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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주신 첫계명 (엡 6:1-3)

by 【고동엽】 2021.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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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주신 첫계명 (엡 6:1-3)
김영태 목사 (청북교회)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자기백성들이 지켜야 할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계명을 통하여 하나님에게 응답 하는 것이고 계명을 지킴으로 복을 받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계명가운데는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 4개가 잇고 사람에 대한 계명이 6개가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계명 중 첫 계명이 부모를 공경 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사람됨의 기초입니다. 그것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도 문제지만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식도 문제입니다.

요즈음에는 이런 문제아들이 많아져서 걱정입니다. 자식을 살기가 어렵다고 버리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늙고 힘없다고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해서 부모를 저버리는 자식도 있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없는 일들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한번 듣고 하나님의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먼저 저녀들아 했습니다. 이 세상에 자녀가 아닌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나이가 한살이든 90살이든 우리 모두는 자녀입니다. 흔히 어떤 사람들은 나는 나이가 많이 먹었으니까? 자녀가 아니고 부모에 해당된다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이가 아무리 많이 먹었다 해도 부모님이 계시고 그 부모 앞에서 자녀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자녀들아 하는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주는 말씀 입니다. 여기에서 예외가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다음에 너희 부모를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부모를 모시라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집안에서 자기 부모에게는 개떡같이 행하면서 나가서는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제 부모도 모시지 못하면서 남의 부모를 모신다는 것은 위선입니다. 더욱 나아가서 영의 부모인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이런 말씀 이 있습니다.
(요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자기와 매일같이 한집에 살면서 그리고 한상에서 밥을 먹으면서 생활하는 부모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을 사랑한다고 하겠으며 더욱 나아가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겠느냐는 것이지요. 예수님도 세상에 계시면서 이렇게 살아가는 유대인을 책망하셨습니다.

자기 부모에게는 함부로 합니다. 자기 부모에게는 생활비도 제대로 주지 않습니다. 자기 부모에게는 음식대접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나님, 하나님 합니다. 이스라엘의 그런 제도가 고르반입니다. 부모에게 할 것을 하나님께 한다 하면 다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못된 자식들이 이것을 악용해서 고의적으로 부모님에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드리기 위해서 부모에게 드릴 것이 없다 하고 부모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런 자들을 호되게 책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자기 부모를 섬기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십니다. 인간됨의 기초가 부모공경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기초도 부모공경에 있습니다.  부모공경을 잘하는 자식은 신앙생활도 잘하는 것입니다.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있지 말아야 합니다.

그다음 말씀은 주안에서입니다. 신앙인들의 위험은 주안에서라는 말을 오해하는데 있습니다. 주안에서 하니까? 교회 안에서, 예수 믿는 부모만 섬기라는 줄 착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부모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가 예수를 믿지 않아 지옥에 가게 하는 것 불효 중에 불효입니다.  세상에서 온갖 좋은 것으로 부모를 공경했다 해도 그 부모가 지옥에 갔다면 세상에서 잘한 일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정말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부모님이 예수를 믿고 천국에 가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의 영혼구원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가 해야 할일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잘 모셔야 합니다. 주안에서, 주의 이름으로, 주를 섬기는 믿음으로, 주를 사랑하는 사랑으로, 부모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부모님을 하나님 모시듯 하라는것입니다. 이것이 주안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다음 말씀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2절에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했습니다. 부모공경의 첫걸음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이란, 굴종이 아닙니다. 복종이 아닙니다. 억지로 하거나 할 수 없어서 하는 것 아니고 자원해서 기쁜 마음으로 하는 순종입니다. 또 공경이라고 하는  티마는  특별한 말입니다. 이것은 사람에게만 유일하게 쓰여지는 말입니다. 일반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닙니다. 요새는 부모를 불쌍히 여기는 자식들이 많아요. 안되었다 싶다나요. 이런 망언이 어디 있습니까?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높이 섬기라. 낮춰 사랑하는 게 아니고, 수평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높이 사랑하는 거예요. 공경하는 것은 부모를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새 중에 까마귀를 효조라 합니다. 그것은 까마귀가 그 부모를 잘 모시기 때문입니다. 까마귀는 어렸을 때에는 어미 새가 그 새끼를 키웁니다. 그런데 어미 까마귀가 늙어 기력이 없어지면 새끼가 늙은 어미 까마귀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여 살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어미 까마귀가 앉은 가지 위에 앉는 법이 없답니다. 옛날 우리어른들은 부모님과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요. 그만큼 존경하고 높여 드린 것입니다. 그것이 공경입니다.

