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찌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야고보서 5:13-18)
본문은 야고보서의 결론 부분이면서 기도에 관한 교훈으로 엮어져 있습니다. 내용은 누가 기도해야 하는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기도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응답 받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기도하느냐에 따라 응답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 기도하느냐에 따라 응답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기도에 관한 교훈을 찾아보겠습니다.
1. 누가 기도해야 합니까?
1) 고난 당하는 사람들입니다.
13절은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으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고난은 견디기 어려운 시험, 시련, 고통을 뜻합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은 대부분 개인적인 것들입니다. 예를 들면 사업 실패, 경제적 압박,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등 개인적인 것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교인들의 경우는 개인적인 고통 위에 외부의 박해까지 겹치는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들에게 야고보 사도가 제시한 해법은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시편 50편 15절을 좋아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부르라는 것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면 건져주신다는 것입니다.
고난없이 인생을 살고 신앙생황을 할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고난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언제, 누구에게나 고난은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후서 4:17을 보면 환난이나 고난은 잠깐이며 크고 영원한 영광에 비하면 지극히 가벼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63:9을 보면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신다"고 했습니다. 내가 힘들고 외롭고 괴로울 때 내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있어주는 사람, 내가 가슴아파 신음하고 어려운 일로 고통 당하고 있을 때 말로 위로해 주고 가장 가까이 있어 주는 사람, 그가 위로자 인 것입니다. 그래서 위로란 말의 뜻은 곁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그가 누굽니까? 누가 나의 고통을 알며 내 아픔을 알며 내 속앓이를 알아줄 수 있습니까? 그 분이 바로 나의 주 하나님이십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힘이 없고 네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는 힘 주시며 늘 지켜주시리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해리볼백이 만든 복음성가입니다. 고통이 있고 고난이 있는 사람들, 아픔이 있고 슬픔이 있는 사람들, 절망과 실패로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라면 눈을 들어 주를 바라보며 기도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4:6을 보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2) 병든 사람들입니다.
14절을 보면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찌니라"고 했습니다. 병든 사람은 교회의 기도 도움을 요청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대표하는 장로들은 환자를 심방하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주목할 구절은 기름을 바르고 입니다. 기름을 바르는 것은 약이 없던 그 당시로서는 약을 바르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니까 환자에게 약도 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약도, 병원도, 수술도 거부하고 기도로 신유를 간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을 먹고 치료를 받고 수술을 하는 것도 기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을 죄악시한다든지 믿음 없는 행위로 치부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몇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치료행위를 다 거부하고 오직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치료도 받고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기도하지 않고 명약, 명의만 믿고 치료하는 것입니다.
미국 듀크 대학 병원 의사인 해롤드쾨니히와 데이비드라슨 두 사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매 주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은 병원에 입원할 가능성이 적고 입원한다 하더라도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보다 입원기간이 짧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각광을 받고 있는 예방의학이 강조하는 것은 네 가지로 요약됩니다.
① 적당한 영양 공급 행위를 하지 말 것 ② 적절한 운동 ③ 흡연, 알코올 중독 같은 유해한 행위를 하지 말 것 ④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병을 조기발견 할 것 등입니다.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예방의학 차원에서도 자기관리가 철저히 시행되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20:1을 보면 히스기야 왕이 죽을병에 걸리자 이사야 선지자가 그를 찾아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왕기하 20:5을 보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열왕기하 20:7을 보면 이사야가 히스기야의 종처에 무화과 반죽을 부쳐 주었습니다.
야고보서 5:15을 보면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고 했습니다.
믿고 기도합시다. 중보기도를 요청합시다. 약을 먹고, 치료를 받고, 수술을 받더라도 믿고 기도하고 치료합시다.
3) 죄범한 사람들입니다.
15절 끝을 보면 "혹시 죄를 범하였을 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죄의 결과로 오는 병이 있습니다. 니코틴 중독, 알코올 중독, 성병, 에이즈 등은 죄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죄와 상관없이 오는 병도 많습니다. 바울 사도는 병 걸릴만한 죄를 범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심장병과 안질로 평생 공생했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고난 당한 사람들,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실패의 쓴잔을 마신 사람들 바라보며 모두가 다 죄 값이라고 속단하면 안됩니다.
본문의 교훈은 죄를 범한 사람이 사하심을 받는 길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즉 회개하는 것입니다. "잘못했습니다. 안 하겠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요."라고 회개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둘은 서로 죄를 고하는 것입니다.
