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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어하고 고민하는 것 중에 하나는 우리 교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입니다. 그 중에서도 익명으로 글을 올릴 수 있는 토론방을 계속 존속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놓고 생각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솔직히 그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최근의 일은 아닙니다.
토론방의 글은 2003년 1월 28일의 글부터 올려져 있습니다. 그 전에도 수 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었지만 홈페이지를 새로 정리하면서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오늘 설교 원고를 쓰면서 확인해 보니 오늘 현재 14,362개의 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엄청난 양의 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글은 교회와 목사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들이 교회와 목사를 음해하려고 하는 의도를 가지고 쓰는 글들도 있지만 저는 모든 글이 그와 같은 안티크리스천에 의해서 씌여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 안티크리스천이라고 하여도 전에는 크리스천이었다가 교회와 목회자 때문에 상처를 받아 안티크리스천이 된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익명으로 쉽게 쓸 수 있는 글이기 때문에 함부로 막 쓰는 경향도 있고, 때문에 논지가 정확하지도 않고 더군다나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의지도 없이 그냥 화풀이 하듯 써대는 글이 대부분이어서 과연 이와 같은 토론의 장을 계속 열어 두는 것이 옳은 일인가에 대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회의적인 생각을 갖게 되지만 그래도 섣불리 게시판을 폐쇠하지 못하는 뭔가가 그곳에 있습니다.
상처받은 감정 때문에 사실이 부풀려지고 확대되고 심지어는 왜곡된 것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첫 단초를 교회와 우리 목회자들이 제공하였다는 것까지 부인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단초를 제공하고서도 그것이 부풀려지고 확대되고 좀 왜곡되었다고 그것만을 문제삼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닌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요즘 기업은 브랜드 이미지를 가지고 광고를 합니다. 브랜드 이미지가 좋아야 사업에 성공한다고 생각하여 자기 회사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화물트럭을 운전하는 기사들에게 절대로 양보운전 할 것을 교육하기까지 합니다. 거칠은 운전으로 다른 운전자를 기분 나쁘게 하면 그 때문에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까지 나빠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인간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그 동안 우리 한국 교회가 영적인 불모지와 같은 이 땅에 깊이 뿌리를 박고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기독교와 교회 그리고 교인이라고 하는 브랜드 이미지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특히 초기의 기독교가 그런 면에서 제일 좋았습니다. 기독교인과 교회는 민족의식이 있었고 정직하였으며 용감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와 교인들에 대한 그와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우리 한국교회는 세계 선교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성장을 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 한국의 개신교회는 쇠퇴일로에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 개신교파들이 정부당국에 보고한 교세통계에 따르면, 우리 한국 개신교인은 1995년 1,450만명에서 2001년 1,282만 명으로, 지난 5년 동안 약 11.6%가 감소하였습니다. 교세통계에 허수가 많이 들어간다는 면을 고려할 때 교인들의 숫자는 별로 신빙성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지난 5년 동안 약 11.6%가 줄었다는 것은 제법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 숫자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몸으로 그와 같은 사실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감소추세가 점점 더 심해 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우리 중에 아마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그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교회와 교인들에 대한 브랜드 이미지가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소금이어야 할 한국교회의 상당수가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버려져서 세상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있는 우리 한국 교회의 생생한 모습을 바로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의 자유게시판에서 우리는 날마다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회와 목회자를 마음 놓고 짓밟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 게시판 밖에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 게시판에 몰려와 화풀이 하듯 글을 올려 놓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글이 다 정확하지도 않고, 때로는 부풀려 있고, 때로는 부정확하고, 때로는 악의에 찬 빈정거림으로 포장이 되어 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와 같은 게시판을 폐쇠하면 우리 한국 교회와 교인 특히 우리 목회자들의 개혁과 회개의 단서와 단초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참으로 위험하고 힘듦에도 불구하고 게시판을 열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글 하나 하나의 옳고 그름을 떠나 지금 우리 한국 교회는 개혁하여야만 하고 회개하여야만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재빨리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회개하고 개혁하지 않으면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1999년 5월 ‘생사를 건 교회개혁’이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교회개혁의 화두를 한국교회에 던졌습니다. 