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할 때 하나님 자녀의 당당함도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지난 주간에 정말 죽을죄를 졌으면 그렇게 기도하시고 그렇지 않고 믿음으로 살고 분투했으면 뭐라고 기도하냐면 지난 주간에 우리가 숱한 위기 가운데에서도 믿음의 중심을 잃지 않고 굳건히 지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렇게도 기도해야지 너무나 자학적으로 기도하니까 저는 들을 때 민망합니다. 또 그것을 구성지게 까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러면 예배 분위기가 상당히 어려워집니다. 그게 돕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혼자 하나님께 기도하면 되지만 공기도는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지난 일주일 동안 제가 숱한 위기 가운데 있었는데 유혹에 질 때도 많았지만 이길 때도 훨씬 많음으로 인하여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좀 나를 판단해달라고 주여 나를 판단하소서 내가 주님 믿는 일에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지금 주님의 회중에 들어가기 위해서 주님의 심판, 조사실에 들어가는 겁니다.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폐부와 심장을 자세히 살피셔서 내 뜻과 내 마음이 두 마음을 품은, 두 마음을 품었다는 말은 행악자의 자리에 앉으면서 내 고초를 해결해 보려는 마음입니다. 행악자와 앉았다는 말은 그냥 빈둥거리며 앉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고초와 곤경을 해결하기 위해서 행악하는 방법까지 동원하는 것 이것을 말하는 겁니다.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하리이다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5절 보세요.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음, 간사한 사람과 동행함, 행악자의 집회와 참여함 이것 모두는 뭡니까?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는 사람이 이렇게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겁니다. 이해가 됩니까? 하나님 안 믿으면 어떤 대안이 남냐면 이 대안이 남는 겁니다. 행악자와 앉게 되고 행악자의 회중에 들어가서 거기서 뭔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그런 꼼수에 사로잡히는 겁니다. 그래서 참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은 이것은 매우 위험한 말입니다. 하나님 안 믿는다는 말은 거짓을 믿겠다는 말과 거의 같은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제가 일주일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저를 테스트 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대단히 하나님 앞에서 당당한 자녀의 기도입니다. 여러분 이런 기도를 여러분이 자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기도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일주일 동안 그렇게 살아야겠죠? 날씨가 맑을 때는 하나님 6일 동안 너무 은혜 받아 감사합니다 제가 날이 갈수록 성장하는 것을 느낍니다 이렇게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이렇게 완전함에 행하고 요동치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완전함에 행하고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데 성공한 이유가 3절 보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인자하심이 내 강철 같은 의지보다 더 앞섰다는 겁니다. 나의 초인적인 성실이 나를 신앙인으로 살게 만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인자하심이 신실하신 그 모습이 나를 앞에서 끌어줍니다. 주님의 신실하심이 나를 앞에서 끌어주고 주님의 진리가 그 신실하신 성품이 나를 뒤에서 밀어주기 때문에 내가 그래서 주님을 의지하는 일에 완전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도덕에는 실패할 수 있지만 신앙에 실패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만일에 믿는 일에 실패하면 악한 시험에 드는 겁니다. 절대로 그러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다음에 여기 논리가 너무 분명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멋있게 살 수 있는 이유는 주님의 인자하심이 나를 앞에서 끌어주고 주님의 진리가 나를 뒤에서 바쳐주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이 말은 뭐에요? 내가 믿음으로 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믿음 좋은 선배님이 과장님이 밑에 있고 믿음 좋은 대리가 뒤에서 받쳐주니까 나는 우리 회사에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내 믿음이 지켜진다, 믿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이렇게 좋은 겁니다. 그래서 의인의 회중에 들어가면 신앙이 성장하는 겁니다. 여러분 격렬한 용어 보십시오. 우리 기독교인들이 무골호인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유골호인이 되어야 합니다. 