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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18,185편 ◑/자료 16,731편

역사서 녹취 7

by 【고동엽】 2021. 12. 7.

오늘은 사무엘 상하와 열왕기 상하를 보겠습니다. 유대인들의 성경에서는 상하로 나뉘어 있지 않고 사무엘과 열왕기 모두 한 권입니다. 70인경 때부터 상하로 나뉘어지게 되었는데요. 사무엘 상하를 보시면 3명의 중요한 인물이 나옵니다. 사무엘, 사울, 다윗입니다. 사무엘상 1장부터 12장까지가 주로 사무엘 이야기이고, 13장부터 31장까지가 사울, 사무엘하는 전체가 다윗 이야기입니다. 사무엘 상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블레셋이라고 하는 이방 민족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무엘 상하에서 사울과 다윗이 주로 싸웠던 대적이 블레셋입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과 비슷한 시기에 가나안 땅에 들어온 해양 민족입니다. 블레셋은 바닷가를 통해서 지중해 해변가 중심으로 거주지를 확보하였고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 시내산을 통해서 요단 동편 땅 에돔, 모압, 압몬을 거쳐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됩니다. 비슷한 시기에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는데 블레셋은 해변 지역 중심으로 거주했고 이스라엘은 평야 지방을 중심으로 거주해서 충돌할 일이 많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두 나라 모두 인구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무엘 시대가 되면서 블레셋, 이스라엘 모두 인구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생활할 거주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블레셋은 내륙 지방으로 들어오고자 하였고 이스라엘은 해변가로 확장하려고 한 겁니다. 사무엘 시대에 왜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충돌할 수밖에 없었는가, 인구가 팽창하게 되면서 거주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블레셋과 이스라엘 모두가 충돌하던 시기가 사무엘, 사울, 다윗 시대입니다. 참고로 블레셋은 할례를 받지 않고 돼지고기를 먹습니다. 이스라엘은 할례를 받고 돼지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문화와 종교는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가나안 땅에 입성하였고 사무엘 시대에 거주지를 확보하기 위해 서로 충돌하였습니다. 충돌은 하였지만 블레셋과 이스라엘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블레셋은 일찍 철기 문명을 소유하였고 이스라엘은 청동기 문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충돌하면 이스라엘은 백전백패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자꾸 블레셋에 패배하던 상황에서 그 이유가 무엇인가, 승리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라는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하던 중에서 사무엘과 이스라엘 백성의 의견이 갈라서게 됩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문화에 동화되고, 세속화되고 하나님만을 제대로 섬기지 않은 것이 패배의 원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블레셋에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다시 돌아와야 될 것을 말하며 죄 된 삶을 청산해야 한다고 하면서 대대적인 회개 운동을 제안합니다. 그런데 일반 백성들은 그 원인을 블레셋처럼 전쟁을 진두지휘 할 지도자가 없다, 그래서 우리도 왕을 세워달라, 그러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목소리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왕을 세워 달라고 요청했고 사무엘은 왕을 세워 달라는 것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행동이라 하면서 거절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고집스럽게 계속 왕을 세워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스라엘의 이런 목소리 자체가 군사 의존적, 지도자 의존적, 전략과 전술 의존적 태도입니다. 이스라엘이 무엇을 망각한거죠?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전쟁은 여호와의 전쟁입니다. 이 전쟁을 잘 보여주는 것이 사사기의 기드온 전쟁입니다. 처음에 3만 2천 명이 모였는데, 너무 많아서 만 명으로 줄입니다. 그것도 많아서 300명만 남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적은 숫자로도 이스라엘이 승리케 하십니다. 많은 병력이나 탁월한 전술이 없어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다운 거룩함을 유지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친히 도와주시는 겁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여호와의 전쟁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사무엘 시대가 되면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 속에 여호와의 전쟁은 망각됩니다.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는 지도력, 많은 군사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다윗도 많은 군사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인구 조사를 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결국 블레셋에 패배하는 상황에서 사무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우리가 계속 패배하는 원인이 무엇인가, 해결책이 무엇인가의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사무엘의 의견이 갈라서고 이스라엘 백성은 결국 자신들의 전쟁을 진두지휘 할 왕을 뽑아달라 요청합니다. 결국 이것을 막으려고 사무엘이 애를 썼는데,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왕을 뽑아달라는 백성의 요청을 들어주라 하십니다. 여기까지 보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요구를 하나님이 수용셨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호세아 13장 11절에 보면 왕을 세워 달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요청을 하나님이 들어주신 것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고 있냐면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그 왕을 폐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왕을 요청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왕을 요청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를 들어주라 하십니다. 얼핏 보면 하나님이 왕을 세워 달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요청을 허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의 속 마음은 호세아 13장 11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노하셨습니다. 분노 가운데 이스라엘에게 왕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진노 가운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을 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내가 하나님께 간절히 A를 구했는데, 그 A가 이뤄진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응답하셨구나, 우리의 간구를 기뻐하셨구나”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이런 사건이 민수기 11장에도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에 질려서 하나님께 고기를 달라고 아우성 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메추라기 떼를 엄청나게 이스라엘에게 보내 주십니다. 이스라엘은 메추라기 떼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간절히 구하니까 하나님이 들어주시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그 메추라기를 씹기도 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십니다. 그 심판의 장소를 ‘기브롯 핫다아와’라고 합니다. ‘탐욕의 무덤’이라는 말입니다. 그곳은 이스라엘이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얼마나 욕심을 부렸는지를 보여주는 산 교육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구했는데 그것이 이뤄진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응답, 기뻐하심이라고 너무 쉽게 규정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호세아 13장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분노 가운데 이스라엘에게 왕정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초대 왕이 된 사람이 사울입니다.

