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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새벽기도. (시편 48편)

by 【고동엽】 2021. 11. 28.

시편 46, 47, 48은 시온산 거룩한 산이 신성불가침 구역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3부작이죠? 시편 46, 47, 48은 3부작의 시편으로서 신성불가침 구역에 사시는 시온,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시온은 신성불가침 구역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진리라는 말은 우주의 중심원리죠? 우주를 존재하도록 만드는 지탱하는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리 그 자체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시온산은 이방인의 압제로부터 안전할 뿐만 아니라 또한 온 땅 천재지변으로부터 안전할 뿐만 아니라 또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전쟁으로부터 안전하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와 자연을 온전히 송두리째 통치하시는 왕이시기 때문이다 그런 주제입니다. 이것도 절대적 평안이죠? 여러분 시편 46, 47, 48 모두가 절대적 평안입니다. 다시 말해서 외부 환경과 상황에 지배를 받지 않는 절대적 평안 하나님의 왕적 통치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가장 놀라운 것은 여러분이 예수님의 왕적 통치 다스림 안에 들어갈 때 가장 완벽하게 우선에 맛보는 통치의 영역이 뭐냐면 평안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여러분에게 임하면 여러분에게 평안과 기쁨이 옵니다. 이게 바로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에 통치 속에 들어갔다면 평안과 기쁨, 환경을 압도하는 절대적 평안과 기쁨이 하나님의 다스림에서 맛보는 생생한 경험들입니다.


하나님은 광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성에서 극진히 찬송하리로다. 우리가 하나님을 극진히 찬송한다는 뜻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치를 온몸으로 실현한다는 뜻입니다. 찬양한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면 노래할 만큼 기쁜 마음으로 실현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가치를 찬양한다고 할 때 예를 들어서 민주주의 가치를 위해서 엄청나게 온 몸으로 드러내는 겁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정치가에게 요구합니다. 이것은 참 잘못되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을 향해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면 안 되고 국민 스스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내야 되고 세금 낼 뿐만 아니라 돈 써가면서 선거를 해야 되고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지지하면서 정당 투표를 하면서 당원 회비를 내야 합니다. 지금 왜 이렇게 많은 국회의원들이 감옥에 갑니까? 국회의원들의 도덕적 자질이 우리보다 형편없기 때문에 감옥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국민이 노예근성으로 좋은 정치를 위해서 돈 한 푼도 쓰지 않고 오히려 국회의원들 후보자에게 무언가를 요구합니다. 이 국회의원들은 이 노예근성에 찌든 백성들 위에 국회의원 노릇 하다가 감옥에 가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은 선거하기 위해서 돈을 10불 정도 내야 합니다. 이것은 어찌 보면 흑인들 선거를 막으려고 하는 제도이기도 합니다. 미국은 선거제도가 복잡해서 보통 똑똑하지 않으면 선거 자체를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선거제도는 간단합니다. 제가 볼 때 앞으로 선거를 하려면 정당에 돈을 만원씩 헌금하면서 선거를 실시해도 투표율이 70%가 나오면 이런 나라는 완전히 좋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민주주의를 원하지만 민주주의 가치를 찬양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 국민 자체가 부패했기 때문에 부패한 국민 위에 부패한 국회의원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치를 위해서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그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분투하고 손해 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아실 것은 하나님을 극진히 찬송하는 것은 마치 우리가 민주주의를 찬송하기 위해서 희생을 담보하듯이 하나님을 극진히 찬송한다는 말은 그분의 다스림 안에 적극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매일 십자가를 지는 것을 극진히 찬송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참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 형제자매님들이 기독교 신앙은 진리 안에 있는 신앙이고 미신 안에 있는 신앙이 아닙니다. 