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율법의 완성자 (본문 마5:17-20)

by 【고동엽】 2021. 11. 19.

율법의 완성자  (본문 마5:17-20)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학교를 갑니다.
가방을 메고 "엄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아이를 붙잡고 "애야, 길을 건널 때에 그냥 가지 말고, 파란 불인가를 확인하고, 차가 오는가 안 오는가 하는 것을 잘 보고 오른 손을 들고 건너야 한다. 가다가 동네 어른들 만나면 인사 잘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 잘 듣고, 친구들하고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고, 학교 끝나면 다른데 한 눈 팔지 말고 즉시 집에 와야 한다. 알았지 내 예쁜 자식!"
엄마의 말을 잘 듣겠다고 굳게 다짐을 하며 집을 나서는 아이가 그렇게 대견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이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중학생으로 훌쩍 커버린 아이를 붙잡고 "애야, 길 건널 때에 좌우를 잘 살피고 건너고, 동네 어른들 한데 인사 잘하고, 학교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하고 싸우지 말고--- 알았지!" 하고 말합니다.
예전에는 고분고분하게 듣던 아이가 "알았다니깐!" 하고 신경질을 부리면서 집을 나서는 것입니다.
엄마는 섭섭한 마음이 듭니다. "전에는 그렇게 말을 잘 듣고 착하던 아이가 왜 저렇게 엄마에 대하여 반항하는 아이가 되었을까?"
그러나 당연한 것입니다. 초등학교 때에 할 이야기를 훌쩍 커버린 중학생 고등학생에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어른이 되었습니다. 회사에 출근하기 전에 병들어 누워 계신 어머니께서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어머니는 이 아들을 붙잡고 "애야 차조심 해야 한다. 회사에 가서 윗사람들 눈밖에 나지 않도록 조심하고, 부하 직원에게 잘 대해 주고-- 알았지!"
방금 아이들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학교에 보내고 어머니께 왔는데 어머니께서 다 큰자식에게 방금 전에 했던 그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저희 어머니도 오시면 "애야 목회 잘 해야 한다. 교인들 사랑하고, 심방 잘 하고, 설교 말씀 잘 준비하여 잘 전하고, 그리고 주영이 에미 속썩이지 말고!"
"알았어요, 알았어요!" 건성으로 받아넘깁니다. 오실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눈에는 자식들이 이렇게 항상 철없는 아이로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월과 함께 성장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전13장의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하는 말씀처럼 장성하여 자기 스스로, 혼자 알아서 하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정의로운 사회는 법에 의하여 세워집니다.
우리에게는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하여 법을 만드는 입법부가 있고, 법을 집행하는 사법부가 있고, 법을 세워 나가는 행정부가 있습니다.

어떠한 사건이든지 무슨 법, 몇 조, 몇 항 하는 법조문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법의 적용을 통하여 국가의 기강과 사회의 질서를 유지해 나갑니다.
5.6공 시절 반정부 구호를 외치는 평화적인 시위가 많았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참석하는 이 시위를 막아야 하겠는데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리기에는 모양새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경찰에서는 도로교통법으로 시위자를 연행하여 갔습니다.

이미 오랜 전에 민주주의가 발전한 영국에는 우리처럼 법조문이 없습니다.
법조문이 없는데도 국가의 기강과 사회의 질서가 우리보다 더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영국에는 법이 있긴 하지만 우리와는 다릅니다.
우리의 법은 성문법입니다. 글로 쓰여진 법만이 법입니다. 글로 쓰여진 법으로만 심판을 받습니다.
영국의 법은 불문법입니다. 법조문이 없습니다. 글로 쓰여진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법의 정신이 있습니다. 국가의 정의를 세우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여야 한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법조문이 없어도 법의 정신과 전통을 가지고 우리보다 더 정의롭고 질서 있는 사회를 세워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어린 아이 때에는 일일이 이야기를 하여야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처럼
민주주의를 배워 나가는 우리에게는 하나부터 백까지 일일이 법조문으로 정의를 말해야 하지만 민주주의가 성숙한 영국에서는 상세한 법조문이 없어도 사회 정의와 질서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부르셔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하나님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민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 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라고 말씀하시면서 광야에서 모세를 통하여 법을 주셨습니다.
이 법이 율법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율법서란 히브리 말로 토라라고 하는데 창세기, 출애급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세워주신 하나님의 법이 담겨 있는 율법서이기에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들은 이 율법서, 토라를 아주 소중하게 여깁니다.

