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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설교( 시편 12편)

by 【고동엽】 2021. 11. 29.

지금까지 읽은 시편 중에서 가장 개인적인 비탄의 감정 이 세상의 부조리한 운행에 대해서 가장 개인적인 비탄의 감정이 드러난 시편이죠? 여호와여 도우소서,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서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지점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수단이 끊어졌을 때입니다. 이제 하나님 당신만이 도울 수 있을 만큼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경건한 자가 떨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이제 진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희귀해지고 하나님께 신실하게 사는 사람은 점점 멸종되어 갑니다. 사람들은 이웃에게 전부다 각기 거짓을 말합니다. 이웃에게 이웃의 행복을 위하는 척 하면서 사실은 이웃의 불행을 더 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이웃은 우리가 어깨를 맞대고 있는 우리 바로 옆의 사람이기 때문에 이웃이 망하면 사실상 우리가 망하는 겁니다. 우리 이웃이 망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망하는 겁니다. 우리가 내뱉는 나쁜 말들은 누구를 해치냐면 우리 이웃을 해쳤다가 우리 이웃이 다시 우리를 해치게 됩니다. 그러니까 자기 파멸적인 거짓말입니다. 자기 파멸적인 거짓말을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웃을 칭찬하는 듯 했다가 사실은 이웃을 불행에 빠뜨리는 그런 거짓의 언어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 그 말은 4절에 나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가 우리의 선전으로 이길지라 우리 광고문으로 이길지라 우리가 아무리 잘못해도 계속 아무리 나쁜 목사님이라도 광고를 계속 하면 사람들이 박옥수 같은 사람 지금 이단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김국도 금란교회 김홍도 이 사람도 계속 악당으로 이미 소문났는데 계속 그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금란교회 임마누엘교회 이 사람들 모두다가 어머니가 그렇게 경건하게 기도했다는데 그 마지막이 전부다 비탄하게 끝나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잘못되어도 계속 광고합니다. 조용기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되어도 계속 광고함으로 우리의 혀로 이길지라 여러분 우리의 혀로 이길지라 누가 우리의 혀로 이길지라라고 했냐면 권력이 있는 자가 그렇게 말합니다. 목회자가 아무리 잘못해도 목회자가 설교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몇 사람의 착한 장로를 목사 한 사람이 이길 수 있습니다. 왜냐면 설교를 통해서 계속 비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혀로 이길지라 우리의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이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말로 이 세상의 청정지역을 오염시키는 모든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말로 혀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지금 지식인들입니다. 공부한 사람들입니다. 공부한 사람들 말로 혓바닥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경제가 조금만 잘못되면 조선일보 사람들이 금방 이렇게 씁니다. 노동자들 노동 파업 심하여 1만 달러 문턱에서 10년째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한겨레신문만이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머지 특히 조중동이라는 신문은 모든 생산성의 저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을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노동자들이 만일에 조선일보 같은 신문이 있었다면 훨씬 다르게 말했겠죠? 우리나라 언론이 지금 엄청나게 부패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아무 권력도 없는데 5년간 완장만 차고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고 실제로 뒤에서 대통령들을 깔보고 있는 사람들이 언론입니다. 대기업이 언론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정말 악합니다. 대기업이 언론을 가졌다는 말은 언론 자체가 이미 공평한 언론이 되기를 포기했다는 뜻입니다. 언론은 전부다 한겨례 신문처럼 국민주로 다 돌려야 합니다. 그래야 언론이 바른 언론이 됩니다. 우리 혀로 이긴다 이 말은 우리가 선동과 선전을 해서 기필코 우리식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만들겠다. 우리가 인생을 분석하듯이 우리가 세상을 분석하듯이 그렇게 하게 만들겠다 이렇게 주장하는 겁니다. 만일에 말과 글과 지식으로 이 세상을 살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는 절망스러운 상황입니다. 모두 공부한 사람들이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전부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 분개심을 가져올 만큼 나쁘게 글을 쓰고 말을 하면 이것은 악인이 행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지식인이 참 중요한데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 우리의 혀로 이길지라 이 말이 악인의 말입니다. 