당시까지만해도 그와 같은 화두를 던진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던 때였지만 그와 같은 도전을 통하여 감사하게도 이제는 그와 같은 개혁의 화두가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주제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만으로도 출판의 중요한 의도 하나를 달성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개혁의 핵심과 목표는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교회’였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셔야 하는데 타락한 우리 인간들이 교회를 섬기다보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 주인이 되지 못하시고 사람이 주인 노릇을 하는 이상한 교회가 되었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조직과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이 잘못된 조직과 제도를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년단축, 원로폐지, 재신임, 임기제, 그리고 당회의 민주화와 팀목회와 교회 재정의 투명화와 같은 것들을 제안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주장을 하게 되면서부터 제법 적지 않은 배척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어느 교단과 교회에서는 이미 약속된 집회를 취소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압력과 보이지 않는 압력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그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꼭 제 책 때문만이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제 책이 출판된 이후 적지 않은 교회 안에서 분란이 일어났습니다. 목회자와 당회에 대하여 옳지 못하고 지나친 일과 제도에 대하여 지적하는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란이 꼭 좋은 것은 아니지만 분란을 두려워하여 무조건 옳지 못한 일을 덮고만 있는 것은 더 좋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평화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평화가 아닙니다. 거짓된 평화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이 땅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려고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여기서 말씀하고 계시는 화평은 거짓된 화평입니다. 옳지 못한 일을 무조건 덮어만 두고 그것을 화평이라고 말하는 것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진정한 의미의 화평이 아니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진정한 화평을 위하여 때로는 검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싸워야 할 때 싸우지 않으면 진정한 화평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진정한 의미의 평화를 위한 분쟁은 힘들어도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환자의 생명을 위하여 수술의 고통도 감수해야만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 우리 한국 교회는 그와 같은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하여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수술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이 따릅니다. 물론 잘못하면 수술을 받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두려워 수술을 회피한다면 사망의 확률은 그보다 훨씬 더 높아 질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기득권자들이 그와 같은 점을 들어 자신들을 보호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은 생각과 논리입니다. 진정한 화평은 검을 통해서 얻는다는 역설적인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와 같은 책을 출판하고 그와 같은 주장을 하게 되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중요한 것 하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와 같은 개혁을 반대하는 교회와 사람들도 있지만 그와 같은 개혁을 찬성하고 동조해 주는 분들도 많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그와 같은 주장을 하게 되면 기득권층에 있는 목사와 장로는 무조건 모두가 다 반대를 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믿음 없는 생각이었고 교만한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목사와 장로는 무조건 다 자기 자리만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저의 생각은 틀린 생각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저보다도 더 깨끗하고 반듯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사를 건 교회개혁’을 출판한 후 지금까지 4년 반 동안 약 5천 명 가까운 장로님들에게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것이 놀라웠습니다. 내가 무슨 주장을 하는지 뻔히 아시는 분들이 저를 초청하여 강연을 들으려고 하였다는 것이 저에게는 참으로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사실을 통하여 교회를 개혁하기 위하여 생사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조금은 교만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 개혁에 생사를 걸어야 하겠다고 생각한 저변에는 목사 특히 장로의 대부분은 개혁을 싫어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교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제게 참으로 중요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생사를 건 교회 개혁’이라는 책을 출판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느 교회 집사님 한분으로부터 팩스 하나를 받았습니다. 