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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설교 (시편 49편)

by 【고동엽】 2021. 11. 28.
12절하고 20절은 후렴구가 거의 비슷합니다.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오늘 주제는 사람들에게 신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재산이 죽음의 순간에 아무런 구원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 을 오늘 가르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시편을 읽고 또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럼 하나님 돈이 나쁘단 말입니까 돈이 그렇게 나쁜 거에요 이렇게 하면서 덤벼들면 안 됩니다. 이 시편은 돈을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돈 자체를 하나님 대신 의지하는 사람들은 종말의 순간에 구원을 전혀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돈을 사용해야 합니다. 남을 위해서 사용한 그 액수만큼 그는 하나님께 부자와 부자 아닌 자로 인정받는 겁니다. 내가 나의 이 크레딧 카드 사용한 것을 보니까 이웃 사랑에 대부분 내 돈을 바쳤다 그러면 그것은 부자인 겁니다. 얼마나 움켜쥐고 있는가가 부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잠시 움켜쥐고 있는 것은 결정적인 때 쓰기 위해서 움켜쥐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매일 쓰지 아니하면 매주일 하나님께 거룩한 낭비를 일삼지 않는 사람들은 많이 벌었을 때 쓰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만민들아 확실한 것을 깨닫길 바랍니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깨닫길 바랍니다 죽음의 순간은 여러분 발꿈치 뒤에 와 있습니다.


5절입니다. 죄악이 내 뒷 발꿈치 뒤에 서서 나를 따라 환란의 날에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나는 시적 자아입니다. 이 시의 주인공입니다. 이 나는 15절에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 이 나는 어떤 사람이냐면 3절 보시길 바랍니다. 지혜의 사람, 명철의 사람, 오묘한 말을 깨닫는 사람. 이 나는 지혜와 명철을 깊이 묵상하는 사람이고 오묘한 말을 풀어내는 사람인데 지혜와 명철은 자기 목숨의 한시성, 자기 목숨이 끝이 있음을 늘 명상하고 그것을 의식하고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누가 지혜로운 사람이냐면 지금 내가 열심히 살지만 열심히 사는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의미없어 지는 날이 온다는 것을 깨닫는 자입니다. 그것을 의식하고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저도 열심히 글을 쓰고 공부하고 목회도 열심히 하지만 어느 순간에 이 모든 것, 내가 지금 가진 통장에 있는 돈, 아파트, 내 이름으로 등록된 전지. 저희 속 생각에 그 집이 영영이 있고 그 거처가 대대에 미치리로다 하여 그 전지를 자기 이름으로 등록해놓고 있을지라도 순식간에 짐승처럼 망한다는 겁니다. 참 중요한 말입니다. 10절 보시길 바랍니다. 그는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 그들의 재물은 남에게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되리로다. 이게 참 부자가 앞으로 깨달아야 할 것인데 하나님께 이웃에게 거룩하게 낭비하기 위해서 재산을 갖지 않는 부자들은 그 재산이 타인에게 끼친다 남들이 다 가져간다는 말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합당하게 벌게 하지 않는 재산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벌려진 지갑 안에 있는 재산이 아닌 재산은 결국은 내가 쓰지도 못하고 타인이 빼앗아가고 나는 하나님을 향해서 이웃을 향해서 한 푼도 쓰지 않고 죽는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죽음이 순식간에 찾아오기 때문에 오늘밤에 내가 결산한다 할지라도 부끄럽지 않게 쓰다가 죽자라는 겁니다 오늘 시편의 내용은. 이 돈을 쌓아놓더라도 첫째 하나님 앞에서 심판대 앞에서 돈이 절대로 보석금으로 활용되지 못합니다. 여기 보기실 바랍니다. 6절에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그런데 이것 하나님 말고는 다 됩니다. 하나님 앞이 아니고는 돈으로 다 됩니다. 지금 북한에 있는 그 동포 한 명을 데려오는데 1500달러 정도 든다고 합니다. 1500달러 정도 주면 함경도 누구를 정확하게 데리고 온다고 합니다. 그 1500달러가 어떻게 해서 나왔냐면 도당 책임자에게 주는 백달러 압록강 초병에게 주는 300달러 그리고 중국 브로커에게 200달러 그래서 1500달러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대개 미국의 교포들을 둔 사람들이 식구들 다 데려 옵니다. 