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자녀들처럼 행하자> 엡5:8-14
새문안교회 주일예배 설교
이수영 목사
새문안교회의 2000년의 교회표어는 "주 안에서 하나 되게 하소서"였습니다. 그리고 2001년의 표어는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자"였습니다. 그 연속선상에서 2002년의 표어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자"로 정했습니다. 하나되고 새로워지는 일은 각각 1년씩이면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되고 새로워지려는 노력을 꾸준히 계속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나되고 새로워지려는 노력을 계속하면서도, 이제 다른 한편으로는 어두운 밖을 향해 빛을 발하기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안으로는 꾸준히 예배, 교육, 친교의 내실화를 꾀하면서, 밖으로는 선교와 봉사를 확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금년 교회표어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자"로 정한 것은 오늘 본문말씀 첫 절의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하신 말씀에 응답하자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해야 합니까? 그것은 본문 8절 말씀대로 우리가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제는 빛의 자녀요 빛이기 때문에 본문 11절에서 말하는 대로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빛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본문 9절이 그 답을 주고 있습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고 빛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본문 10절이 말해줍니다: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주님이 아니라 나를 기쁘게 하고, 우리의 영이 아니라 우리의 육이 즐거울 일만을 생각하고 추구하는 자들은 어둠의 자녀들입니다. 빛의 자녀들은 오로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늘 생각하고 또 분별할 줄 아는 이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12:2에서도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했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것은 동시에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들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빛의 자녀들은 단지 소극적으로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어둠의 일들을 폭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1절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한 것입니다. 여기서 책망한다는 것은 폭로한다,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12절에서 말하는 어둠의 자녀들이 "은밀히 행하는 그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을 폭로하고 쫓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는 것입니다.
빛은 무지의 어두움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하나님의 나라의 진리를 알지 못하여 죽어가는 불쌍한 심령들에게 진리의 빛을 발해야 합니다.
빛은 죄와 불의의 어두움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죄와 불의는 빛을 싫어하고 어두움을 좋아합니다. 악과 부정은 주로 어두운 곳에서 은밀히 이루어집니다. 그 어두운 곳에, 부패와 부조리의 구조악으로 그늘진 사회에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죄가 죄로, 불의가 불의로 드러나도록 의의 빛을 발해야 합니다.
빛은 절망의 어두움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만 맡겨진 세상은 희망이 없는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은 인간의 죄와 탐욕과 거짓이 너무나 강해서 선하고 의롭고 진실된 사람들이 견디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악이 더 큰 악을 낳고, 불의가 더 많은 불의를 양산하며, 불행이 더 심한 불행을 빚어내는 세상에서 착하고 약한 사람들은 자포자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세상에 희망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빛은 미움의 어두움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개인주의와 이기심과 불신으로 가득찬 세상은 갈등과 반목과 미움과 싸움밖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사회에서 사랑의 빛을 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13절의 말씀은 대단히 중요한 진리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이 구절의 앞부분인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난다"는 것은 빛은 책망 받을 모든 것, 즉 모든 악과 불의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이 구절의 뒷부분인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한 것은 사도 바울이 말을 너무 절약함으로써 그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어지긴 했으나 본래 빛이 아니고 어두움 가운데 있던 것이 빛을 받으면 드러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빛을 반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빛은 어두움 가운데 있던 것을 비춤으로써 그것이 또한 빛을 발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의 진리입니까? 사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복음에 무지했더라면 이 세상에서 아무 쓸모 없는 어두움의 존재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빛을 받음으로써 이제 우리가 비록 작지만 복음의 빛을 발할 수 있는 존재로 바뀐 것 아닙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우리가 이 진리의 빛, 의의 빛, 희망의 빛, 사랑의 빛을 잘 비추기만 하면 살만한 세상으로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꾸시는 것이며 우리는 그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 빛이십니다. 우리는 그 빛을 받아 반사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빛을 받지 못하면 어두움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하나님의 빛을 받으면 빛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전에는 어두움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빛을 받아 빛의 자녀들이 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발하시는 빛의 반사체가 되어 어두운 세상을 비추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빛을 받은 자로서 거역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신 말씀도 바로 세상을 향한 우리의 이 사명을 상기시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은 그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영적으로 잠자는 상태, 영적으로 죽어있는 상태에서 깨어 일어나 그리스도의 빛을 힘있게 비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부터 어둡고 잘 안 보이는 구석구석에도 선과 의와 진리의 빛을 비추어 은밀히 행해지는 부끄러운 일들이 있다면 모조리 드러내고 추방하며, 나아가 이 세상을 향하여,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빛을 발하는 일에 온 교우들이 함께 힘쓰는 이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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