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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고린도전서 10장

by 【고동엽】 2021. 12. 2.

역사와 현실
고린도전서 10장

오늘 고린도전서 10장을 함께 같이 묵상하시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입니다. 특별히 1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을 본문으로 우리가 역사와 현실이라는 제목으로 이 말씀을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H. G 웰스라는 유명한 역사가가 있었습니다. 그가 남긴 역사에 관한 명언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우는 가장 현저한 사실은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역사는 되풀이된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과거의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기 때문에 Lesson을 배우지 못하기 때문에 과거의 실패 과거의 오류 과거의 비극이 오늘이라는 역사의 장에서, 또 내일이라는 역사의 장에서 그대로 반복된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학생이 성적이 불량해서 그 아버지와 함께 학교에 불려 왔습니다.. 아버지가 그 담임 선생님과 성적에 관한 여러 가지 카운슬링과 얘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그 학생이 학생의 담임 선생님이 역사과목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선생님, 우리 아들이 선생님이 가르치는 역사과목의 성적은 어떻습니까?' 그랬더니 이 선생님이 그 아버지에게 반문을 하시더래요. '아버님은 옛날 학교 다니실 때 성적이 어떠셨는데요' 그래서 그 아버지가 머리를 긁으면서 '저야 뭐 형편이 없었지요.' 역사 선생님 가라사대 '역사는 반복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바울 사도가 회고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역사를 또 한번 공부하거나 역사를 알리기 위해서 역사를 회상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역사에 대해서 매우 인상깊은 단어를 두 개의 단어를 사용합니다. 6절에 보시면 역사는 거울이다. 역사는 거울이다. 자 고린도전서 10장 6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거울이라는 낱말이 나옵니다. 역사는 거울이다.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우리의 현주소를 파악해 볼 수 있는 거울입니다. 역사는 거울입니다. 11절에 보시면 거울일 뿐만 아니라 역사는 경계다. 역사는 경계 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역사는 거울일 뿐만 아니라 역사는 경고입니다. 역사는 경고인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경고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의 삶을 위해서 내일의 삶을 위해서 우리는 역사를 통한 경고를 경계를 받아야 합니다. 역사는 경계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거의 역사 특별히 구약 시대의 역사를 통해서 지금 1세기의 고린도 사회, 바울이 편지를 띄우고 있었던 고린도 사회, 특별히 그 사회 안에 존재하고 있었던 고린도 교회의 현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적 실패의 경험이 오늘을 사는 교회의 성도들의 실패가 되지 않도록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11절의 말씀처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렇다면 이 말씀은 종말의 시간이 더 가까워진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을 위한 여전히 변함없는 거울의 Lesson이고 경계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자, 우리는 먼저 본문을 통해서 역사 속에서 누렸던 특권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들이 누릴 수 있었던 특권들, 1절부터 4절까지의 내용이예요. 우리 1절부터 4절까지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여기서 바울 사도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간 과거의 역사 특별히 구약시대의 역사 속에서 그들이 누릴 수 있었던 영적인 특권들, 혹은 영적인 축복들을 회고합니다. 왜 회고하냐면 그들이 이런 놀라운 특권들을 경험했고, 축복들을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얼마나 빨리 그들이 이런 축복들을 떠나갔고, 또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가서 그들이 범죄할 수 있었는가를 보여주고자 한 것입니다. 축복은 축복입니다. 귀한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어제의 축복이 반드시 오늘의 삶의 승리를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어제의 은혜의 체험이 오늘의 삶의 장에서 우리의 승리를 guarantee 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걸 말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에 누릴 수 있었던 축복 몇 가지 특별히 다섯 가지 축복을 회상합니다.