진리 안에 있는 신앙은 뭐냐면 하나님의 명령과 계명에 복종하고 나서 복을 기대하는 것은 진리 안에 있는 겁니다. 그런데 미신 안에 있는 신앙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 복종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복을 누리려고 하는 것은 마치 복권을 사서 그것이 어느 순간에 내가 벼락 맞듯이 복권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미신입니다.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정말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의 의미가 하나님이 지향하는 가치를 극진히 드높이기 위해서 내가 매순간 십자가를 지고 내 편에서 손해를 감수하는 결단이 있는 것을 하나님 찬양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 여러분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한다는 말은 뭐냐면 그 큰 왕의 하나님의 통치가 전 세계 만민을 기쁘게 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공정하게 경쟁이 일어나도록 도우시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가 온 세계 만민 가운데 기쁨을 주는 이유는 우리 하나님께서 공정하게 만물을 다스리기 때문에 기독교의 하나님이 온 세계의 만민이 기뻐할 정도의 하나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기독교적 하나님이 기독교인들이 믿는 하나님이 진짜 온 세계 만민의 하나님이 되려면 우리가 기독교인 자체가 만민이 볼 때 보편타당한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보편타당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이번에도 제가 지리산에 내려갈 때 경부고속을 타고 판교를 지나서 오산 평택으로 가는데 중부제일교회라고 하는 큰 교회에 차는 크지 않았지만 조그만 봉고차에 이름은 크게 중부제일 교회 써놓고 청소년하고 청년들 몇 명이 쓰레기를 버리는 겁니다. 그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그 쓰레기를 쓰레기장이 아닌 곳에 그냥 재미로 집어던지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틀 후에 흥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은이가 있다가 아빠 그거 흥분하면 안돼 아빠는 아직까지 한국 사람을 전혀 모른다 모든 아이들이 다 그러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그 아이들 탓이 아니라는 겁니다. 심지어 우리 교회에서도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제가 중부제일교회라는 그 교회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은이 엄마도 또 저를 즉각 말립니다. 제가 또 흥분해서 뛰어내릴까 싶어서. 여러분 우리가 우리 한국 사람들이 보편타당한 선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은 뭐냐면 교회에서만 통할 수 있는 일종의 영생교 수준의 여호와 증인 몰몬 수준의 집단 선함은 있습니다. 집단 안에서만 통하는 선함이 있고 교회 밖에서는 선한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의 하나님은 우리 민족에게 복지를 증진시키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 좋다는 목사님이 완전 독재자와 나쁜 사람들을 지지하러 다닙니다. 기독교인들은 보편타당한 선악 판단력이 매우 처지는 사람으로 손봉호 교수가 제일 걱정하는 것이 이겁니다. 손봉호 교수님 이분은 나이가 많은 분인데 선각자에 해당합니다. 한국 목회자들이 대개 예비고사 합격 안 되어서 목사 될 때 이분은 고등 교육을 제대로 받은 분입니다. 그분이 공부해서 오니까 예비고사 치지 않고 반에서 50등 정도 하는 사람이 목사가 되어 있을 때 손봉호 교수가 와서 말 한마디 하면 손봉호 교수 이만열 교수는 거의 고신파 교단에서 매일 이단처럼 정죄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하는 말은 하는 말마다 보편타당한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특히 성직자들이 보편타당한 선량한 사람보다는 교회에 충성하는 영생교 몰몬교 정도의 종파적 충성심만 여깁니다. 그래서 저는 주의 일을 힘쓴다 할 때 교회 안에서만 하는 그 일이 주의 일이 아닙니다. 교회 바깥에 6일 동안 깨끗이 사는 것이 주의 일입니다. 진짜 그게 주의 일입니다. 6일 동안 깨끗이 살고 선량한 삶을 살다가 애 많이 쓰고 분투하다가 돌아오는 것이 주의 일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주의 일을 하리이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의 일이라는 것은 주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바로 우리를 시험합니다. 