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잠16:1-9)
새문안교회 주일예배
설교 이수영 목사
오늘 본문의 말씀은 잠언서 안에서 대단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오늘 본문은 전체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주권적 행동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첫 절인 1절과 마지막 절인 9절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절에서는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했고, 9절에서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했습니다. 이 두 구절을 종합하면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은 세우지만, 결정과 인도와 성취는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뜻으로 이해되는 것입니다.
1절과 9절 사이에 들어있는 구절들이 말하는 내용은 얼핏보면 3절을 제외하고는 1절이나 9절의 내용과 별 상관이 없고 서로 사이에서도 별 연관성이 없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결정과 인도와 성취는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뜻의 1절과 9절 사이에 들어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1절부터 9절의 내용 전체 사이의 일관되고 유기적인 관계성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1절부터 9절의 내용 전체 사이의 일관되고 유기적인 연관성을 찾는 근거로서 우리는 첫째로 8절을 제외한 전 구절에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타나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일입니다. 둘째로 본문의 각 절에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사람의 행위와의 대비관계 속에서 말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6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8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그러면 오늘 본문 전체가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앞서 오늘 본문은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행동을 강조하는 말씀이라고 했고, 또 첫 절과 마지막 절을 종합하면 "마음으로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결정과 인도와 성취는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뜻으로 이해되는 것이라 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과 그의 인도하심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전체의 요지에 비추어 각 절의 말씀을 이해해야 할 줄 압니다.
1절: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표준새번역 성경에서는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결정은 주께서 하신다"고 옮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가 무엇을 계획하고 마음으로 바란 대로 일이 이루어질 때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 계획하고 바란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낙심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의심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지혜로우시고 공의로우시며 사랑이 많으시고 모든 일을 반드시 옳고 좋게만 하실 것이라고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2절: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나는 잘못한 것이 없거나 다른 사람이 나보다 훨씬 더 잘못되었는데 왜 내가 억울하게 당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불공평하시다"라고 불평하고 원망하며 탄식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본능적으로 자기합리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우리의 판단은 늘 잘못될 가능성을 안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2절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의롭다 장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의 속 마음 제일 구석진 곳까지도 꿰뚫어보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죄인일 뿐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는 이렇게 하시고 누구에게는 저렇게 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지혜롭고 공의로운 주권에 달린 것이며, 그 일 속에서 하나님은 결코 잘못 판단하시거나 잘못된 결과를 만들어내시지 않으실 것임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3절: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이 말씀은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고 힘쓸 것이며,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그 일의 실현을 위해 최선의 길임을 가르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4절: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종종 이 세상에 악과 불의가 존재하는 것에 대해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거나 이 세상에 악과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무능력이나 무관심 또는 무책임감을 논할 때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저런 악한 자를 태어나게 하셨는가? 왜 하나님은 저런 인간을 빨리 쓸어버리지 않으시고 내버려 두시는가?" 말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일을, 심지어는 하나님의 뜻에 거슬려 행하는 인간의 악한 일까지도 다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사용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심을 이 4절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해서 외국의 상인에게 팔아넘긴 형들의 악한 행위도 훗날 야곱의 온 가족을 극심한 기근으로부터 건져내시기 위하여 적당하게 사용하신 하나님이시며, 스승을 배신하고 팔아넘긴 가룟 유다의 악함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는데 적절하게 사용하신 하나님이심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4절 말씀은 결코 하나님이 악의 조성자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악은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시거나 사용하시더라도 심판하실 적당한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5절: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교만의 뿌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지혜와 능력은 모든 인간의 의지와 지혜와 능력을 다 합친다 해도 그것을 무한히 뛰어넘으심을 안다면 사람들이 감히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5절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교만이 얼마나 어리석고 한심한 것인지를 말해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과 지식으로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이렇궁 저렇궁 판단하는 교만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정녕 간과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5절은 말합니다. 본문에서 조금 더 내려가서 18절을 보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했습니다.