그래서 히틀러의 나치즘이 얼마나 많은 선전을 했는지 모릅니다. 나치즘이라는 것이 일본 사람들이 만일에 칼과 총으로 우리를 다스렸다면 간단합니다. 그런데 일본은 우리 조선 지식인들을 전부 매수했습니다. 80년대 초 살인마 같은 군인들이 나와서 김지하, 지학순, 강원용 이 세 사람을 구워삶았습니다. 김지하, 지학순, 강원용 이 세 사람은 70년대 까지만 해도 글발 날렸던 저항 지식인인데 세 사람은 전두환 때 허화평과 허상수가 매일 배달해주는 갈비를 먹고 자기가 타락했다고 김지하씨가 고백했습니다. 지학순 주교는 왜 자기가 타락했나 80년대 내내 침묵했나 전두환 장군이 군복을 입고 무릎을 꿇으면서 신부님 저 좀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그 위대한 장군이 무릎을 꿇는 바람에 자기가 한 마디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한때 유명한 모든 순수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미국에 줄서지 않으면 우리 하루아침에 불바다 된다고 말합니다. 많은 유명한 목사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들은 혓바닥을 가지고 싸움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입술을 자기 혀로 이길지라 우리 입술로 이길지라 우리 입술은 우리의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하나님 말씀으로 이깁니다. 그래서 인간의 혓바닥으로 나오는 거짓된 진실, 거짓된 언어, 거짓된 전망들 하나님 가난한 백성들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분석들은 어디에서 깨집니까? 여호와의 말씀에 의해서 깨어집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가난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으로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사실은 가련한 자와 궁핍한 자는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가련한 자와 궁핍한 자는 친족 중에서도 비난받습니다. 우리가 어떤 집에서 못 살면 그 가족끼리 모였을 때도 벌써 구설수에 오릅니다.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는 이유가 어쨌든 간에 벌써 집안에서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고 그런데 그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는 누가 돌보아줍니까? 내가 이제 일어나 이렇게 확신을 주는 것은 뭡니까? 가난한 자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을 것처럼 보이죠? 1998년에 루이 미쉘이라는 벨기에 외무부 장관이 아프리카 기니에 두 소년의 유서를 전 유럽에 발송을 한 적이 있는데 아프리카 기니는 프랑스 식민지였고 노예 사냥을 집중적으로 당했던 땅입니다. 기니에서 14살 15살 소년 두 명이 벨기에 브뤼셀발 비행기 기계실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런데 기계실이 얼마나 차가워요? 춥죠? 렌딩 기어실에 들어가서 그런데 혹시 자기들이 죽을지 몰랐기 때문에 편지를 썼습니다. 유럽의 높으신 분들과 각하들에게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우리는 교실이 있지만 교재가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 죽어갑니다. 2달러가 없어서 2달러의 치료비가 없어 죽어갑니다. 참 우리나라가 진짜 너무 잘못되었습니다. 1만 달러가 얼마나 많습니까? 세계에서 24개국만 1만 달러에 올랐습니다. 1만 31불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런데 더 잘 살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지금 잘 사는 것 충분합니다. 1만 달러는 단군이 꿈도 꾸지 못했던 꿈입니다. 이렇게 잘 사는 우리나라가 정의로운 나라가 되는 것에 관심이 없고 더 잘 살기 위해서 목을 조르는 이런 나라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한국교회가 세계를 돕는 방법은 우리 한국이 사는 유일한 방법은 이 땅의 가난한 사람과 한 이웃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영이 소생하려면 가련한 자와 가난한 자의 탄식에 우리 인생을 결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결국 나만큼 잘 사는 사람하고 내 인생을 비교해서 잘 사는 사람 동네로 점점 내가 이사를 가면 그게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잘 사는 동네 가면 잘 사는 사람 문화에 섞이게 됩니다. 그러면 그 인생이 산에 갑니다. 그런데 비참한 사람, 궁핍한 사람 인생에 귀를 기울이면 그 궁핍하고 비참한 사람 인생을 돌보다가 자기 인생이 하나님께 사로잡히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14살 15살 짜리 소년이 편지에 얼어죽은 채로 그 가슴에 유럽의 높은 분들과 각하들에게 도와달라고 유럽에게 호소를 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이번 주일에 7월 20일에 스와드라는 이라크의 여자가 옵니다. 임영신 자매가 스와드라는 자매를 데리고 와서 1시 반에 8 교회를 돕니다. 그 중에 우리 한 교회 속했는데 1시 반에 이라크의 복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이 하나님께 소생함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제 일어나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내가 안전지대에 두겠다 이 하나님의 사업에 우리가 동참해야 합니다. 