제가 책에 쓴 주장에 공감을 하여 제 책 15권을 사서 장로님들에게 한권씩 다 돌려 드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책 때문에 그 교회안에 분란이 일어나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팩스를 받은지 얼마되지 않아 그 집사님으로부터 헌신예배로 강사로 와 줄 수 있느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제가 강사로 가는 것을 기화로 그 교회 안에 본격적인 분란이 일어나게 되지 않을까하는 염려 때문에 선배였던 그 교회 목사님에게 전화를 하여 제가 강사로 가도 괜찮겠는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목사님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그 교회에 갔을 때 저는 참으로 놀라운 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 교회 장로님들이 제 책을 읽으시고 제 주장이 옳다시며 그 동안 당회와 장로들에게 편중되어 있던 권한들을 스스로 내려 놓으시고 교회를 민주화하는 일을 제가 시무하고 있던 교회보다 먼저 시작 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참으로 감사하게도 그 이후로 저는 꽤 많은 교회의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에 의하여 그와 같은 개혁적인 조치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긍정적인 현상들을 보면서 교회개혁을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수술을 부정하지 않지만 꼭 수술만이 유일한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싸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연합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통해서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하여 같은 뜻을 가지고 교회를 바르고 건강하게 개혁하려고 하는 세력을 늘려가는 방법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올해 말까지 준비를 하고 내년 초부터 개 교회의 목사와 장로를 초청하여 하는 건강한 교회 세미나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개 교회의 목사와 장로가 함께 참석하여 같이 공부하고 기도하면서 그 동안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들이 교회의 주인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과 교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위하여 잘못 살아왔던 삶을 함께 눈물 흘리며 회개할 수 있다면, 그리고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다 하나님 앞에 내려 놓고 하나님만이 주인이 되시는 그리고 진정으로 목사와 장로가 하나님과 교회 그리고 교인들을 섬기는 사람이 될 것을 결단할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한 일이 우리 한국 교회 안에 일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우리 목사 장로들이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고 또 실제로 잘못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 목사 장로들이 다 도둑놈이 아닙니다. 우리 목사 장로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처음 안수 받을 때 순수했던 마음과 신앙이 누구에게나 다 있기 마련이어서 그것을 건들어 주고 그 신앙에 정면으로 도전하면 저는 많은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초심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 초심을 회복케 하는 일을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가 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일이 하나님을 위한 잔칫상 중에 반드시 올려져야 할 중요한 메뉴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천안에 수양관을 짓게 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가 바로 그와 같은 사역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안은 지역적으로도 매우 유리합니다. 서울이나 서울 이북 쪽에 그런 수양관이 있다면 아래 지방의 교회는 참여가 좀 불편할 것입니다. 그러나 천안에 수양관이 생기면 전국 어디서나 참여하기가 쉽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와 같은 사역을 위하여 돈이 좀 들어도 아름다운 수련원을 짓고 전국의 뜻이 있는 목사님과 장로님들을 초청하여 좋은 환경 속에서 그와 같은 사역을 감당한다면 틀림없이 그와 같은 사역을 통하여 우리 한국 교회가 보다 건강해지고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건강한 교회운동에 뜻이 있고 관심있는 분들이 좋은 선교회를 만들어 그와 같은 일이 있을 때마다 물질로도 후원하고 기도로도 후원하고 몸으로도 후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 사역을 하다보면 우리 교회는 자동적으로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교회가 건강하면 세상이 건강해 집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교회가 타락하면 세상이 어두어지고 썩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세상을 밝고 건강하고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이 땅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그 중요한 사명을 잃어 버리고 세상과 똑같이 썩고 어두어져 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부끄럽지만 오늘날 우리 교회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 당시의 교회를 많이 닮아가고 있습니다. 교회의 사명에는 관심이 없고 교회 안에서 자기의 이권만을 챙기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당시의 교회를 닮았습니다.
