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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사람들(1) / 요한복음 3:11-16

by 【고동엽】 2021. 12. 6.

구원받은 사람들(1)

요한복음 3:11-16

 

구원이라는 용어는 기독교가 사용하는 용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종교도 구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그러나 그 뜻은 전혀 다릅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이란 "예수 믿고 죄사함 받아 영생을 얻는 것 "이기 때문에 다른 종교가 말하는 구원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로마서 3:10-12을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

본래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죄 없는 존재,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장의 기사대로 아담과 하와가 죄짓고 타락함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죄의 유전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이 지은 죄가 그 후손에게 유전된다는 것입니다.

신학자들 가운데는 죄의 유전을 허구라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담이 지은 죄가 오늘 우리에게까지 유전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신빙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5천년전의 미이라 뼈 속에 남아있는 DNA를 가지고 복제 인간을 만들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전인자만 남아있으면 인간 복제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죄는 유전인자 보다 더 강한 유전성과 전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로마서 6:23을 보면 "죄값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고 했습니다.

민주국가와 독재 국가의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죄를 처벌하는 방법입니다. 민주국가의 경우 죄를 범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됩니다. 대통령도, 대통령아들도, 장관도, 장군도 죄를 묻고 법에 따라 벌을 내립니다. 그러나 독재 국가의 경우는 선별적으로 벌을 줍니다. 힘 가진 권력집단은 다 빠져나가고, 힘없는 사람들만 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는 차별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심판을 받고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3 16절을 신구약 성경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절이라고 합니다. 이유는 구원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 16절을 설명하기 위해 구약이 기록되었고, 신약이 기록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했고, 신약은 예수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신 사실을 밝히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 16절이야말로 예수를 믿음으로 영생 얻는 단순 명료한 진리를 한마디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이 주시는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 모세의 구리뱀 사건으로 십자가 사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4절을 보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고 했고, 15절을 보면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14절 말씀은 민수기 21:4-9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거친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의 여정은 한마디로 험난한 것이었습니다. 길을 가로막는 부족들과의 전쟁, 더위와 추위, 배고픔과 목마름 등.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들의 영적 방황이었습니다. 고생을 견디다 못한 그들은 모세와 하나님을 싸잡아 원망했고, 그 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단 한번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원망을 지나치신 일이 없었습니다. 반드시 원망죄를 벌하셨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은 원망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셨기 때문입니다.

박윤선 박사는 그들의 원망의 원인을 악한 건망증 때문이었다고 했고, 매튜 헨리나 베이커는 그들의 불신앙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14:11을 보면 "모세를 향해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 우리를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게 하려느냐 "라며 원망했고, 출애굽기 16:2-3을 보면 "우리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굶주려 죽게 하려느냐 "라며 원망했습니다.

출애굽기 17:3을 보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목말라 죽게 하려느냐"라고 원망했고, 민수기11:5-6을 보면 "애굽에서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었거늘 이제는 정력이 쇠약해져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원망했습니다. 민수기 14:2을 보면 "애굽땅에서 죽었더라면 더 좋을뻔했다"고 원망했고, 민수기 16:41을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을 죽였다"고 대들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마다 하나님이 진노하셨고, 원망한 백성들은 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원망을 싫어하십니다. 민수기 21:5을 보면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려느냐 이곳에는 식물도 물도 없도다 "라며 원망하고 대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즉시 불뱀을 동원해 그들을 물게 하셨고, 독이 올라 죽은 자가 많았습니다.

그 때 모세가 하나님께 백성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리로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자는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민수기 21 9절입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 즉 살더라" 구리로 만든 뱀은 생명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물 수도, 살릴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놋뱀을 바라보고 살았다는 것은 그 놋뱀을 통해 약속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믿고 바라본 사람은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 놋뱀 사건을 십자가 사건과 대비시키셨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놋뱀을 바라보아야 구원받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모순이요, 비과학적이며 비합리적인 가설에 불과합니다. 이치에 맞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믿고 바라본 사람들은 죽지 않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2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33년 짧은 생애를 살다가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ale는 자는 죽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결과는 둘입니다. 그 약속대로 믿고, 구원받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약속을 불신하고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8을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고, 1:25에서는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멸망 받을 사람들에게는 유치하고, 어리석고, 허무맹랑하고, 허약한 사건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는 십자가 사건이 능력과 사랑과 구원의 사건이 됩니다. 그래서 믿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놋뱀을 바라본 사람들이 구원받은 것처럼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고 바라보아야 구원을 받게 됩니다.

 

2.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15절에서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다"고 했고, 16절에서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18절 역시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믿어야 영생을 얻고, 멸망하지 않고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16절에서 주목할 부분은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는 것과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심판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이며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믿어야 하고, 믿을 수 있고, 믿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 믿으면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왕도, 대통령도, 회장도, 장군도, 박사도, 남자도, 여자도, 서양인도, 동양인도, 어른도, 아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뜨거운 지옥 불에 들어갑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열거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를 믿지 않고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10:33을 보면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 부인하면 구원이 없습니다.

둘째, 예수 믿고 교회 다니면서 일부러 죄 짓고 타락하는 사랍들입니다. 히브리서 10:26을 보면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 "고 했고, 29절을 보면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는 당연히 중한 형벌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6:4-6을 보면 "예수 믿고 은사 받고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버림받는다"고 했습니다.

셋째, 예수 믿고 따르노라며 못된 짓만 골라하는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면 가룟유다는( 26:14-16) 예수님의 제자까지 되었지만 예수를 팔아 넘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죽었습니다.

후메네오와 알렉산더(딤전 1:19-20)는 바울의 전도를 받고 교회 섬기는 직분을 받은 사람들이었지만 교회 안에서 못된 짓만 골라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가리켜 믿음이 파선했고, 사단에게 빠졌다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2:12에서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이미 받은 구원을 저버리거나 사단에게 내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칼 마르크스는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었습니다만 공산주의 이론을 만들어 인류를 죽음과 절망과 공포 속에 빠지게 했고, 자신도 멸망했습니다.

앞으로 세계는 유신론과 무신론, 유일신론과 다신론, 기독교 문명과 반기독교 문명의 충돌이 반복될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요한복음 3:16의 공식을 벗어나서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종교다원주의라는 신학사상이 있습니다. 예수 믿어도 구원받고, 부처 믿어도 구원받고, 마호메트 믿어도 구원받고, 공자 믿어도 구원받는다는 것이 요점입니다. 누구를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믿는다는 그 행위가 중요하기 때문에 무엇을 믿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4:12을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길은 하나뿐입니다.

부산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습니다. 비행기, 자동차, 기차, 배를 타고 그리고 걸어서 갈 수 있지만, 구원받는 길은 오직 하나 예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결론으로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요한복음 14:6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는 구원이십니다. 예수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이미 받은 구원을 지켜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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