가난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가난은 사람을 비인간화 시킵니다. 왜 가난이 좋다면 그 좋은 상태 내놓죠. 가난은 사람을 비인간화 시키고 가난 반대에 있는 과도한 부는 사람을 더욱 비인간화 시킵니다. 가난이 비인간화 시키는 그것은 긍휼과 동정의 대상이 되지만 부, 과도한 부요함이 비인간화 시키는 것은 동정의 대상이 안 됩니다.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으로 인하여 하나님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지대에 두리로다 그래서 옛날에 유엔 사무총장 다그 함마슐트라는 사람이 있는데 스웨덴 사람입니다. 비행기 사고로 죽어서 그 사람이 그렇게 전 세계의 가난한 자를 위해서 군네르미르발 전 세계의 가난에 대해서 전 세계인의 양심에 호소했던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의 직업 중에서 이런 직업이 좋은 겁니다.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일에 일생을 바치는 것 그런 직업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모든 좋은 일들은 지금 직업군에 분류가 안 되어 있는 일들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하셨던 메시아 이것 직업군에 분류가 안 됩니다. 전도사도 직업군에 분류가 안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과 제가 영혼의 소생을 맛보려면 가난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에 우리 인생을 결박해야 합니다. 한 두 번 도와주면 안 되고 그것 때문에 우리가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을 늘 깨닫는 겁니다. 일산두레교회가 만일에 이 하나님 앞에서 좋은 교회가 되려면 어쨌든 우리가 가난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 근처에 서성거려야 합니다. 그 사람들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자녀들이 부요한 땅에서 사는 것이 다가 아니고 지금 한국 압구정동 강남 여기가 세계의 전부가 아닙니다. 필리핀, 자카르타, 몽고, 중국, 이 세계의 다 못사는 나라를 가보고 궁핍하고 가난한 사람들 가보고 거기서 거룩한 사명감이 발생하여야 합니다. 철없이 키우는 여러분 자녀들 자녀들 시키는 대로 다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진짜 자녀교육 잘 시키려면 가난한 자들이 사는 동네 데려가십시오. 2달러가 없어서 말라버린 사람들 인생 한 번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자녀들에게 그들을 위해서 용돈 주어서 십일조 하라고 하십시오. 그래서 가난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으로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그들이 원하는 안전지대에 두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래서 세상 말과 하나님의 말은 다릅니다. 세상에 악한 혀로 이길지라 이렇게 했던 말만 들었을 때는 낙심했습니다. 만일에 이 이야기 외에 들리는 바가 없으면 두가지 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악인의 삶의 대열에 동참하든지 아니면 우리가 염세주의자가 되든지입니다. 악인의 대열에 동참하는 방법이 하나 있고 염세주의자가 있고 비관주의자가 되는 방법이 있는데 제 삼의 길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이 가난한 자의 탄식과 궁핍한 자의 눌림을 방치하지 않겠다 내가 이제 일어나 하나님께서 일어나는 이 일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바로 이겁니다. 교회를 세운 목적은 이 땅에 하나님 공평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우리 교회는 공평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하나님의 정권의 보좌가 되기 위해서 세우심 받았습니다. 가난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으로 인하여 그들을 안전지대에 두려는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열심 여기에 동참할 때 우리 교회는 소생하고 살게 됩니다. 여러분 개인적으로도 가난한 사람을 돌보시길 바라고 개인적으로도 반드시 한 두 사람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기적으로 여러분 재산을 나누시길 바랍니다. 아무도 모르게 나누시길 바랍니다. 단돈 만원이라도 좋으니까 여러분 자녀에게 용돈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과 나누길 바랍니다. 가난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으로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 원하는 안전지대에 두시겠다는 우리 하나님의 이 놀라운 세계 역사에서 한 번도 우리 하나님께서 이렇게 안 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듣고 안전지대에 두기 위해서 열심히 일합니다. 다만 이 열심히 일하는 우리 하나님의 마음 속에 동참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 노릇 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눌림과 그 궁핍한 자의 탄식을 들으시고 안전지대 제 삼의 지대 가나안 약속의 땅에 그들을 두셨습니다. 우리도 악한 자가 되든지 허무주의자가 되든지 제 삼의 길,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안전지대에 우리의 백성을 두든지 우리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 자녀들도 가련한 자입니다. 