뉴욕에 전에 한 일곱 가족이 뉴욕에서 회동을 했는데 여기는 돈으로 다 한 겁니다. 하나님 빼고는 돈으로 다 됩니다. 중국 공산당도 돈으로 다 북한 노동당도 돈으로 다 쉰들러 리스트에서 그 잔혹한 나치 군대도 돈 앞에 꼼짝 못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 앞에서는 돈이 아무런 속전의 힘이 없고 속량의 힘이 없고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산 사람만이 영접당합니다. 짐승처럼 살다가 짐승처럼 죽는 이 불쌍한 인생에 비해서 우리 하나님은 음부에서 사망의 목자 밑에서 다스림 받는 사람과 달리 15절에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십니다. 이 나는 누구입니까? 시적 자아인데 벌써부터 수금과 벌써부터 비유에 벌써부터 명철에 이 지혜에 마음을 두고 자기 목숨과 자기 재산의 한계를 깨닫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을 향해서 아무런 속량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재산에 너무 마음을 쏟지 말고 또 두려워하지 말라 다른 사람이 치부하여 그 집 영광이 더할 때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라 지혜를 가진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실제로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이 이점에서 만일에 성공한다면 진짜 한국 기독교인들은 천국이 있음을 믿는 사람들로 인정받을 겁니다. 지금은 우리 한국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 천국을 믿는다고 믿지 않습니다. 가짜 믿음이라고 보죠. 진짜 천국을 믿으면 사람이 치부하여 그 집에 영광이 더할 때 진짜 천국을 믿으면 매주 기사에 이런 기사가 실립니다. 그리스도인 누구가 공공의 선을 위해서 죽을 때 재산을 다 바친 이야기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거룩하게 낭비하는 이런 낭비의 신앙을 모르기 때문에 그냥 기독교인이건 비기독교인이건 쌓아서 둡니다. 자기 당대에 자식에게는 애정의 기억이 남아있지만 손자, 증손자 내려가면 아무것도 없고 그냥 족보의 이름으로 내려가는 재산이거든요. 자기 자식들은 교육으로 사랑을 하면 됩니다. 혼자 먹고살 만큼 공부시키고 남는 것은 내 다른 자식, 족보의 이름으로 나에게 맺어진 자식이 아닌 나의 수많은 자식들에게 거룩하게 낭비를 하면 하나님 앞에 가면 참 정말로 그대는 부자일세 정말로 그대는 마음이 따뜻하고 그대는 이 땅의 수많은 고아들의 아버지였습니다 이런 평가를 받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께서 자녀를 결혼시킬 만큼은 남겨놓으시고 살림살이, 분가시킬 만큼 남겨놓고 거기까지가 부모의 책임입니다. 부모의 책임은 자녀를 교육시키고 분가를 시킬 만큼 갖는 것, 그 외에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낭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돈을 쌓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은 졸지에 죽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2장 20절에 우리 예수님께서 이 시편 49편을 깊이 묵상하다가 한 이야기입니다. 네 목숨을 순식간에 찾는다면 어리석은 자여 네가 네 창고에 그렇게 가득 쌓아놓고 예비한 것이 네 것이 되겠느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제일 어리석다고 생각한 사람이 맹목적으로 재산을 쌓아놓고 이웃에게 베풀지 않는 그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에게 한 푼도 주지 않은 부자 예수님의 눈 속에 있는 부자는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속에 신적인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부자는 그렇게 주지육림의 잔치를 벌이면서 자기 집 앞에서 헌 데를 빨고 있는 거지에게 한 푼도 주지 않은 악덕스러운 부자가 예수님의 비유 속에 나오는 부자입니다. 그런데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했다는 말은 나사로가 죽어서 그 많은 돈으로 자기도 구속받지 못했고 자기 남은 자식도 구속받지 못했고 자기 자녀도 형제들도 아무도 구속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나사로의 비유하고 창고에 3년 동안 쌓아놓고 있던 어리석은 부자 비유에 시편 49편이 녹아 있습니다. 짐승처럼 죽는 그들은 어떻게 됩니까? 양같이 저희를 음부에 두기로 작정하고 사망이 저희를 다스리게 됩니다. 그들의 아름다움은 음부에서 소멸되며 그 거처조차 없어져 버립니다. 그에 비해서 자기 목숨과 생명의 한계를 깨닫고 거룩한 낭비를 일삼았던 사람들은 하나님이 영접하십니다. 그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합니다. 하나님이 속량합니다. 