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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의 장소(전도서 6:6) / 조지 휫필드

by 【고동엽】 2021. 11. 12.

모든 사람들의 장소(전도서 6:6) / 조지 휫필드

 

 

 

저는 재능있는 한 작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대단히 많은 책을 발표 하였으나 그 가운데 가장 훌륭하고 가장 유익한 책들은 그가 50세가 지난 뒤에 쓴 것들입니다. 즉 나이가 들면서 인간의 판단력은 무르익어가며, 재능 역시 성숙하게 진보되어 갑니다. 젊었을 때 모아진 경험들은 인생이 쇠퇴하여 가면서 흰 머리가 이곳저곳에서 나기 시작할 때 보다 더 유용하 게 사용되게 됩니다. 사실 노인은 어린이의 두 배 몫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재능이 너무 낮아 어린이의 두 배 몫을 하기는커녕 요람에서 무덤까지 계속 어린아이나 다름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저지른 잘못들을 반성하며 마음의 고통들을 성화(聖化)시켜 앞으로의 행동의 지표로 삼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경우도 그러하였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 여호와께서 그에게 두 번이나 나타나셨을 정도로 커다란 은총을 받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크게 타락하였습니다. 만일 그가 본래의 신실함을 다시 가지게 되지 않았다면 “성도의 궁극적 견인”(final perseverance of the saints)에 대한 교리는 근거 없는 것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회개하여 다시 신실하여졌음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과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전도서에 기록함으로써 그가 회개하였음을 입증하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서를 읽어보십시오. 전도서는 어느 시대에서건 교회의 각별한 존중을 받아 왔습니다. 전도서란 전도자가 쓴 글이라는 뜻입니다. 솔로몬은 자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한 명의 전도자로서 이 글을 썼습니다.

 

본문이 인용된 전도서 제 6장은 우리의 현재의 상태가 성화되지 않으면 헛되고 비참한 지경에 처하게 됨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내가 해 아래서 한 가지 폐단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에게 중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가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한 괴물입니다. 이 괴물은 걷기도 하고,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이 괴물은 하나님께서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주심으로써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으나 먹을 수 있는 힘을 받지 못함으로써 그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인간입니다. 솔로몬은 이러한 사람을 “헛되이 악한 병”에 걸린 사람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자신의 부를 다른 사람이 더 많이 누리도록 내버려두는 늙은 욕심 많은 구두쇠에 대해 이 보다 더 인상적인 묘사가 있 었습니까 ? 솔로몬은 계속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또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니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 이름이 어둠에 덮이니 햇빛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나 이가 저보다 평안함이라.”그는 덧붙여 이야기하기를, 그러한 사람은 비록 천년의 갑절을 산다 하여도 그 자신을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서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참된 선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런 낙도 없이 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낙태된 자나 오랜 생을 산자나, 젊은이건 늙은이건, 지위가 높건 낮건, 부자이건 가난하건, 자녀가 많건 적건, 자녀들을 위해 빵을 구걸하는 가난한 사람이건 자녀들에게 자주빛 좋은 옷을 업히고 훌륭한 음식을 먹이는 부자이건 간에 마침내는 다 한 곳으로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는 질문은 참으로 중요한 질문입니다. 저 역시 오늘밤 똑같은 질문을 여러분에게 던져야 할 듯싶습니다. 여러분은 솔로몬이 어째서 그러한 질문을 던졌는지를 알고 계십니까? 솔로몬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죽음이었습니다. 즉 모든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언급된 곳은 무덤입니다.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에게 “네가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이미 선언하셨습니다. 인류의 첫 조상이 지은 죄로 인해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하늘 아래 거하는 모든 인간들에게 죽음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즉 자범죄(自犯罪)를 범하지 않을 자들에게도 사망은 있어왔습니다. 아담의 죄된 상태가, 즉 원죄가 우리에게 전하여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서 가장 큰 증거는, 방금 태어난 사랑스려운 아기가 또는 태어난 지 수개월 된 아기가 참으로 안타깝게도 어머니 앞에서 죽어버리는 것일 것입니다. 더우기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스러운 아기가 갑작스럽게 발작을 일으키면서 오랜 동안 안타까운 고통에 시달리다가 죽어버리도록 하였다면, 당신은 인간의 원죄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이미 보았던 셈입니다.