이것이 옳으니라. 마땅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일이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일인데 거기에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당연히 해야 할일인데 맡 아들이면 어떻고 둘째면 어떻습니까? 누가 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일입니다. 안하는 자식이 못된 놈이지요.

교도소에 수감된 어떤 분의 '어머니의 눈물'이라는 참회의 글이 있습니다.  작년 겨울 첫 면회를 오신 어머니께서는 창 너머로 고개 숙인 채 땅만 내려다보고 있는 이 불효자식에게 한마디의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어머니께서는 '춥지?' 이 한마디를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 보셨습니다. 이 한마디를 하시고 억지로 눈물을 참으시느라고 어머니의 눈가는 붉어지더니 한줄기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것은 그냥 눈물이 아닌 피눈물 이셨습니다. '춥지' 겨우 그 한마디 하시고 접견시간을 다 보내버리신 어머니는 성경책 한 권을 남기시고 떠나가셨습니다."

그 후 다시 면회가 없으신 어머니에 대하여 불평하고 있을 무렵 형이 면회를 와서 형에게 어머니에 대한 불평을 하자, 형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야, 이놈아 아직도 정신 못차리니, 너 어머니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하고 말했습니다. 불길한 느낌이 들어 그가 다그쳐 묻자 형은 어머니가 며칠 전화를 안받으셔서 찾아가 보니 엄동설한 추운계절에 자식의 죄가 내 죄 때문이라고 방에 불을 끊으시고 나도 감옥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며 자식의 죄와 어미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다가 몸져누우셨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그의 고백은 이렇게 계속됩니다.
"금수만도 못한 내 두눈에 처음으로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어머니가 남기고 가신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어머니의 눈물이 내 죄에 대한 하나님의 눈물이요, 하나님의 사랑이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모를 순종함은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존재의 방식입니다. 성경은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가르칩니다.

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Ninety-three"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부대 하나가 이동하면서 숲속을 지나가다가 기아에 지친 아주머니가 세 아이를 데리고 길가에 쓰러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아이들이 쓰러져 있는 그런 모습을 보고 상사 한사람이 빵 한 덩이를 던져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지체 없이 이 빵을 세 조각으로 나누어서 세 아이에게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받아먹으며 그렇게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던 젊은 병사가 물었습니다. "저 여자는 배고프지 않은 모양이죠?" 상사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그게 아니야. 어머니이기 때문이야"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어머니입니다. 자기는 굶으면서도 자식들이 빵 한 조각을 먹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더 크게 기뻐하는 것이 어머니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첫 계명입니다. 모든 계명의문입니다. 이문으로 들어가야 다른 계명이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 계명을 지키지 못하면 다른 모든 계명을 지켜도 소용이 없습니다.  뱀장어를 잡아 보셨나요. 몸퉁이나 꼬랑지를 잡아가지고는 잡을 수가 없습니다. 다 빠져 나갑니다. 머리를 잡아야 몸도 꼬랑지도 따라 옵니다. 부모공경의 계명은 머리와 같습니다. 이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른 모든 계명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자는 다른 어떤 계명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계명은 약속이 있습니다. 잘되고 장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모를 순종하는 자에게는 축복의 손을 거두지 않습니다. 자녀 된 나에게 주시는 첫 계명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부모공경을 통해서 잘되고 건강하고 행복해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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