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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은 믿음의 자식, 그 부모의 강건함과 유약함을 그대로 물려 받는다/ 윌리엄 거널 |

by 【고동엽】 2021. 11. 12.
아브라함이 믿음이 강하였으므로, 자신의 아들을 드리는 놀라운 영웅적인 순종을 행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 위에 그의 믿음을 견고히 세우고, 머뭇거리지 않고 그 일을 진행한다. 머뭇거렸다면 연약한 믿음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개입하여 도우신다는 것을 보는 것만큼 믿음의 행위를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없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너희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이는 곧,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일을 이루게 할 수 없으며, 이루게 하지 않겠느냐?”라는 뜻과도 같다. 기드온은 이를 믿고 나아가 놀라운 일들을 행한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심령을 보라. 그 순종하며 나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들쭉날쭉하며 불안정한가! 사람에게서 큰 위협을 받으면 그때마다 항상 겁에 질려 버린다. 그 믿음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가 있지 않기 때문에, 때때로 정도에서 벗어나 사람을 좇으며 자신의 신뢰를 보잘것없는 피조물의 손에 팔아 버린다.


전능하신 능력으로 등 뒤에서 자신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영적인 눈이 없이, 육신적인 눈으로 사람의 능력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영적인 눈이 떠져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본다면, 결코 유약한 피조물의 접근에 놀라서 생각이 혼란에 빠지지 않을 것인데 말이다. 선한 사람 느혜미야는,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랴”라고 말씀했다(느6:11). 그는 지금 막 은혜의 보좌에서 전능자의 도우심을 구하고 나온 터였다. “이제 내 손을 힘 있게 하옵소서”(느6:9). 그리고 이제 그는 그 자리에서 죽을지언정 치욕스럽게 도망하여 그의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는 않을 자세였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위로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만큼 늘어나거나 줄어든다. 영혼이 이를 의심하게 되면, 마치 찢어진 혈관에서 피가 새어 나오듯이 그의 기쁨이 새어 나가게 된다. 그런 영혼은 역풍을 맞으면서 나아가는 것과도 같고, 혹은 돛대가 부러진 배 같아서 다른 성한 배가 끌고 가지 않으면 바람 치는 대로 물결 이는 대로 헤맬 수밖에 없다. 그런 영혼에게는 온갖 두려움이 파도처럼 때때로 밀려들어서 물 위에 있기보다는 물속에 가라앉아 있을 때가 더 많다.


하지만 자신이 전능하신 능력의 팔에 안겨 있는 것을 바라보는 영혼은 바람과 담대히 싸우며 나아간다. 돛을 한껏 올리고 기쁨과 평화를 충만히 받고 나아가는 것이다. 환난이 오고 폭풍이 불어와도, 이 복된 영혼은 자신이 어느 곳에 다다르며 또한 어느 곳에서 환영을 받게 될지를 알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그의 모항(母港)이요, 마치 소나기가 올 때에 사람이 자기 집에 들어가듯이, 그 영혼은 그리로 담대하게 들어가는 것이다. “내 백성아 네 밀실에 들어갈지어다”(사26:20).


이를 믿는 영혼은 아무리 날카로운 가시가 가슴을 찌른다 해도 다윗과 함께 기쁨으로 노래할 것이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찬송하리이다”(시57:7). 다윗은 동굴에 숨어 있는 처량한 처지였는데, 과연 무엇이 그를 그렇게 기쁘게 만들었는가? 그는 1절에서 말씀하기를,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여 있으므로 근심과 걱정을 떨치고 노래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상태에 있으므로 비록 침상이 딱딱하지만 그 위에 누워서도 영혼이 편안히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 런던 브리지 위에 사는 자들이 화이트홀(런던 중심가)에 사는 자들만큼 단잠을 자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다리 밑에서 넘실대는 파도가 절대로 자기들을 해치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 죽음의 홍수가 밀려와도 고요히 안식을 누리며, 절대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 윌리엄 거널, 「그리스도인의 전신갑주 1」, pp 76-78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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