 

런던에 있는 올해 약 32 세 가량의 제 친구 하나는 자녀들을 애지중지하며, 끔찍하게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조지아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되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 “자네의 우상은 아직도 죽지 않았는가? 내가 생각하기에 자네가 애지중지하는 우상은 곧 죽어버릴 그러한 우상이라네.” 그 뒤 제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저를 보자마자, 제 편지가 도착되기 하루 전에 그의 자녀 한 명이 배설물을 입으로 토해낼 정도로 너무나 큰 고통으로 신음하던 끝에 죽어버렸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덧붙여 그는 자식이 그런 식으로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자신이 천 번이라도 죽고 싶었다고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에게로 가 제발 그 아이를 빨리 데려가 달라고 간청하고 싶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이 그처럼 고통을 겪다가 죽어버리고 마는 경우들은, 어린아이들도 세상에 나올 때에는 하나님의 분노와 저주를 받기 쉬운 타락을 지니고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무서운 증거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값진 보혈이 그 아이들을 더러운 죄된 상태로부터 깨끗하게 하여줄 수 있다고 하는 희망이 있습니다. 자녀를 일찍 잃어버린 분들은 제가 본문을 가지고 이야기하여 나갈 것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아이들이 간 곳으로 자신도 가게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저는 그곳에서 그러한 분들이 하늘의 별이 되어있는 자녀들을 만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 리 모두는 똑같은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유년기에, 다른 어떤 사람들은 중년기에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말년에 그곳으로 갑니다. 만일 우리의 영혼이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는 빨리 그곳에 갈수록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여보면 심지어 솔로몬의 말도 반박할 수 있습니다. 즉 본문의 말씀을 다른 견지에서 생각하여 보 면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한 곳으로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읍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흙 속이나 물 속에 묻히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죽음 뒤에는 심판이 있게 됩니다. 이 심판은 우리들을 영원히 결정적으로 갈라놓게 됩니다. 따라서 본문을 확대시켜 생각할 경우 우리는 그 본문의 말씀을 거듭나지 않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은 자들에게 국한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죽음과 함께 한곳으로 모두 가게 됩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란, 하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은 자들이란 어떠한 사 람들이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이제 그 물음에 대해 대답하겠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가지고 있기만 하면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그 세례를 성년이 되어 받았건 어린시절에 받았건, 물뿌림으로 받았건 침례로 받었건 간에 하늘로 가게 된다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세례가 중생을 필연적으로 가져다준다고 하는 생각을 저의 첫 번째 설교에서 공박하였을 해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설교는 제가 약 25 세경에 또는 그보다 약간 뒤에 인쇄되어 발표되었읍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저의 견해를 반박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들은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오 히려 화체설(doctrine of transubstantiation)을 믿고 싶습니다. 세례를 받았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자신이 성도라는 증거를 전혀 보여주지 않는 사람을, 세상과 육과 마귀와 전혀 싸우지 않으며, 대부(代父)나 대모(代母)가 그를 위해 약속한 말들에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을, 그러한 사람을 어떻게 제가 참된 기독교인으로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결코 믿을 수 없읍니다. 차라리 저는 사제의 손에 있는 약간의 물이 바로 예루살렘의 성 밖에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뼈라고 믿고 싶습니다. 저는 세례가 그리스도의 규례임을 명백히 믿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년기나 유년기에 세례를 받았으면서도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거듭나지 않음으로써 모두 다 한 곳으로 가게 될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저의 주장에 화를 낼 신실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성령에 의해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가는 곳은. 그들을 영원히 목마르게 하면서 그을릴 무서운 불이 있는 곳이며, 그 불은 어떠한 물로도 끌 수 없는 그러한 불입니다. 저는 지금 하나님의 생생한 신탁들이 실려있는 전도서를 가지고 진리 자체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엄숙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후에 하나님과 영원히 행복하게 있게 되기를 바랄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듯이 저도 여러분들께 그렇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거듭나지 않은 죄인들이라는 말을 이신론자(理神論者)들만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거듭나지 않은 죄인들이라는 말을 하나님을 비웃는 자들을 지칭하는 말로도 사용하지 않으며, 방탕한 간통 간음자들이나 인권 유린자들을 지칭하는 말로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마치 이마 위에 태양 빛으로 쓰여진 듯한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는 멸시를 받으실 분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만일 그들이 회개하지 않은 채 죽게 되면, 거듭난 상태에 있지 않음을 보여주게 되면, 모두 다 한곳으로 가게 됩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그곳으로 가고 있는 중인 분이 계신다면 오늘밤 하나님께서 그를 멈추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러나 나의 형제들이여, 이제 저는 거듭나지 않은 죄인들이라는 말이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를 보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앞에서 언급된 사람들은 모두 교회 밖의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울타리 밖보다는 교회의 울타리 안에 더 많은 불신자들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 합니다. 