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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주시는 기회(욘 1: 1-5) / 박조준 목사

by 【고동엽】 2021. 12. 8.

두번째 주시는 기회




오늘은 지난 주일에 이어서 요나에게 주신 두 번째 기회에 대해서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요나서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아주 귀한 기회를 주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은 요나에게 큰 사명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순종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니느웨와는 반대 방향인 서쪽으로 발을 돌려 욥바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니느웨 사람에게 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에 선가를 내고 탔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피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도망하려는 방향으로 가는 배가 때마침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만일에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하려고 하면 마귀는 언제나 우리를 위하여 도망갈 수 있는 배를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피하여 도망가는 사람의 길이 처음에는 아주 순조롭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는 요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잘했지. 물론 내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야. 그러나 어떻게 그대로 할 수 있나? 그렇게 하느라고 고생하는 사람들이 못났지. 아, 나처럼 아무리 하나님의 명령이지만 내 마음에 안들면 안하면 되고, 그대로 있기가 거북하면 이렇게 도망하면 될 것 아니야. 사실 나는 내가 하기 싫은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누가 말한다고 해도 하지 않을 거야. 자, 이것 봐. 나 같은 사람이 타고 가는 배인데도 이거 얼마나 잘 가는가 말이야.' 이렇게 속으로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꾸만 떠올라서 아예 잊어버리고 싶어서 배 밑창으로 내려가 구석진 곳에서 잠이 들었었습니다.


지난 주간 어느 집사님이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요나가 배 밑창에 내려가 잠을 잘 수 있었을까요? 잠자는 것은 마음이 편해야 되는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가는 신세에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편했을까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요나가 깊이 잠이 들었다고 했거든요? 풍랑이 일어난 것도 전혀 모르고 선원과 선객들이 제각기 자기들이 섬기는 신을 찾으며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있는데도 그것도 모르고 잠이 깊이 들었거든요." 그래요. 잠잘 수 없는 사람, 잠자서는 안될 사람이 잠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명을 잊어버리면 양심이 마비되니까 이런 꼴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의 사람 삼손도 나실 사람으로 구별되게 자랐고, 구별되게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의 신분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더구나 이스라엘 민족의 원수인 블레셋 여인과는 절대로 가까이할 수 없고, 해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그의 신분을 망각하고 원수 나라의 간첩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깊이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종래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요나는 자기 생각에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시편기자의 말대로,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할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할 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가 순조롭게 가는 것 같더니 얼마 가지 아니해서 강한 바람이 불며 풍랑이 일어 배를 까불기 시작했습니다. 이것 보세요. 하나님을 떠난 사람에게 영원한 행복, 영원한 평화, 영원한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요나가 타고 있는 배의 선원들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배는 파선 직전에 이르러 더 이상 항해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선적을 가볍게 하려고 배에 싣고 가던 모든 물건들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선객들은 당황해서 어떻게 할 줄을 모르고 자기가 믿는 신들을 부르며 야단법석이었습니다. 그런 난리 통에 잠자던 요나는 배 밑창에서 선장에게 발견되어 야단을 맞고 자기가 하나님의 사람이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하는 길이라고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글쎄,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풍랑 만난 이유를 알게 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둘러선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이때 요나는 말했습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세요. 이런 어려움을 당하게 된 것이 나 때문입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그것이 범죄로 인한 것이라면 그 죄를 청산하기 전에는 아무리 다른 방법으로 인간의 최선을 다 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에서 요단강을 기적으로 건너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전히 순종했더니 여리고성을 손가락 하나 대지 아니하고 몰락시키는 감격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성에서는 비참할 정도로 패배의 쓴 잔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 패배의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성경은 그 원인이 한 사람의 범죄 때문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여리고성의 전투에서 거둔 전리품 가운데서 외투와 은과 금을 훔친 사람의 범죄가 아이성과의 전투에서 패전한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 7장 1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이 여리고성을 점령하면 그 성 안에 있는 물건이나 돈에 손을 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물건이 탐이 나서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 40년을 아무 것도 없이 지냈는데 이제 여리고성에서 좋은 물건 보고 돈을 보면 자연히 욕심이 생길 것인데, 거기에 마음을 쓰다 보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데 차질이 생길 것이니까 미리 막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간이란 사람이 욕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바쳐진, 손대지 말아야 할 물건과 돈을 누구도 모르게 훔쳤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엄청났습니다. 아간 한 사람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 전체에게 미친 영향이 얼마나 컸습니까? 만일 아간이 자기의 행동이 이스라엘 자손 전체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생각을 했었다면 그 결과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한 사람이 행한 일이 우리 민족에게 미칠 영향이 어떨까 하는 것을 생각했다면 우리의 행동이 얼마나 달라질까요?