율법서에는 하나님께 어떻게 예배 드려야 하는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사는 언제 드려야 하고, 제물은 어떤 것을 써야 하고, 제물은 어떻게 잡고, 피와 고기와 가죽과 내장을 어떻게 해야 한다 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무슨 재료로 어떠한 구조를 갖도록 지어야 하는 가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날인 안식일은 어떻게 지켜야 하고
하나님의 이름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에 대한 것 뿐 아니라 일상적인 삶에 대하여도 가르쳐 주십니다.
몸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먹을 음식과 먹지 말아야 할 음식
청결한 생활을 위하여 손발을 깨끗이 씻는 것과 시체 등 부정한 것을 멀리할 것,
문등병 같은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는 해야 할 조치 등 우리의 일상 생활에 대한 모든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면 이웃과 다툼과 분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살인이나 간음을 하였을 때, 이웃이 내 몸을 상하게 하였을 때, 이웃의 가축이 내게 손해를 끼쳤을 때에 어떻게 변상을 받을 것인가 하는 내용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를 통하여 약속하신 대로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왕으로,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오셔서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에서처럼 그렇게 상세하고 자세하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율법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에 단 2가지를 말씀하셨을 뿐입니다.
첫째는 이것이니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어떤 때는 구약의 율법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도 하셨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에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이는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 행위로서 일에 해당하는 것으로 일하지 말라는 안식일의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역한 것에 대하여 비난을 하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나귀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에 건져 내지 않느냐?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느니라.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은 합당하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번은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짤라 먹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그랬겠지요. 그러나 안식일에 밀 이삭을 짜른다는 것은 타작하는 것으로 안식일을 범하는 것입니다.
이를 본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실만 한데 보시고도 가만 계시는 것입니다.
이를 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하여 비난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다윗은 성전 안에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거룩한 음식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말씀하시며 별 문제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음식을 먹을 때에 꼭 손을 씻고 먹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워낙 배가 고파서 그랬겠지요!
이를 보고 유대인들이 말합니다. "당신의 제자들은 불결하게 손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습니까?" 이 말을 들은 주님께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다. 속으로 들어간 것은 다 뒤로 나오느니라.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이니라. 악한 마음에서 악한 말이 나오고, 이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과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폐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종종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난을 들었습니다.


이러한 비난에 대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율법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유대인들의 생활에 대한 모든 계명이 담겨 있는 토라로서 창세기 출애급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말하는 것이고
선지자는 여호수서를 비롯하여 모든 선지자의 글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율법과 선지자를 다른 말로 바꾼다면 구약성경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온전케 하려 오신 것입니다.

우리 나라 형법 제24장 제250조를 보면 ①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연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②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연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고 되어 있습니다.
영국에는 이러한 법조문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영국에서는 마음대로 살인을 해도 된다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법조문이 없어도 우리 보다 법이 더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한빛 은행 부정 대출 사건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검찰이 수사를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를 믿는 사람들이 적은 모양입니다. 어는 은행 지점장은 이 수사 발표에 대하여 10만 은행원이 웃는다고 말했습니다.
법을 집행하는 검찰의 발표를 왜 믿지 못합니까? 법이 없어서 입니까? 법의 운영을 잘 못하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학생의 책상 위에 표어가 붙어 있습니다. "구구단을 외자, 부모님 심부름을 잘 하자.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언젠가 그 표어를 떼는 것입니다. 표어를 떼었다고 구구단을 모르는 것입니까? 부모님 말씀을 안 듣는 것입니까?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입니까?
아이가 자라면서 이런 표어가 없어도 더 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회사마다 여러 가지 규정들을 정해 놓았습니다.
지각하지 않기, 좋은 말하기, 종이컵 안 쓰기, 복사할 때에 종이 아껴 쓰기, 능동적으로 일하기 등등입니다.
그러나 어떤 회사에서는 이러한 복잡하고 많은 규정들이 없습니다. 딱 한 마디만 합니다. "우리 모두 회사를 사랑합시다."


