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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개혁주의 성경해석 원리/신원균 교수

by 【고동엽】 2021.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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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개혁주의 성경해석 원리


한마음개혁교회 신원균 목사


들어가는 말
개혁주의에 기초한 구약성경 요약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개혁교회에서 사용하는 성경해석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개혁교회는 개인의 지나친 주관적 해석이나 로마카톨릭처럼 성경을 벗어나 교단의 율법적 규범에 따라 해석하는 것을 피하고 성령의 은혜를 따라 성경은 성경 그 자체로 해석한다는 중요한 해석규범을 가지고 있다. 각 교파마다 신학적 입장에 따라서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에 많은 차이를 나타낸다. 즉 어떤 주제와 어떤 교리를 중심으로 보는가에 따라서 구약과 신약의 방향과 목적이 달라진다. 따라서 성경요약을 소개하기 앞서서 현대에 잘못 사용되고 있는 성경해석원리를 몇 가지 소개한 다음 칼빈과 보수주의자들이 주로 사용했던 개혁주의 성경주석과 해석과 적용의 원리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조심해야 할 성경해석 원리들
1) 모범적 해석(자유주의)
모범적 해석이란 윤리적 교훈적 해석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성경의 인물이나 사건 가운데 윤리적으로 모범이 될 만한 행동이나 사건에 초점을 맞춰서 단편적인 윤리적 교훈만을 제시하는 입장이다. 이 해석방법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무엇인지, 왜 특별한 인물과 사건을 허락하셨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를 살피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훌륭한 모습만을 살펴서 윤리적 모범으로 제시하며, 동일한 모범적 행동을 하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공로주의적 동기만 부여한다. 주로 자유주의자들이 택하는 방법으로써 양식비평, 문학비평 등을 사용한다. 현대에 와서는 성경본문에 대한 문학적 기법을 이용하여 드라마적이고 이야기적인 스토리텔링 형태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런 방법의 위험성은 모범적 인물의 행동에 이르지 못 할 때 심각한 자기비하와 자멸감의 고통을 준다.


2) 풍유적 해석(신비주의)
풍유적 해석(Allegory)이란 성경의 문자와 문맥을 무시하고 한 단어와 문장에 초점을 두고 그 의미를 상상적으로 또는 주관적으로 보는 방법이다. 초대교회 때에 오리겐이 발전시킨 방법으로써 종교개혁시대에는 금지되었으며, 현대에 와서는 주로 신비주의자들이 사용하는 해석법이다. 신비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직통계시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성경을 사용할 때는 특별한 단어나 문장에 집착하며, 그 뜻을 해석할 때도 문법적 역사적 의미들을 무시하고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이나 상상 속에서 의미를 연결시킨다. 이들은 성경본문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실적인 필요와 상황에 따라서 본문의 의미를 억지로 끌어다 맞추는 실수를 한다. 현대에 와서는 QT묵상이라는 형태로 성도들 가운데서 많이 사용되어지고 있다.


3) 종말론 중심의 해석(세대주의)
종말론 중심의 해석은 성경 전체의 내용을 주로 종말론에 맞춰서 해석하려는 입장이다. 주로 세대주의 경향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교단들이 사용한다. 지나치게 현실 도피적이며 내세적인 천국만을 강조하면서 휴거와 같은 극단적 종말사상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구약에서 에스겔, 다니엘, 스가랴와 신약에서 계시록 등을 중심으로 종말론적 해석을 한다. 한국교회는 세대주의적 천년설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세상의 문화를 세속적이라고 비판하고 종교생활만 거룩하게 여기는 이원론적 신앙모습이 강하다. 성경의 본문을 통해서 생활에 해당하는 기독교 문화관, 세계관과 같은 일반은총의 영역을 소개하지 못하고 종교적인 부분에만 치우쳐 해석한다.


4) 율법주의적 해석(로마 카톨릭)
율법주의적 해석은 지나친 문자주의적 해석방법이다. 성경본문의 문자가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문자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면 오히려 성경을 파괴한다는 어거스틴의 지적처럼 문자 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뜻을 살필 수 없다. 이들은 문맥과 전체적인 교리의 조화와 균형을 찾지 못하고 단편적인 문자적 의미만을 강조하여 지키게 한다. 특히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과 차이성을 무시하고 구약의 문자적 표현들을 오늘날 그대로 적용하려는 경향이 강한다. 안식교인들이 구약의 안식일에 집착하며, 여호와 증인들이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을 단편적으로 받아들여 군대를 거부하는 것도 이에 해당된다. 또한 로마 카톨릭처럼 구약의 종교의식과 모습을 그대로 흉내 내려는 것도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은 구약뿐만 아니라 교황의 선언을 신의 말씀처럼 지키려는 율법주의적 경향이 강하다.