 

사울은 아시다시피 베냐민 지파입니다. 사울이 왜 왕이 되었을까요? 어떻게 베냐민 지파에서 왕이 선출되었을까요? 왕이라는 존재는 절대 권력을 쥐고 있는 존재입니다. 이 절대 권력을 소유한 왕이 어느 지파에서 배출되는가에 따라서 이스라엘내 지파간의 힘의 균형이 달라집니다.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가장 강력한 지파는 유다 지파입니다. 만약 유다 지파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왕이 나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유다 지파 자체도 강력한데 거기에 왕까지 나온다? 왕은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데 그러면 유다 지파 전성시대가 됩니다. 그러면 나머지 지파들이 긴장하겠죠. 그래서 하나님은 12지파 가운데 가장 유명무실했던, 사사기 마지막에 보면 이스라엘 11지파와 전쟁하다가 남자들만 600명이 남는 굉장히 초라한 지파로 축소된 지파가 어디입니까? 맞습니다. 베냐민 지파입니다. 무기력한 베냐민 지파에서 왕을 선출함으로서 어떤 지파도 시기하거나 질투하거나 견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초대 왕은 베냐민 지파였던 사울이라는 사람이 선출됩니다. 사무엘상을 보면 사울은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최고 종교 지도자였던 사무엘을 알아보지도 못합니다. 이 말은 뭐냐면 미스바 집회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왕이 되고 한참 지나서야 하나님께 제단을 쌓습니다. 그것이 사울이 쌓은 첫 번째 제단이라고 합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울이라는 사람을 하나님이 왕으로 세우셨지만 이방의 왕과 달리 사울은 제한적인 권력을 가진 왕이었습니다. 왕이 행사할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은 전쟁 개시권입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왕의 말이 곧 명령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왕은 사람들을 차출할 수도 있고 누군가의 것을 빼앗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땅을 점유할 수도 있습니다. 왕이 갖고 있는 권력에서 최고가 전쟁 개시권인데 이방의 모든 왕은 이 권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왕정은 허락하셨지만 전쟁 개시권을 왕이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 지도자가 전쟁 개시권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종교 지도자가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전쟁을 해도 좋다는 승인을 받게 되면 종교 지도자가 전쟁 개시를 선포하는 겁니다. 그러면 왕과 군인들은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거죠. 그런데 사무엘상 13장을 보면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사무엘이 정해진 기한 안에 오지 않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때 백성들은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이 상황을 틈타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공격하고자 합니다. 이때 사울이 직접 긴급하게 제사를 드리고 전쟁 개시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사무엘이 와서 책망하니까 뭐라고 합니까? 백성들이 흩어지고 블레셋은 공격하려 하고 어쩔 수 없이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이것도 결국 여호와의 전쟁을 기억하지 못하는 행위입니다. 이스라엘 전쟁 승리의 핵심은 군사력이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군인을 확보하고 탁월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가가 이스라엘 승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다움이 이스라엘 승리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흩어지는 군인의 모습을 보면서 이러다가 전쟁에 지겠다는 마음으로 종교 지도자의 승인을 받기도 전에 자신이 전쟁 개시를 선포했습니다. 한 마디로 군사력과 병력을 의존하는 행위를 한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폐위선언을 받습니다. 또 하나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은 아말렉의 모든 것을 전멸하라고 명하셨는데 사울은 귀한 것들을 남겨둡니다. 비싼 몸값을 받으려고 아말렉의 왕이었던 아각도 살려둡니다. 소와 양과 염소들도 살려둡니다. 사울은 종교 지도자의 승인 없이 전쟁을 자의적으로 개시한 것 때문에 이미 하나님의 폐위선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말렉을 전멸하라고 하나님이 명하셨는데도 전멸하지 않고 좋은 것들을 남겨둡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했을 때 출애굽 한 이스라엘을 가장 먼저 공격한 이방 민족입니다. 이 두 가지 이유로 인해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폐위가 됩니다. 사울을 마무리하면서 꼭 기억하셔야 할 것은 이스라엘도 다른 나라처럼 왕정을 도입하기는 했지만 주요한 차별성이 있었다는 겁니다. 다른 나라와 다르게 이스라엘 왕정은 제한적인 권력을 가진 왕이었다, 종교 지도자의 승인을 받아야만 전쟁을 개시할 수 있는 제한적인 권력을 가진 왕이었다는 것을 꼭 기억해 주십시오.