교회 밖보다는 교회의 안에 더 많은 불신자들이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성수(聖水)를 뿌릴 때 저의 이 말을 생각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신앙고백자들 모두가 신앙의 소유자들은 아닙니다. 모든 신앙고백자들이 약속된 것들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약속된 구세주를 가지고 있노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모두가 그 약속을 실제로 부여받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은 약속된 것이나 또는 거룩한 약속을 마음속에 부여받고 있지도 않으면서도 구세주를 가지고 있다고 혀와 입으로는 주장할 수 있습니다. 약속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도 않고서 외형적인 율법만을 지키며, 자기 자신을 의롭다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너무도 고집불통이어서 자기 자신 이외에는 그 누구도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비록 자기 자신을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머지 않아 모두 믿건 안 믿건 간에 한곳에 가게 됩니다. 그들은 한 법정에 소집될 것이며, “일어나라 너희 죽은 자들아 심판을 받으라”고 하는 대천사의 목소리가 그들을 놀라게 할 것입니다. 죽은 자들은 일어날 것이며, 모든 인류의 심판관이신 하나님의 아들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신실하지 못하였던 자들은 모두 변명을 늘어놓으며 기꺼이 용서받고자 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과거에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것을 면제받고자 하였던 것처럼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정죄받는 것을 면제받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한 곳으로 가야만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삶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따라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는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만일 우리의 마음이 올바르게 깨어있다면 등골을 오싹 하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없는 곳에, 즉 저주받은 영혼들이 영원히 하나님과 서로를 저주하는 곳에,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잠시 생각하여 보십시요. 그러한 생각이 오늘밤 우연히 이곳에 들어왔다가 지금 다시 나가고자 하는 경솔한 사람들을 일깨워주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서재에서 여러분들이 몰려들어 오는 것을 보았을 때, 여러분들이 서로 밀치고 들어오면서 일부는 장막 안이나 제의실(祭衣室) 안에, 다른 일부는 앞마당을 채우면서, 또 다른 일부는 입구에 서있는 것을 불 때, 내가 오늘밤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나는 이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흐느껴 울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 수많은 귀중한 영혼 들에게 실질적인 방법으로 진지하게 설교함으로써, 그들을 나 자신에게가 아니라 나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어야 하지 않겠는가?”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분노를 알고 있는 이상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그 분노를 피할 수 있도록 기꺼이 도와주고자 합니다.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 곳으로 가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무섭고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만일 우리가 마귀처럼 산다면 우리는 우리가 죽었을 때 영원히 마귀들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한 목사는 저에게 어느 한 여자가 죽기 직전에 무엇이라고 이야기하였는지를 들려주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뉴잉글랜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마도 종교적인 문제들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 여자가 임종 직전에 있을 해 한 신부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죽었을 때 어디로 가기를 바라십니까? 그녀는, 나는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신부는 다시, 당신은 당신이 천국을 가든 지옥을 가든 상관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네, 저는 제가 어디로 가게 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다시 신부가 물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에게 당신이 어디로 갈 것인지를 정할 선택권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녀는 지옥으로 가겠노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러한 대답에 신부는 놀라, 당신 마쳤어요? 당신 지옥으로 가고자 한단 말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예, 저는 지옥으로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읍니다. 그래서 신부는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녀는 그곳에 나의 모든 친족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신부는 그녀가 죽은 뒤 한 설교에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자신의 친족들이 지옥에 있기 때문에 자신도 그 곳으로 가겠다고 한 그녀의 말이 놀랄지 않느냐고 물었읍니다. 