주님처럼 믿고 주님처럼 선량하게 살면 큰일 날 것 같고 손해 볼 것 같은 이 무시무시한 세상에서 주님을 믿는다는 말은 매순간 수렁이 가득 찬 세계 속에 무방비 상태로 걸어가는 것과 같은 마음에 협심증을 불러일으키고 용기와 용감무쌍한 대담함이 없으면 갈 수 없는 길이 주를 믿고 걸어가는 겁니다. 부동산 시세를 믿고 가는 것이 아니라 주를 믿고 가는 것은 그만큼 손해를 볼 가능성이 많습니다. 주를 믿고 사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주님을 믿고 사는 것이 일이라고 예수님께서 말했습니다. 주의 일을 힘쓰는 것이 뭐라고요? 6일 동안 생업의 세계에서 보편타당하게 성실하게 사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직장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교회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직장 동료에게 인정받는 사람 주변에서 인정받는 사람 그 사람들이 제가 볼 때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입니다. 주의 일을 힘쓰는 것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보편적인 영역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큰 왕의 성 북방에 있는 시온산이 세계 만민의 즐거움이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공평과 하나님의 그 정의의 다스림이 세계 만민에게 거룩한 흥분을 불러일으키고 거룩한 기쁨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3절입니다. 하나님이 그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피난처로 알리셨도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피난해야 될 일이 발생할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46편에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환난 날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여기 보십시오. 하나님 백성이 환난을 당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환난을 당한다는 것은 전제가 되어 있고 하나님은 수렁과 깊은 웅덩이 속에 우리를 집어넣은 것을 인정하시고 나서 당신을 우리의 피난처로 알리셨지 않습니까? 세계 만민이 세계 여러 왕들이 기뻐하는 이유가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피난처로 알리셨기 때문에 세계의 왕들이 즐거워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 왕이 모여 왕들이 모여서 함께 지나갔음이여 그들이 보고 놀라고 두려워 빨리 지나갔도다 거기서 떨림이 그들을 사로잡으니 고통이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 같도다. 4, 5, 6절은 여러 왕이 언제 하나님을 피난처로 찾았습니까? 왕들이 하나님을 피난처로 찾는 이유는 떨림이 그들을 사로잡으니 고통이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 같도다. 여러분 이스라엘 민족만 하나님을 사랑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세계 만민의 역사 속에 하나님이 자기를 피난처로 알린 역사가 많은 것을 아시죠? 심지어 아프리카 토속 민족의 마음속에도 하나님이 자기 피난처임을 압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는 아닌데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가슴속에 피난처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뻐해야 될 것은 어쨌든 간에 세계 만민들이 종교를 가지고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와 패를 맞추어 보면 약간 다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거의 방불한 하나님을 세계 만민이 다 알고 있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전도가 가능한 겁니다. 이것이 없으면 전도가 불가능 합니다. 세계 만민 속에 하나님에 관한 기초적인 초보적인 이해가 같지 않으면 전도가 불가능 합니다. 통역이 불가능 합니다. 세계 만민들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별로 인정하지 않는 일본 사람마저도 7백만의 우상이 득실거린다고 믿는 일본에서도 가미사마 하나님은 자기들에게 엄청 은혜를 베풀었다고 주장합니다. 몽고가 12세기 때 일본을 침략하기 위해서 대선단을 거느리고 일본으로 갔습니다. 갔는데 일본 사람들이 너무나 기도를 많이 했는데 기도를 엄청 해서 신풍이 불어서 몽고배를 다 부수었기 때문에 가미카제입니다. 신풍입니다. 하나님의 바람입니다. 일본 사람들도 하나님을 경험한 겁니다. 우리 이순신 장군도 일본과 전쟁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했습니다. 12척의 배로 250척을 무찔렀습니다. 12척의 배 전부다 원균이 남겨 준 가장 형편없는 배입니다. 이 12척을 가지고 사기가 꺾인 우리 수병들을 거느리고 250여 척의 일본배를 한산도 앞에서 명랑해전 울돌목 앞에서 작전으로 이겼는데 이것도 내가 그 날 아침 나가서 천신께 제사를 드리고 긴 시간 기도했다는 이런 난중일기 기록을 보시면 이순신 장군께서 아침마다 우리 일용할 양식 같은 그런 경건의 시간을 가진 겁니다.