우리 자녀들 너무 불쌍합니다. 우리가 살던 시대에 비해서 지금 도시의 아이들은 너무나 불쌍합니다. 우리는 아무도 의식하지 못하게 우리 아이들의 상상력에 폭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로 미안합니다. 이 도시에 이 콘크리트 속에 무엇을 보고 살라고 우리가 이 도시에 옵니까? 저는 중3 때까지 일단 전기가 없었기 때문에 숙제 안 해가도 선생님이 혼을 내지 않습니다. 전기가 없어 호롱불을 켜기 때문에 제삿날 빼고는 숙제 안 해갑니다. 한 6km를 뛰어 다녔습니다. 제가 장거리 경주를 잘 하는 이유가 산을 뛰어넘고 공동묘지를 두 개 지났습니다. 우리 면에는 중학교가 없었습니다. 도시락은 1교시 시작하기 전에 산에서 다 먹습니다. 그래서 가면 첫 시간은 40분이 지납니다. 그런데 송화가루를 따 먹으면서 얼마나 많은 자연의 음식을 채취하면서 그렇게 가면서 친구들과 손 잡고 단어를 외웠습니다. 왔다 갔다 하며 한 8단어를 외웁니다. 그리고 책을 읽었습니다. 고등학교 가서야 철 들어서 공부했습니다. 아마 시골 애들은 대부분이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지금 아이들은 그렇게 학원에서 시달리고 학교 공부 시달리고 안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성이 더 고상해 보이지도 없습니다. 버르장머리는 점점 없어지고 점점 자기 밖에 모르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숭고한 인간이 점점 없어져 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른들이 이런 문화를 만들어주고 여기서 인생을 살라고 강요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 중고등부 이제 생겼습니다. 지금 우리 정재익 전도사에게 부탁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캠핑을 꼭 가자. 저는 그래서 청소년들을 여행과 캠핑에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보내기를 원합니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캠핑을 제가 가려고 합니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동정심을 심어주고 가련한 사람의 눌림에 귀를 밝히 귀울이는 이 법을 가리키는 것이 그냥 세속적인 지식을 한 두가지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학교 성적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동정심과 연민과 가난한 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 받습니다. 여러분 여기에 흔들리면 안 됩니다. 그래서 주일학교가 학원보다 훨씬 중요한 겁니다. 그 이유는 주일학교에서는 동정심을 가르치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주일학교는 이웃과 내가 한 몸이고 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에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허무주의자가 되거나 악인이 됩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는 확신을 강화시켜야 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죠? 악인처럼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허무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제 삼의 길 하나님이 예비하신 안전지대에 두기 위해서입니다. 6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순결한 것과 두 마음을 품은 인간의 말은 너무나 다릅니다. 인간의 말은 이웃을 해치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가난한 자, 궁핍한 자의 탄식을 듣고 안전지대에 두는 것이 하나님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더 감화를 받아야 겠죠? 여러분 아침에 하나님 말씀 묵상을 먼저 해야겠습니까? 오염된 인간의 언어를 먼저 봐야겠습니까? 일어나자마자 새벽기도 안 나오는 날도 잠옷 입은 채로 먼저 5분 동안은 움직이지 마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고 나서 심령의 강화를 받고 신문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신문은 다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똑같은 내용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이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이 하나님 말씀처럼 흙 도가니 속에 일곱 번 단련한 것처럼 우리 마음이 갈 때야만이 동정심이 생깁니다. 하나님 말씀에 연단된 마음만이 동정심이 생깁니다. 가난한 사람의 눌림에 대해서 관심 갖습니다. 여호와여 저희를 지키사 가난한 사람입니다. 이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존하시도다 누구를 지켜줍니까?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지켜줍니다. 어디서 지켜줍니까? 안전지대입니다. 여러분 먼저 우리 다른 것 하지 말고 일산두레교회에서 가장 가련한 자와 궁핍한 자는 주일학교 어린 아이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하면 우리 청소년들과 우리 주일학교 어린 아이들에게 호연지기를 많이 키워주고 싶습니다. 인제 같은 곳에 가서 고기도 좀 잡고 텐트도 쳐 보고 한 10km 구보도 한 번 해보고 이런 국토 순례를 하고 그 다음에 내년에는 백두산도 가고 그래서 점점 흙도가니에 일곱 번 연단한 것처럼 완전 별종의 인간 희귀종 같은 인재들을 양성해 봅시다. 