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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50:22-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 / 김동호 목사

by 【고동엽】 2021.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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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

시편 50:22-23

 

사십이 되었을 때 저는 기도하는 중에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젊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살다가 죽는 것을 생각한다면 사십은 아직도 젊은 나이라고 할 수 있지만 무언가 하나님을 위하여 자그마한 것이라도 드릴 열매를 생각한다면 사십은 결코 젊은 나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게도 시간이 그다지 많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와 같은 생각과 깨달음은 저에게 참으로 유익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지만 저도 40대의 10년을 제법 열심히 살았습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하나님께 드릴 작은 삶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제 딴에는 열심히 살았습니다.

 

오십이 되었을 때 마음으로 기도하는 중에 매우 중요한 사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일이 너무 복잡하고 많으니 일을 정리하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십 때를 나름대로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 이런 저런 일들이 많이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일들은 다 나름대로 중요한 일이었고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십이 되던 해 저는 그와 같은 일들이 아무리 중요하고 다 중요하다고 하여도 그 모든 일을 내가 혼자서 다 감당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일을 내게 요구 하시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내게 그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시간과 능력도 주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그와 같은 일들 중에 한 두 가지를 감당하기를 원하시며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은사를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모르고 조그마한 성공에 교만하여 마치 자신이 모든 일을 해야만 하고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여 이 일 저 일을 다 감당하려고 하다보면 정작 하나님이 내게 맡겨 주신 중요한 사명을 소홀히 하게 되겠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일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일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일의 양을 줄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의 종류를 줄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치 경주장에서 질주하는 하는 경주마가 옆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기 위하여 눈가리개를하고 전력질주를 하듯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소명을 위하여, 오직 그 소명을 위하여 한 눈 팔지 아니하고 질주하듯 달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생각이 결국 내 인생의 가장 중요했던 40대를 드려 섬겼던 교회를 사임하고 새롭게 개척된 높은 뜻 숭의교회를 섬기게 된 것입니다.

 

이제 제 남은 생애에 푯대로 삼고 달려가려고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선교입니다. 많은 분들이 저희 높은 뜻 숭의교회와 저를 비판할 때 교인들의 수평이동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교인들의 수평이동에는 비판을 받아야만 할 부정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의 수평이동을 그와 같은 시각에서만 한정해서 보면 매우 중요한 면을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 할 시간이 없습니다.

 

많은 교인들의 수평이동에 의하여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는 순식간에 수 천명이 모이는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사실이 좋고 때로는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와 같은 자랑이 인간적이며 그것도 아주 미숙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과 목표는 큰 교회를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전에 섬기던 교회를 떠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전에 섬겼던 교회는 성장의 한계에 달한 교회가 아니라 교회 성장에 관한 한 절정에 이른 교회였습니다. 제 목회의 관심과 목표는 교회의 성장도 아니고 수평이동 한 교인들의 관리도 아닙니다. 저희 궁극적인 관심은 선교입니다. 저는 교회를 위하여 교회를 세우지 아니하고 선교를 위하여 교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선교도 워낙 범위가 넓기 때문에 모든 선교를 제가 다 담당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선택한 선교의 범위는 청소년과 청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들을 선교하는데 사용하려고 하는 tool은 문화와 교육이었습니다. 지난 일년 동안 열심히 그와 같은 일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여 왔습니다. 그와 같은 일은 분명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었으며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소명을 제게 주신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제가 제게 주신 소명에 집착하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 그 소명을 이룰 수 있는 동역자와 사역자들을 몰아 주셨습니다. 저는 세상의 그 어떤 사람들 보다도 그와 같은 사역을 하기에 좋은 team work와 network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내년부터 그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될 것입니다.

 