저는 전 세계적으로 보편타당한 선한 사람을 들라고 하면 이순신 장군을 듭니다. 이 분은 이때까지 역대 태어난 어떤 기독교인보다 너무나 위대하고 선량한 자기희생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께서 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미신적으로 믿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다는 말은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이순신 장군처럼 분투하는 사람입니다. 그게 믿는 겁니다. 그냥 입으로 밀어 넣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믿어 놓는 것이 아니라 믿는다는 말은 대가를 요구하고 희생을 요구하고 내 인격적 중심에서 진짜 믿는지를 증명하기 위해서 믿는 가치를 위해서 뭔가 손해를 보는 겁니다. 이순신 장군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일본배를 산산조각 내는 일본으로 보면 몽고의 배를 산산조각 내는 하나님의 신적 간섭을 경험했습니다. 전 세계에 여러 종교들을 보면 반드시 하나님의 은총의 경험이 그들 종교 역사에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000년 역사에서 96번 정도의 전쟁을 경험한 우리나라, 여러분 옛날에 기억나십니까? 한때 박정희 대통령이 그런 책을 읽게 했습니다. 시련과 극복, 기억나십니까? 도덕도 아닌 그런 책이 나왔습니다. 그것도 열심히 읽으라고 해서 저는 그것을 읽어서 그것을 많이 읽어서 목록까지 다 외웁니다. 그 시련과 극복에 보면 우리가 얼마나 시련을 잘 극복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나라는 애국가에 뭐가 나옵니까? 하느님이 보우하사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이 애국가 가사는 그대로 성립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기 전에 다 없애주시고 하나님 나라로 다 편입시킬 겁니다. 대한민국이 만세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나라가 만세입니다. 여러분께서는 대한민국 만세 할 때는 속으로 이렇게 하십시오. 백세 이렇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만세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만 만세이고 나머지 모든 이 종족들의 역사는 백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민족적으로 하나님의 그것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타당한 진리 가운데 하나님을 경험하기 때문에 우리가 6만 명의 군대가 가서 4000명이 죽어 돌아온 월남전 보십시오. 그 고엽제 피해자까지 하면 더 많고 월남전은 우리에게 엄청난 손해를 끼쳤는데 월남 사람들 불교도입니다. 베트콩은 불교입니다. 스님 14명이 가부좌 해서 신나 뿌려서 집단으로 분신자살 하는 것을 보고 폭발해서 베트콩이 이긴 겁니다. 스님 14명의 등신불과 같은 고통을 보면서 베트남 백성이 똘똘 뭉쳐서 25만 명과 6만명 한국 군대 약 30만 명이 네이팜탄으로 그 열대 우림을 초토화 시켰는데도 전 세계 만민이 믿기지 않는 전쟁의 승패가 갈렸는데 75년 4월 30일에 사이공이 함락 당했습니다. 여러분 월맹이 따발총 한 발 놓고 그 총으로 월맹이 이겼습니다. 베트콩이라고 하는 월남 안에 있는 베트콩, 월맹 군대의 동역자들이 베트콩입니다. 그 사람들이 불교도가 아니라 기독교도 아니고 가톨릭 정권이었던 쿠엔반티오 정권을 다 몰아내고 그렇게 빌리 그레이엄 기도를 많이 받아온 미군을 다 물리치고 한국에 조용기 목사 김장환 목사 이런 모든 나쁜 독재자들을 편드는 목사들의 안수를 받아서 온 한국 군대를 그 불교도들이 다 물리쳤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보편타당한 하나님입니다. 장개석과 모택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장개석은 겉으로는 선교사들을 몹시도 좋아했습니다. 장개석 정권은 선교사를 지원했고 모택동은 선교사를 부정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농민을 사랑하고 도탄에 빠진 농민을 먹여 살릴 사람은 중국 공산당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1949년에 장개석을 대만으로 보내고 공산당이 기가 막힌 이길 수 없는 승리를 하게 하셨습니다. 농민 먹여 살리는 공산당 그래서 공산당은 뭐라고 하냐면 농민을 먹여 살리는 정당이 공산당이라는 것 이것이 광범위하게 퍼졌습니다. 그래서 무기도 없던 사람들이 엄청난 국민당의 무기를 받아가며 지원받던 그 영국 프랑스에게 지원받던 국민당을 이겼습니다. 보편타당한 하나님은 그들이 관념적으로 표방하는 종교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에 따라 역사의 승패가 갈립니다. 지금도 미국이 빌리 그레이엄을 비롯해서 이런 미국의 목사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미군들이 오고 이라크에서는 미국 군목들이 활동합니다. 매일 아침 예배를 드립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평과 정의의 하나님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합니다. 지금 미국 텍사스 출신의 침례교 목사들이 부시를 위해서 엄청나게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그런 기도를 듣는 것이 아닙니다. 공평과 정의에 아우성 치는 회교도 이라크 어린 아이들의 우는 소리를 하나님이 먼저 들으십니다.


