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역사와 인도
행 8:34-40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
을 가리킴이냐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
를 전하니...
예수님의 일대기를 보면 몇 가지의 마디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 오심과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부활과 승천과 장차의 재림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40여 일 동안 세상에 더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렸다가 성령을 받으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면서 성령강림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기도하면서 몇 가지 준비를 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는 회개입니다. 제자들은 그동안 보였던 시행착오와 졸렬함 그리고 자신들의 무능함과 두려움에 몸을 사렸던 점들을 통렬하게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면서 마음을 비웠을 것입니다. 구태의연함이 그냥 마음과 생각에 남아 있는 한 그들은 성령의 임재를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으라고 했습니다. 새 생각을 가지려면 낡은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새 옷을 입으려면 깨끗하게 목욕을 해야 하듯이, 새 집으로 이사 갈 때에는 낡은 가재도구는 버리고 새로 바꾸어야 하듯이, 성령을 입기 위해서는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120여명의 제자들은 열흘 동안 합심해서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14절을 보면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했습니다. 이 합심과 마음을 같이 함이 중요합니다. 그때 그곳에 열흘 만에, 예수님의 부활 후 50일 만에, 오순절 명절날에 성령이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에 성령이 강림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그날 성령이 강림하신 표시로 몇 가지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성령이 불같이, 바람같이” 임하신 것입니다. 물론 성령은 보이지 않게 역사하시지만 그날에는 시각과 청각으로 확연히 보고 들을 수 있도록 임하셨다고 했습니다. 레이저나 자외선 그리고 적외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태우고 수술하고 투시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파괴력을 갖듯이 그날 성령의 강림도 그렇게 사람들 눈에 보일 정도로 강하게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적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그 반응은 그곳에 모인 120여명 모두에게 방언이 터진 일입니다. 방언은 성령 역사의 가장 기초적인 외적 표징입니다. 또 영적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곳에 모였던 사람들의 입이 열리고 나가서 힘 있게 전도를 하였습니다. 전도는 강한 용기와 지혜와 열정이 필요합니다. 그 용기는 성령이 주시는 힘입니다. 그 성령의 감화를 받은 제자들은 이제 어제의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어제는 무서워서 숨고 도망가고 예수를 부정하였지만 오늘은 폭발적인 능력이 나타나서 자신 있게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병자들이 일어나고 회심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3천명 5천 명씩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또한 성령의 인도하심이 나타났습니다. 성령이 사역에 깊이 간여하셨고 교통하고 변화시키고 계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시는 곳에는 많은 역사가 일어납니다.
계시의 역사
본문은 성령의 계시의 역사를 설명해 줍니다. 이디오피아 왕 내시가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고 있습니다(27). 그는 독실한 유대교인입니다. 순례차 예루살렘에 왔다가 귀환하는 길에 마차 안에서 아사야서 53장7절을 읽고 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읽었지만 그 뜻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때 성령이 빌립에게 계시하십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하시니 그 길은 광야라”(26). 그 말은 “이디오피아 내시가 광야 길을 가고 있으니 가서 전도하라“는 말입니다. 그때 빌립은 사마리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달려가 보니 내시가 병거를 타고 가면서 성경을 읽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 뜻이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라고 묻자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찌 알겠는가” 라고 반문합니다(31). 그리고 내시는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앉으라”하고 “여기 말하는 자가 누구를 말하는가”고 묻습니다(34). 그래서 “빌립이 입을 열어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였다”고(35)고 했습니다. 그러자 내시는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 세례를 달라 해서 세례를 베풀었다”(36)고 했습니다. 그 말은 내시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였다는 것을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복음의 흐름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복음이 처음에는 예루살렘과 유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로 확대되고 마침내 로마로 세계선교로 발전되어 나갔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빌립이라는 제자를 통해서 복음이 사마리아를 넘어 세계화되어 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본문의 특징은 하나님은 성령의 교감이 가장 민감했던 빌립을 사용하셨음을 말씀합니다. 그를 통해 복음이 세계화 되고 마침내 이디오피아로 넘어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성령은 이디오피아에 복음을 전하시는데 내시와 빌립을 사용하십니다. 