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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설교 (시편 27편)

by 【고동엽】 2021. 12. 2.

시편 26, 27, 28편은 일종의 3부작입니다. 주제가 전부다 하나님의 전, 성소에서 누리는 절대적 안정감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상황이 매우 위급한 상황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지금 이것은 어떤 상황에서 이렇게 말하는지 보시길 바랍니다. 나의 원수, 대적,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지금 와 있는 겁니다. 현실은 원수 행악자가 살을 먹으려고 으르렁 거리고 있고 그 원수 행악자가 다수입니다. 다수의 행악자가 전쟁을 걸어옵니다. 원수의 군대가 나를 향해 진을 치고 있습니다. 나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전쟁과 원수의 군사적인 압박이 나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이때 누리는 평안, 이때가 진짜 평안하면 이때 평안을 누리면 그것은 평안한 사람입니다. 이 말은 인간이 가장 평안함이 없을 때가 언제입니까? 인간이 평안을 완전히 마이너스 억만의 불안 엄청난 불화 도저히 평안을 누릴 수 없을 때, 원수가 진을 칠 때 행악자가 나를 에워싸고 내 살을 먹으려고 10cm 전방에서 나를 노려볼 때 이런 상황이 뭡니까? 평안을 잃는 상황입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뢰할 때 누리는 평안, 환경을 초월하는 평안입니다. 여러분께서 당하는 이 일 중에서 여러분이 당하는 가장 나쁜 일도 이것보다는 나쁘지 않죠? 이것은 극단적으로 나쁜 일이죠? 원수가 내 살을 먹으러 왔다. 그런데 이 행악자는 6절에 보시길 바랍니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원수가 에워싸고 있는 겁니다. 세상에 평안을 누리지 못할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이 이 상황입니다. 내가 언제 원수에게 잡아먹힐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여러분 그래서 신앙이 위대한 거죠. 그런데 이렇게 되기가 쉽지가 않은 겁니다. 이렇게 되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이것은 마치 백화점 포인트제도와 같습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을 반복할 때 가산점이 쌓여서 갑자기 어느 순간 나 자신도 모르게 놀라울 정도로 태연자약하고 평정을 누리는 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평화의 환호성을 발휘하려면 평소에 하나님을 의뢰하는 일을 군대가 진 치는 것보다 조금 더 작은 일에 원수가 행악자가 살을 먹으려 나에게 덤벼들 때보다 덜 위급한 때 그때 하나님을 믿고 평안을 누리는 사람만이 이 순간에도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일상생활에서 평안을 누리지 못할 때 일상생활 안에서 여러분의 평안을 앗아갈 때 그 상황에서 시험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수험생을 위해서 기도하지만 이 아이가 시험에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승진을 위해서 기도하지만 승진이 미루어 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평안을 이룰 수 있는 여러 조건이 환경에 의해서 옵니다. 원수, 마귀는 우리 환경입니다. 나의 신앙 양심 중심을 테스트하는 이런 부정적인 양상으로 전개되는 나의 악한 역경들 이겁니다. 이때는 내가 평안을 못 누리는데 그 한복판에서 뭐라고 말합니까? 여호와는 나의 빛이니. 이 빛이란 말은 괄호하고 나의 확실한 미래다 입니다. 여호와의 빛은 확실성입니다. 여기도 불을 끄고 12시 정도에 어슬렁거려 보십시오. 상당히 무섭습니다. 어둠은 뭡니까? 어둠이 무서운 이유는 뭡니까? 왜 우리는 심리적으로 어둠 앞에서 공포를 느끼도록 만들어졌죠? 우리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진 이유가 있습니다. 어둠은 불확실하기 때문에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겁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오는 불확실성이 가져오는 두려움 그런데 여호와는 나의 빛이란 말은 여호와는 내 사업과 관계없이 나의 확실한 미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당신은 내가 죽어도 당신은 내가 설령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죽는다 하더라도 이 장엄한 이 세상에서 내가 아무것도 못하고 내가 인생 미완성으로 남겨놓고 죽는다 하더라도 당신이 나의 미래입니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놀라운 영적 담대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참 이게 보통 좋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께서 이 세상에서 우리가 그래서 죽는 일도 죽음이나 미래 일이나 여러분 수험생을 위해서 기도하는 어머니들은 장래일 때문에 두려워하죠? 장래일도 기근을 겪어도 미래일도 박해도 천사일도 천사가 나를 해코지해도 그런 것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을 수 없는 겁니다. 내가 설령 잘못되어 죽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누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너무 좋은 겁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절대적 평안이 있기를 바랍니다. 환경을 초월하는 절대적 평안 그래서 이것을 갖다가 빌립보서에서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라고 말합니다.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라는 말뜻은 이해를 초월하는 이런 뜻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평강 이런 뜻입니다. 지각을 뛰어 넘는다는 말은 지각으로 충만한 평강이란 뜻이 아닙니다. 지각을 초월하는, 내 지각으로 볼 때는 내가 지금 평안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바 깨닫는바 그것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내 마음을 지키시리라. 제가 언젠가 여러분에게 말씀 드렸나요? 고시를 쳐서 6번 떨어진 사람이 있습니다. 너무 많이 떨어지니까 점쟁이를 찾아다녔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고시를 치지 말고 변리사 시험을 치든지 공인중개사 시험을 쳐라 저는 이렇게 권면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끝까지 안 듣고 끝까지 자기 친구들 변호사들이 자꾸 꼬드깁니다. 너는 할 수 있다 꼬드기니까 계속 기도하는 것 보다는 변호사들 친구들 술자리에 갔다 와서 많은 용기를 얻어 옵니다. 나이는 50이 되는데. 기도의 확신 속에 하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 친구들이 꼬드기는 화려한 변호사 생활 그것이 이 사람을 막 옥죄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변리사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단순히 인생의 실패가 절대 아니다 그런데 기어코 변호사 시험을 친다고 해서 지금은 부부가 별거해서 살고 있습니다. 부인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혼자 고시원을 전전하고 있습니다. 내일 모레 이분이 60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꼬박꼬박 주일에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분에게 한 가지 좋은 점은 그래도 교회를 계속 나오는 겁니다. 그러나 소득이 없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분이 점쟁이를 찾아가서 무슨 말을 듣냐면 10월, 9월에 좋은 일이 오겠네 이런 식으로 점괘를 봐온 겁니다. 그것은 아무나 다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불안에 쫓겨서 엉뚱한 데 문을 두드리면 안 됩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잃을 수 있는 최고는 생명입니다. 생명 비슷하지만 생명보다 덜 가치 있는 것이 돈입니다. 그 다음 건강, 이런 것을 잃어도 전혀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왜? 죽음마저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원수가 우리를 대적하여 진을 칠지라도 그럴수록 나는 더 태평 같은 태산 같은 안전을 누린다 이겁니다.