예수님은 너무도 마음이 아프셔서 친히 채찍을 드시고 저들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개혁하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교회다워지기를 그 무엇 보다도 원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은 때에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가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고 많은 교회와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주의 몸된 교회를 깨끗하게하고 건강하게 하는 사역을 감당한다면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와 헌신이 있어서 그와 같은 귀한 사역을 감당하는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와 교인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토론방의 글은 2003년 1월 28일의 글부터 올려져 있습니다. 그 전에도 수 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었지만 홈페이지를 새로 정리하면서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오늘 설교 원고를 쓰면서 확인해 보니 오늘 현재 14,362개의 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엄청난 양의 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글은 교회와 목사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들이 교회와 목사를 음해하려고 하는 의도를 가지고 쓰는 글들도 있지만 저는 모든 글이 그와 같은 안티크리스천에 의해서 씌여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 안티크리스천이라고 하여도 전에는 크리스천이었다가 교회와 목회자 때문에 상처를 받아 안티크리스천이 된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익명으로 쉽게 쓸 수 있는 글이기 때문에 함부로 막 쓰는 경향도 있고, 때문에 논지가 정확하지도 않고 더군다나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의지도 없이 그냥 화풀이 하듯 써대는 글이 대부분이어서 과연 이와 같은 토론의 장을 계속 열어 두는 것이 옳은 일인가에 대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회의적인 생각을 갖게 되지만 그래도 섣불리 게시판을 폐쇠하지 못하는 뭔가가 그곳에 있습니다.
상처받은 감정 때문에 사실이 부풀려지고 확대되고 심지어는 왜곡된 것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첫 단초를 교회와 우리 목회자들이 제공하였다는 것까지 부인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단초를 제공하고서도 그것이 부풀려지고 확대되고 좀 왜곡되었다고 그것만을 문제삼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닌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요즘 기업은 브랜드 이미지를 가지고 광고를 합니다. 브랜드 이미지가 좋아야 사업에 성공한다고 생각하여 자기 회사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화물트럭을 운전하는 기사들에게 절대로 양보운전 할 것을 교육하기까지 합니다. 거칠은 운전으로 다른 운전자를 기분 나쁘게 하면 그 때문에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까지 나빠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인간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그 동안 우리 한국 교회가 영적인 불모지와 같은 이 땅에 깊이 뿌리를 박고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기독교와 교회 그리고 교인이라고 하는 브랜드 이미지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특히 초기의 기독교가 그런 면에서 제일 좋았습니다. 기독교인과 교회는 민족의식이 있었고 정직하였으며 용감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와 교인들에 대한 그와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우리 한국교회는 세계 선교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성장을 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 한국의 개신교회는 쇠퇴일로에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 개신교파들이 정부당국에 보고한 교세통계에 따르면, 우리 한국 개신교인은 1995년 1,450만명에서 2001년 1,282만 명으로, 지난 5년 동안 약 11.6%가 감소하였습니다. 교세통계에 허수가 많이 들어간다는 면을 고려할 때 교인들의 숫자는 별로 신빙성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지난 5년 동안 약 11.6%가 줄었다는 것은 제법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 숫자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몸으로 그와 같은 사실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감소추세가 점점 더 심해 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우리 중에 아마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그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교회와 교인들에 대한 브랜드 이미지가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소금이어야 할 한국교회의 상당수가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버려져서 세상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있는 우리 한국 교회의 생생한 모습을 바로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의 자유게시판에서 우리는 날마다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회와 목회자를 마음 놓고 짓밟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 게시판 밖에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 게시판에 몰려와 화풀이 하듯 글을 올려 놓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글이 다 정확하지도 않고, 때로는 부풀려 있고, 때로는 부정확하고, 때로는 악의에 찬 빈정거림으로 포장이 되어 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와 같은 게시판을 폐쇠하면 우리 한국 교회와 교인 특히 우리 목회자들의 개혁과 회개의 단서와 단초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참으로 위험하고 힘듦에도 불구하고 게시판을 열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글 하나 하나의 옳고 그름을 떠나 지금 우리 한국 교회는 개혁하여야만 하고 회개하여야만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재빨리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회개하고 개혁하지 않으면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1999년 5월 ‘생사를 건 교회개혁’이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교회개혁의 화두를 한국교회에 던졌습니다. 