첫째는 그들이 구름 아래 있었다. 구름 아래 있었다. 1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그랬어요. 구름 아래 있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할 때, 구름 아래 기둥이 하나님이 준비하시고 보내신 구름 기둥이 그들을 인도했습니다. 인도만 한 것이 아니예요. 더 중요한 것은 구름이 그들을 보호했습니다. 뜨거운 열사의 사막, 광야에서 행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만약 이 구름의 보호가 없었더라면 그들은 무서운 고통을 당해야만 했었을 것입니다. 구름의 역할에 관해서 우리가 한번 시편의 말씀을 찾아볼까요? 시편 105편, 시편 105편 39절의 말씀입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구름을 펴사 덮개를 삼으시고 밤에 불로 밝히셨으며' 구름이 어떤 역할을 했다구요. 덮개 covering, 덮는 역학, 지붕과 같은 역할, 태양을 가리우고 그래서 그들이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는, 그들을 Tent처럼 천막처럼 그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던 이 구름,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예요. 여러분 지금도 하나님의 그런 축복이 있다고 믿습니까? 우리가 광야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를 날마다 보호해 주시는 구름과 같은 하나님의 보호가 있어서 열사의 사막 못지 않은 거친 광야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축복, 또는 인도하심의 축복을 경험하는 줄로 믿습니다. 구름 아래 있고,
둘째 축복은 '바다 가운데로 지나갔고…' 두 번째 축복이예요. '바다 가운데로 지나가며…'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체험 광야를 향해서 나아가는 체험에 있어서 최대의 난관은 바로 홍해 바다였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불가능하죠. 바다를 지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기적을 베푸시고 그 바다를 열어주심으로 그들은 그 바다 가운데로 지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불가능을 돌파하게 하신 하나님, 기적으로 우리 앞의 홍해 바다를 마치 마른땅을 건너듯 건너가게 하시는 하나님, 사랑하시는 여러분 지금도 인생의 행진에서 이따금씩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돌파할 수 없는 넘실대는 홍해 바다 앞에 서게 될 때, 지금도 이 바다를 지나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다 가운데로 지나가며…' 그랬어요. 이런 경험 바다 가운데로 지나가는 경험을 시편 기자가 어떻게 반추하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시편에서 읽어볼까요. 시편 136편 찾아보세요. 시편 136편입니다. 시편 136편입니다. 한번 쭉 보시면서 무슨 단어가 제일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감사하라.' 또, '영원함이로다.' 또 '인자하심이' 네 '인자하심이…' 계속 반복됩니다. 13절부터도 보시면 자 시편 136편에 13절부터 보시면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로 그 가운데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다음에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 다음 '바로와 그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 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뭐예요.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 다음에 16절 '그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왜 하나님이 그런 일을 하셨어요. 홍해 바다를 건너게 하시고, 추격하던 바로의 군대를 물 속에 장사지내시고,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무엇 때문에…, 인자하심 때문에…, 인자, 인자라는 것은 독특한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기 위한 구약적인 단어예요. 신약에서는 '아가페'라는 독특한 단어가 나타납니다마는 구약에는 '헤세드'라는 단어가 나타납니다. 사람들의 세속적인 사랑과 구별하기 위한 하나님의 성실하신 사랑 하나님의 인자하심 왜 홍해바다를 지나게 하셨는가?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신실하신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인생의 장에서 말할 수 없는 장애물을 만났을 때, 그러나 그것을 통과하면서 변함없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경험하는 줄로 믿습니다. 바다 가운데로 지나게 하셨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모세에게 속하여 세례를 침례를 받고…' 모세에게 속하여 2절에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세례를 받고 그랬습니다. 이 침례 Baptism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은 연합이예요. 연합. Baptism의 가장 중요한 뜻은 의미는 연합입니다. 우리가 로마서 6장 3절 이하 같은데 보면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합하여 세례를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랬어요. 합했다. 연합 'Union' 이 Baptism의 가장 중요한 것은 연합한다. 근데 여기 보면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았다.' 모세에게 연합했다. 모세에게 속하게 되었다. 모세에게 연합했다. 다시 말하면 모세라는 사람을 지도자로 삼고 그와 연합된 삶을 살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는 누구에게 속합니까? 예수에게 속하여 예수와 연합한 자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다시 산 자,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Baptism 침례의 사건이란 말이예요. 물속에 들어갈 때 예수와 함께 죽었고, 나올 때 뭐예요,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와 다시 살아났다.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의식이죠. 근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경험을 구름과 바다에서 했다. 모세에게 속하여,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죽었다가 산 것처럼 모세를 통해서 모세란 지도자를 통해서 그들은 이런 새로운 경험을 할 수가 있었다.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위대한 교사, 스승, 혹은 위대한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은 가장 커다란 축복중의 하나입니다.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실 때, 내 자녀들이 자라나면서 좋은 스승을 만나게 해 주시옵소서. 그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스승, 지도자, 리더를 만난다는 것. 우리가 예수님을 지도자로 삼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삼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 시대에 모세를 만나 모세를 지도자로 광야의 행진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축복이었습니다.