거듭나지 않은 자들은 모두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친족들이 모두 그곳에 있고, 그들의 아버지인 마귀도 그곳에 있으며, 모 든 저주받은 천사들과 악령들 역시 그곳에 있으며, 그들의 형제 자매도 그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모두 한 길을 걷고 있듯이 이 후의 세상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모두 한 곳으로 추방되게 됩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이 슬픈 사실을 더 이상 논하지 않아야 할 것 같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자들이 가는 곳은 생각만 하여도 우울해집니다. 하나님을 찬미하십시오. 그들이 가는 곳과는 다른 장소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그들과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모두 가게 됩니다. 아마도 여러분들 중 일부는 이곳에 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사는 자들은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죽음이 눈을 감기고, 실질적인 이별이 있게 되었을 때 그들은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는 소리 대신,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부자와 나사로의 경우를 보여 주셨습니다. 부자는 결국 무덤 속에 묻히게 될 자신의 몸을 살찌우고 향락시키면서, 일년에 하루도 금식하지 않았습니다. 나사로는 부자의 문 앞에서 굶주리다가 아마도 도랑에 묻혔을 것입니다. 파렴치한 부자 역시 죽었으며, 화려한 장례식이 치러졌습니다. 장례식이 치러질 때 그는 두명의 상여꾼이 들고 가는 관속에 누워 있었을 것이며, 저주받은 마귀들이 그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통 때문에 눈을 떳습니다. 여러분 그의 고통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잠시 제가 말을 멈추고 있을터이나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요. 사악한 자들이여, 여러분 형제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요? 그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기도하고자 하지 않았으나 지옥에서 하나님에게가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간구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저주받은 자들은 천국에 있는 자들을 지옥에서 바라보면서, 그들이 잃어벼린 천국이 어떠한 것이며, 그들이 버린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이시며, 그들이 상실한 영광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일이 여러분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도록 걸을 열어놓고 계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늘로부터 다시 태어난 사람들 속에 들어간다면, 만일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난다면 여러분은 그러한 고통을 겪지 않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하늘로부터 다시 태어난다는 말의 의미는 새로운 삶의 원리를 성령을 통해 우리의 마음속에 받아들여 우리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말과 새로운 행동과 새로운 시야를 가지게되어 옛것들은 모두 버리고 우리의 영혼 속의 모든 것들을 새롭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에게 뚜렷하게 밝혀져 있음을 대단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커다란 싸움을 벌여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저는 여러분께 빈번히 말씀드려왔읍니다. 그러나 저는 예언자냐 예언자의 아들로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의 영광을 위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과 권능은 이 땅에서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무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무시하는 자는 화있을진저!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의심하면서 파멸해 갑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하나님의 권능을 중시하는 일부 복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영국과 스코틀랜도와 아일랜드와 웨일즈와 아메리카의 많은 사람들도 하나님의 권능을 존중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러한 사람들의 수가 크게 증가하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들 사이를 흐르고 우리들에 의해 찬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을 고의적으로 경멸하면서 성령의 권능에 대한 교리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영을 무시하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양심의 자유의 보루인 신앙의 자유 밑에서 제각기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탄생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세상이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건 기울이지 않건간에 우리의 이야기가 교묘하게 조작된 거짓된 우화는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눈이 보아온 것, 우리의 손이, 만져온 것, 우리의 마음이 생명의 말씀에 의해 느끼게 된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제가 16 살이었을 때 저는 일주일에 두 번 총 36시간 동안 금식하기 시작하였으며, 매일 많이 기도하였으며, 매주마다 성찬을 받았으며, 사순절의 40일 동안에는 거의 죽을 정도로 금식을 하였습니다. 이 사순절의 금식 기간 동안에 저는 하루에 7번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것 이외에 하루에 적어도 3번 이상 공적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저의 의무로 삼기로 결심하였 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가 과연 태어난 것인지 아닌지도 몰랐었던 만큼, 제가 하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거나 예수 그리스도안 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였었습니다.