16절을 보면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께 지은 죄 하나님께 고백해야 될 죄를 사람에게 고백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잘못한 것은 시인하고 혐의를 풀고 용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홧김에 친구를 두들겨 패고 전지 2주의 상해를 입힌 사람이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다음날 새벽기도회에 나와 하나님께 큰 소리로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 다음에 할 일은 바로 그 친구를 찾아가는 일입니다. "이보게, 내가 죽일 놈일세. 내가 잘못했네, 어떤 벌도 다 받겠네. 앞으론 절대 손찌검하는 못된 짓을 하지 않겠네. 내가 오늘 새벽 기도시간에 하나님께도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네. 날 용서해 주게"라고 고백하고 사정을 해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친구도 "자네 한 짓은 백번 벌을 받아야 하지만 내 성격도 단점이 많네. 못된 짓을 한두번 한게 아닐세. 내 탓도 있으니 없던 일로 하게. 그리고 앞으로도 우정은 변치 마세"라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서로 죄를 고하는 것입니다.
시편 38:18을 보면 다윗이 "내 죄악을 고하며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요한1서 1:9을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서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죄를 하나님께 고하고 빌면 용서해 주십니다. 우리는 기도로 내 죄를 고백하고 사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1)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15절을 보면 "믿음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1:24을 보면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9:23을 보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의심하고 반신반의하는 기도는 의미가 없습니다. 철저히 믿으면 철저한 응답이 임합니다. 믿으면 믿음대로 됩니다. 안믿으면 안됩니다. 절대로 믿으면 절대로 됩니다.
2)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17-18절은 엘리야의 기도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17-19장을 보면 아합 왕과 이세벨의 우상숭배와 백성들의 죄가 원인이 되어 3년6개월 가뭄이 계속되었습니다.
본래 비가 적은 나라이긴 했지만 3년반 계속된 가뭄으로 농사도, 목축도 두 손을 들어 버렸습니다. 그때 믿음의 사람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비가 오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 기도를 야고보서 5:17은 간절히 기도했다고 했고, 18절에서는 다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다시 기도하고 응답이 임할 때까지 비가 올때까기 계속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8:42-43을 보면 엘리야의 기도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상이에 넣고"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환이 일곱 번씩 비가 올 기미가 보이는가를 보기 위해 바다편을 바라보는 동안 계속헤서 다시 반복하며 그 기도를 드렸습니다.
엘리야가 꿇어 엎드린 땅은 잔디밭도, 카펫 깔린 실내도 아닙니다. 흙먼지와 돌맹이가 얽혀있는 땅입니다. 거기 꿇어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무릎사이에 넣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무릎사이에 얼굴을 넣어 보았습니다. 뼈가 아프고 허리가 끊어지는 듯 했습니다. 거구인 엘리야가 왜 그런 기도를 했을까요?
기도는 자기 허리를 꺾고 얼굴을 무릎 사이에 뭍는 극기, 낮춤, 항복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뻣뻣한 기도, 뻣뻣한 태도, 꺾일 줄 모르는 마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땅바닥에 무릎을 꿇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항복을 뜻합니다. 그 기도를 구름이 떠올라 빗방울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한 것입니다. 기도는 경험이 아닙니다. 기도는 삶입니다. 기도는 게임이 아닙니다. 기도는 영적 전쟁입니다. 기도하면 이기고 안하면 집니다. 기도는 구경거리가 아닙니다. 생사와 성패를 건 전투입니다.
엘리야의 기도를 야고보는 "간절히", "다시"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하다 말다하면 힘이 없습니다. 약효는 병이 물러설 때까지 먹어야 합니다. 먹다말다 하면 약효가 없습니다. 보약도 제때에 정한 양을 지속적으로 먹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약이 되지 않습니다.
기도는 중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중단하면 무너집니다. 엘리야의 기도가 내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3. 기도하면 어떻게 됩니까?
병든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15-). 주께서 저를 일으키십니다(15-).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15-). 수많은 역사가 일어납니다(16-). 메마른 땅에 단비가 내립니다(17-18). 한마디로 문제가 풀리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성경을 보면 기도하면 반드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결론은 우리들의 이야기로 끝이 나야 합니다. 우리에겐 기도할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기도해야 된다는 것도 다 알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좋은 일이 일어나고 응답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안합니다. 하다말다 그럽니다. 우리가 깨어 기도하는 동안 마귀도 깨어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한미연합으로 팀 스피릿 작전 훈련이 시작되면 북한군도 초긴장 상태에 돌입하고 비상대기에 들어갑니다. 시험을 이기려면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응답을 받으려면 쉬지 말고 간절히 다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철저한 도우심을 받으려면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께 새벽에 나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사람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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