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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료 18,185편 ◑/설교및자료 16,731편

역사서 녹취 5

by 【고동엽】 2021. 12. 7.
여호수아 21장에 보시면 레위인들에게 48개의 성읍이 주어집니다. 레위인들은 주로 가축을 쳤습니다. 그 가축이 결국 제물이 되는 겁니다. 48개의 성읍을 받았는데, 이 숫자는 분해를 하면 4 곱하기 12입니다. 레위인이 받았던 성읍은 12지파에게서 한 지파당 4개씩, 4개는 동서남북 하나씩, 그렇게 48개의 성읍을 받은 겁니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제사를 돕는 사람이고,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레위인들이 한 지파당 동서남북 네 군데씩 총 48군데에 거주했다는 것은 모든 지파가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기회의 균등성을 보장받았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예배드릴 곳이 남쪽에 하나만 있었다고 하면 남쪽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편했겠죠? 북쪽에 있는 사람들이 예배 드리려면 얼마나 많은 헌신이 필요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레위인들을 각 지파당 네 군데씩 거주하게 만드셔서 누구나 레위인들이 있는 곳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기회의 균등성을 보장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최소한 예배드릴 수 있는 48군데의 성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48개의 성소 가운데 한 곳을 뭐라고 하냐면 중앙 성소라 합니다. 나머지는 지방 성소라 합니다. 중앙 성소는 모세 때 만들었던 성막이 있는 곳입니다. 이 성소가 중요한 이유는 그곳에 여호와의 법궤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방 성소에서도 제사는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언약궤를 그곳에 둔 후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중앙성소가 됩니다. 그리고 요시아와 히스기야가 종교 개혁 운동을 펼칠 때 지방 성소들을 제거합니다. 왜냐하면 지방 성소가 우상 숭배의 소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지방성소라 하지 않고 부정적인 뉘앙스로 산당이라 부릅니다. 원래 산당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부정적인 뉘앙스를 지닌 곳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예배드릴 수 있는 지방 성소였는데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당을 통해서 종교 혼합주의적인 우상숭배에 몰두했기 때문에 그때부터 지방 성소라 부르지 않고 부정적인 의미를 담아서 산당이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수아 21장에 보면 레위인들이 48군데의 성읍에 거주했다는 것은 예배드릴 곳이 최소한 48곳이 있었고 그 가운데 한 곳을 중앙성소, 나머지를 지방성소라 했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의 근거가 땅 신학입니다. 이스라엘은 부단한 순종을 통해서 그 땅을 차지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차지할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이 갖고 있는 군사력과 가나안 사람의 군사력을 비교해보면 이스라엘이 이길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나 그 땅을 누가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이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이 중요한 이유는 그 땅 위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의 삶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이스라엘은 보여주어야 되는 겁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신앙의 내용이 없으면 신앙은 관념이 됩니다. “예수가 우리 인생의 주인이시다”라고 하는 것에 대한 구체적 삶의 증거가 없으면 “예수가 우리 인생의 주인이다”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실체도 없이 입술의 고백으로만 끝나게 됩니다. 머리 속의 관념으로만 끝나는 겁니다. 이는 귀신 수준의 신앙입니다. 야고보서 2장 19절에 보면 “너희가 하나님이 한 분이신 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잘 하는도다”는 칭찬이 아니라 조롱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착각하냐면 나는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을 믿어, 예수가 구원자이신 것을 믿어, 이것을 믿으니까 나는 당연히 구원 받겠지 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사도 야고보는 “너희가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을 믿느냐, 잘한다, 귀신들도 하나님이 한 분인 것을 믿고 하나님 앞에 떤다”고 이야기 합니다. 귀신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귀신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머리 속으로만 신앙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관념인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증거해야 합니다. 그런 삶이 보이기 위해서는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현장이 필요합니다. 가나안 땅이라는 것은 왜 중요합니까? 그 가나안 땅이라는 구체적 현장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꾸려나가는 정치, 경제 공동체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가시적으로 증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은 신앙의 삶을 보여주는 물적 토대인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보시면 믿는 자들이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해서 전도하는 구호가 뭐죠? “와 보라”입니다. 세상과 다른 또 하나의 세상의 모습을 교회는 보여주어야 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맘몬, 권력을 숭배하고 자신의 이기심과 욕망의 지배를 받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잖아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어야 되는데 안타깝게도 오늘 한국교회가 종교 제의를 함께 하는 것 외에 말씀에 근거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와 보라 과감하게 전도할 수 있는, 와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문제이고, 그러다보니 우리의 신앙은 고백만 있고 생각만 있지, 구체적 삶에서 발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나안 땅이라는 구체적 현장이 없다면,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드러낼 수 없으면 신앙은 관념에 그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땅 신학에 근거해보면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의 주인이 아니라 임차인입니다. 그 땅에 계속 거주하기 위해서는 성실하게 임대료를 납부해야 합니다. 그것을 하지 못하면 이스라엘도 가나안 땅에서 내어 쫓김을 당하는데, 그 내어 쫓김을 당한 역사가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이제 사사기입니다. 사사시대는 300년 정도 지속되었는데 여호수아가 죽은 다음부터 초대 왕이었던 사울이 등극하기 전까지를 사사시대라 합니다. 사사라는 말을 ‘쇼페트’라고 합니다. 이 말은 ‘다스리는 자’, ‘지도자’라는 말입니다. 사사는 지도자, 통치자입니다. 통치자의 역할 중 하나가 평상시에는 재판이고 전쟁 때에는 백성을 이끌고 나가서 용기있게 싸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리더십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잘 보셔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고 나서 모세라는 사람이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렸습니다. 모세가 죽기 전에 모세는 자신의 비서실장이었던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임명합니다. 여호수아도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인지 모르겠지만 여호수아는 죽기 전에 후계자를 임명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다음부터는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는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12지파 연맹 공동체로 존속됩니다. 이게 이스라엘이 선택한 정치체제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12지파가 평상시에는 지파별 자치를 하는 겁니다. 그 지파 안에서 일어난 문제는 지파가 해결하는 겁니다. 그런데 지파 홀로 감당하기 힘든 경우가 있습니다. 전쟁, 이방과의 외교 이런 것은 한 지파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평시에는 12지파가 지파별 자치를 합니다. A라는 지파가 B라는 지파의 일에 간섭하거나 지시하거나 명령하면 안 됩니다. A지파의 일은 그 안에서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방과 어떤 외교관계를 수립하거나 국가와 국가 간의 만남을 행할 때,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이방과 전쟁을 할 때는 이스라엘은 지파별 자치가 아니라 12지파 전체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가 되는 겁니다. 이것을 12지파 연맹 공동체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런 공동체가 되길 기대하셨습니다. 일상의 삶은 지파별 자치를 하고 만약 이방 나라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 공격받은 그 지파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 지파가 한 마음 한 뜻으로 그 이방 백성들과 싸우길 기대하신 겁니다. 그런데 사사 시대는 어떤 시대냐면 이스라엘의 12지파 연맹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이 깨진 시대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진 겁니까? 이스라엘이 여러 지방이 있는데, 만약 모압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면 이스라엘 중부 지방이 제일 먼저 공격을 받습니다. 모압이 공격하면 중부 지방 사람들이 뿔나팔을 불면서 우리가 공격을 당했다고 도와달라고 구조 요청을 합니다. 그런데 사사 시대는 어떤 일이 벌어졌냐면, 뿔나팔 소리를 듣고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파들이 도와주지 않는 겁니다. 자기 문제가 아니면 강 건너 불 구경하는 겁니다. 한 마디로 12지파 연맹 공동체가 붕괴된 시대가 사사시대입니다.