'나 한사람쯤이야' 하는 사고방식으로 혼자 은밀히 취한 행동은 나 혼자만의 행동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아간을 아골 골짜기에서 처치하고 나서야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하셨고, 다시 기회를 주셔서 아이성을 점령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치 아니하고 피하여 도망하는 일이 이렇게까지 엄청난 사건이 될 줄을 요나는 미처 생각지 못했었을는지 모릅니다.


제비가 자기에게 뽑힐 때 그는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여러분이 당한 이 어려움은 나 때문입니다. 나를 바다에 던지세요" 우리는 어려움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 나라가 무엇이 문제입니까? 이 난국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고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 때문이라 하고, 야당 지도자는 대통령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하니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요나의 잘못은 큽니다. 그러나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책임진 것은 위대한 것입니다. 선원들은 결국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나니까 풍랑이 잔잔해졌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예비해 두셨다가 요나를 삼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특별한 사건을 위해서 마련한 물고기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자비를 볼 수가 있습니다. 범죄한 인간이지만,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어려움을 안겨준 사람이지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때 하나님은 그를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큰 물고기를 준비하셨습니다.


요나서 2장은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한 장면입니다. 그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도 불순종한 잘못을 뉘우치며 회개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변화되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고난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기도를 배웠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요나서 2장 10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요나는 뛰쳐나왔습니다. 이 날은 요나에게 있어서 가장 위대한 날이었습니다. 그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요나서 3장 1절을 보세요.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2절에서 중요한 세 단어를 발견합니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1장에서도 우리는 이 세 가지 명령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요나는 다시 두 번째 명령을 받습니다. 이때 요나가 어떻게 응답합니까? 1장에서는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2장에서는 요나가 하나님을 향하여 다시 달려옵니다. 2장 4절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고 하면서 달려옵니다. 그리고 주님과의 교제를 회복했습니다. 요나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과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중에 가장 중요한 말씀은 3절입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일 길이라."


2장에서는 요나의 시선이 하나님께로 향했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했던 요나가 3장에서는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 하나님과 함께 일합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한 요나에게 한 번 더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다시 주시는 은총의 기회였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만 말씀하시고 그것으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두 번째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한 번으로 모든 것을 끝내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십니다. 이 은총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다시 응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3절에 보니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했습니다. 요나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났습니다.