제 남은 생애를 다 드려서 전력 질주하려고 하는 목표 중에 마지막 두 번째는 교회개혁입니다. 개혁의 대상자인 자신이 개혁을 한다는 핸디캡이 있지만 나 자신까지도 늘 개혁의 대상 속에 놓고 겸손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교회의 개혁을 이루어가야만 한다는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의 개척은 그와 같은 개혁의 모델교회를 세워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실험을 토대로 열심히 개혁교회를 세상에 선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의미에서 개혁교회의 유행을 일으켜 개혁을 외면하는 교회들의 입지를 줄여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지난 일년 동안 잘 준비하게 해 주셔서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그와 같은 사역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저 혼자서 독불장군처럼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사역에 대한 소명을 받은 사람들과 함께 동역 하려고 합니다. 저는 그것이 또한 하나님의 식이요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와 같은 사역이 성공하였을 때 공이 너무 한 사람에게 치우쳐서 위험하게 될 것을 염려하신 하나님의 지혜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계에는 저와 같이 교회의 개혁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와 같은 분들이 요즘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 중에 하나는 조기은퇴입니다. 쉽게 말해서 70세 정년을 65세로 줄이자는 것입니다. 물론 조기은퇴가 완벽한 개혁의 수단은 아닙니다. 세상에 완전한 개혁의 수단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이 시간에 그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설명을 드릴 시간이 없어서 생략하지만 보편적으로 볼 때 정년을 줄이는 것이 교회를 개혁하는데 도움이 되겠다는 나름대로의 절실함이 있어서 조기은퇴를 이슈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이슈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는 어느 인터넷 신문사에서 저와 인터뷰를 하고 그 기사를 신문에 올렸습니다. 저는 저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조기은퇴만이 문제가 아니라 원로목사제도가 더 큰 문제라며 조기은퇴와 함께 원로목사제도 포기 운동을 해야만 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좋은 의미와 취지에서 시작된 원로목사제도가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조금 변질되어 보편적으로 볼 때 교회의 덕이 되기보다는 교회의 폐가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원로목사 제도의 의미와 취지는 평생을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고 수고한 목사의 노후를 보장하자는 데 있는데 요즘 일부 대형교회와 심지어는 중형교회에 까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집도 하나 사드리고(늘 사택 생활을 하는 목사를 그냥 나가시게 하는 것이 실제로 너무 어렵기 때문에) 생활비도 후임 목회자의 70% 가까이 돌아가실 때까지 드리고 퇴직금은 퇴직금대로 또 드리는 것이 요즘 관행화 된 원로목사 예우입니다. 저도 얼마든지 그와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와 같은 폐단을 깨기 위하여서는 대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사택제도를 없이하자는 것과 연금제도를 잘 활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사택을 없이하기 위하여 목사에게 사택 전세금만큼을 대여하여 그것으로 자그마한 집이라도 개인 명의로 사게 한 후 그것을 10년 동안 상환하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집이 없다는 이유로 터무니없이 집을 은퇴 후에 교회로부터 받지 말로 생활비를 줄여 자기 집을 장만하게 하면 나중에 은퇴할 때 교회에 터무니없는 폐를 끼치지 않게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연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가 은퇴한 후 시무 하던 교회에 너무 폐를 끼치는 것은 덕스럽지 못합니다. 그러니 평소에 연금을 미리 미리 들어두면 은퇴 후 꼭 원로목사라는 자리와 제도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냐는 것이 제 생각과 주장이었습니다. 연금 주장의 목적 또한 원로목사가 되어 교회의 재정인 폐를 끼치는 것을 없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연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처럼 큰 교회 목사이어서 연금을 많이 낸 사람은 은퇴 후 많은 연금을 받고 작은 교회 목사이어서 연금을 조금씩 밖에는 내지 못한 목사는 은퇴 후 연금을 아주 조금 밖에는 받지 못하는 것을 바꾸어 연금을 얼마를 내었든 은퇴 후에는 똑 같은 연금을 받게 하자는 주장도 하였습니다. 그래야만 가난하고 작은 교회에서 평생을 목회 하시던 목사님이 노후에 고생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제가 작은 교회를 시무하고 연금을 조금 받게 내지 못하던 사람이라면 그와 같은 주장이 이기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저는 큰 교회 목사로서 그 누구 못지 않게 많은 연금을 내는 목사가 나중에 똑같이 받겠다고 주장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칭찬을 받으려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저는 그와 같은 주장이 비난을 받고 비판을 받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한 주간 그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격어야만 했습니다. 그와 같은 기사가 나간 인터넷 신문에는 김동호 목사를 성토하는 비판하는 글로 도배가 되어있었습니다.

 

목사라고 하는 사람이 노후를 대비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노후보장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는 비난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쉽게 말해서 저를 완전히 자기 밥그릇이나 챙기는 삯꾼 목사로 매도한 것이었습니다.

 

제 주장은 노후보장이 아니었습니다. 제 경우만 이야기하자면 저는 노후가 보장이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제 노후보장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냥 가만있으면 되는 사람입니다. 제가 제 노후보장에만 욕심이 있다면 교회는 절대로 개혁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개혁을 웨치지 말고 '이대로~'를 웨쳐야만 합니다. 제 주장은 지금 보장되어 있는 노후보장이 공평하지 않고 정당하지 않으니 대폭 축소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집도 교회가 무턱대고 주지 말고 미리 미리 준비케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조금씩 도와주어야 하지만 원칙적으로 자기 생활비를 줄여서 담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밥그릇을 챙기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 밥그릇을 깨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계산해 보면 저는 엄청난 돈을 포기해야만 합니다. 그냥 가만있으면 받을 수 있는 집 한 채가 날아갑니다. 70세에서 65세로 정년을 줄이면 가장 고액 연봉을 받는 5년의 임금이 날아갑니다. 원로가 되어 죽을 때까지 받을 수 있는 월급이 또 날아갑니다. 그것을 포기하고서라도 교회를 바르게 해야하겠다는 것인데 어떻게 그것이 자기 밥그릇이나 챙기는 삯꾼 목사가 되는 것인지 저는 정말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연금도 많이 냈으니 많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많이 내고 조금 받아서 조금내신 목사님들이 조금이라도 더 받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정말 난감하게 하였던 것은 그와 같은 비판과 비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저를 매도할 정도로 비난한 분 들 중에 많은 분들이 목사님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본래 저와 같은 주장을 하면 목사님들의 저항을 많이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저항은 가난하고 힘없는 교회 목사님들의 저항이 아니라 개혁보다는 '이대로~'가 더 좋은 기득권층의 목사님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에 참으로 놀라고 충격을 받은 것은 저를 매도할 정도로 비판하고 비난한 목사님들의 대부분이 가난한 교회의 목사님들이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제 밥그릇을 깨고도 남는 것조차도 당신들에게는 꿈과 같이 여겨지는 정말 가난한 교회의 목사님들이셨습니다. 연금을 들어보았자 지금의 제도로서는 은퇴 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교회의 목사님이셨습니다.

