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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설교 (시편 13편)

by 【고동엽】 2021. 11. 29.

이것도 시편 12편과 똑같은 개인적인 비탄의 시입니다. 네 가지의 질문이 나옵니다. 그 이유는 지체되고 지연되는 기도의 응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응답이 지체되고 지연될 때 오늘 이런 비탄의 기도가 나옵니다. 여호와여 언제까지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언제까지 주의 얼굴을 숨기시겠습니까 내가 나의 영혼에 여러 계획들을 펴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여러 계획들을 편다는 말과 근심한다는 말은 여기서 같은 말입니다. 내가 하루 종일 마음에 근심하면서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응답이 지연되는 기도제목 그리고 그 개인적인 비탄을 가진 시인의 적수들이 그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적수들이 지연되는 응답 때문에 자랑합니다. 봐라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더니 꼴 좋다 그가 그렇게 기도도 많이 하고 새벽 제단도 쌓고 십일조도 하더니 저 모양 저 꼴이 되는 구나 이런 식으로 하면서 자극합니다. 그래서 응답이 지연되고 하나님이 얼굴을 완전히 내게 숨겼다 하나님이 나를 완전히 외면했다 이제 하나님이 내가 올라가서 기도해도 묵살하고 계신다 내 안면을 몰수하신다 이렇게 느낄 만큼 오랫동안 응답받지 못하고 갑자기 내 인생에 찬 기운이 돌면서 내가 그렇게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하고, 내가 쏟아냈던 기도의 언어는 하나님을 향해서 올라가야 되는데 내가 쏟은 기도의 언어가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하고 한 5분 후에 하늘에서 떨어집니다. 하나님께 접수되지 못한 기도의 언어들이 떨어집니다. 내가 내 기도를 혼자 망연하고 자실한 가운데 듣고 있는 상황 이것이 바로 오늘 시인의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게 낙심되는 상황입니다. 주님이 나에게 얼굴을 가렸다 그 옛날 나에게 그렇게 잘 되던 기도응답도 안 되고 그래서 점점 내 눈이 3절에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점점 눈이 무거워집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햇살을 볼 수 있는 눈이 무거워지고 이러다가 내가 이제 확실하게 사망의 잠을 잘까 두렵다는 겁니다. 나의 눈을 밝히소서 사망의 잠을 자지 않도록 이런 말입니다. 나의 눈을 밝히소서 나의 원수가 저를 이겼다 말할 수 없도록 나의 눈을 밝히소서 나의 대적들이 나를 향하여 기뻐하지 못하도록 눈을 밝힌다는 말은 건강을 회복한다는 말입니다. 신명기 34장 6절에 모세가 죽을 때에도 안력, 눈빛이 아직도 건강했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죽기 전의 눈빛이라는 것은 눈빛이 임종의 그 상황에서 갑자기 꺼져가는 것이 임종입니다. 눈빛이 살아 있으면 죽지 않습니다. 눈빛의 밝기가 또 여러분과 제가 평소에 똑같은 시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에 가득 찼을 때 눈이 훨씬 밝아집니다. 기쁨에 가득 찰 때 훨씬 밝아지고 사랑하는 사람 옆에 있을 때 훨씬 눈이 밝아집니다. 우리 눈은 똑같은 밝기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말씀을 강하게 받고 심령에 은혜를 충만히 받을 때 우리 눈은 하나님의 은총을 훨씬 더 세밀하게 볼 수 있는 안력, 눈의 광채를 가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오랫동안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고 아무리 기도해도 기도 응답이 지연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이제 완전히 나를 잊었구나 하나님이 너무나 많은 사람을 구원하다가 나를 잊었구나 나는 이제 하나님께 잊혀진 존재가 되었구나 하나님은 나에게 얼굴을 가리는 구나 이렇게 생각할 때는 점점 눈의 밝기가 어두워져서 주님이 나의 옆에 와 있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슬픔에 눈물이 겨운 제자들은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들은 응답받지 못한 기도자 같은 두 제자들은 너무 슬픔에 겨워서 옆에 주님이 동행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 옆에 계셔도 우리 눈이 어두워지면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떡을 떼어 주고 성경을 가르칠 때 마음이 뜨거워질 때 갑자기 눈이 밝아져서 그인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눈을 밝게 해달라는 이 기도는 너무 정당한 기도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최선을 다 했는데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이것은 호된 시련입니다. 이 호된 시련 앞에 여러분 긴장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정당한 죄가 아닌 죄로 인하여 매 맞는 일이 아닌 상황에서 얼굴을 가리 울 때는 그럼 왜 발생합니까? 왜 하나님은 이 놀이를 합니까? 여러분께서 어린 아이들 데리고 까꿍 놀이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의 까꿍 놀이입니다. 까꿍 놀이가 뭡니까? 어린 아이들에게 얼굴을 가리죠? 어머니가? 그럼 아이가 순간적으로 어떻게 됩니까? 놀라죠? 놀라다가 딱 나타나면 아기가 어떻게 되요? 깔깔 웃죠? 모든 어린 아이들은 다 웃게 됩니다. 어린 아이들은 나름대로 엄마가 분명히 얼굴을 가렸기 때문에 그 순간은 긴장이 되지만 약간의 얼굴 가린 순간이 지나가면 나타나니까 웃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끔은 죄와 상관없이 얼굴을 가리실 때가 있습니다. 