7절에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 여러분 이 다시스의 배는 요한계시록 18장에 가면 또 다시 거대한 다국적 기업을 상징하는 배입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가려고 했다는 말이 참 중요합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갔다는 말은 다시스가 북이스라엘 왕국 자기의 왕국의 번영을 가져다 주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자기 민족주의적인 부흥을 원하는 것입니다. 다시스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보편타당한 하나님입니다. 동풍으로 다국적 선단을 깨뜨리십니다. 그래서 8절에 우리가 들은 대로 만군의 여호와의 성은 영영히 견고합니다. 왜? 세계 만민에게 공평한 진리로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전 가운데에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였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번역하여야 합니다. 정의가 충만하면 주님의 이름도 온 세상에 퍼집니다. 주님의 이름이 온 세상에 퍼지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오른손에 가득 찬 정의를 수행해야 하겠죠? 세계 선교라는 것이 국제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 세계 선교입니다. 지금 우리가 만일에 미국의 침략 전쟁을 신의 이름으로 축복해 버리는 순간 회교도와는 영원한 적이 됩니다. 그래서 한국 기독교는 미국 기독교와 다르며 한국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은 제국주의자들의 하나님과 다른 것을 이라크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국제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 세계 선교의 지름길이며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오른손에 가득 찬 정의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온 세상에 퍼져야 합니다. 논리적으로 납득되어야 합니다. 기독교가 표방하는 가치가 전 세계적으로 보편타당한 선이기 때문에 퍼져야 되는 겁니다. 이게 세계 선교입니다. 제가 참 걱정하는 것은 이것을 아직까지 너무나 모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자기가 특별한 수혜를 받고 혜택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혜택을 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여러분께서 믿었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아서 믿은 겁니다. 자꾸 혼돈합니다. 나는 믿었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 다음에 믿음이 생긴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특별히 하나님 앞에 기독교인이 더 사랑받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사랑을 받는데 선인과 악인이 사랑 받는데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보편타당한 선인과 악인을 동시에 사랑하는 그 큰 하나님을 우리 기독교인은 하나님 은혜로 믿게 됩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게 됩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말은 배타적인 종족주의적인 신을 믿는 사람이 보편타당한 선을 행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 잘못된 믿음에서 구원을 받는 겁니다. 잘못된 몰몬적인 여호와의 증인 같은 종파적 배타주의적 믿음에서 거룩하시고 크신 하나님을 믿게 되기 때문에 그게 구원받은 겁니다. 저는 이런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 기독교가 어떻게 바뀌냐면 우리 기독교가 있는 곳에 공공선이 일어나고 우리 기독교인이 가는 곳곳마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유익과 혜택을 누리는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이런 올바른 하나님을 믿어야 이 나라 이 민족이 삽니다. 그렇지 않고 중부제일교회의 아이들처럼 쓰레기 버리고 보통 사람들도 하지 않는 짓을 교회의 이름으로 이런 식으로 살면 안 되고 보편타당한 하나님 우리 하나님 전 세계 정의를 땅끝까지 펼치는 오른손에 가득 찬 정의를 우리 교회가 구현하는 것 이게 너무나 중요합니다.