당시까지만해도 그와 같은 화두를 던진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던 때였지만 그와 같은 도전을 통하여 감사하게도 이제는 그와 같은 개혁의 화두가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주제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만으로도 출판의 중요한 의도 하나를 달성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개혁의 핵심과 목표는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교회’였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셔야 하는데 타락한 우리 인간들이 교회를 섬기다보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 주인이 되지 못하시고 사람이 주인 노릇을 하는 이상한 교회가 되었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조직과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이 잘못된 조직과 제도를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년단축, 원로폐지, 재신임, 임기제, 그리고 당회의 민주화와 팀목회와 교회 재정의 투명화와 같은 것들을 제안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주장을 하게 되면서부터 제법 적지 않은 배척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어느 교단과 교회에서는 이미 약속된 집회를 취소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압력과 보이지 않는 압력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그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꼭 제 책 때문만이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제 책이 출판된 이후 적지 않은 교회 안에서 분란이 일어났습니다. 목회자와 당회에 대하여 옳지 못하고 지나친 일과 제도에 대하여 지적하는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란이 꼭 좋은 것은 아니지만 분란을 두려워하여 무조건 옳지 못한 일을 덮고만 있는 것은 더 좋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평화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평화가 아닙니다. 거짓된 평화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이 땅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려고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여기서 말씀하고 계시는 화평은 거짓된 화평입니다. 옳지 못한 일을 무조건 덮어만 두고 그것을 화평이라고 말하는 것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진정한 의미의 화평이 아니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진정한 화평을 위하여 때로는 검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싸워야 할 때 싸우지 않으면 진정한 화평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진정한 의미의 평화를 위한 분쟁은 힘들어도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환자의 생명을 위하여 수술의 고통도 감수해야만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 우리 한국 교회는 그와 같은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하여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수술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이 따릅니다. 물론 잘못하면 수술을 받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두려워 수술을 회피한다면 사망의 확률은 그보다 훨씬 더 높아 질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기득권자들이 그와 같은 점을 들어 자신들을 보호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은 생각과 논리입니다. 진정한 화평은 검을 통해서 얻는다는 역설적인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와 같은 책을 출판하고 그와 같은 주장을 하게 되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중요한 것 하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와 같은 개혁을 반대하는 교회와 사람들도 있지만 그와 같은 개혁을 찬성하고 동조해 주는 분들도 많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그와 같은 주장을 하게 되면 기득권층에 있는 목사와 장로는 무조건 모두가 다 반대를 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믿음 없는 생각이었고 교만한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목사와 장로는 무조건 다 자기 자리만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저의 생각은 틀린 생각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저보다도 더 깨끗하고 반듯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사를 건 교회개혁’을 출판한 후 지금까지 4년 반 동안 약 5천 명 가까운 장로님들에게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것이 놀라웠습니다. 내가 무슨 주장을 하는지 뻔히 아시는 분들이 저를 초청하여 강연을 들으려고 하였다는 것이 저에게는 참으로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사실을 통하여 교회를 개혁하기 위하여 생사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조금은 교만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 개혁에 생사를 걸어야 하겠다고 생각한 저변에는 목사 특히 장로의 대부분은 개혁을 싫어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교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제게 참으로 중요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생사를 건 교회 개혁’이라는 책을 출판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느 교회 집사님 한분으로부터 팩스 하나를 받았습니다. 