무골호인은 낙지, 문어식의 그런 호인인데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선악간의 예스 노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방법입니다. 내가 허망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였다 단호함이죠? 간사한 자와 어울리지도 않았다 단호함입니다.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격렬하게 증오합니다 단호함, 격렬한 감정, 적개심 격렬하고 단호한 태도가 신앙인의 내면성입니다. 격렬하고 단호한 이 태도가 없으면 다 유혹에 넘어갑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신앙인은 격렬하고 단호함이 있습니다. 격렬한 감정, 미워하는 감정이 없으면 좋아하는 감정까지도 없는 겁니다. 제가 제일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점점 오늘날 현대인들은 세상과 분리되어 한 무리의 고독한 공동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내가 의인의 회중에 속하는 것의 질적 가치를 자꾸 사람들이 소흘하게 여기는 것이 많습니다.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격렬하게 미워했고 그랬더니 4절부터 5절은 괄호 안에 집어넣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됩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6절로 바로 갑니다. 여호와여 내가 무지함으로 손을 씻고 주의 단을 두루 다닙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4, 5절은 일종의 삽입어구입니다. 내가 이렇게 멋있게 신앙생활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뭐지, 괄호 안에 주님의 인자하심이 나를 앞에서 끌어주고 진리가 뒤에서 밀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내가 주님의 인자하심과 주님의 진리가 나를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주었더니 내가 마침내 어디로 갔습니까? 죄를 짓지 않게 되었고 이제 믿었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게 된 겁니다. 죄를 짓지 않게 되었고 손을 씻어 주의 단에 두루 다닌다, 이 말은 성막을 봐야 합니다. 성막을 잘 보시길 바랍니다. 제단과 제사장들이 쓰는 큰 세숫대야가 있었고 성막이 있었습니다. 장막과 제단 사이에 있으면서 그 놋제단에다가 손을 씻는 겁니다. 이 말은 뭐에요? 제사를 하나님이 받으실 만큼 정결해진 이런 말입니다. 그러니까 의인의 회중에 들만큼 합격한 겁니다. 그러면 어디에 들어가야 됩니까? 주님의 장막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주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에 앞에서 끌어줌과 뒤에서 밀어줌의 도움을 받아서 마침내 어디로 왔냐면 순식간에 주님 제단 앞으로 육박했는데 주님의 제단 앞에 와서 손을 씻고 나서 주님의 제단을 계속 이렇게 빙빙 돌면서 이제 성전 성막 안으로 들어갈 채비를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7절요. 감사의 소리를 들려주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말하리이다. 여러분 주일에 와서 아무 말도 안하고 무덤덤하게 있다가 가야겠습니까? 감사의 소리를 남에게 들려주고 주님의 기이한 인자하신 일들을 속삭이고 가야겠습니까? 저는 이것이 이상합니다. 우리 한국교회 평신도들은 아무 말도 안 하고 목사의 원맨쇼를 구경하다 가는 물랭루즈 식당에 왔다 가는 사람과 같습니다. 저는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그 많은 신자들이 6일 동안 그 치열한 생의 현장에서 분명히 하나님 은혜를 맛보았으면 좀 자기들끼리 은혜도 간증하고 붙들어서 이야기 하고 이렇게 좀 주님의 기이한 인자하심들을 간증을 해야 될 텐데 하나님께 받은 것을 아무것도 안 받은 척 시치미를 떼고 장경철 목사에 의하면 받은 것을 받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감사의 실패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간증을 여러분에게 계속 평신도의 입을 열어주는 에바다 사역, 평신도의 입과 귀를 열어주는 사역, 에바다 입과 귀를 열어서 어눌한 것들을 풀어주어서 좀 주님의 6일 동안 베푸신 그 기이한 인자하심들을 좀 전파하고 속삭이면 참 좋겠는데 이 일이 참 우리가 지금 잘하고 있는 중이지만 아직도 부족합니다. 우리 한국교회 전체적으로 이것이 부족합니다. 여러분 할 말이 그렇게 없습니까? 6일 동안 그렇게 하나님께서 베푸신 사랑이 많은 데도 그렇게 할 말이 없어서 악수도 제대로 안 하려고 하고 밥만 먹고 집에 갈 생각을 하고 이렇게 하면 의인의 회중에 든 보람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그러면 누가 이 분위기를 주도해야 합니까? 좀 더 신앙이 성숙한 사람이 주위에 기이한 일을 말하기 위해서 분주하게 입을 놀리고 간증을 하고 하나님 그것을 외쳐야 되는데 중직자일수록 더 조용하게 장로, 권사, 집사도 이렇게 다니면 계모임에 온 것도 아니고 우리가 동창회에 온 것도 아니고 그런 점에서 제가 볼 때 평신도들의 분발이 크게 요청됩니다. 20년 동안 다니면서 간증 하나 못하면 안 되는 겁니다. 20년 교회 다니고 글 한 편 못쓰면 신앙수필 하나 못 쓰면 이것은 안 다닌 것과 똑같은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제가 다시 한 번 여러분에게 격려합니다. 6일 동안 베푸신 그 주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제발 아낌없이 선포하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할 수 없이 해야 되는 것은 주일학교 교사들입니다. 