재산이 속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이 시편은 재산이 결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칭찬을 많이 받게 되고 친구를 많이 얻게 되고 살아있는 생전에 그 사람은 남에게 계속 축복을 듣고 자기 스스로도 축복받았다고 확신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또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 참 지혜로운 말이다 이렇게 말의 칭찬까지 듣습니다. 그런데 죽는 순간에 재산 많은 사람들은 짐승처럼 멸망하고 음부 아래에서 사망의 목자 밑에 귀속되고 지혜와 명철을 묵상했던 이 시인은 하나님의 영접을 받게 되고 그 영혼은 음부에서 속량해주는 은총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께서 잘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나 뼈 빠지게 돈 버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이 사람이 자기 인간성을 훼손시켜가면서 번 돈을 누가 가져가냐면 아들 같으면 며느리가 다 가져가고 딸 같으면 사위가 다 가져갑니다. 정말로 다 가져갑니다. 그 당대에 안 가져가면 자기 죽었을 때 가져가게 됩니다. 너무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돈 버는 데에 너무 시간 보내지 말고 관계성을 돌아보고 어차피 이 많은 돈 내 돈 안 됩니다. 많이 벌면 헌금도 많이 해야 되기 때문에 아까운 생각이 더 드니까 인간성 훼손하지 않을 만큼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즉 나의 가장 일차적인 인간관계 훼손하지 않을 만큼 사는 것, 그게 자기가 벌 수 있는 최고의 액수입니다. 지금 우리가 돈을 더 벌려면 벌 수 있습니다. 정신없이 뛰고 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굶어 죽지 않게 해 주십니다. 그러면 그 남는 시간에 어떻게 합니까? 동정심을 계속 드러내고 이웃을 돌아보는 따뜻한 자비의 마음 사랑의 온도를 높이고 나의 가족들을 돌보고 친척을 돌보고 우리 옆집에 있는 사람 돌보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최고 좋습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영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찬송가 545장 볼까요? 저는 이것을 묵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가는 밝은길이 3절 내가 천성 바라보고 가까이 왔으니 아버지의 영광 집에 가 쉴 맘 있도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터이니 영광 나라 계신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 여러분 순식간에 이것을 우리가 불러야 합니다. 그냥 몇 시간 안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듣고 눈을 감을 만큼 우리가 사랑해야 되겠죠? 여러분 그런데 지금 아직까지 나는 젊었기 때문에 그 순간은 나에게 먼 미래에 속해있기 때문에 지금 나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혹시 그렇게 생각할지라도 세월은 금방 지나갑니다. 사람이 재산을 모아서 거짓 영광이 더할 때에도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래서 혹시 여러분 친구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약을 올릴 수 있습니다. 김집사 두레교회 가서 재산 좀 늘었어 하면서 나는 축복만민교회 가서 벌써 아파트 두 채 늘었고 곧 세 채 되고 이러면서 약을 올릴 수 있는데 그때 여러분께서 너무 두려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내가 너무 청교도처럼 살았네 이렇게 생각하면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께서 부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으면 교회 다른 곳에 간다고 하더라도 부자 되게 하실 것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 두려움 갖거든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장례식을 할 때 시신을 그대로 큰 관에 넣어 놓고 사람들이 시신 손을 한 번 잡아주고 가는 예배가 있습니다. 영결예배와는 다릅니다. 그 마지막 작별예배, 한 번 쳐다본다는 뜻입니다. 그 장면을 가만히 보면 드라큘라처럼 화장을 해서 하얗게 해 놓습니다. 그때 가만히 보면 정말로 아무것도 못 가져갑니다. 