주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시온 산은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은 즐거워할지어다 너희는 시온을 돌면서 그 곳을 둘러보고 그 망대들을 세어 보라. 이 말은 하나님이 시온을 완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망대를 세우셨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오늘도 여러분을 보호해 주는 이유는 여러분이 일산두레교회 와서 기도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게 아닙니다. 보편타당한 삶을 살기 때문에 보편타당한 정의와 선을 추구하기 때문에 여러분을 보호하시고 지켜준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게 믿는 겁니다. 보편타당한 선과 진리를 믿는 것을 기독교 믿는 것이라고 하고 교회 와서 목사에게 충성하고 교회에 오랫동안 헌금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편타당한 선을 추구하기 위한 연단을 우리가 교회에서 받는 겁니다. 오른손에 가득 찬 정의를 이 정의는 나쁜 정의가 아닙니다. 부시가 말하는 정의가 아닙니다. 이 때 오른손에 가득 찬 신적 자비 이 신적 자비는 가난한 사람과 약자를 돌보는 사랑, 가난한 사람과 약자를 돌보다 보니까 악한 사람과 갈등이 일어나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사자와 어린 양을 한 목장에서 키우기 위해서 사자의 입을 계속 막아주셔야 합니다. 사자를 계속 감시하고 온순하게 만들어주고 어린 양과 사자를 한 목장에서 키우십니다. 사자에게는 거친 폭력이 나오지 못하도록 억제하고 어린 양은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목자의 팔로 안아서 목장에 내리는 것 이것이 정의가 충만한 겁니다. 국제적으로 온 세계의 여러 왕들이 하나님의 정의의 혜택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여러분과 제가 이 보편타당한 선을 구현하도록 부르심 받은 겁니다. 이 보편타당한 선을 구현하는 것이 하나님을 극진히 찬송한다 그렇게 말합니다. 오늘도 여러분께서 여러분 외부의 환경과 상관없이 절대적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 이 우주적인 선, 우주적인 정의와 맞닿아 있는 삶을 사는 겁니다. 오늘도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그동안 우리 교회, 우리 기독교만 똘똘 뭉쳐서 사랑하시는 하나님 편협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세계적인 정의와 질서에 대해서 무관심했던 것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는 다시스의 선단을 깨뜨리시고 어린 양을 사자와 같이 풀 먹이는 자비로 가득 찬, 정의로 가득 찬 하나님이십니다. 주님 전 세계적으로 지금 강대국의 논리가 정의처럼 강요당하는 현실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 비록 약소국이라서 강대국의 힘 앞에 굴욕적일 수밖에 없고 때때로 실리에 따라 살 수밖에 없는 연약한 나라이지만 하나님 우리는 압니다. 우리 주님께서 기독교의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전 세계 만민 울부짖는 어린 아이 고아와 과부의 하나님, 전 세계 만민이 보더라도 납득할 수 있는 정의로운 하나님인 것을 우리가 믿습니다. 주님 우리 일산두레교회 화정동과 덕양과 고양시 일대에서 정의로운 하나님을 드러내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강하고 포악한 기득권 세력과 싸울 수 있는 준비를 주시고 그들 밑에서 신음하는 어린 백성들을 구출해 낼 만한 희생의 대가를 치를 담력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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