그 다음 네 번째로 '신령한 식물은 먹으며…' 그랬어요.'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자, 거친 광야에서 달리는 먹을 것이 없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얼 주셨습니까? 만나, 만나, 만나는 본래 '만후'라고 불려졌는데, 원래는 하얀 색깔 아마 눈송이처럼 하늘에서 광야로 내려왔을 것입니다. 너무 신기해 갖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 '만후! 만후!' 그 뜻이 무엇이냐면, '만후!'가 '저게 뭐냐!' '저게 뭐냐!' 그러다가 그 이름을 '저게 뭐냐'로 결정했습니다. 그게 만나예요. 또 메추라기도 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어요.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음식, 직접 만드신 음식,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고, 한국에서 만든 것이 아니고, 미국에서 만든 것 Made in USA도 아니고, 'Made in Heaven' 하늘에서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음식, 그 음식을 먹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특권이예요. 지금도 그런 음식 먹습니까? 여러분? 먹잖아요. 지금 먹고 있잖아요. 뭐예요? 우리 신약 시대 성도들은 하늘의 음식,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산다는 거예요. 특권인줄 믿으십니까? 밤낮 먹으니까 좋은 줄도 모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단 말이죠. 그래서 나중에 뭐라고 그랬어요. 왜 메뉴가 바뀌지 않습니까? 컬컬해 갖고 또 다른 데 가서 헤매고 말이죠.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먹을 수 있었다는 그 자체가 특권이예요.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섯 번째,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또 하나의 특권은 뭡니까? 식물을 먹을 뿐만 아니라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 Drink까지 마셨다. 먹었으면 마셔야죠.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며…' 어떤 음료를 마셨습니까? 어디에서 나오는 음료, 반석에서 나오는 음료, 다 같이 4절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다' 마실 것이 없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반석을 깨뜨리시고, 반석에서 뭐가 나왔어요? 반석에서 샘물이… 깨어진 반석,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을 축일 수 있는 생명의 샘물이 쏟아져 나왔어요. 자, 바울은 여기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서 이 반석이 누구를 가르친다고 그랬어요? 그리스도다. 깨어진 반석에서 구원의 생수가 쏟아져 나온 것처럼 깨어지신 예수님.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예수님에게서 우리는 구원의 생수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모세 보고 어떻게 했어요. 호렙산으로 가라, 지금 막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는데, 호렙산으로 가라, 지팡이를 들어라, 때려라, 그 지팡이를 가지고 뭘 때려야 마땅해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들겨야 마땅해요. 지금 원망하고 불평하는…. 근데 백성들을 때리지 말고 지금 뭘 때리라고 그랬어요. 반석을 때려라. 반석은 괜히 가만 있다가 얻어 맞은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해서 맞은 거예요. 그 반석이 깨졌어요. 거기서 생수가 쏟아져 나왔어요. 하나님의 공의의 지팡이, 정의의 지팡이는 지금도 누구를 때려야 마땅합니까? 죄인들을 때려야 마땅하지요. 죄인들을…. 당신을 때려야 마땅해요. 그런데 누가 대신 맞으셨어요. 예수님이, 반석되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맞으셨어요. 그 예수 그리스도의 깨어지심,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진 줄로 믿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예요. 이 역사에서의 특권, 역사에서의 축복들을 회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5절의 말씀, 5절에 어떤 말씀으로 시작합니까? '그러나…' 이게 문제예요. 그러나, 그러나 'But!' '그러나' 이 이러한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 이러한 축복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들의 계속적인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예요. 어제의 경험, 어제의 QT를 가지고 오늘을 견딜 수는 없어요. 나도 옛날에는 은혜 많이 받았다고, 그래 오늘은 어때요? 오늘은 어때요? 오늘은? 자, 그래서 역사에서의 범죄, 범죄를 다루고 있습니다. 5절 이하에서 역사에서의 범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역사 속에서 이런 축복과 특권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범죄를 했느냐? 범죄의 결과, 5절이예요. 5절 다 같이 읽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광야에서 대다수가 멸망했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가나안의 약속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을 누릴 수가 없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가나안을 자꾸만 구원하고 연결시키는 것은 안좋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뭐 구원 못받았다는 결론이 되니까? 그게 아니고 여기서 가나안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축복의 상징으로 보면 돼요. 축복의 상징. 우리가 놀라운 축복이 약속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축복을 다 누리지 못해요. 축복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왜? 범죄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범죄 때문에 그 하나님의 풍성하신 축복,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그 놀라운 축복들을 누리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고 축복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시대에도 얼마나 많이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6절에는 그 범죄의 교훈, 이러한 범죄의 사실이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6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역사는 거울입니다. 이 역사를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악을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복수입니다. 악들, 죄악들을 즐겨하지 말자. 왜 사람들이 죄악을 범합니까? 죄를 범하는 이유?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왜 죄를 범하냐하면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죄를 범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죄가 아름다워 보이고 즐거워 보이거든요. Enjoy합니다. 죄를…. 그러나 이 즐거움은 죄악의 미끼입니다. 그 죄악의 건너편에 그들은 죄악의 대가를 지불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그 결과를 보지 못하고 미끼 바로 눈앞에 있는 미끼만 바라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죄악 속으로 들어갑니까?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들도, 하나님의 백성들도. 은혜 받은 백성들도 과거에 하나님의 축복을 누렸던 백성들조차도 이 죄악들 속에 빠져 들어갑니다. 어떤 죄악들일까요? 죄악의 내용, 대표적인 죄 네 가지 열거됩니다. 대표적인 죄. 이 죄들은 오늘의 현실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범죄들입니다. 대표적인 네 가지 범죄, 어떤 범죄가 나와요.