5) 구속사 중심(복음주의)
구속사, 구원사 중심의 성경해석은 일반역사와 문화들을 무시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문제에만 초점을 두는 해석방법이다. 신약은 주로 예수님의 사역을 다루기 때문에 덜 심각하지만 구약에서는 문제가 심각하다. 왜냐하면 구약성경 중 예수님을 예표하거나 예언하지 않는 성경들(룻기, 에스더, 잠언, 아모스, 미가, 야고보서)이나 본문은 무시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얼핏 기독교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신구약 전체를 예수님 중심으로 해석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개혁주의는 삼위일체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신적작정과 섭리를 강조하는 신론 중심의 해석을 기본으로 한다. 예수님만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론이나 인간의 구원문제만을 다루는 구원론 중심은 인본주의적 신앙에 빠지기 쉽다.
이 방법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루터가 이신칭의를 주장하기 위해서 기독론과 구원론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예수님 중심"을 외쳤던 방법이며, 자유주의자들이나 "구속사학파"가 "역사적 예수"를 강조하면서 사용했던 해석법이었다. 또한 신정통주의의 대표자인 바르트(K. Barth)가 모든 역사를 그리스도 중심으로 벌어지는 구속역사의 배경으로 이해하여 "신앙적 그리스도"(Geschichte)를 소개했던 방법이다. 그리고 불트만은 변증법적 원리를 이용하여 케리그마적(Kerygma) 예수(메시지 중심적 예수)를 제시하기도 할 정도로 신정통주의에서 즐겨 사용했던 방법이다. 현대에 와서는 "구속사적 설교", "구속사적 성경해석" 형태로 복음주의에서도 많이 선호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의 문제점은 구원의 역사만 강조하기 때문에 일반역사와 문화에 대한 부분을 소홀히 다룬다. 특히 십계명을 중심으로 하는 성도들의 생활과 윤리문제를 다루지 않기 때문에 종교생활만 강조하는 이원론적 모습과 무(無)율법주의에 빠지기 쉽다.


2. 개혁주의 성경해석 원리
1)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 한다”는 “성경유비”(聖經類比)의 원칙은 개혁주의 성경해석 원칙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 법칙이다. 이 방식은 성경의 계시성과 충분성의 교리를 전제한 것이다. 특히 계시성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기록하셨다는 것을 확신하는 교리이며, 충분성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리시고자 하신 것은 모두 성경에 충분히 나타나 있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그리고 이 원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에서 “성경 해석의 정확 무오한 법칙은 성경 자체이다(Infallibilis Scripturam interpretandi regula est Scriptura ipsa). 그러므로 어떤 성구의 참되고 온전한 뜻에 관해서 문제가 일어날 때, 보다 더 명백하게 말하는 다른 성구에서 그 뜻을 알도록 해야 할 것이다”라는 형태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개혁신학에서는 “성경이 가는 데 까지 가고, 멈추는 곳에서 멈춘다”라는 표현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원칙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인위적으로 조합하려는 태도를 항상 주의해야 한다. 성경의 의미를 비슷해 보이는 다른 성경구절로 무조건 보충하는 단순한 방식은 성경의 문맥을 파괴하고, 전체 조화를 무시하는 또 다른 오류를 낳는다. 따라서 성경의 의미를 성경으로 해석하고자 할 때도 그 문맥과 의미가 서로 같은 내용인지를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이 성경유비 원칙을 오해한 대표적인 예는 이사야 34:16의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라는 부분이다. 성경 전체가 서로 짝을 이루고 있다는 말씀으로 이 표현이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이 말씀의 “짝”(Ht;W[r_ hV;ai)은 이사야34:15의 “부엉이가 거기 깃들이고 알을 낳아 까서 그 그늘에 모으며 솔개들도 그 짝과 함께 거기 모이리라”라는 말씀에 나오는 동물의 암수 “짝”(Ht;W[r_ hV;ai)에 대한 보충설명이다.
따라서 성경은 성경 그 자체로 해석한다는 원리는 칼빈이 원전과 자료만의 해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는 자리까지 나가야 한다고 지적한 것처럼 성경 본문의 문자와 문맥, 그리고 포함된 의미를 정확히 연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즉 개혁교회 성경해석의 1차 원칙은 성경 그 자체의 정확한 연결과 도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정확히 헤아리는 단계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2) 2대 성경사용원리
(1)“오직 성경”(Sola Scriptura)
칼빈은 종교개혁의 중요한 해석원리로써 오직 성경 안에서만 생각하고 말하고 이해하고 실천하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제시했다. 칼빈은 성경에 대한 단순한 해석학적 원리로서만 아니라 일찍부터 전체 기독교 교리와 기독교 철학의 기초 및 바른 신앙생활에 관련하여 오직 성경으로부터 생각하고 말하는 원칙으로써 "오직성경"을 고백했다. 우리가 성경을 유일한 경건과 삶의 규범이라 고백하였을 때, 성경이 구원의 방도로서만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으로서 오직 성경에 따라서 생각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성경에 따라서 영적인 모든 대적들을 대적하고, 이 세상에서 성경에 따라서 살고 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칼빈은 이런 해석학적 규범을 토대로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에 관하여, 혹은 그 성경의 증거들을 넘어선 것에 대해서는 엄밀하고 확실하게 침묵하고자 하는 절제의 원리까지 말했다. 즉 감추어진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 것 이외에는 다른 것을 말하거나 생각하거나 알고자 욕망하지 않는 것이다.
이 표현에는 성경의 감추어진 신비를 다룰 때 규범에 맞게 적합하도록 생각하는 것, 즉 매우 주의 깊게 행하면서, 사고나 말에 있어서 하나님 말씀의 한계를 벗어나서 더 멀리 나아가지 않도록 하고자 했던 의미를 포함한다. 절제함의 이러한 최선의 한계는, 우리가 배움에 있어서 항상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지 않을 때, 스스로 교리의 결말을 지어야 함에 있어서 조차도, 생각하고자 원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그의 말씀밖에 어떤 다른 곳에서 찾지 않고 그의 말씀을 가지지 않고는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으며 그의 말씀을 통하지 않고는 어떤 것도 말하지 않고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사고하고 말하며 실천하는 태도이다.


