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죄짓지 않고 사는 열쇠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살면 죄짓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떤 믿음을 가졌는지 우리가 다 압니다.

시 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내놓는 자세로 매일 매일을 살았습니다.

2절 주님, 나를 샅샅이 살펴보시고, 시험하여 보십시오. 나의 속 깊은 곳과 마음을 달구어 보십시오.

3절 나는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늘 바라보면서 주님의 진리를 따라서 살았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며, 일기를 쓰며 살았다는 말입니다.

시편은 다윗의 영성일기였습니다.

이것이 다윗으로 하여금 온전한 삶을 살게 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집안 일을 하며 직장 생활을 하며 죄짓지 않고 살 수 있습니까?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며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 수 있습니까?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올바르게 살려고 수도원에서 산 것이 아닙니다. 그는 전쟁을 수도 없이 치렀습니다. 그는 왕이었습니다. 얼마나 일이 많았겠습니까? 그러면서도 올바르게 살았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자가 죄짓지 않고 산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을 바라 보면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면 삶이 달라지게 됩니다.

4절 나는 헛된 것을 좋아하는 자들과 한자리에 앉지 않고, 음흉한 자들과도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5 나는 악인들의 모임에서 그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하고, 한자리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편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알면 심판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9절 나의 이 목숨을 죄인의 목숨과 함께 거두지 말아 주십시오. 나의 이 생명을 살인자들의 생명과 함께 거두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가 예수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자가 되면 죄를 지으라고 해도 짓기 싫어지게 됩니다.

온전한 성도, 거룩한 삶을 살자 하면 거부감을 가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왜 거룩하게 살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입니까?

마 19:26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홍해를 가르신 일을 믿으면서, 오병이어 기적을 행하신 일을 믿으면서, 왜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실 것은 믿지 못하는 것입니까?

참 안타깝고도 심각한 일입니다.

엡 4: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하나님의 분명히 알아야 하고 믿어야 합니다. 단 하나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꿈 이야기를 해서 조심스럽지만, 어제 토요일, 꿈에서 사자를 만났습니다. 누군지 모르겠으나 사람들과 헤어져 집으로 가려고 어둠 속에 길을 가는데, 사자 떼를 보고 멈추어 섰는데, 한 마리가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극한 두려움이 엄습하여 뒷걸음치는데, 그 사자가 나에게 달려들어 힘으로 나를 밀치는 상황에서“도와주세요!”소리쳤는데, 사진기를 든 한 사람이 와서 나를 건져내기 보다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그런다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3시 50분이었습니다.

마귀가 나를 공격하려고 하는 것인가? 당연한 일이니 걱정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무엇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서 밤새 뒤척였습니다. 마침내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 다급한 순간에는 주님이 생각나지 않고 극한 공포심만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아직 주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수준이 이 정도구나!

우리에겐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급한 일이 닥치면 믿음도 다 사라집니다.

다윗 처럼 늘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위기 때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악한 세상에서 죄를 이기고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삶을 살게 해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예수님을 항상 바라보는 자여야 주님도 우리를 지키고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중보기도 사역자들인 독일의 마리아 자매회, 1944년 독일이 대대적인 폭격받는 중에, 다름슈타트에서 그들의 공동체를 건축을 했습니다. 밤마다 무서운 폭격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자신들 안에 죄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빛 가운데 걷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모이면 서로 자백하고 또 자백했습니다. 오직 주님의 긍휼만 의지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놀라운 평안과 확신이 임했습니다. 공동체의 각 건물들의 건축이 진행되었습니다. 폭격 중에 가나안 공동체가 세워진 것입니다.

영성일기, 우리를 깨끗하게 살게 해 줍니다. 빛 가운데 교제하는 삶입니다.

한 교회 연구소에서 서울에서 크다고 소문난 한 교회 교인들을 설문조사 했더니, 25가 주일을 성수하지 못하고 있더랍니다. 또 교인들의 30가 주중에 기도하는 생활을 전혀 하지 않고 있더랍니다. 또 그 중에 40가 평소에 전혀 기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50는 성경을 거의 읽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교인들의 55는 교인들의 헌금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또 70교인들은 교회 주일학교니 찬양대니 구역이니 그런 활동하는데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있답니다. 그리고 더더구나 그 교인들 가운데 85는 아직 한번도 한 사람도 주님 앞에 전도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100교인 모두가 천국은 가고 싶다고 썼더랍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천국과 별개가 아니라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11-12절 그러나 나는 깨끗하게 살려고 하오니, 이 몸을 구하여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 내가 선 자리가 든든하오니, 예배하는 모임에서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고난을 당하고 낮아짐을 당하고 수모를 당해도 그 자리가 바로 자기가 서야 할 자리요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송축하며 영광 돌리는 축복된 자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죤 웨슬리 목사,“하나님 외에는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 죄 밖에는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사람,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 백 명만 있으면 세계를 개조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거룩한 성도, 온전한 삶이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고 선교의 기반입니다. 교세가 아닙니다.

기울어져 가는 이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최선의 일인 것입니다.

영국의 신문기자 헨리 스텐리(Henry M. Stanley)는 무신론자였습니다. 1871년 선교사 리빙스턴 (D. Livingstone)이 수년간 본국과 연락이 두절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스탠리는 특종 기사를 쓸 목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리빙스턴을 찾아 밀림으로 나섰습니다. 수소문 끝에 리빙스턴을 찾은 그는 리빙스턴으로부터 무언가 얻기 위하여 그와 함께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때 스탠리는 리빙스턴이 흑인들에게 생명을 전하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회고하였습니다.“당시 나는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무신론자에 버금가는 편견을 갖고 아프리카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리빙스턴과 열 달을 지내면서 상당 기간 나 자신을 향한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이 고독한 노인을 만나게 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 분은 여기에 와서 저 고생을 하고 계신가? 정신이 나간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무엇 때문인가? 무엇이 그를 저렇게 감동시키고 있는가?우리가 만난 지 몇 달이 지났을 무렵 나는 그분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생활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점차로 타인에 대한 그의 동정의 마음이 나에게도 조금씩 전이되었고, 내 안에도 같은 동정의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경건한 자세와 온유함, 열정과 성실, 그리고 그가 자기 일을 얼마나 열심히 감당하는지 지켜보던 나는 결국 그 때문에 회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회개하라고 말하거나 강요하지 않았습니다.”후에 스텐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나를 회심시킨 것은 리빙스턴의 설교가 아닌 삶이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 불완전한 존재이며 많은 사람들이 바르고 순수하게 살기를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십자가의 복음, 그리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은 너무나 흥분되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거룩하게 살 수 있음을 증거합시다.

여러분은 증인입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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