 

저는 배우가 되고 짚윤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과 함께 저는 양심의 가책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제가 배우가 될 수 있으면서도 성찬을 받아 기독교인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여 주십시오”라고 부탁하곤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배우 같은 사람들도 성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비록 이 땅의 법에 의하면 어떠한 배우도 자신이 회개하고 있음을 입증하지 않는 한 성찬을 받을 수 없지만 말입니다.” 이것은 대주교 틸롯슨(Tilotson)의 교리이었읍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 “그렇다면 저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른 사람의 역할은 물론 마귀의 역할도 하고자 하였읍니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저의 방황을 멈춰주셨습니다.

 

여기서 저는 저의 옛 친구 찰스 웨슬리에게 고마움을 표하여야 할 듯 싶습니다. 그는 나에게 《The Life of God in the Soul of Man》 (인간의 영혼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 이라는 책을 주었습니다. 그 책을 통해 하나님은 제가 다시 태어나야만 하며,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제가 다시 태어난 곳을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미신적인 행동일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옥스퍼드에 갈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으로 그 자신을 제게 보여주셨으며, 제게 새로운 탄생을 주셨던 곳으로 달려가곤 합니다. 그곳은 제가 그 책을 읽으며, 교회에 가 기도를 드리고‘성찬을 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형제들이여, 기독교인이 아닐 수 있다고 하는 글을 발견한 곳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파산한 것을 알고는 회계장부를 보기 두려위하는 불쌍한 사람처럼 저의 마음도 웨슬리가 준 책을 보고는 걷잡을 수 없이 떨렸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어떻게 그 책을 불태워 벼릴 수 있겠으며, 집어던지거나 숨겨버릴 수 있겠읍니까? 저는 그 책을 손에 쥔 채 하늘과 이 땅의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만일 제가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만일 제가 참된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오 하나님 제게 참된 기독교인은 어떠한 사람인가를 보여주소서 : 그래서 제가 최후에 저주받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저는 그 책을 좀더 읽어 나갔읍니다. : 그리고 저는 참된 신앙은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얻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때 저의 불쌍한 영혼에 거룩한 생명의 빛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모든 하찮은 대화를 멈추고, 모든 사소한 책들을 밀어놓고 하나님의 참된 성도가 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저의 영혼에 축복을 내려주셔서 왔습니다. 저는 지금 55 세이며, 곧 60세가 되어 얼마 후면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점점 더 저는 하나님의 진리를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없다면 여러분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을 수 없읍니다. 하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은 그가 젊건, 늙었건, 하나님 안에서 다시 태에난지 6시간이 되었건 9시간이 되었건 11시간이 되었건간에 그들이 아무리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 모두 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들이 가게 되는 그 곳은 어디일까요?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곳은 바로 천국입니다. 이 천국에서 그들은 누구를 만나게 될까요? 그들은 그 곳에서 의로운, 사람들의 완전한 영혼들 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영혼들 중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천국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을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 하게 된다면 아무런 즐거움도 없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천국이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천국을 좋은 곳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의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기쁨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느니 차라리 제 자신이 한번이라도 죽고 싶습니다. 수년 전 데포드에서 저는 저의 모든 친구들과 헤어진 뒤 눈물을 터뜨리면서 주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주님, 저는 제 친구들과 헤어지면서 겪는 이러한 고통을 주님과 헤어지면서 느끼고 싶지는 않습니다.”그 뒤 저는 저의 천구들에게 되돌아가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자 이제 죽음의 고통은 사라졌습니다.” 저는 이제 곧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죽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미하십시요. 죽음 뒤에는 아무런 이별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 목회자들도,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을 찬미하십시오. 모두 한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한 곳을 다니느냐 그렇지 않느나는 하등의 의미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비국교도라고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은 나는 국교도라고 이야기하여도, 또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서로를 불신자로 비난하여도 그들이 그리스도를 참된 구주로 마음 속에 받아들이고 있는 이상 그들은 모두. 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수년 전 한 여인이 제가 설교를 마치자마자 저를 찾아와 이렇게 물었읍니다. “당신은 코튼 매더(Cotton Mather)와 그리고 마른 신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사람은 제가 거룩한 경험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성찬을 받아야 한다고 하였으며, 다른 사람은 그렇게 하여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천사들이 그 두 신부 모두를 천국에 기꺼이 데려간 것으로 믿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말에 저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이 천국에서 이제는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 논하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문제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모두 한 아버지와 한 성령을 모시고 있으며 신앙의 한 교제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머지않아 곧 천사들이 내려와 동서남북 사방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있을 자들을 뽑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만일 우리가 그러한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가족이나 친구들과 헤어지게 되는 것을 두려위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저는 공적인 위치에 있어왔던 관계로 감히 여러분께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저처럼 하나님의 백성들과 그토록 빈번히 헤어진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현재 열 세 번째로 바다를 건너 영