제가 책에 쓴 주장에 공감을 하여 제 책 15권을 사서 장로님들에게 한권씩 다 돌려 드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책 때문에 그 교회안에 분란이 일어나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팩스를 받은지 얼마되지 않아 그 집사님으로부터 헌신예배로 강사로 와 줄 수 있느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제가 강사로 가는 것을 기화로 그 교회 안에 본격적인 분란이 일어나게 되지 않을까하는 염려 때문에 선배였던 그 교회 목사님에게 전화를 하여 제가 강사로 가도 괜찮겠는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목사님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그 교회에 갔을 때 저는 참으로 놀라운 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 교회 장로님들이 제 책을 읽으시고 제 주장이 옳다시며 그 동안 당회와 장로들에게 편중되어 있던 권한들을 스스로 내려 놓으시고 교회를 민주화하는 일을 제가 시무하고 있던 교회보다 먼저 시작 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참으로 감사하게도 그 이후로 저는 꽤 많은 교회의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에 의하여 그와 같은 개혁적인 조치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긍정적인 현상들을 보면서 교회개혁을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수술을 부정하지 않지만 꼭 수술만이 유일한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싸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연합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통해서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하여 같은 뜻을 가지고 교회를 바르고 건강하게 개혁하려고 하는 세력을 늘려가는 방법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올해 말까지 준비를 하고 내년 초부터 개 교회의 목사와 장로를 초청하여 하는 건강한 교회 세미나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개 교회의 목사와 장로가 함께 참석하여 같이 공부하고 기도하면서 그 동안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들이 교회의 주인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과 교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위하여 잘못 살아왔던 삶을 함께 눈물 흘리며 회개할 수 있다면, 그리고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다 하나님 앞에 내려 놓고 하나님만이 주인이 되시는 그리고 진정으로 목사와 장로가 하나님과 교회 그리고 교인들을 섬기는 사람이 될 것을 결단할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한 일이 우리 한국 교회 안에 일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우리 목사 장로들이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고 또 실제로 잘못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 목사 장로들이 다 도둑놈이 아닙니다. 우리 목사 장로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처음 안수 받을 때 순수했던 마음과 신앙이 누구에게나 다 있기 마련이어서 그것을 건들어 주고 그 신앙에 정면으로 도전하면 저는 많은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초심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 초심을 회복케 하는 일을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가 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일이 하나님을 위한 잔칫상 중에 반드시 올려져야 할 중요한 메뉴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천안에 수양관을 짓게 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가 바로 그와 같은 사역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안은 지역적으로도 매우 유리합니다. 서울이나 서울 이북 쪽에 그런 수양관이 있다면 아래 지방의 교회는 참여가 좀 불편할 것입니다. 그러나 천안에 수양관이 생기면 전국 어디서나 참여하기가 쉽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와 같은 사역을 위하여 돈이 좀 들어도 아름다운 수련원을 짓고 전국의 뜻이 있는 목사님과 장로님들을 초청하여 좋은 환경 속에서 그와 같은 사역을 감당한다면 틀림없이 그와 같은 사역을 통하여 우리 한국 교회가 보다 건강해지고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건강한 교회운동에 뜻이 있고 관심있는 분들이 좋은 선교회를 만들어 그와 같은 일이 있을 때마다 물질로도 후원하고 기도로도 후원하고 몸으로도 후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 사역을 하다보면 우리 교회는 자동적으로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교회가 건강하면 세상이 건강해 집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교회가 타락하면 세상이 어두어지고 썩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세상을 밝고 건강하고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이 땅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그 중요한 사명을 잃어 버리고 세상과 똑같이 썩고 어두어져 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부끄럽지만 오늘날 우리 교회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 당시의 교회를 많이 닮아가고 있습니다. 교회의 사명에는 관심이 없고 교회 안에서 자기의 이권만을 챙기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당시의 교회를 닮았습니다.
예수님은 너무도 마음이 아프셔서 친히 채찍을 드시고 저들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개혁하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교회다워지기를 그 무엇 보다도 원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은 때에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가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고 많은 교회와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주의 몸된 교회를 깨끗하게하고 건강하게 하는 사역을 감당한다면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와 헌신이 있어서 그와 같은 귀한 사역을 감당하는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와 교인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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