결국 성령은 1500km 한 달간의 거리인 이디오피아에 복음을 전하는데 하나님은 이 두 사람을 사용하셔서 결국 이디오피아를 복음화하고 아프리카에 복음을 확산시키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고넬료의 사건도 똑같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고넬료는 로마군인 백부장이고 군 지휘관입니다. 그러나 그는 경건한 신앙인으로 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기도하는 중에 “욥바에 있는 베드로 청하라”는 성령의 계시를 받습니다. 그 시간에 베드로도 기도 중에 “누군가 찾아올테니 그를 따라가라”는 계시를 받게 됩니다. 의심하지 않고 가이사랴에 살고 있는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 보니 성령이 그 집으로 인도하신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집에 성령이 임하심을 보고 온 집안 가족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고넬료 한사람이 세례를 받고 그 집안사람들이 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의 골자는 고넬료 집안이 세례를 받음으로 로마전도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로마전도 계획은 고넬료에게 계시로 나타나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베드로와 고넬료는 신분의 차이로 서로 만날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고넬료는 당시 로마인으로 지배계급이었습니다. 유대인과 사사로이 만날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리고 베드로 역시 유대인 선민으로 이방인을 사사로이 만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의 만남을 성령이 주선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만남은 아주 은혜로운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그 일은 주선자나 연출자 그리고 출연자 섭외 모두를 성령이 하신 일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오늘의 역사
성령은 오늘도 똑같은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영적 교류가 예민하게 이루지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십니다. 문제는 성령과 예민하게 교류하고 교제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빌립이라는 한사람이 영적 교류가 아주 예민한 결과 하나님은 그 한사람을 통해 이디오피아를 복음화 시켰습니다. 베드로 한사람이 영적으로 예민함을 간직한 결과 기도 중에 계시가 주어져서 고넬료 집을 구원한 결과 그 사역이 결국 로마를 복음화 하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그런데 소돔은 이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 한사람이 없어서 그 성이 멸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한사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을 사용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는 어느 한사람을 사용하셔서 일을 하십니다. 니느웨 성을 구원하시는데 요나 한사람을 통해서 12만 명을 구하는 역사를 하셨습니다. 위기에 처한 민족을 에스더 한사람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나설 때 민족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느헤미야 한사람을 사용해서 이루셨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시는 일에 예수님 한분으로 족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때로 다수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또 때로는 이 한사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장차 어떻게 사용하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 중 누구를 선택하고 사용하실지 모릅니다. 다만 우리는 영적으로 예민하게 주님의 영과 교류해야 합니다.
사용받는 방법
그것은 “성령과 친밀한 교제를 가지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많이 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령과 함께 하고 교제하고 교통의 삶을 가지는 일입니다. 요한복음 14장2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신다”고 했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보혜사로 와 계십니다(요16:7). 이 보혜사는 5가지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도우시고, 가르치고, 위로, 변화, 판단하시는 역할”입니다. 성령과 깊이 교제할 때 이런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나 할 일을 그분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인도하십니다. 또한 “성령의 음성을 듣는 일”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나 다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5가지 통로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경묵상”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통로입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자세히 읽고 관찰하고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뜻을 들려주시는 중요한 방법이고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꿈입니다. 하나님이 꿈으로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꿈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때로 꿈은 무의미한 꿈도 있지만 메시지가 담긴 꿈도 있습니다. 그리고 “환상”입니다. 구약시대 선지자와 신약시대의 사도들은 환상을 통해 계시를 받았습니다. 고넬료, 빌립, 다니엘, 요셉 등 모두가 환상을 통해서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환경과 사람을 통해서 계시가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을 통해서 길을 인도하시고 또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뜻을 전하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영감”입니다. 우리들이 누군가를 위해서 간절히 중보기도 할 때 우리에게 영감을 주셔서 교통하시기도 합니다.