여러분이 그 장면을 보면 아무것도 지금 우리가 여기 가졌던 모든 것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이 칭찬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역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이것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아이고 빛 못봐도 좋아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지라도 우리 영혼은 영원을 사모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면 괴로움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20절에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오늘 이 시편 시인은 깨닫는 사람, 삶의 오묘함을 터득한 사람, 자기 목숨과 생명의 한시성, 덧없음을 깨달은 사람 이런 사람들은 허무주의로 삽니까? 이런 사람들은 돈을 벌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돈을 법니다. 돈을 버는데 그 돈을 버는 목적이 자기 자신만을 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신 모든 재능은 이웃을 위해서 거룩하게 낭비하도록 주신 달란트라는 것을 알고 다시 말해서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살 수 없는 사람, 자기 목숨의 한계를 깨닫는 사람, 뒷골이 뻐근하고 갑자기 심장이 막 뛰는 이런 순간이 금방 온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 여러분 그래서 십일조를 하고 헌금을 하고 남을 도와주는 일은 우리 영혼에 너무나 좋은 훈련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존귀에 처했을 때 순식간에 멸망하는 사람들을 신문에서 많이 보고 있습니다. 존귀의 절정, 부귀영화의 절정에서 짐승처럼 멸망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그 사람들은 성경을 해설하는 해설기사들입니다. 신문에 모든 기사는 성경 진리를 해설하고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존귀에 처했을 때 멸망하는 사람이 아 부귀영화가 인간의 생명을 절대로 구원할 수 없구나 순식간에 깨닫게 해줍니다. 지금 국회의원 20명이 들어가 있습니다. 시장, 차관급 이상까지 하면 지금 서울 구치소가 너무 들끓습니다. 그런데 그런 감옥이 영구적으로 있는 곳이 지옥입니다. 지옥이 반드시 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악한 삶을 사는 사람을 지옥으로 보냅니다. 우리가 그것을 장난삼아서 가볍게 여기면 안 됩니다. 존귀함으로 인생을 완성하여 주님의 영접을 받는 사람은 주님의 잔치에 올라갑니다. 이 차이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신앙으로 사는 그 성도의 고달픈 영혼을 이렇게 위로하는 겁니다. 만일에 지상에서 다 독점하고 다 가지고 모든 것을 다 움켜지고 사는 데도 천국이 그에게 보장된다고 하면 그런 것은 천국이 이미 아닙니다. 오늘 이 하루도 여러분 거룩한 낭비를 일삼기 위해서 열심히 소득을 버시길 바랍니다. 존귀에 처했을 때 멸망당하는 준비되지 않은 영혼 되지 말고 가장 존귀의 정점에 섰을 때 이 권력의 무상함과 이 부귀의 무상함과 내 목숨의 덧없음을 순식간에 깨닫는 오묘한 말을 터득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부자가 되기 위해서 백방으로 애쓰는 이 시대 속에 살기 때문에 우리 또한 아버지 하나님 재산을 열 때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가 많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보다 몇 십 배 빠른 속도로 아파트를 여러 채 가지고 부동산을 가지고 아버지 주식투자를 해서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을 때 갑자기 낙오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내가 너무나 원칙대로 살고 너무나 내가 순진하게 성경대로 믿어서 가난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주님 오늘 말씀은 말합니다. 존귀에 처했으나 아버지 하나님 그 명철과 지혜를 묵상하지 못하여 멸망하는 짐승 같은 인생을 보았습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가 깨끗하며 거룩한 낭비를 위해서 돈을 버는 소득을 버는 깨끗한 부자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의 힘과 능력을 다하여 부를 이루되 하나님 우리 자식에게만 남겨주는 것이 아니라 이 땅 위의 수많은 자식들 형제자매들을 위해서 거룩하게 낭비할 수 있는 넓은 도량의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천국 구좌에 우리 이름으로 아버지 이 거룩한 낭비를 일삼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 사랑하는 교우들 축복하여 주시옵시고 아버지 이 자매님들의 기도회를 축복하시고 우리 형제님들을 일터에서 기도할 때 축복하시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기도제목으로 기도할지라도 아버지 그들을 낭패로 이끌지 마시고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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