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급하여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 도착하였습니다.이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하나님의 집인 성막을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모세가 계시를 받은 지 8개월만에 성막이 완성되었습니다. 봉헌식이 8일간 성대하게 계속되었습니다.
아론이 제1대 대제사장이 되어 번제단위에 제물을 올려 놓았습니다.이 때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 주셨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 주시는 것을 보며 좋아서 이렇게 말했다고 미드라쉬 3권은 전해주고 있습니다.
<율법을 주신 날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약혼한 날이고 불을 주신 날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결혼한 날이다>
모두가 좋아할 때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아론의 네 아들중 큰 아들 나답과 둘째 아들 아비후가 죽는 사건이었습니다.흥분과 감격 그리고 기쁨과 기대가 충만하던 분위기는 갑자가 슬픔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성막 봉헌식이 무르익고 있을 때였습니다. 8일 째 되는 날 나답과 아비후가 죽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레10;1-2)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1.다른 불을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완성하고 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을 주었습니다.그리고 불을 꺼뜨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그리고 등대와 분향단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주신 불만 사용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답과 아비후는 인본주의의 다른 불을 사용하였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1)
이는 아담과 하와가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은 불순종과 같은 맥락입니다 하나님은 순수한 신본주의에 인본주의가 조금도 섞이지 않기를 바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술을 먹고 들어 갔기 때문입니다.
불이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온 백성들은 기뻐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나답과 아비후는 불만스럽게 보고 있었습니다.둘이는 자기들은 70장로보다 높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차세대 지도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데에도 자기들이 앞장 서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그러나 아무도 나답과 아비후를 인정하여 주지 않았습니다.그래서 나답과 아비후는 홧김에 술을 먹고 분향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답과 아비후를 데리고 가신 것입니다.성경에 나답과 아비후가 술을 마시고 들어 갔다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그러나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후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레10;8-9)
이 말씀을 보아서 나답과 아비후는 술을 먹고 들어 갔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3.지성소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지성소에는 아버지 아론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건방지게 월권하였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이 말씀은 지성소에 들어가는 예식인 레위기 16장의 말씀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향로를 취하여 여호와 앞 단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두 손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채워 가지고 장안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위 속죄소를 가리우게 할 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음을 면할 것이며>(레16;12-13)
그들은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지성소에서 죽은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이 되었습니다.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 지성소에 들어갔으니 하나님께서 거냥 두실 리가 없습니다.지성소는 아무리 중한 사람이라 할 지라도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어떤 왕에세 둘도 없이 친한 친구 한 명이 있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어느 건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왕은 긴급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 놈의 목을 쳐라" 한 신하가 쏜살같이 달려가서 왕의 그렇게 친한 친구 목을 쳤습니다.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이유를 물었습니다.
왕이 대답하였습니다. "저 집은 들어가면 죽는 집이다" 지성소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집입니다.그러나 두 명의 예외가 있습니다.한 명은 아론입니다.대속죄일에만 하루 4번 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그리고 또 한 명의 예외가 있습니다.모세입니다.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너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너는 지성소에 네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들어 올 수가 있다.횟수에 구애받지 말아라.너는 홀로 거룩하다"
그래서 모세만큼은 대속죄일만 제외하고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4.두번째 범죄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과 함께 여호와에게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너 모세만 여호와에게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출24;1-2)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은 명령을 어기고 산위로 올라갔습니다.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출24;9-11)
그러나 하나님은 나답과 아비후가 너무나 존귀한 자라 손을 대지 않으시고 죽음을 보류하셨습니다.그러나 나답과 아비후가 또 범죄하니까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하나님은 반복된 죄를 용서하시지 않으셨다는 증거입니다.
5.아론의 죄 때문입니다.