성경공부 인도자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머지 분들은 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이런 자리에서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주님의 선하심과 앞에서 끌어주시는 인자하심과 뒤에서 밀어주시는 주님의 진리에 대한 기이한 말들이 많이 속삭여지고 유통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감사해버리는 사람은 사탄이 더 이상 접근 못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이제 이 사람은 시험할 수 없는 무적함대라는 겁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사단이 나 졌다 이렇게 말합니다. 왜 뭐하기 때문에? 의인의 회중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점점 이동합니다. 그래서 8절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 이 사랑한다는 말하고 앞의 미워한다는 말이 격렬하게 서로 대조되죠? 여러분께서 교회 올 때는 격렬하게 사랑스러워야 되고, 행악자의 집회에 갈 때는 미워해야 되는 그런 격렬한 미움과 사랑의 감정의 교차와 대비가 잘 일어납니까? 그래야 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 그래서 9, 10절 확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9. 10절은 괄호합니다. 왜냐면 논리상 8절은 11절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또 이제 결심합니다. 나는 일주일 동안 다시 또 완전한 일에 행하겠습니다 나를 구속하시고 긍휼히 여기십시오. 12절에 내 발은 이제 안전한 곳에 왔습니다 이제 내 발은 실족하여 행악자의 집회로 갈 가능성이 없어졌습니다. 왜요? 내 발이 평탄한 데서 싸우니 의인의 회중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여기서 목적입니다. 우리가 제일 마지막에 주일에 오는 것은 여호와의 회중에서 하나님을 송축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주일 예배가 참 중요하죠? 모든 예배가 참 중요합니다. 여러분 모든 예배가 다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영적인 순례를 하고 나면 이제 어떤 확신이 다시 강해지죠? 하나님을 믿고 행위 완전한 삶을 사는 것이 좋겠고 행악자의 집회를 점점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겠죠? 이런 확신이 반대의 확신, 행악자와 절대로 어울리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은 굳어지고 하나님의 집에 와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이 있는 장막 안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의인의 회중에서 수평적인 친밀한 교제를 나누다가 가는 것 그리고 세상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이런 순환, 6대1의 순환 이런 것이 여러분에게 신앙생활에 순례길 가운데 반드시 있어야 될 일입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이제 우리가 오늘 수요일인데 오늘도 여러분께서 믿는 일에 행위 완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실수해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은총을 믿는 일에 하나님 은총에 의지하는 것을 힘 빼게 만드는 것은 전부다 사탄입니다. 여러분의 선한 양심이 아닙니다. 이렇게 여러분 판단하면 안 됩니다. 내가 이렇게 염치없이 어제도 하나님 은혜를 의지하고 내가 오늘 또 의지한다고 아 나는 염치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자비는 우리가 진토로 만들어졌고 체질이 연약한 자인 것을 알기 때문에 무진장 많이 용서할 준비를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무궁한 인자하심이 여러분의 진토, 흙으로 만들어진 여러분과 저의 체질을 긍휼이 여기시면서 도우시려고 하십니다. 오늘도 세상에서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믿는 일에서 흔들리지 말고 요동치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세상에서 윤리에서 실패하고 도덕에서 실패할지라도 주님의 무진장한 은총과 자비를 의심하는 일에 실패하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시고 하나님 아버지 요동하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가 주님의 은총을 믿는 일에 요동하면 우리가 행악자의 집회에 가서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사오니 하나님 우리에게 믿는 이 일에서 승리하며 우리가 주일에 공기도 시간에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지난 6일 동안 믿는 일에서 요동치 않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승리의 기도도 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사랑하는 한국교회 평신도 우리 귀한 하나님의 백성들 6일 동안 세상을 변화시키는 평신도 형제자매들이 교회에서 에바다 사역을 경험하며 입을 열며 귀를 열어놓고 하나님의 간증을 하나님의 기이한 행적을 쉴 새 없이 교환하고 말하는 아름다운 회중 공동체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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