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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섬길자를 오늘 택하라(수 24:14-18) / 임영수 목사

by 【고동엽】 2021. 12. 6.

너희가 섬길자를 오늘 택하라(수 24:14-18)

임 영 수 목사

 

 

 

오늘의 본문은 여호수아의 고별사에 포함되는 내용입니다.

 

모세를 대신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한 여호수아는 어느덧 노년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앞으로 더 이상 오랜 기간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있지 못하게 될 것을 예측하면서 가나안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희망의 미래를 내다보며 기쁨보다는 염려가 앞섰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약속된 희망의 목적지로 나아가는 과정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내다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여호수아의 마음에는 기쁨보다는 근심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여호수아는 먼저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나이가 많이 들었고 이렇게 늙었소 여러분은 여호와 하나님이 여러분의 편이 되시어 모든 이방 나라에 어떻게 하셨는지 그 모든일을 잘 보셨소 그러므로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아주 담대하게 지키고 행하시오. 그것을 벗어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마시오."

 

그리고 나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이게 하여 온 백성에게 말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온 백성에게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때서부터 가나안으로 인도하기까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회상시키며,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셨고 앞으로 그들을 인도하실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여호수아의 고별사 내용의 중요한 부분을 발췌해서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면서 그를 성실하고 진실하게 섬기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조상이 강 저쪽의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섬기던 신들을 버리고 오직 여호와만 섬기시오. 만일 여호와를 섬기고 싶지 않거든 조상들이 강 저쪽 메소포타미아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아니면 여러분이 살고 있는 땅 아모리 사람들의 신들이든지 여러분이 어떤 신들을 섬길 것인지를 오늘 선택하시오. 나와 나의 집안은 주를 섬길 것입니다."

 

이 고별사의 핵심은 "많은 우상들 가운데서 너희가 섬길자를 오늘 택하라"입니다. 이 간단한 문장에는 몇가지 중요한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먼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한 가나안 땅은 무인도가 아니였습니다.

 

그 땅에는 이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민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고유한 종교와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자손은 매우 어리고 하나님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쉽게 이방종교와 문화에 흡수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다 보았습니다. 그들 앞에는 이방 종교와 문화라는 '유혹의 덫'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존재 가치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이 세상에 생겨난 민족 공동체였습니다. 그러한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이방 신들을 섬길 때 그때까지 걸어온 역사의 여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여호수아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이방신을 섬기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그대로 보고계실 분이 아니라는 사실도 잘알고 있었습니다.결국 나중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의 채찍을 맞는 그들을 생각할 때 마음이 매우 아팠을 것입니다.

 

19절에서 여호수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여호와를 섬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여러분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너희가 섬길자를 택하라"는 말은 너희는 유혹의 우상을 거절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입니다.

 

유혹의 우상은 인간의 본질을 변질시킵니다.

 

그 다음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이방민족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언제나 시험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생존과 평화를 위협하는 대상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러한 사실을 지내오는 동안에 여러번 경험하였습니다.

 

그 한 역사적 실례를 든다면 가나안 정탐사건을 말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과 함께 광야에 머물 때 모세는 여호수아와 갈렙 그외 몇 명을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들여보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건장한 체격을 가진 가나안 사람들 앞에 자신들이 너무 외소함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돌아와서 가나안을 정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방 민족의 위협 앞에서 그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흔들릴 것임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가나안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안정과 평안보다는 "시련의 땅"이였습니다. 그들이 통과해야할 시험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 시험에 그들이 과연 합격할 수 있을까? 여호수아는 시험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하는 그들의 모습을 내다볼 수 있었습니다.