첫째, 우상숭배. 같이 읽겠습니다 7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첫째는 우상숭배예요. 우상숭배하지 말자. 아마도 이 우상숭배의 범죄는 출애굽기 32장을 배경으로 한 사건을 지금 바울 사도가 회상하고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모세와 아론 사건, 생각나시죠?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뭐 했어요? 금송아지를 만들었어요. 왜 만들었어요? 이 금송아지가 우리를 인도했다. 애굽에서 나오게 한 것도 금송아지다. 앞으로도 금송아지가 인도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대신에 눈에 보이는 화려한 매력을 가진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금송아지를 따르고자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이 우상숭배의 유혹은 오늘도 아직도 존재합니다. 사람들이 현대인들이 실제로 금송아지를 안 만들지 모르지만 그러나 다른 금송아지가 있어요. 신약에서 제일 많이 강조하는 우상숭배는 어떤 우상숭배입니까? 골로새서 3장 5절에 보면 무엇은 곧 우상숭배라? 탐심은 다 같이 탐심은 곧 우상숭배라. 우리의 모든 욕심, 욕심이 바로 우상숭배예요. 욕심이란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오는 모든 것,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 섬기고 사랑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일체의 모든 것. 그게 우상숭배예요. 탐심, 탐심. 욕심. 누가 간음을 했어요. 모압의 여인들과 간음을 했어요. 바알의 신들을 따라 다니고 우상 신을 향해서 추파를 던지고, 또 이런 의식의 한 사건 속에서 그들은 모압 여인들과 집단 행음을 하게 되었어요. 언제 우리가 범죄합니까? 영적인 만족이 없을 때, 혹은 영적인 긴장이 이완될 때, 우리도 언제든지 범죄할 수가 있어요. 그때 사람들은 다른 재미는 뭐 없을까? 다른 재미는? 그래서 쾌락 세속적인 쾌락을 추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영적인 만족이 사라지게 되면, 또 영적인 긴장이 이완되게 되면, 사람들은 세속적인 쾌락을 추구할 수가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죄를 많이 범해요. 죄를 많이 범해요. 역사적으로 그랬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음죄를 그때 범하게 되었습니다. 뭐 한 두 사람 범한 거면 하나님이 이렇게 까지 심각하게 다루실 필요가 없었는데, 뭐 간음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어느 때나, 어느 시대에나 있습니다. 그러나 집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집단적으로 도덕적으로 해이해졌어요. 한 사회가 집단적으로 해이해 지면 그리고 집단적으로 온 사회가 부도덕 속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의 이런 집단적인 징계가 심판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2만명 이상이 죽어버리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간음의 범죄.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자는 의미가 아니예요. 저들이 간음함으로 범죄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던 것을 기억하라. 그리고 너희들은 저들과 같이 뭐예요. 간음하지 말라. 이 말이예요. 간음하지 말라.