사사기에 12명의 사사가 나오는데 여기 사사기의 사사는 이스라엘 전체가 인정한 지도자가 아닙니다. 사사는 특정한 지파가 인정한 지도자입니다. 모세, 여호수아 이때만 하더라도 이들에 대한 리더십은 이스라엘 전체가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사사의 리더십은 이스라엘 전체의 지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사 가운데 삼손이라는 사사가 있습니다. 삼손은 단지파 사람입니다. 단 지파가 부여받은 땅의 경계에 블레셋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삼손은 블레셋과 계속 싸웁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삼손이 블레셋과 싸우다가 블레셋 군인들이 삼손을 잡겠다고 쫓아 옵니다. 삼손이 도망치다가 유다 지파 땅으로 들어옵니다. 뒤이어 블레셋 군인들이 삼손을 잡으러 유다 땅으로 들어오려 합니다. 그때에 유다 지파 사람들이 경계에 서서 블레셋 군인들에게 “우리 땅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면서 “당신들이 찾는 삼손을 잡아다가 대령하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스라엘을 억압하고 있는 블레셋에 맞서 삼손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데 도리어 유다지파 사람들은 삼손에게 책망을 합니다. 괜히 분란을 만들어서 블레셋 사람들이 우리 땅에 들어오게 만들었다고 삼손을 뭐라 합니다. 이게 바로 사사 시대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때만 하더라도 이스라엘 전체의 리더가 있었고 인정을 받았는데, 사사는 특정한 지파로부터만 리더십을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사사시대는 지도력이 엄청나게 축소된 시대입니다. 두 가지 특징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사사 시대는 12지파 연맹 공동체가 깨져버렸습니다. 원래 특정 지파가 공격을 받으면 모든 지파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함께 싸워야 하는데 대다수 지파들이 자신들에게 피해가 없는 한 강건너 불구경을 한 겁니다. 나중에 사무엘 시대가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그렇게 당하니까 사무엘에게 우리 전체를 통솔할 수 있는 지도자로서 왕을 세워달라고 요청합니다. 무엇보다 사사시대는 전반적으로 극복해야 할 어둠의 시대입니다. 사사 시대는 지파들끼리 너무 분열되었습니다. 그리고 믿고 따를 만한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제일 낫다는 사람들이 사사들인데, 사사기를 보시면 지도자들인 사사들이 영적으로 너무 미숙하고 일탈을 행할 때가 많습니다. 그 사사 가운데 제일 마지막 사사가 삼손입니다. 여러분이 삼손에게서 신앙적으로 본받고 싶은 점이 뭐가 있죠? 삼손의 인생 전체가 뭡니까? 술 잘 마시고 여자와 잘 놀고 이런 겁니다. 삼손이란 사람에게 신앙적으로 우리가 본 받을 만한 영적인 유산이 거의 없습니다. 그다음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가장 거룩해야 할 사람들이 레위인인데 사사기에 레위인이 첩을 두고 있습니다. 레위인이 얼마나 방탕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사기 17~18장을 보면 미가라는 사람이 자기 집에 제사장을 세웁니다. 제사장이라는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아니라 특정한 가정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된 겁니다. 해당 집안 만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는 가정 제사장을 세운 겁니다. 이런 것을 제사장의 사유화라 합니다. 정리하자면, 사사시대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지파간의 분열, 믿을 만한 지도자의 부재, 레위인의 방탕, 제사장의 사유화 이것이 주요한 특징이고 12지파 연맹 공동체가 깨진 어둠의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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