죄와 상관없이 기도 응답을 지연시킬 때가 있고 죄와 상관없이 우리가 깊은 우울증에 빠질 때가 있게 만드십니다. 왜 그럴까요? 죄와 상관없는 영적 침체가 옵니다. 그래서 이것은 낭만주의입니다. 기도 열심히 해 항상 하나님이 너에게 승리를 주시리라 이것은 약간 종교적 낭만주의입니다. 사실은 기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도 우울증이 있고 기도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도 침체가 있습니다. 목회도 마찬가지,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이런 까꿍 놀이를 하실까 바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생 안에서 실제로 기도 응답을 당장 하나님이 해주지 못하는 상황이 있을 때를 대비해서 연단을 해 주시는 겁니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즉각 응답을 줄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마음이 되지 않아서 모르지만 하나님이 성도의 기도를 즉각 응답할 수 없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는데 첫째 성도가 지금 이 기도의 응답을 바로 주었을 때 감히 이 축복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되지 않았다 싶을 때는 죄와 상관없는 더디 응답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신속하게 받지 못할 만큼 하나님이 아직도 우리를 좀 더 겸손하게 해서 이 선물을 안겨주고 싶을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좀 더 몇 단계 더 가게 하십니다. 그래서 얼굴을 가리시고 잊으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 응답을 지연시키는 또 이유는 우리 죄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실제로 기도 응답을 신속하게 받지 못하는 실제 삶의 대부분에 대비시키는 방법이 있고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더 깊이 많이 생각했다가 우리가 완전히 절정에 도달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시도록 우리가 하나님과의 만남의 지점 하나님께 기도의 카타르시스 기도의 절정에 도달하는 시점을 그 타이밍을 누가 결정하냐면 우리가 요청할 때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할 때 옵니다. 하나님 자신이 생각할 때 지금 2주, 3주, 5년, 6년 오랫동안 지연된 기도 응답으로 응답하는 것이 훨씬 더 지금 기도하는 그 사람 인생의 드라마에서 도저히 잊혀 질 수 없는 하나님의 발자취를 남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할 때는 그 기도제목이 오래 있다가 응답이 됩니다. 25년 동안 기다렸던 아브라함입니다. 만일에 아브라함의 자녀 생산 기도응답이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오자마자 낳았다면 지금 이삭에 관한 그런 드라마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창세기가 쓰여지지 않습니다. 무려 25년 동안 기다렸습니다. 25년은 175세의 25년이죠? 어떻게 됩니까? 7분의 1 정도 됩니다. 7분의 1이니까 우리는 몇 년 입니까? 우리가 가장 늦게 응답 받을 수 있는 기도의 상한선이 몇 년 입니까? 자기 인생의 7분의 1을 계산해 보세요. 70년 살면 10년입니다. 상당히 기네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이 얼굴을 감추는 기간이 그래서 종일토록 우리가 이렇게 슬픈 근심어린 생각에 쳐박혀 사는 것도 방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 원수들이 명백하게 김회권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누구누구 집사의 시대는 끝났다 그는 더 이상 재기가 불가능하다 이렇게 생각을 할 만큼 근심어린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을 가만히 보고 계신 하나님 그런데 지연되는 기도 응답은 오래 가면 안 됩니다. 어떻게 가면 안 됩니까? 사망의 잠을 자게 할 만큼 오래가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눈이 점점 납덩이처럼 무거워지게 했다가 무거워서 이제 거의 내가 마지막 이 한 번 눈 깜빡거린 다음에 나는 죽습니다 하나님 이런 순간에 눈을 밝혀주시면서 그동안 하나님께서 인내하심과 기다리심과 오래 참으심의 그 본뜻이 무엇인지를 순식간에 깨닫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동안에 요동한다고 기뻐했던 원수 대적이 갑자기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경악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53장 10절 이하에 4절부터 8절을 보면 저가 채찍에 맞아서 그가 타인보다 얼굴이 상하여서 그가 악인과 함께 죽을 때 사람들은 말한다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진 것은 자기 죄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가 부활했을 때 경악스럽게 다시 한 번 회복되었을 때 열방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놀라리라. 사망의 잠을 자게 할 만큼 기도 응답을 지연하지 않는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도응답을 들으실 줄 믿습니다. 기도 응답이 사망의 잠을 자게 할 만큼 그렇게까지 지연되지 않습니다. 