 

그러면 왜 이런 사람은 이렇게 담대해 졌을까요? 4절요.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여러분 하나님이 아름답다는 것을 아세요?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름답다고 느껴야 신앙생활이 연예생활과 비슷해집니다. 신앙생활이 연예생활과 왜 비슷해지냐면 하나님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거룩하시기만 하면 꼭 우리가 엄격한 공자님 밑에 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의로우시고 압도적으로 아름다우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나님의 그 아름다우심을 앙망하는 힘으로 내 영혼의 고양을 맛보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께서 아가서를 읽어보십시오. 아가서를 읽고 이해가 안 된다 그것은 심각한 겁니다. 아가서 그 농도 짙은 연애시를 읽고 이해가 안 된다 도저히 내 인생에 이런 일은 안 일어난다 그러면 안 됩니다.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주는 청소년들이 하나님을 잘 믿으려면 그분의 아름다우심을 강조해야 되는데 너무나 하나님을 판에 박힌 자기 인격 수준 정도로 아주 빈약하게 하나님을 가르치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사모가 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그것을 부르면 우리가 마치 하나님의 아름다움 앞에 매료되고 있고 하나님의 아름다움 앞에 빨려 들어가는 영혼의 고양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려면 좋은 신앙시를 많이 읽으시길 바랍니다. 김현승이라는 시인이 참 좋은 시를 많이 썼고 숭실대 교수로 있다가 돌아가신 분입니다. 그 다음 이용도 목사가 쓴 시가 있습니다. 이용도 목사의 시를 한 번 읽어보십시오. 우리가 추수감사예배 때 시와 찬미의 밤을 할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분들은 시를 지금 쓰시길 바랍니다. 시 낭송을 하면서 시화전도 할 생각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사모하기 때문에 교회 오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는 마음으로 신앙 교우들과 만나는 기쁨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있습니까? 이것이 있으면 신앙생활은 너무나 쉽습니다. 얼마나 쉬운지 모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는 단계에 가면 하나님 아름다움에 대한 매료된 그것 때문에 하나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명령이 감미롭게 들립니다. 여러분 이렇게 좋은 겁니다. 아름다움을 앙망하는 사람에게 앙망은 목이 빠지도록 기다림입니다. 하나님 아름다움을 앙망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어디로 초대하냐면 하나님의 내실, 하나님의 가장 깊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비밀한 초막으로 우리를 부릅니다.

