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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 받으실 주님(마 2:7-12) / 이수영 목사

by 【고동엽】 2021. 12. 3.

<경배 받으실 주님> 마2:7-12
성탄예배 설교


이수영 목사


지난 주일 설교의 본문에 이어서 오늘의 본문에서도 동방박사들은 여전히 주인공들입니다. 우리는 동방박사들의 출현으로부터 예수님에 관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는 만민들로부터 경배 받으셔야 할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천대받는 목자들로부터도 경배 받으셨고, 이스라엘로부터 동쪽 먼 이방나라의 현자들로부터도 경배 받으셨다는 것은 그가 모든 사람들로부터 경배 받으셔야 할 분이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찾아올 때 그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경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몇 절 앞서는 2절에 보면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구경하려 온 것도 취재하려 온 것도 연구하려 온 것도 아니었고 예수님에 관해 학술토론하려 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경배하려 온 것이었습니다. 본문 11절에서도 보면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했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정성을 통해 경배 받으셔야 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보면 그들은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했습니다. 그 당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모두 특별히 왕에게 진상되곤 했던 아주 귀한 예물들입니다. 이것은 동방의 박사들이 최고의 존경과 정성을 다해 예수님을 경배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 세 가지 예물 때문에 아기 예수를 찾아온 박사들이 세 사람이었던 것처럼 굳어져버렸는데 성경은 사실 어디에서도 아기 예수를 찾아온 동방의 박사들이 꼭 세 사람이었다고 증언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쨌든 여러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이 그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그들의 최상의 경외심과 정성을 말해줍니다.


이 동방의 박사들이 경배했다고 할 때 우리말로 "경배하다"로 옮겨진 원래의 말은 몸을 완전히 엎드려서 존경을 표시하는 행동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오직 하나님께만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사탄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신 예수님에게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유혹할 때 말한 그 경배는 바로 그러한 행위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말씀하시며 그 유혹을 물리치신 일을 통해서도 그 경배의 행위는 오직 하나님께만 향해질 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경배를 받으실 분이심이 동방의 박사들의 경배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배는 그 후에도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행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광풍과 파도에 시달리며 두려워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물위를 걸어오신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고 바람을 그치게 하시자 배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말하며 그렇게 경배했습니다(마14:33).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려 달려가던 여인들을 만나 "평안하냐" 물으셨을 때 그 여인들 또한 예수님께 그렇게 경배했습니다(마28:9).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도 예수님께 그렇게 경배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여길 수밖에 없는 일을 접할 때마다 예수님께 그런 경배를 드린 것임을 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각자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과연 예수님을 경배하고 있는가?", "나의 삶은 진정 예수님을 경배하는 삶인가?", "나의 신앙생활은 예수님에 관해 듣고, 예수님에 관해 연구하고, 예수님에 관해 논쟁하고, 예수님 덕분에 재미보고 출세하고 세도 부리고 있는 것이지 정말 예수님을 경배하고 있지는 않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정말 예수님 앞에서 완전히 납작 엎드린 것인가?", "아직도 주님 앞에서 내 자아가 살아 꿈틀거리고 있고 내 욕심, 내 주장, 내 고집, 내 성질 다 빳빳하게 살아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과연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주님을 경배하는가?", "나는 주님께 나의 삶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고 있는가, 아니면 주님께는 적당히 바치고 정말 크고 좋은 것은 나만을 위해서 아끼며 살지는 않는가?", 이런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보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경배하는 흉내만 내고있지 진정 완전히 엎드려 경배하며 온전히 다 바쳐 경배하지 않는다면 헤롯과 다를 것이 별로 없습니다. 한편에서는 동방의 박사들과 양치던 목자들이 경배하고 있을 때, 다른 한편에서는 헤롯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는 갓 태어나신 아기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를 은밀히 꾸미고 있었습니다. 그는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자 깜짝 놀라고 당황했습니다. 본문 몇 절 앞의 3절에 보면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했습니다. 헤롯은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정말 아기 예수께 경배할 뜻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기 예수의 소재를 정확히 알아낸 후 그를 죽여 없애고자 했었음은 후에 그가 한 짓을 보아 틀림없는 것이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자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여 없애는 끔찍하고도 잔혹한 만행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주님을 경배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을 적대하는 사람입니다. 제3의 선택이란 없습니다. 중립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온전히 경배하지 않는 삶은 결국 주님께 등돌리는 삶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삶을 택하시렵니까? 주님은 온전한 경배를 받으려 오신 분입니다. 온전히 주님을 경배하는 사람만이 주의 사람입니다. 주님을 경배합시다. 온전히 주님을 경배합시다. 우리 삶의 가장 귀한 것을 드려 경배합시다.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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