1873년에 뉴욕을 향해 항해하던 로크 에른호라는 유람선이 항해 중 조정타가 고장 나서 강한 바람으로 정상 항로에서 크게 이탈하여 하루하루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선장은 하루 내에 배가 침몰할 것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 배에 쿡이라는 목사가 승선하였는데 그 사태를 놓고 다급하게 기도였습니다. 그는 그 기도하는 중에 구조 받을 것을 확신을 얻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승객 모두 불안한 마음으로 갑판위로 모였습니다. 배는 심히 기울어져가고 있습니다. 그때 갑자기 브리티시 퀸이라는 배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전날 밤 그리스인 선장도 그 시간에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침몰하는 배에서는 쿡목사를 중심으로 구조를 위해서 기도하고 같은 시간에 두 배에서 기도한 것이 영적인 교통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스인 선장은 기도하는 중에 북쪽으로 선회하라는 내적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빌립에게 내시에게로 가라고 역사하신 하나님이 그 선장에게도 북쪽으로 선회하라고 영적 감동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최고속력으로 달려가 도착해 보니 배가 침몰하고 있어 그 배를 구조한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분별할 줄 아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인해서 그날 많은 사람이 구조되고 구원받은 것입니다. 우리 중에, 이 나라에, 우리교회에 이 성령의 음성을 분별한 줄 아는 한사람이 중요합니다. 소돔은 그런 한 사람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또한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고 연합하는 일”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순종과 연합의 삶을 살아갈 때 일어납니다. 사도바울은 1차 전도 여행 때 큰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구부로를 거쳐 안디옥에 이르러 많은 기적을 통해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소아시아 지방을 거닐면서 루스드라와 더베 등지에서 앉은뱅이를 고쳤습니다. 사람들의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제 2차 전도여행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아시아 지역으로 가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허락을 하지 않으시고 밤에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 말은 아시아지역으로 가지 말고 마게도냐 지방으로 가라는 계시였습니다. 마게도냐 지방은 오늘의 그리스지역을 말합니다. 그때 바울은 아시아지역으로 가기로 한 계획을 포기하고 마게도냐 지방으로 갑니다. 그 결과 오늘 유럽전도가 시작된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에 순종하고 연합하는 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때 성령의 은혜와 섭리가 나타납니다. 어린 아이는 어머니의 인도를 받고 순종하고 따르면 안전하게 어느 곳이든 갈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는 순박하고 순종을 잘 하니까 언제나 안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순종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 길이 분명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인데도 내 의지로 바꾸려고 하니까 사고가 일어나고 실패가 주어지고 시행착오를 겪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칭 엘리트라는 사람들과 유능인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은 자기고집이 강합니다. 그래서 순종하지 않습니다. 협동심도 약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예루살렘 대학으로 가서 성적표를 보고 수재나 엘리트를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갈릴리로 가셔서 어부들을 제자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들은 고기 잡아 살면서 실패를 경험했고 가난도 경험하였고 협동심을 발휘하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엘리트나 능력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자칭 지성인이고 엘리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협동심도 순종도 겸손의 정신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목회자들 중에 재벌의 아들이 없고 미인 미남도 없고 엘리트들이 적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절대적으로 순종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순종과 겸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이 스키를 탔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어떻게 스키를 탈 수 있는가 하면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빨간 조끼를 입혀 구별하게 한 후 각자에게 믿을만한 지도자 한사람씩을 배정합니다. 그리고 지근거리에서 스키 막대기를 두드릴 때 그 소리를 듣고 방향을 찾게 하고 앞의 상황에 대해서 육성으로 말해 줄 때마다 그 지시를 절대로 따라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각 장애인들은 그 지도자들을 전적으로 믿고 순종하면 스키 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절대로 필요한 요소는 믿음이고 순종입니다.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렸다가 성령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 열흘 동안 한마음으로 기도하다가 마침내 약속대로 성령을 받고 사역에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성령강림 후 제자들은 더 이상 옛날의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은 오늘도 역사하십니다. 성령은 우리들의 영적 지도자이십니다. 우리 안에서 길을 안내하시고 삶을 인도하시고 신앙을 회복시키십니다. 그 성령과 함께 하려면 그 성령과 교류를 이루고 순종하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때 성령은 보완하시고 변화를 주시며 힘을 공급하고 안내를 이루십니다. 오늘 우리들이 여기까지 살아온 것도 그 성령의 전적인 인도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세상에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 성령과 연합하여 살아가는 갈 때 승리가 주어지고 능력과 인도하심을 받아 사역을 감당하고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정익 목사 준비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에 의한 생활 (0) | 2021.11.12 |
---|---|
성령으로 사는 삶 (2) (0) | 2021.11.12 |
말구유에 오신 예수 (0) | 2021.11.09 |
말씀을 통한 영혼의 정화 (0) | 2021.11.09 |
말씀의 힘으로 산다 (0) | 2021.11.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