국으로 가려 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도 바울에 대하여 말씀된 것이 참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는 가는 데마다 불화를 낳은 것이 아니라, 이별의 눈물을 낳있습니다. 그는 여러분이 울어서 내 마음을 상하게 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결코 불화로 인하여 사람들이 그를 때리고 그의 등을 상하게 하였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과 그의 교인들은 이처럼 이별을 슬퍼

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이러이러한 시기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역을 통하여 나를 그의 아들로 삼으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은 참으로 북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이여 영광 받으소서!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성령 다음에 당신의 종을 통해서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은 얼마나 축복된 일이겠습니까! 또한 인간에 대한 : 사역자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보라 그리고 네가 내게 가져다준 자녀들을 보라”고 말씀하겠습니까! 그들은 모두 그 거룩한 승리감으로 그들의 면류관을 어린양의 발아래 바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살아 공표될 때 그들은 어떠한 기쁨으로 은총, 은총이라고 외치겠읍니까! 그 다음 그들은 구속의 사랑과 부요한 자유로운 은총을 최고의 정성으로 찬양할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있는 차이는 마치 우리가 합창을 하면서 어떤 이는 소프라노, 어떤 이는 테너 어떤 이는 베이스로 부르는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각부는 다른 부를 도와 화성을 이룹니다. 모든 사람에 동일한 음으로 노래한다면 화음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의 차이들이 아무리 충격적이라고 할지라도 이러한 차이는 우리로 하여금 장래의 세계에서 더 잘 노래하게 하고 더 훌륭하게 하나가 되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이제 나는 여러분이 자신이 가려하는 곳이 어떤 곳인지를 묻기 시작하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다음과 같이 추론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오늘밤 거듭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은 지옥에 가서 저주받은 자들 가운데 거한다는 것을 들었다.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태어난 모든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 람들은 그들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노예이든 자유인이든 하나님, 천사들 그리고 완전하게 된 의로운 사람들의 영혼들과 더불어 거하리라는 것을 들었다. 나는 목사님의 설교가 가끔 장황한 것 같기는 하나 그의 설교를 통하여 우려 모두 한 곳으로, 즉 무덤으로 간다는 것을 들었다. 나는 지금 그리로 서둘러 가고 있다.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곧 나뭇잎이 떨어

질 것이다. 그러면 기후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의한 폭풍 또는 하나님의 관대하심의 결실들을 지나치게 즐김으로 인한 과식, 어떤 질병이 나를 나의 오래도록 거할 집으로 데려갈지 모른다.” 나는 중풍에 걸려서 죽어가는 사람의 다음과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튼튼하고 건강했다. 나는 나의 힘을 자랑했다. 그러니 열로 인하여 이 지경이 될 줄을 누가 알

았으랴. 나보다 더 연약한 사람이 더 잘 견딘다.”

 