 

5절에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내 환경은 환난인데 누가 보더라도 김회권은 이제 끝났다 다 망했다 교회도 망하고 건강도 망하고 다 망했다 이렇게 되는 상황인데 그 환난날에 오히려 내가 어디로 초청받냐면 하나님의 내실입니다. 그 초막 깊숙한 곳에 가서 그 은밀한 곳에서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를 나눕니다. 이 역설을 이해하시겠습니까? 환난 당할 때 하나님과의 밀접한 친교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깊은 경지까지 못 갑니다. 저는 왜 우리가 오늘날 이 깊은 사상이 나오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법정 스님과 성철 스님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1993년 법어에 내 생전에 불문보다 더 아름다운 도를 발견한다면 나는 아낌없이 이 불문의 도를 버리겠다 법어가 그겁니다. 성철스님이 불교에 대해서 깨닫는 그 경지, 만해 한용운이 부처에 대한 그 깨달음은 보통 우리 목사님들이 깨닫는 것보다 10배 정도 고결합니다. 저는 여기서 심각한 딜레마에 빠집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안 될까? 일반적인 사람들이 볼 때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볼 때 스님의 글과 목사의 설교집을 갖다 대면 대부분 스님의 글을 보고 더 깊다고 믿습니다. 왜 그러냐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는 너무나 피상적입니다. 피상적으로 알고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인들은 조금 알고 많이 허풍 치는 사람과 같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저는 심각한 도전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이 시대에 보통 신자들처럼 살지 말고 높은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정말 목사, 집사 이런 것을 떠나서 정말로 고결한 청초한 도라지꽃 같은 아주 높은 영적인 깊이에 도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깊은 수준에 도달하면 여러분과 같이 신앙 생활하는 목사도 성장합니다. 목사가 그렇게 되면 여러분도 성장하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깊은 장막 속에 들어가서 비밀을 나누는 인격적인 친밀함에 있어서 그 깊은 추구에 있어서 우리가 좀 비범성을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일에 도전받으시길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태권도 홍띠 수준만 가르치는 교회와 같습니다. 태권도 홍띠 수준은 뭡니까? 신자들이 계속 나아가 성장하는 일종의 이런 성장단계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을 똑같이 기본도 잘 안 가르칩니다. 4영리 수준의 초보적인 교리만 계속 가르치고 더 나아가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반드시 더 나은 사람은 더 나은 길을 가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수련회를 온 교우 수련회가 있지만 앞으로는 중직 수련회 이렇게 나누어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주일 금식 기도 할 사람은 기도해야 되고 지금은 제가 그렇게 7단계로 나눌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 한 3단계 정도로 나누어야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3단계라는 말은 뭡니까? 10끼씩 굶으면서 고도로 신약성경 통독하고 올 수 있는 이런 정도의 영적 집중력을 가진 사람들의 수련회를 해야 되고 그런 것 없이 그냥 가족 수양회처럼 열린 음악회도 하고 이런 수양회도 필요하고 중간 수양회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고 여호와의 비밀한 장막 속에 들어가서 높은 단계의 영적 비밀을 더 아는 사람이 나타나 주어야 그 사람들이 교회를 끌고 갑니다. 우리 모두가 하향평준화로 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중에서 이 불타는 갈망을 가진 교우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주목합니다. 그분들은 불타는 그 갈망을 가지고 한 단계 더 비약하시길 바랍니다. 비밀한 장막 속에 들어가서 10시간 기도하셔서 아름다운 주옥같은 시와 글을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한 번 간증 선 사람들은 계속 간증 서시길 바랍니다. 아 진땀 뺐네 그러지 말고 계속 그런 식으로 여러분의 글을 쓰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돌아가실 때 우리 교우들이 다 여러분 환갑 맞이하신 분들 있죠? 여러분 환갑은 너무 일러서 안 되고 고희, 팔순 잔치 정도 때는 아 모 집사님 신앙간증집 이런 것을 딱 내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 멋있는 평신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비밀한 장막 속에 들어가서 환난날에 절대적 평안을 누렸던 그 간증의 기록들을 여러분 영혼까지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세상은 주님 우리의 평안을 앗아가는 정말로 불확실한 환경입니다. 우리 자녀와 우리 가족과 일터에서 도처에서 우리의 평안을 앗아가고 우리의 마음의 평정을 흩뜨려놓는 것들이 많습니다. 하나님 환난이 우리를 에워쌉니다. 하나님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은 나의 확실한 미래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시편 시인처럼 고백하며 환난날에 그 혹독한 고난이 심할수록 주님의 장막 안으로 피하여서 주님과 더불어 이 깊은 비밀을 터득하며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며 감동 받으며 사모하는 질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는 그런 성도들이 이 땅에 나오게 하시옵시고 우리 교회에 나오게 하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교회에 성자급 교우들이 나와서 이용도 목사님처럼 길선주 목사님처럼 하늘의 들꽃처럼 아름다운 도라지처럼 주님의 이슬 향기를 먹으면서 청초하게 피어나는 이 땅의 성자급 그리스도인들 우리 교회에 세워 주시고 양육시켜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초신자들에게 선한 충격을 주고 아름다운 향기를 토해내는 장막 속에 그리스도인들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비밀한 장막 속으로 초청하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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