아론을 중심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이 사건으로 하나님은 아론을 치시려고 하였습니다.그러나 모세의 중보기도로 저주를 보류하셨습니다.그래서 하나님은 벌을 반감하셨습니다.두 아들만 데리고 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론의 네 아들중 두 명은 살려 두시고 나답과 아비후 두 아들만 부르신 것입니다. 이같이 나답과 아비후는 다섯 가지 죄로 인하여 죽었습니다.아론은 슬퍼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왜 하필이면 불로 죽이시나이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불로 범죄하니까 불로 죽이지"
그런데 나답과 아비후가 지성소에 들어갔을 때였습니다.하늘에서 네 줄기의 불기 내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두 줄은 나답의 두 콧구멍으로,나머지 두 줄기는 아비후의 두 콧 구멍으로 들어 갔습니다.그래서 나답과 아비후의 속을 완전히 태웠습니다.그러나 옷은 전혀 태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나답과 아비후가 옷이 타지 않았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아론의 아자비 웃시엘의 아들 미사엘과 엘사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나아와 너희 형제들을 성소 앞에서 진 밖으로 메어 가라 하매 그들이 나아와 모세의 명대로 그들을 옷 입은 채 진 밖으로 메어 내니>(레10;4-5)
그러면 지성소에는 아무나 들어 갈 수 없는 데 누가 나답과 아비후의 시체를 밖으로 꺼냈을 가요? 천사가 나타나더니 지성소로 들어가서 시체를 밖으로 꺼냈습니다.성막 봉헌식은 순식간에 수라장으로 변하였습니다.슬픔과 경악이었습니다.말할 것도 없이 가장 아픔을 당하고 있었던 이는 아론이었습니다.아론은 슬픔을 참다 못 하여 통곡하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아론을 위로하라" 모세가 아론에게 와서 이렇게 위로하였습니다. "죽은 두 아들은 위대한 아들이었습니다.그러나 그의 죽음은 이미 시내산에서 예정하신 죽음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는 범죄하는 자를 결코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증명하여 준 사건입니다.당신의 두 아들의 죽음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교훈을 남겨 주었습니다.나답과 아비후 두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여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하며 그 분을 법대로 섬겨야 한다는 것을 잘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죽음이 되었습니다.위로를 받으십시오" 아론은 이 말을 듣고 슬픔을 그쳤습니다.그는 불평없이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 드렸습니다. 후에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은 이런 이야기를 낳았습니다.
요하난 벤 자카이 랍비의 아들이 잘 자나라닥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그는 몹시 슬퍼하였습니다.그 때 제자들이 와서 랍비를 위로하였습니다. 제자 엘리저 랍비가 와서 위로하였습니다. "말씀드려도 될까요?" "말해도 좋다" "첫 사람 아담때였지요.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요하난 벤 자카이가 말했습니다. "나는 자네 이야기를 듣고 더 슬픔을 느낀다.나는 내 슬픔만 가지고 있었는 데네 말을 듣고 보니 아담이 가지고 있었던 슬픔이 몰려 온다" 다른 학생인 여호수아 랍비가 와서 위로하였습니다. "욥은 자녀 10명을 길렀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태풍이 불어서 10명이 한꺼번에 죽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받아 드렸습니다.그리고 나니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요하난 벤 자카이가 말했습니다. "그만 해라.네 말을 듣고 보니 위로가 되지 않고 더 슬픔이 된다.내 슬픔에 욥의 슬픔이 더 해지고 있구나"
또 다른 학생인 요세 랍비가 와서 위로하였습니다. "아론의 두 아들이 죽었습니다.그러나 모세가 와서 위로하지 않았습니까? 아론은 그 위로를 잘 받아 드렸습니다" 이 말을 들은 요하난 벤 자카이는 말했습니다. "네 말도 내게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나는 아론이 얼마나 슬펐을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엘리잘 벤 아라흐 랍비가 와서 위로하였습니다.
이는 요하난 벤 자카이가 너무나 아끼는 총명한 제자였습니다. "한 왕이 있었습니다.그 왕이 선생님에게 와서 아주 값진 것을 맡겼습니다.얼마나 왕이 나타나서 그것을 도로 왕에게 드렸습니다.물론 잘 보관하였다가 드린 것이죠.그러면 왕은 너무나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생님에게 너무나 값진 두 아들을 주셨습니다.그런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그 두 아들을 도로 데리고 가셨습니다.그들은 하나님의 소유지 선생님의 소유가 아니었습니다.선생님은 하나님께 온전히 드렸으니 기뻐하셔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요하난 벤 자카이가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네가 나를 위로하였구나!" 나답과 아비후는 인본주의로 죽었습니다.무엇이 인본주의입니까? 1.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은 하는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사용하였습니다.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것은 인본주의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2,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것은 먹는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술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는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술이나 담배를 금하시고 계십니다.신앙생활에 백해무익하기 때문입니다.먹거나 마시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전문가가 통계를 내보았더니 TV에서는 6.5분에 한번씩 쎅스 장면이 나오고 술먹고 방탕한 모습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18세 이전에 TV에서 평균 205,000명 술광고를 보며 산다는 것입니다.18세 이전에 평균18,000시간 TV를 본다는 것입니다.미국이 60% 이상의 부부가 이혼율을 가지고 있는 데 이 원인은 TV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술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그리고 TV를 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뇌물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뇌물은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정적인 말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부정적인 양식을 먹으면 부정적인 사람이 되고 부정적인 사람은 긍정적인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3.하나님이 가지 말라는 곳에 가는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분향하다가 죽은 이유는 들어가지 말아야 할 지성소에 들어 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것만 하면서 사는 것이 신본주의입니다.하나님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인본주의로 사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인본주의를 배격하여야 합니다.
4.하나님이 용서하신 후 또 죄를 짓는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그래서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하면 다 용서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대속죄일에 모두를 용서하여 주십니다.그러나 용서받지 못 하는 죄가 한 가지 있습니다.대속죄일에 용서받을 것을 믿고 짓는 죄는 사함받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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