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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두아의 마르시글리오

by 【고동엽】 2021. 11. 16.
Ⅰ. 파두아의 마르시글리오




마르시글리오(Marsiglio)라는 이름은 각별한 존경심으로 기억되어져야 할 특출한 값어치가 있는 이름인데도 불구하고 현대교회 역사에서 너무나 적게 인식되어진다는 것은 의문을 가질 만한 일이다. 그는 1270년 파두아(Padua)에서 태어나서 파리에서 윌리엄 옥캄(William of Ockham)에게 배웠는데, 거기서 그는 의학, 철학, 신학의 교사가 되었고, 대학학장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1. 왕과 교황의 투쟁


교황들의세력과 위세는 그들이 『교황의 바빌론 포로(1309-1377)』로 알려진 시기에 '죄악의 도시 아비뇽'(Avignon)으로 불리워지는 '선한 의회'(Good Parliament)에 체류하고 있는 동안 급격히 쇠퇴하여 졌다. 그러나 그들의 권력행사는 교회에는 물론 국가에도,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들에게는 물론 왕들에게 향해서도 언제나 처럼 여전히 거만하였다. 그러자 교황 요한 22세와 로마인의 왕인 바바리아의 루이스(Louis of Bavaria)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발생했다. 그것은 사실상에 있어서는 황제당원과 교황당원의 싸움이었으며, 봉건적이며, 제국주의적 관념의 동조자들의 한 패와 교황의 우위성 하에서 일반적으로 뭉쳐진 카톨릭적 관념의 동조자들 사이에 생긴 불화의 연장이었다.


황제당원적 이상(ideal)의 선지자격으로서 단테(Dante)는 그의 위대한 역작, 『군주국에 대해서』를 썼다. 브라이스(Bryce)가 그의 『신성 로마 제국』이란 책에서, "예언적이라기보다는 시대의 비명적(碑銘的)인 글" 이라는 증거를 받은 이 책 속에서 그는, "황제는 그의 권위를 하나님에게서 직접 부여받았다"라고 말하여 교황청의 주장에 대항하였다.


2. 평화의수호자


마르시글리오가 쟌두노의 존(John of Janduno)의 도움을 받아 그의 유명한 작품 『평화의 수호자』(Defensor Pacis)를 내어놓은 것은 1324년이었다. 그 제목은 그 책의 목적을 잘 지적해주고 있다. 그것은 교회와 국가 모두의 원초적인 한계를 정의내려 줌으로써 교회와 국가 간의 평화를 이루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요한 22세와의 투쟁 속에서 힘있게 그것을 수호하고 있는 루이스(Louis)에게 기증되었는데, 이 책은 신기원을 이루는 책이 되었던 것이다. 이 책에 반대하여 교황의 특별교서가 발표되었고, 종교개혁이 시작될 때 그것은 영어로 번역되었으며 금서목록에 기재되었던 것이다. 이 책이 발간된지 약 20년 후 마르시글리오는 그의 주소를 루이스의 궁정으로 옮겼고, 거기에서 루이스의 의사요, 충고자이며 학문적 옹호자로서 남아 있었다.


3. 마르시글리오의 가르침


거의 초기의 마르시글리오의 작품은 역사에 과학적 비평을 가한 것이었다. 그레고로비우스가 말한 것처럼 그것은 교황적 자만심의 발생과 성장을 꿰뚫어 보는 탐구를 통하여 "교황 제도의 전체 역사를 조명하는 것"이었다. 의심할 바 없이 단테와 윌리암 옥캄의 영향을 받은 마르시글리오는 그들의 원리들을 그들이 했던 것보다 더 크게 신장시켰던 것이다.


진귀한 통찰력, 위대한 담대함,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후에 위클리프, 후쓰, 그리고 그밖의 16세기의 개혁 지도자들에 의하여 옹호된 급진적 개혁의 원리들을 진전시켰던 것이었다. 그는 정경의 성경만이 믿음의 문제에서 유일한 권위를 가지고, 그것은 무오한 것이라는 근본적인 원리를 정착시켰고, 교황의 무오설을 반박했던 것이다. 아니, 그는 교황의 현세적 권위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그것의 영적인 권위도 부인함으로써 교황의 가장 깊은 근본을 공략했던 것이다.


그는 다음의 것들을 주장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대변자로서 어떠한 교회의 우두머리를 지적하지 않으셨고,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 보다 더 위대한 능력을 받은 것이 아니며, 그의 권위를 로마 교회에 유전시켜 주지 않았다. 그가 로마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는 증거가 없고, 더우기나 그가 로마의 감독이었다는 증거는 없었다.


감독들과 장로들은 근본적으로 같은 일을 행하는 자들이었고 모두 동등했으며, 감독들과 목회자들은 대중에 의해 피선된 사람들이었다. 목회적으로 복음을 설교하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경고하며 성찬을 주재하는 것이 목사의 유일한 기능이다. 모든 열쇠의 능력은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하나님은 그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여하며, 그는 그것을 성직자에게 특별히 위임하는 것이다. 성직자들은 신자들의 목회자로서 그것을 활용하며 그는 교회에서 심판적 권위의 활용자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중계자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파문은 오직 신자들이나, 그들의 대표자들의 공동체만 속해 있는 것이며, 하나님 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고 교황이나 성직자가 죄를 사면할 수 있다는 사상은 기만인 것이다. 위선은 성직자의 사면에 의해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진정한 회개는 그것을 성직자가 보류함으로써 보류되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교황, 감독, 신부의 교권제도는 믿는 자들의 교제를 위해 모인 교회를 구성할 수 없다.


'영적'이란 용어를 전적으로 성직자에게만 국한시키는 것은 마르시글리오에 의해 비난을 받았다. 교회의 지고한 권위는 일반 공회에 속해 있는 것이다. 그는 아마도 정부의 궁극적이고 지고한 권위는 시민의 공동체에 있으며, 왕들이 통치하고 왕자들이 공정(公正)을 결정하는 일은, '권력의 힘으로 백성에게 빼앗은 것이다' 라는 원리를 이야기 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이것이 청교도들의 근본적인 요구였다. 어떤 점들에 있어서는 마르시글리오는 개혁자들과 청교도들보다 훨씬 진보된 자였다. 그는 오늘날의 교회의 근본으로서 구약적 신정통치를 믿지 않았으며 신자가 그들의 안내자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교황이 그의 주장의 대부분의 기초를 삼으려 했던 구약의 율법이 아니라 신약의 복음적 율법이라고 생각했으며 그것 조차도 현세의 형벌에 의해 강요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교회를 위해 행사되는 모든 강제적이고 형벌적인 권위를 반대했고 이런 권리의 행사들은 모두 전적으로 국가에 속한 문제이며, 그것도 국가에 의해 금지되거나 명령된 일들을 범할 때에 한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율법에 반대되는 많은 것들이 국가에 의해 관용되어져야 한다. 이단은 그것이 국가의 율법에 저촉되는 한에만 국가의 징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가 관용에 대한 진정한 원리들과 양심과 신앙의 자유를 주장함으로써, 개혁자들과 그들의 후계자들을 앞설 수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의 역사에서 전적으로 생략된 그 귀한 개척자의 이름은 영원한 기억속에 남을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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