 

충분히 저들의 형편과 처지를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저들이 나를 비판하고 비난한 것을 저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들을 절망시키고 있는 큰 교회와 작은 교회의 괴리감을 완벽하게는 몰라도 상당부분 해소하고 큰 교회와 큰 교회 목사가 작은 교회와 작은 교회 목회자를 위하여 배려하여야 한다는 것조차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 돌부터 들어 던지는 저들을 정말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저는 지금 50대 초반으로 말과 생각으로만 주장하고 있는 일을 실제로 실천에 옮기시는 목회자들이 올해 부쩍 많아졌습니다. 65세 조기은퇴를 감행하고 원로목사제도를 스스로 포기하시는 목회자들이 나타나셨습니다. 여러분 그거 정말 훌륭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분들이 교계에 자꾸 나타나야만 교회가 좋아지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분들은 정말 욕심을 버리고 교회를 깨끗하게 하고 바르게 하기 위하여 그와 같은 결단을 하신 것입니다. 자꾸 돈으로 이야기해서 미안하지만 엄청난 대가를 포기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분들의 거사를 인기를 노리는 연예인들의 쇼라고 매도하는 사람까지 나타났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와 같은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마음으로 분노했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삐뚤어질 수 있는가? 세상에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모가 날 수 있는 것인가?

 

저는 아직 말로만 이야기하는 사람이니까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엄청난 일을 교회 사랑하는 마음으로 실행하시는 분들을 그렇게 매도하면 우리 한국 교회는 도대체 어떻게 되겠습니다. 그와 같은 용기 있는 일들이 인정을 받으며 존경을 받는 풍토가 되어야 그와 같은 일들이 점점 많아지지 않겠습니다. 그와 같은 일까지도 쇼라고 매도하고 돌을 던진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저는 지난 한 주간 이와 같은 현상을 보면서 '우리 인간들이 참으로 타락했구나' '부패했구나' '어두워 졌구나' '삐뚤어 졌구나'하는 생각을 아주 심각하게 했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병들었습니다. 삐뚤어졌습니다. 진리를 파악하는 능력이 현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진리를 진리로 파악하지 못하고 은혜를 은혜로 깨닫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지난 주간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 동안 기득권층의 저항과 핍박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격었습니다. 지금도 격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은 아주 마땅하고 당연한 어려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려움이었지만 어려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공감을 하고 응원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해 주리라고 생각한 분들에 의하여 오해를 받고 매도를 당하니 도대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는지가 아득할 만큼 힘이 들었습니다. 괜히 아무 죄 없는 아내에게만 짜증을 내고 소리도 지르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답답하고 힘들어하면서 저는 너무 불경스러운 표현입니다만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뭐 그거 하나 갖고 그러냐? 나는 밤낮 그렇게 사는데....,' '너도 나한데 그렇게 하지 않았냐?'

 

유치한 생각과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저의 진심을 이해해 주고 격려해 주는 분과 그와 같은 분들이 올려주는 글을 읽으면 위로가 됩니다. 그것을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니나 그와 같은 일과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교회개혁을 주장하는 저희들의 주장과 같이 지나친 원로목사제도가 바로 잡혀지고 연금제도가 시행된다면, 큰 교회 목회자에게 터무니없이 집행되던 교회의 예산이 가난한 교회와 가난한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면(새로운 연금제도를 통하여) 조금이라도 교회는 좋아지게 될 것이고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작고 가난한 교회와 작고 가난한 교회에서 성실하게 시무 하시는 목회자들에게도 희망적인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격려해주고, 그와 같은 일을 용감히 실행하는 사람들을 존경하며 그와 같은 분들에게 감사해 한다면 정말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와 우리 교회 위에 나타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개혁의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칭찬과 감사는 고사하고 자기 밥그릇이나 챙기는 삯군으로 매도하고 비난한다면 교회는 개혁되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교회가 개혁됨으로 받게 될 상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제 작은 마음의 상처를 통하여 하나님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과연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읽고 있는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 과연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되는지 알고 있는가? 과연 그것을 감사하고 있는가? 아니면 엉뚱하게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원망과 불평만 늘어 놓으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 대하여 쇼 하시지 마시라고 빈정거리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아멘.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힘쓰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하나님의 마음 때문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존경을 하나님께 드리며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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