우리가 사람 만날 때에도 늦지 않도록 약속 시간에 나가고, 상대방에게 예를 갖추느라 정장을 하고, 식사시간이 되면 좋은 식당으로 모시고 가서 정성으로 접대를 합니다.
우리는 매 주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복을 주시는 하나님, 왕이신 하나님을 뵙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일날 하나님을 만나기로 하고서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고, 만나자는 시간을 지키지 않고 예배 시간에 늦는 사람도 있고, 가장 위대한 분을 만나기 위하여 제일 좋은 옷을 입고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고, 정성을 드려야 하는데 헌금 드리는 것을 아까와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설교할 때마다 "성수주일을 합시다. 예배 시간에 늦지 맙시다. 옷을 잘 입고 옵시다. 십일조 생활을 합시다." 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저에게 "목사님께서 야단도 치고, 잔소리도 하십시오" 하고 말하는데 야단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잔소리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딱 한 가지만 있으면 됩니다.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으면 이 모든 일들이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 것이 율법의 조문들을 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폐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기도하고, 찬송을 하시는데 이보다 더 진실하고 아름다운 신앙생활이 어디 있습니까?
온 인류를 향한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섬기셨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자신의 몸을 화목 제물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이 보다 더 아름답고 고귀한 사랑과 헌신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묵상하여야 합니다. 찬송 생활을 열심히 하여야 합니다. 기도 생활을 쉬지 말아야 합니다. 헌금 생활과 봉사하는 일에도 게으르면 안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는 일에도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나 딱 한 마디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면 자동적으로 말씀을 묵상하게 되고, 자동적으로 찬송이 나오고, 자동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이 즐겁고 소중하고, 말 안 해도 십일조 생활하고 봉사하고 충성하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들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합니다.
부모님 공격하고, 형제들끼리 화목하고, 노인들 잘 섬기고, 교우들끼리 서로 섬기고,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딱 한 마디로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면 됩니다. 사랑하되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면 됩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부모님을 공경하고, 형제와 화목하고 서로 섬기고, 세상에서 선을 행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안식일을 잘 지켰습니다. 소와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경건하다는 유대인들은 일 주일에 한 번 금식을 하고, 기도를 하고, 헌금을 드리고, 구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우리들은 의인이다, 우리들은 정결한 사람들이다. 우리들은 온전하다. 하나님 저 세리와 창녀와 같은 죄인이 아님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이 드리는 소와 양의 제물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사야서를 보면 "너희들이 드린 소와 양의 고기에 배불렀다. 너희들이 드린 짐승에 피를 기뻐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헛되어 성전의 뜰만 밟을 뿐이니라."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왜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제사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정성이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전에서 헌금을 드리는데 부자가 많은 것을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이를 지켜 본 사람들이 저 부자가 많은 헌금을 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과부가 부끄러움으로 옆전 두 닢을 넣었습니다. 이를 지켜 본 사람들이 창피하게 저게 뭐야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난한 과부가 더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는 많은 소유 가운데 지극히 일부를 드렸지만, 과부는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드린 것입니다. 사랑과 정성을 담아 드린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할례 받았기 때문에 의롭다 생각하였습니다. 할례 받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의 할례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신앙 생활이 형식에 있었습니다.
예배, 기도, 찬송, 구제, 헌금, 할례 등 모든 형식을 다 갖추었기 때문에 자신들은 의로운 사람이요 온전한 사람이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 자부심이 발전하여 교만함이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행함이 기준이 되었습니다. 자신만큼 하면 의인이지만 자신들보다 못하면 죄인입니다. 어느덧 사람들을 판단하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은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하였지만 오히려 율법을 폐하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은 율법을 따라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생각하였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죄를 범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율법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이 시간 우리 모두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렸다고 같은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분은 마음을 모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린 것입니다. 찬송이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나의 신앙의 고백이요 간증이 될 것입니다. 말씀이 내 영혼을 위한 양식이 될 것입니다. 정성을 모아 드리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 부족한 분들은 정성이 모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지만 몸은 예배당에 있고 마음은 세상에 나가 있습니다.
방금 전 208장 찬송을 불렀는데 일부러 5절까지 있는 찬송을 골라 보았습니다. 5절까지 부르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누가 부르기 힘들게 이렇게 5절까지 만들었는가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찬송이 그렇게 지루할 수가 없습니다.
설교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언제 끝나나 자꾸만 시계를 쳐다보게 됩니다.

우리들은 다 함께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달리 보십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마음을 모아 드린 예배를 기뻐 받으십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린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이웃을 향한 사랑입니다.

매 주일마다 마태복음 강해를 하고 있는데 지금 5장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5장은 8복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진정한 복, 신령한 복을 누가 받아 누립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지난주간에는 빛과 소금의 삶에 대하여 나누었습니다. 누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 수 있습니까?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누가 율법과 선지자를,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을 온전히 세우는 자가 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자와 이웃을 사랑하되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자가 온전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뒤에 주님께서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를 만나셨습니다.
베드로를 만나신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네가 나를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하였으면서 나를 배반하였느냐? 왜 나를 3번이나 부인하였느냐 책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나를 향하여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고 고백을 하였는데 지금도 그렇게 믿느냐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교회를 세울 것인데 네가 교회를 잘 섬겨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내 양을 잘 돌보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다시는 배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 마음속에 진실한 신앙의 고백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교회를 잘 세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양을 잘 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일 점 일 획도 땅에 떨어짐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계명 하나라도 소중히 여겨 지키는 자가 하늘에서 큰 자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의지합니다. 신뢰합니다. 말씀 하나라도 땅에 떨어뜨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계명이라고 하여도 사랑하는 주님이 주신 계명이기에 소중히 여깁니다.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처럼 형식적인 그리스도인 되지 않습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고 능력이 없는 쭉정이 같은 신앙 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정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이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김풍호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