전에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다음과 같이 부르짖었습니다. “만일 내가 오늘밤에 데려감을 당한다면 나는 지옥으로 가겠는가? 하늘나라로 가겠는가? 두려위 하는, 이제 떠나게 될 사랑하는 나의 영혼이여. 그대는 어디로 가려는가? ” 이것은 그가 한 말입니다. 여러분은 한 황제가 생명의 은(銀) 줄(전12:6)이 풀어지려는 임종의 자리에서 행한 설교를 들으려 하지 않 으십니까? 여호와의 촛불인 양심이 여러분을 돕게 되어 가련한 죄인인 여러분이 자신에 대한 지식에 이르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세주의 이름으로 - 나는 지금 그의 이름으로 그의 권세에 의하여 설교합니다 - 여러분의 양심에 권고합니다. “오, 그대 신실한 충고자인 양심이여, 각 사람으로 하여금 각자의 양심의 소리를 듣게 하라.” 여러분이여, 만일 양심이 말을 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무엇을 말하려 하겠습니까? 즉 여러분들이 여러분 자신과 그리스도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여러분은. 영원히 잃어지게 되리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미국인들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호의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나그네들을 환대하기를 좋아합니다. 그 결과 이곳에서는 나그네들이 여관에 투숙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이렇게 환대를 받아 나그네로서 투숙하게 될 때는 언제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전하려고 노력합니다. 한번은 시워드(Setward)씨와 다른 몇 사람의 훌륭한 친구들이 나와 더불어 있었읍니다. 나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집 주인은 내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옳다고 나는 믿어요. 나는 내 성경을 들출 때마다 내가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요. 아마 여기 있는 사람들도 그럴겁니다. 여기 있는 많은 사람들은 당신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할 것입니다. ‘나는 당신 말을 경멸하오. 내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요? 하나님께서 그렇치 않다고 당신께 말하든가요? 천만의 말씀이요. 당신은 도덕적 인간이니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소. 또 골치가 아프니까 술을 마시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요. 하기는 당신은 음행과 간음을 저지르지는 않을테니까요. 이런 일은 위대한 자들 가운데 흔한 일인데 이런 일이 흔하므로 그들은 그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들을 처형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요. 아마 당신은 신문에 나는 것이 두려워 간통을 저지르지 않는지도 모를 일이오. 물론 우리 가운데 이러한 규율은 없소. 당신은 망나니가 될까 두려위하여, 또는 연행될까 두려위 하여 이런 일들을 행하지 않는 것이오. 그러나 이러한 당신의 복종은 하나님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란 말이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죽기 전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비참한 상태를 알려주시기를 바라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에는 내가 한곳에서 영생토록 함께 살기를 바라는 사랑스러운 많은 영혼들이 있습니다. 나의 동료 기독교인들을 나는 진심으로 찬양합니다. 나의 사랑스러운 형제와 친구들을 진심으로 찬양합니다. 한 부모의 자녀들로, 한 성령께로부터 태어나 생활 가운데 성령의 열매를 맺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찬양합니다. 그러나 잠시 동안 우리는 헤어져 있어야만 합니다. 내가 죽든지 여러분이 죽든지 우리는 헤어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한곳에 모여 살게 될 것입니다. 복된 저 세상에서 우리는 만나서 거저 베풀어지는 은총을 찬양할 것입니다. 나의 형제들이여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영원히 거하게 될 것입니다. 영원히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들어 서로를 위로하도록 하십시다. 그리고 만일 우리 모두 한 곳으로 가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무한하신 자비로, 우리를 도중에서 떨어지지 않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나는 주물공장에 속했노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나는 성막 예배당에 속했노라고도 말하지 마십시오(전자는 웨슬리의 예배처를 말하고 후자는 휫필드의 예배처를 가리킴 -역주). 종 웨슬라와 조오지 횟필드에 대해 험담하느라고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너는 비국교파 예배당으로 가라. 나는 국교회 기도처로 가겠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나는 바울에게 속했느니, 게바에게 속했느니 하고 말하지 마십시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더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합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만일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가려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도와서, 우리가 여행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여행하게 하실 것입니다. 나의 형제들이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우리의 높은 부르심의 상의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십시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평화와, 기쁨으로 우리를 채우시어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모든 폭풍, 모든 시련이 파기되고 우리를 위해 선한 일이 이루어 질 수 있기를! 우리의 모든 상해와 우리의 모든 시험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늘나라를 더 간절하게 사모하고 이 지상을 더욱 싫어할 수 있게 만들기를 !

 

만일 여려분들 가운데 이와 같지 않은 분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오늘밤 여러분을 회개시키시기를 바랍니다. 성막 예배당에 참석하신 여러분들, 신문을 통하여 이 설교를 대하게 될 런던의 청중들이여, 간절히 바라노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십시요. 여러분은 스스로 지옥을 향하여 나아갔었습니다.

 