 

사울이 폐위되고 두 번째 왕으로 뽑힌 사람이 다윗입니다. 다윗은 이새의 정부인의 아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다윗을 서자 출신으로 봅니다. 그 이유가 뭐냐면 사무엘상 16장에 보면 이스라엘 최고 종교지도자였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런 얘기를 합니다. “당신의 모든 아들을 소집하라”고 합니다. 이미 사람들은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 가운데 한 명에게 기름 부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들을 다 소집하라 했는데 그때 소집당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양을 치라는 지시를 받은 아들이 다윗입니다. 17장을 보면 블레셋과 전쟁을 하기 위해서 다윗의 형들이 전쟁터에 있는데 아버지가 다윗에게 형들이 잘 있나 보고 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윗이 가서 형들을 만나는데 형들이 다윗에게 건네는 말투를 보면 친동생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굉장히 폭력적이고 다윗을 무시하는 식의 말투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성경 어디에서도 어머니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정리해보면, 다윗은 아들들을 소집하라 했을 때 소집되지 않았습니다. 형들은 다윗을 하대하고 비웃습니다. 어머니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다윗은 이새의 정부인의 아들이 아니라 서자가 아닐까 추측합니다. 다윗은 한 마디로 밑바닥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출발한 다윗이 왕의 사위까지 올라갑니다. 그런데 사울에 의해서 다시 오랜 세월 도피생활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아둘람 공동체라는 멋진 공동체를 만들어냅니다. 밑바닥 인생들과의 함께 함을 통해 포용과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다윗에게 충만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다윗이라고 하는 한 사람에 대해 사울이라는 왕과 그의 아들이었던 요나단이라는 왕자의 입장이 너무 다르다는 겁니다. 사울이라는 왕은 현실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실은 다윗을 가장 경계해야 할 사람은 미래 권력 0순위였던 요나단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보이는 반응은 우리의 기대와 정반대입니다. 현실 권력을 쥐고 있는 사울은 다윗을 죽이지 못해서 안달입니다. 사실은 미래 권력 0순위인 요나단이 다윗을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여기고 대적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누구보다 다윗을 경계하고 제거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으로 보이는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합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남녀가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서로를 사랑했습니다. 물론 다윗이 요나단 보다 나이가 훨씬 많기는 합니다. 어떻게 다윗과 요나단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질수 있었을까요? 똑같은 한 존재에 대해서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하는데, 요나단은 다윗을 너무 사랑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벌어지는가?. 어떤 관점으로 보는가에 따라서 한 존재에 대해 이런 상반적인 입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왕권을 중심으로 다윗을 본 겁니다. 그리고 사울은 자신의 왕권을 아들들에게 물려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을 사랑합니다. 이 다윗을 사울은 경쟁자로 봅니다. 다윗이 살아있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랑받는 한 자신의 권력을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쉽지 않겠다 판단하고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다윗을 경쟁자가 아니라 동역자로 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 가장 큰 위협의 대상은 블레셋이었습니다. 그 위협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인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해서 다윗과 요나단은 힘을 합쳤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블레셋의 공격으로부터 이스라엘 공동체를 지켜낼 수 있는 동역자로 보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보면 다윗은 동역자인 것이고 나의 왕권을 중심으로 보면 다윗은 경쟁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판단을 내릴 때 나 중심으로 판단을 내리는지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판단하는지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무엘 상하에서는 3군데의 본문만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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