또 세 번째 범죄는 뭡니까? 주를 시험함. 9절, 9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민수기 21장이 배경이라고 생각됩니다. 자, 만나가 싫어졌어요. 박한 식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가 이 박한 식물. 이 메뉴도 바뀌지 않는 이 박한 식물에 우리가 지쳤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안 먹겠습니다. 이쯤 해 놓으면 주님이 어쩔거야! 안 먹겠다고 해 놓으면 주님이 우리를 어쩔 것인가? 일종의 뭐예요. 주님을 시험하는 것이예요. 주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시험의 마음이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있었던 그 증거를 시편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시편 78편, 시편 78편 17절 18절입니다. 17절에 '저희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여 황야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18절 다 같이 읽어요.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그랬잖아요. 식물을 가지고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그러한 태도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네 번째 범죄는 어떤 범죄예요. 원망, 원망의 범죄입니다. 10절 다같이 읽어요.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의 역사, 광야의 생활의 역사, 광야의 여정의 역사는 일종의 원망의 역사라고 할 수가 있어요. 원망의 역사. 민수기 11장에 보면 원망합니다. '하나님 음식이 이런 음식 밖에 없습니까? 만나 밖에 없습니까?' 원망하죠? 민수기 12장에 가면 지도자를 원망합니다. 지도자를. 특별히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원망합니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했다. 그래서 원망합니다. 민수기 14장에 가면 아예 다 포기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이렇게 데모를 합니다. 이 끊임없는 원망의 역사. 원망의 역사.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원망이예요. 원망의 반대는 뭘까요? 감사입니다. 감사. 하나님의 행하심을 인정하는 것. 우리에게 베푸신 그의 긍휼과 자비를 끊임없이 인정하며, 주님 앞에 찬양을 올려 드리는 삶. 찬양하는 사람에겐 원망이 없어요. 원망의 마음이 일어나시거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입술로도 찬양하고, 기도로도 찬양하고, 멜로디로만 찬양하는게 아니예요. 말로도 찬양할 수 있어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찬양을 올립니다.' 그게 찬양이예요. 주님은 인자하시고 주님은 자비하시고 주님은 나에게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계속 찬양하시고 감사하면 돼요. 범사에 감사하라. 그러나 사람들은 쉽게, 쉽게 원망의 범죄 속에 빠질 수가 있어요. '어쩌자고, 하나님 왜 나에게…'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는 내 인생의 밝은 side를 바라보며 이 고통 속에서도 내게 여전히 베풀어주시는 은혜. 만나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어요. 만나가 계속되고 있는데 그걸 가지고 감사하지 않고, 그걸 가지고 원망하고 있단 말이죠. 더 좋은 거 없나? 더 좋은 거 없나? 우상숭배의 역사, 간음의 역사, 주를 시험함의 역사, 원망의 역사, 그것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과 같이 너희는 범죄하지 말라. 자, 결론적으로 이 현실이라는 역사 속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교훈.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며, 우리의 현실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Lesson 두 가지입니다. 두 가지 교훈을 주시고 있어요. 첫째 교훈 12절 말씀 다 같이 읽겠습니다. 12절 다 같이 시작,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시험을 조심하라. 항상 나도 시험받을 수가 있다. 미국에서 한 유명한 목사님 한 분이 도덕적인 시험에 실패하셨어요. 나중에 한 1년 지나서 인터뷰를 했는데, '왜 시험에 빠지셨습니까?'하고 물어봤더니 '나는 절대로 나 같은 사람은 시험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그것이 위험해요.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나도 시험받을 수가 있다.' 언제든지 나도 시험받을 수가 있다. 다른 사람이 시험받는 것을 보고 뭐예요. 나도 저 사람처럼 시험받을 수가 있다. 항상 그걸 생각해야 해요. 섰다 하지 말아라. 넘어질 수 있다. 언제든지 넘어질 수가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특별히 여호수아를 앞세워서 여리고성의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여리고는 대단한 성이었어요. 거기에서 승리했으니까, 뭐 여리고성 전투할 때는 기도도 많이 하고, 마음의 준비도 하고 열심히 하나님을 의뢰하고 여리고성을 격파했습니다. 여리고성 다음의 전투가 뭐예요. 아이성이예요. 뭐 여리고 성도 이겼는데, 아이성은 정말 아이처럼 조끄만 성이예요. 그 여리고 성에 이겼으니까 아이 같은 아이성쯤이야 '아이∼' 그러고 진격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됐어요. 실패했습니다. 섰다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850대 1의 결전, 바알의 선지자 아세라의 선지자들과 850대 1의 결전에서 승리한 후에 그 다음에 로뎀나무 밑에서 쓰러지고 엎드러집니다. 