6절: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이 6절을 표준새번역 성경은 "사람이 어질고 진실하게 살면 죄를 용서받고, 주님을 경외하면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옮기며, 공동번역 성경은 "하느님을 참마음으로 사랑하면 죄를 용서받고 야훼를 경외하면 재앙을 면한다"고 옮기고 있습니다. 즉 6절 말씀은 이 세상에서 악한 일을 당하지 않고 선한 뜻을 펼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뜻대로 어질고 진실하게 사는 것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이 6절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어질고 진실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죄의 용서를 받고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복을 주시고, 교만하며 사랑도 없고 진리도 모르며 악을 행하는 자들은 반드시 벌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주권자이심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7절: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누구나 이 세상에서 살다 보면 크고 작게 원수지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원수 만들려고 하지 않아도 원수가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불의하기 때문에 의롭게 살려고 하면 오히려 더 원수지기 쉽습니다. 원수를 갖고 있다는 것은 삶을 아주 두렵고 고통스럽고 피곤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잘못한 것 없는데도 원수가 생기게 되는 일에 대해 하나님께 항변할 수도 있고, 불의한 원수를 그냥 놔두는 하나님이라면 나도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면서 원수하고 잘 지내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진정 원수를 이기고 원수까지도 나를 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바른 길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이 7절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악한 세상과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며 우리에게서 두려움을 없애주실 수 있는 정의의 주권자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8절: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이 세상은 의롭게 살면 손해만 보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으며, 불의하게 사는 사람들이 더 잘 먹고 잘 살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벌하시지도 않는 것 같이 여겨집니다. 그래서 의롭게 살면서 가난하게 사는 것보다는 불의를 행하면서라도 부유하게 사는 것을 택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8절은 "소득이 적어도 공의롭게 행하며 사는 것이 많은 소득을 얻기 위해 불의를 행하며 사는 것보다 낫다"고 잘라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그래서 언젠가는 악한 자들의 악한 행실을 반드시 벌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8절 말씀 뒤에 숨어있는 생각입니다. 그 어떤 인간의 불의도 결코 의로우신 주권자 하나님의 정의의 손길을 영영 피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의는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9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우리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우리의 생각대로 길을 갑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이 9절은 말합니다. 우리가 계획을 잘 세웠더라도 그 길로 가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계획을 잘못 세웠더라도 그 길로 가지 못하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인도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며, 때로는 우리가 잘못된 계획에 따라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한 때 내버려두시더라도 먼 길을 돌아 결국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목적지에 도달하게 만드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모든 결과와 그 결과로의 인도하심을 그에게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우리 삶의 걸음을 그 방향에 있어서나 그 속도에 있어서나 그 보폭에 있어서나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늘 평안하고 감사하며 기쁜 삶이 됩니다. 우리 삶의 발걸음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는 삶은 늘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며 원망하고 절망하며 방황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모든 일에 있어서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고 행하시는 모든 일은 다 바르고 선하다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기에는 부당하고 억울하게 여겨질 일 속에서도 하나님은 잘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무슨 일에서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인자와 진리대로 행해야 하며 그 결과는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우리 삶의 참된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진인사 대천명"이란 말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온 말은 아니지만 이 말은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진인사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믿고 아무 것도 안하고 놀고먹는 것은 나쁜 일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최선을 다해 해야 합니다. 그러나 진인사하고 대천명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최선을 다한 후에는 그 결과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겨야 합니다.
지난 수요일에 치러진 대입수응시험이 예상밖에 너무나 어려워 많은 수험생들이 크게 당황하고 불안해하며 낙심하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있으며, 학부형들도 함께 낙담하며 당국에 대한 원망과 분노 가운데 빠져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뜻과 결정을 조용히 기다리며, 어떤 결과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선하게 인도하실 것임을 확신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번 수능시험의 결과가 상대적으로 좋아서 뜻하는 대로 되는 사람들은 겸손하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선한 계획과 인도가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진학계획을 가지고 어떤 대학 어느 학과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든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에게 발걸음을 맡겨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삶의 발걸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이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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