우리도 그렇게 되어야 되고 우리 청소년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안전지대에서 크는 우리 자녀들 우리 어르신들도 안전지대에서 이제 크시길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흙 도가니에 연단한 하나님 말씀으로 단련되는 것이 바로 안전지대에서 크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여러분이 단련될 때 하나님 말씀으로 현실을 분석하는 눈을 가질 때 그게 흙 도가니에 일곱 번 연단한 마음이 됩니다. 흙 도가니에 일곱 번 연단한 마음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의 탄식에 마음이 쉽게 열리는 동정심의 천재가 될 것이며 연민의 천재가 될 것이며 불쌍한 마음의 위대한 성자가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존하는 교회는 주님의 재림때까지 견디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좋은 목사가 이 교회를 보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의 탄식에 마음을 여는 착한 동정심의 천재들이 이곳을 지킬 때 이 교회는 번성하게 됩니다. 그것이 교회에 부흥을 가져오는 겁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에는 지금 지역 화폐운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지역 화폐 운동이라는 신용 마을 금고 운동이 있는데 이것이 뭐냐면 도시 빈민들 도와주기 위해서 한 위대한 촌장급 각성자들이 500원씩 저금 받았습니다. 500원씩 저금 받아서 신용으로 만원씩 빌려주는 금융운동입니다. 지금은 엄청나게 이게 늘어났습니다. 가난한 사람 도우는 길은 너무 많습니다. 도우려고 마음 먹으면 동정심과 연민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께 고하면 얼마든지 도시 빈민을 도울 수있고 우리 자녀도 도울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자녀들에게 제가 참 돈이 있으면 땅을 먼저 사서 우리 청소년들을 위해서 축구 할 수 있는 잔디구장을 만들어 주고 싶고 그 다음에 옆에 수영장도 만들고 싶고 우리 청소년들이 무조건 와서 쉬며 음악도 듣고 정서를 순화할 수 있는 이런 청소년 수련장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에게나 개방할 수 있는 돈 받지 않고 그리스도의 친절을 베풀 수 있는 것 요소요소에 돈이 다 들어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운영되는 그런 청소년 수련원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도 앞으로 많이 벌어서 좋은 일 많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 마음 가지고 이 세상을 살면 할 일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직업 구해줄 걱정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마음 풀고 살면 이 세상에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밥 먹고 사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웬만한 직장보다 낫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연단된 순결한 영혼들은 악인이 처처에 비루함이 인생에 높아지는 때에도 허무주의자가 되지 않고 악인의 반열에 들어서지 않고 제 삼의 길 안전지대를 창출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일산두레교회가 가련한 청소년들과 눌려사는 우리 주일학교 어린 아이들을 위한 안전지대가 되며 이 세상의 부조리한 것에 가슴이 상해버린 어르신들의 안전지대가 되며 높아가는 악에 대해서 대항할 수 있는 제 삼의 진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서 일산두레교회를 악인의 삶도 거부하고 비관주의자가 되는 삶도 거부한 제 삼의 안전지대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는 악인처럼 살 수도 없고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 비루한 인생을 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그것을 저항할 만한 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면적으로는 악인에게 동조해가면서 겉으로는 악을 배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악을 대항할 수 있는 진지를 구축하게 도와주시옵시고 가련한 자의 탄식을 재빨리 알아듣는 동정심의 천재들과 연민의 성자들이 모여드는 안전지대, 우리 하나님 마음처럼 일어서는 그런 안전지대를 우리 교회 가운데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어린 아이들은 지금 너무 눌려삽니다. 우리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든 악한 문화 음란과 퇴폐와 쾌락의 문화 때문에 우리 아이들의 그 순수한 동심은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그들 병들어 가는 그들을 주님 용서하여주시옵소서. 아버지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하나님 이 땅에 그들에게 푸른 잔디를 주시고 산과 자연과 들을 보게 하시고 새 소리와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그들 속에 들려주게 하시고 꽃 향기를 그들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그런 일에 힘쓰는 교회, 안전지대를 만드는 데 힘쓰는 교회되게 도와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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