 

시험과 시련을 통과하지 못하는 생과 역사는 발전과 진보가 없습니다. 언제나 같은 일의 반복입니다. 생의 성취도 없고, 역사의 매듭도 없습니다. 언제나 꼭 같은 지난 일들의 반복입니다. 한 개인 또는 공동체의 역사는 시험을 넘어설 때 그 다음 약속된 희망의 미래가 열립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시험을 이긴자들에게 허락되는 선물입니다. 시험을 이긴 사람만이 하나님께 찬양,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시험과 시련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기반을 흔들어 놓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생각할 볼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이 평안과 안정 가운데서 어떤일을 성취하였을 때 과연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의 지난날의 역사에서 실패와 패배에서 보다도 오히려 평안과 안정 성취 가운데서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하나님께로부터 채찍을 맞은 때가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을 인도하여주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교만하여져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평안 가운데서 하나님 만을 섬길 수 있는가? 이것이 여호수아가 제기하는 물음입니다. 성공의 우상은 눈을 어둡게합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이 말을 현대적인 의미로 번역하면 "너희는 현실의 유혹에서, 시험과 시련에서, 성공 가운데서 진정 하나님께 충성을 다짐할 수 있느냐? 그러한 것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인정할 수 있느냐?"입니다.

 

해가 바뀔 때 마다 정초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합니다. 그러다 얼마 못가 그러한 각오와 결심이 다 없어집니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한 후 아예 새해 새로운 각오, 결심을 갖는 것 자체를 포기합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렇게 하는 사람에 대해 냉소적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새것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겠다"고 선언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개인적이면서 공동체적입니다. 그러므로 새것은 하나님에대한 섬김, 충성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금년에도 섬길자를 누구를 택하느냐? 는 문제는 우리 각자의 미래의 운명과 관련된 것입니다. 우리들 주위에는 우리들의 관심을 끄는 많은 유혹의 우상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달콤한 약속을 해 줍니다. 그것들은 인생의 기쁨과 행복의 열쇠라도 가진 듯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우리의 생에서 이미 시들어져 갈 수밖에 없는 것들이 아름답게 단장하고 나와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물질, 쾌락, 성공의 우상들이 금년에 우리가 가는 인생의 도상에서 우리에게 손짓할 것입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외곡시킵니다. 그리고 우리를 잘못된 환상의 세계로 이끌고 갑니다. 그것에 말려들어 행하면 우리의 인생은 파멸 합니다.

 

금년도 인생의 여정길에 많은 시험이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하고, 실패도 있고, 뜻하지 않은 질병을 만날 수도 있고, 경제적 손실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심한 상처와 좌절을 맛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때에라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나는 오직 그분만을 섬기고 그분에게만 헌신할 수 있겠는가? 매우 중요한 물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으면 시험, 시련없이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신앙이 인생의 모든 불행의 보증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의 삶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망하고 하나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금년의 인생의 여정에 다른 사람보다는 모든 일에 잘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데 자신만은 잘 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시험점수가 좋지 않은데, 자신만은 내신점수, 시험점수가 좋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역경과 시련이 많은데 자신에게 만은 평온과 행복이 깃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관직에 운이 없어 출세를 못하는데 자신만은 운이 좋아 승승장구 계속 올라갑니다. 그 때에 모든 영광을 진정 하나님께 돌리고 성공의 우상을 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때에도 진정 하나님만이 유일한 섬김의 대상이 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성공과 안정의 수호신이 아닌 우리가 복종해야할 창조주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된 한해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금년 한해가 진보가 있는 해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행복과 진정한 진보는 오직 나와 우리 가족이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데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금년 한해 아니 앞으로 영원히 우상의 파티에 초대 받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부활의 축제에 초청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승리에 참여하도록 순간순간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응답은 아멘, 할렐루야, 예, 아니요로 일관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멘, 할렐루야는 하나님의 승리에 동참해갈 때 그 성취, 기쁨에서 터져나오는 응답송입니다.

 

영적 승리를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믿음의 기반이 다져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 승리를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믿음의 기반이 점진적으로 다져지면서 예측하지 못하던 평강이 그에게 찾아오게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의 모범이십니다. 그는 모든 유혹에서 시험에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에게만 순종하셨습니다. 그는 참 인간의 길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변화는 유혹, 시험을 이긴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허락되는 값진 선물입니다. 유혹과 시험을 통과하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변화의 삶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금년에 우리 모두 영적 진보가 있는 해가되어야 하겠습니다. 새해에 새로운 계획은 나와 내집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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