4절 이하의 말씀을 보니까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4-6절) 했습니다. 요나의 사역이 드디어 니느웨 왕을 회개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아마 세계 선교 역사상 이만큼 놀랍고 성공적인 선교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니느웨 12만 온 시민이 회개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왕이 회개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심지어 짐승들까지 이 거국적인 회개운동에 참여시켰습니다. 이렇게 전 민족적인 회개운동이 일어날 때 니느웨시는 새로운 도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쳤습니다. 니느웨시에 내리려 했던 하나님의 진노 재앙이 내리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 보세요. 요나는 니느웨시에서 하나님의 심판만 선포했습니다. 회개하라는 말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요나가 니느웨 시민에게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요나는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온 시민이 회개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심판 날에 니느웨 사람이 일어나 이 세대를 심판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니느웨 시민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은혜의 복음을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회개했습니다. 이상한 것은 오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은혜의 복음을 듣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회개하기를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범한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다는 진리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멀리 피하려 했던 요나를 들어서 구약 성경 가운데 나타나는 인물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고 가장 위대한 전도자로 부각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셨습니다. 만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실패하고 아무리 죄를 범했다고 해도, 그런 가운데 잘못을 깨닫고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면, 죄를 용서하시고 두 번째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비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캐묻지 아니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수제자였던 베드로를 기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들에게 잡혀가시게 되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서 "그때는 너희가 다 나를 버리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있던 베드로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선생님,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만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내 생명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나만은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하면서 맹세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원수들에게 잡히게 되고 대제사장 앞에 끌려가시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멀리서 예수님이 심문 받으시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아주 험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로서는 혼자서 원수들 사이에 끼어 불을 쪼이고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이렇게 되니까 베드로는 은근히 겁이 나고 무서운 생각마저 들게 되고 마음이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이때 어느 비자가 하는 말이 "당신도 역시 갈릴리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세요?"라고 하는데, 이 말을 듣는 순간 베드로는 겁이 나서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알지도 못합니다" 하며 말을 더듬었습니다. 한 번만 아니고 두 번, 세 번 맹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때에 닭 우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네가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모른다 하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베드로는 그 자리에 뛰어나가서 바깥 어두운 곳에서 통곡하며 하나님 앞에 자기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이때부터 베드로는 매우 약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 주님을 만나 뵙기는 했지만 용기를 얻지 못했었습니다. 베드로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는지 사실 막연했습니다. 그래서 전에 하던 고기잡이나 다시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디베랴 바다에 가서 3년 동안 놓았던 그물을 다시 잡았습니다. 그러나 그물에 고기가 걸리지 않았습니다. 밤새 애썼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날이 새어 가는데 예수님이 바닷가에 서 계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 뵙지도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제자들은 별 생각 없이 그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베드로가 아무 생각 없이 예수님 말씀 그대로 하였더니 고기가 많아 들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베드로에게 귓속말로 "형님, 주님이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깜짝 놀란 베드로는 벗고 있던 몸에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내려 예수님께 왔습니다.


예수님이 미리 준비해 놓으신 조반을 흥분 속에 먹었습니다. 그리고 조반 먹은 후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만일 그때 주님께서 시몬에게 "네가 나를 배반하지 않겠다던 것이 어떻게 되었느냐?"라고 물으셨다면 베드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기 때문에, 자신을 살펴본즉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만은 사실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떨리는 마음으로 "예,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양을 먹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실패한 베드로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에게 주님의 양을 치는 위대한 사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예수를 부인한 큰 죄를 범한 베드로이지만 회개할 때 다시 기회를 주어서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한 번의 실수나 과오 때문에 우리를 완전히 포기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아니,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실패의 경험에서 오히려 값진 교훈을 배워 주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실패하고 잘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고 시인하고 잘못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시 일어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한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달리는 선수라야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좌절하거나 포기할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야 마지막에 성공할 수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약해져서 시험에 들고, 유혹에 빠져서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실패를 인정하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 기회를 주십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역사를 이룩하는 것입니다.


다윗 왕도 하나님과 사람에게 큰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나단의 충고를 듣고 자기의 죄를 깨닫고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셨고, 이스라엘의 성군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실패했을 때 낙심하지 맙시다. 다시 일어나면 소망이 있습니다. 회개하면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회개한 사람에게는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탕자가 아무리 아버지를 배신하고 멀리 떠나 허랑방탕하였지만, 잘못을 깨닫고 돌아올 때 아버지는 그를 환영하여 아들의 권리를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아마 이 세상에서 아브라함 링컨만큼 실패를 많이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거듭되는 실패를 통해서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더 큰 시도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가 실패할 때 마귀는 찾아와서 '이제는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게 찾아와서 '더 큰 일에 도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귀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더구나 회개한 다음에는 지난날의 일을 돌아보지 맙시다. 요나가 잘못한 일에 사로잡혀 있었으면 니느웨성의 큰 역사가 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시험에 들지 말아야 합니다. 죄를 범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잘못 되었으면 회개하고 용서받고, 두 번째 주시는 기회에 전력을 기울여 일해서 놀라운 역사가 우리 하나 하나를 통해 일어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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