다만 아우성 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그냥 하나님 앞에서 쉽게 받는 쉽게 가는 이런 관계를 원치 않고 이런 신적 불안과 서스펜스, 어쩔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뒹굴다가 하나님의 확실한 구원을 경험하도록 그렇게 유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 안에서 불확실성과 근심스럽고 우울한 생각 속에 사로잡히는 것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고 큰일 났구나 이제 나는 하나님께 도움 받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런 일이 생기자마자 아 이것은 내가 시편에서 이미 많이 읽었어 이럴 땐 어떻게 하면 돼 이렇게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슬픈 생각과 영혼의 계획들 아 이제 내가 죽는가보다 이렇게 생각하다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눈을 순식간에 밝혀 주는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어떻게 눈을 밝힙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눈을 밝히자마자 여러분이 순식간에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응답을 지연시킨 기도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눈을 밝히자마자 가만히 보니까 내가 생선을 달라고 그렇게 기도했는데 뱀이 왔고 내가 떡을 달라고 그렇게 기도했는데 돌이 와 있습니다. 나는 분명히 달걀을 원했는데 전갈이 와 있고 떡을 원했는데 돌이 와 있습니다. 그런데 눈을 밝히는 순간 내가 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 보니 떡이었고 내가 뱀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생선이었고 내가 이미 눈을 감고 있었을 때는 잘 보지 못했던 이 모든 불확실한 것들이 순식간에 한 눈에 들어오면서 하나님은 한 번도 내 기도를 응답 지연한 일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요동할 때 원수들은 우리를 대적합니다. 여러분 원수 대적이 사탄 마귀라고 일단 생각하십시오. 원수 대적 자꾸 시편 읽다가 나는 원수 대적이 없는데 이러지 마시고 원수 대적은 바로 사탄 마귀입니다. 대적은 여러분이 요동하는 것을 원합니다. 사탄 마귀는 여러분이 신앙이 점점 잃어가서 붕괴되기를 바랍니다. 공동체가 붕괴되기를 바라고 있고 여러분 가정이 붕괴되기를 바라고 있고 여러분 신앙의 진실성이 붕괴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잠시 요동할 지라도 뿌리 뽑힐 만큼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흔들리듯 하다가 바로 서서 정립 자세로 하나님께 바로 서면 원수 대적들이 놀랍니다. 5절입니다.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그래서 불평으로 시작했다가 찬양으로 끝나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설령 응답되지 못하는 기도제목 때문에 불평이 가득 쌓였다고 할지라도, 지금 당장은 여러분 안에 괴롭고 답답한 생각이 있다고 할지라도 마지막은 어떻게 되요?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우리 미가서 7장 보겠습니다. 7절입니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그의 진노를 당하려니와 마침내 주께서 나를 위하여 논쟁하시고 심판하시며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공의를 보리로다 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 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보리로다. 이 기도의 역전적인 간증, 대역전이 오늘 여러분의 하루에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사망의 잠을 자지 못하도록 우리의 인내가 바닥나기 전에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는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한 기도제목들을 쌓아놓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쌓이는 기도제목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 몇 년째 응답받지 못한 기도제목도 있습니다. 아버지 우리의 원수 대적들이 그들이 그렇게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구나 우리를 향하여 자극하지 못하도록 하나님 원수 마귀의 입을 막아주시옵소서. 우리를 에워싸고 조롱하는 원수들을 이겨내게 하시고 아버지 이제 개척교회에 걸음마 단계에 있는 교회가 아버지 영적으로 진군하고 기백있는 용사로 거듭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악한 마귀들의 계교를 대적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주저앉지 않습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나가기까지 어둠 속에 우리를 두신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갈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지치지 않고 일어설 것이며 원수 대적 마귀들이 우리를 쳐서 이겼다고 말하지 못하도록, 그들의 입을 봉할 만큼 우리가 담대히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눈을 떠서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보기를 바랍니다.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처럼 낙심한 교우들의 심령의 발걸음을 되돌리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냉담자들과 초심자들의 심령을 주장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 우리가 그들의 마음을 강제할 수 없사오니 하나님이여 당신께서 그들의 마음을 주장하여 주시옵시고 말씀의 떡을 먹이시어 눈을 밝게 하시고 새벽 미명에 나타나셔서 그들의 차가운 생의 한가운데 나타나셔서 인생의 결정적인 조타수가 되시고 도움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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