이제 거기서 돌이킨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인하여 아직도 그리로 가는 사람들을 멈추게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회개하지 않은 친우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요. 경솔하게도 지옥으 나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이여, 하나님께서 오늘밤 여러분들을 멈추게 하려고 하십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진지하게 말하면 여러분은 한 젊은 신사가 내게 했던 말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내가 그 신사에게 맹세하지 말기를 희망하였을 때 그는 내게 돌아서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박사님(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박사가 아니었고, 또한 젊은이에 불과했습니다), 사람을 지옥에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만일 여러분 가운데 어느 누가 이러한 특성을 지녔다면 하나님께서 자비를 내리셔서 이러한 특성이 여러분을 여러분 자신의 길을 따라 지옥길로 가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을 따라,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하늘나라로 가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악마에게 속한 자녀는 이 세상에서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밤 여러분의 발길을 평화의 길로 돌이키시기를! 어느날 밤 한 젊은이에게 있었던 일이 여러분에게도 일어날 수 있기를! 내 기억으로는 약 200회 정도 한 듯 싶은 얘기인데 한 젊은이가 내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오늘 아침 6시에 애인을 만나려고 무어필즈에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나의 애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젊은이들이여, 오늘밤 하나님께 대하여 여러분도 그럴 수 있기를! 여러분이 놀이를 찾아 나섰을 때 크레인씨에게 일어났던 일이 여러분에게도 있어지기를 ! 크레인씨는 고아원의 직원입니다. 한번은 그가 연극을 보려고 드러리 레인에 갔었습니다. 그러나 만원이었으므로 그는 커벤트 가든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곳도 만원이어서 발디딜 틈조차 없었습니다. 진실로 그는 이스라옐 자손이요,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그가 내게 말해 준 바대로 한다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가서 휫펄드 박사의 설교나 듣도록 하자.” 거기서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임하셨읍니다. 이제 그는 빛을 발합니다. 저는 어제와 그제 조지아 주로부터 편지들을 받았습니다. 그 편지들을 받고 나의 마음은 기쁨으로 고동쳤습니다. 성실하고 불굴의 사람인‘라이트씨와 크레인씨는 아주 잘 지내고 있고, 또한 고아원도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각지로부터 오는 모든 편지들이 제게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만 하면 저는 라이트씨와 크레인씨 같은 사람들을 1만명이라도 내보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만 하면 저는 우리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전할 백 명의 설교자들도 보낼 수가 있습니다.

 

바라기는 이러한 호기심이 오늘밤 여러분 몇 분 가운데 선한 역사를 일으킬 수 있기를! 이제 시간이 너무 늦었습니다. 잠시라도 여러분을 더 잡아둔다면 여러분에게 폐가 될 것입니다. 또한 나도 여행하기 전에 피곤하게 되어 항해하는데 어려움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것도 염려됩니다. 내일 저는 숙박할 곳을 확인해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저는 내 얼 성만찬을 가지고 다음 안식일 아침에 다른 곳에서 성만찬을 집례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주일날 저녁에 여러분에게 작별 인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자신의 사적인 업무를 처리하고 또한 나의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곳으로 갈 준바를 하기 위하여 하루 이틀 정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가급적이면 말씀드리고 싶지 않은 사실을 한 가지 말씀드려야 하겠읍니다. 그것은 이 교회당 수리에 대한 것으로 보시다시피 이곳은 말끔히 단장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많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저는 가기 전에 문제를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이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헌금이 필요합니다. 세상은 제가 매우 부자라고 생각합니다. 전에 어떤 사람이 제가 대단한 부자라고 생각하고는 이러 이러한 장소에 30파운드를 가져다놓지 않으면 틀림없이 나를 죽이겠노라고 협박 편지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나는 칼이나 피스톨에 의하여 갑자기 죽임을 당하는 것을 두려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나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여기서 설교를 하여 치부를 한 것으로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제가 떠나려는 입장에서 묻겠는데 여러분은 정말 예배당에서 설교하는 데 대하여 주어지는 나의 고정 급여가 얼마라고 생각하십니까? 나의 연봉은 1백 파운드에 불과합니다. 나는 지난 밤에 재정상황이 어떠한 가를 물었읍니다. 그랬더니 단 6펜스짜리 주화 하나 남기는 커녕 50 파운드의 체불이 있다는 것이 었습니다. 그리하여 달가운 일은 아니나 오늘밤 헌금을 하여 모든 것을 처리하고자 합니다. 만일 한푼이라도 남는다면 하나님의 축복이 될 것입니다. 이곳에 있는 분들 가운데서 제가 1월부터 8월까지 1기니의 돈이라도 받아낸 분이 있다면 말씀해 보십시요. 또한 저는 나의 항해 비용을 위해서도 1기니도 받지 않았습니다. 제가 하늘나라 나의 형체들에게 가게 되면, 여러분은 제가 어떠한 정신으로 여러분을 섬겼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여러분은 제가 행한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을 위한 처소를 세우기 위해서였음을 알 것입니다. 제가 죽어서 그곳에 가듯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을 그렇게 거기서 영접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금후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실 때 우리는 한 장소에서 만날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소생시키시고 여러분을 강건하게 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주념께서는 오래지 않아 우리가 슬픔이 없는 곳에 있도록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주님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함께 영원히 살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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