그리고 자살하고 싶다고 하나님 앞에 넘어집니다. 승리 다음을 조심해야 합니다. 축복 다음을 부흥 다음을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이 있는 바로 다음에 나에게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므로 시험을 조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시험을 조심하라!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시험에서의 승리를 믿으라! 시험에서의 승리를 믿으라! 시험을 받을 수가 있는데 승리할 수 있다 이렇게 믿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질 것을 믿고 사는 사람이 있어요. 인생을 살면서 어차피 이런 시험은 다 받는다. 나도 패배할 것이다. 패배를 확신하고 패배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어요. 이럼 패배 의식에 젖은 사람이 많습니다. 패배 의식에 실제로 젖어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어요. 이거 뭐 다 인생이 그렇게 기면서 사는 거지 뭐. 패배를 믿어요. 제가 어느 날 히브리서11장을 묵상하다가 이런 생각이 문득 떠올랐던 적이 있어요. 한번 찾아보세요. 재미있는데요. 히브리서 11장 29절. 히브리서 11장 이 믿음의 장이죠. 유명한 믿음의 장. 히브리서 11장 29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자,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다. 애굽을 빠져 나와서 홍해를 건넌 것. 홍해를 건넌 거. 무엇으로 건널 수 있었다. 믿음으로…. 홍해를 건널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한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만 믿습니다. 주님만 믿습니다. 주님이 홍해 바다가 넘실거리는데 앞으로 나가라! 어떻게 나가요. 앞에 물이 있는데…, 그러나 믿음으로 들어가니까 갈라졌어요. 믿음으로…. 그 다음에 30절. 30절 다같이 읽습니다. 다 같이 시작.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 여러분 홍해 바다에서부터 여리고까지 그 사이에 몇 년이 있어요. 40년이예요. 40년. 그런데 믿음으로 홍해 바다를 건넜고, 믿음으로 여리고를 무너뜨렸습니다. 여리고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마자 첫 번째 성이 여리고 거든요. 근데 그 사이에 40년이 있는 거예요. 그 40년 동안은 무슨 말이 없습니까? '믿음으로…'하는 말이 없어요. 믿음으로. 그러니까 애굽 땅 나오고 홍해 바다 건널 때까지는 하나님을 어떻게 해요. 하나님을 신뢰를 잘했어요. 또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여리고성의 전투에서 다시 하나님을 신뢰했어요. 그러나 그 사이에 40년의 방황은 무슨 방황이예요. 한마디로 말하면 불신앙의 방황이예요. 믿지 못하고 방황한 거예요. 계속.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을 때, 그들이 통과해야만 했었던 기나긴 방황의 40년. 여러분, 날마다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어제의 교훈, 어제의 축복, 어제의 승리, 어제 받은 은혜 가지고 오늘을 승리할 수가 없어요. 오늘은 오늘의 은혜가 필요하고, 오늘은 오늘의 교훈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날마다 주님 바라보고, 날마다 주님 의지하고, 승리할 수 있도록 통성으로 기도하십시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도우시고 함께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바라보고, 주님 의지하고 오늘도 승리로운 걸음을 걸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험악한 인생, 광야 같은 인생, 주님 도우심 없이는 오늘도 승리할 수가 없사오니, 그 주님 바라보고 날마다 걸어가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 때로는 내가 과거에 받은 은혜, 과거에 들었던 주의 음성을 가지고 오늘을 살려고 발버둥칩니다. 그러나 어이없이 실패할 때마다, 내가 오늘 아침 오늘의 만나를 먹지 못했고, 오늘 아침 주님을 바라보지 못했던 것을 돌이켜 보게 됩니다. 날마다 주님 앞에 나오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날마다 주님 의뢰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날마다 승리하는 자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참 한번 밖에 지나갈 수 없는 인생 이 짤막한 세상, 광야 같은 세상에서 내가 인생의 길을 걷다가 어쩌다가 예수 만나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축복을 무엇으로 감사할 수가 있사오리까? 주님이 내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천국의 소망이 없었더라면, 인생이란 것은 얼마나 헛되고 헛되고 또 헛된 것인지요? 죄짓고 살다가 결국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허무한 인생, 주님 만나 영원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 아름다운 복음의 향기 발자취를 남기며 살아갈 수 있는 특권을 주셨사오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신 말씀을 받고 사랑의 헌금을 드리고,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 다시 나아갑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의 함께 하심이 오늘 오후에도 또 2시에 있는 추모 모임 가운데도, 또 오늘 사랑하는 귀한 남편을 잃어버린 귀한 자매와 또 그 가정 가운데도 주의 은혜와 평강을 내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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