(2)“전체 성경”(Tota Scriptura)
종교개혁의 성경해석원리로써 “오직 성경”이 유명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원리가 개혁주의자들이 제시한 “전체 성경”원리이다. "전체 성경"은 "오직 성경"과 함께 개혁주의 성경사용의 2대 원칙으로써 신명기 4:4의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사도행전 20:27의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pa'san th;n boulh;n tou' qeou')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라는 말씀을 따라서 성경의 어느 한 부분을 더하거나 빼지 않는 것이다. 이런 원리에 따라서 칼빈은 예정론에 대한 해석을 창세기에서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전부 살폈으며, 또한 예정론이 이해하기 어려워도 성경에서 설명하는 곳까지 따라가고자 했다. 또한 이처럼 성경의 전체적인 안목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칼빈은 제네바교회 목회 당시 요리문답(Catechism)의 교육을 통해서 그 목적을 완성시키고자 했다. 즉 요리문답의 교육이 없이는 성경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성경을 통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지도했던 요리문답의 교육방식은 칼빈 당시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고대교회의 관습에 하나였다. 위클리프나 후스 등은 어린이를 위한 종교교육문서를 작성하여 지도하였지만 이런 중요한 방식들이 중세 시대에는 거의 사라졌었다. 그러나 16세기에 들어와서 종교개혁을 중심으로 이 방식은 브렌즈, 카피토, 루터, 부처, 첼 등을 통해서 회복되었다. 특히 칼빈은 1537년 1월에 의회에 제출한 제네바 교회의 조직과 예배에 관한 제의서 중에서 전체 성경에 대한 통일성 있는 교육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교리의 순수함을 보존케 하기 위하여서는 어린 시절의 아이들에게 이를 가르치어 저들로 하여금 믿는 내용을 깨닫게 함이 극히 필요하니, 이와 같이 함으로써 복음적 교리가 쇠퇴하지 아니하고 보존될 것이며 또한 각 사람에게 혹은 대대로 전파 될 것이다.”
이 "전체 성경"원리는 종교개혁 당시에 로마 카톨릭의 신학적 입장과 재세례파의 신학적 입장과의 분명한 차이를 나타내 주는 주요한 특징이기도 했다. 즉 로마 카톨릭이나 신비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교리를 강조하기 위해서 성경의 어느 한 부분에 치우치는 것을 개혁주의자들은 철저히 비판했다. 부분에 치우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개혁교회는 성경의 전체적인 통일성의 안목을 갖고 부분적인 것들을 해석하며 신·구약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했다. 이 방식은 17세기에 와서 특히 알미니안주의와 대립하면서 도르트(Dort)회의를 통해서 개혁주의의 중요한 성경해석원리로 자리를 잡기도 했다.


3) 신학적, 역사적, 문법적 해석
성경유비의 원칙을 보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개혁주의는 3가지 형식의 성경해석원리를 발전시켰다. 이 3가지는 문법적, 역사적, 신학적(교리적, 신조적) 해석방법이라고 한다. 이 해석은 성경의 영감성을 기초로 한다. 왜냐하면 개혁주의는 성경의 영감론에서 유기적축자완전영감을 고백하기 때문에 자연히 성경원전의 문법적 요소와 기록 저자들의 특징을 살필 수밖에 없는 것이다.


(1) 문법적 해석
문법적 해석은 영감론에서 축자완전영감을 기초로 하는 것으로써 성경 히브리어, 헬라어 원전을 토대로 본문의 단어, 문장, 문맥 등을 정확하게 읽고 해석하는 방식이다. 이와 같은 문법적 해석의 중요성을 웨스트민스터 정치모범에서는 "목사는 원어를 다루는 기술에 관하여 시험을 받을 것이다. 시험은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을 읽음으로 치고, 그 어느 부분을 라틴어로 번역하게 하는데 만일 그가 그 점에서 결함이 드러나면 다른 공부도 철저히 살피고 특별히 그가 논리학과 철학을 습득 했는가 검토할 것이다"라고 언급한다.
성경원전의 본문이 정확하게 읽혀 지지 않았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을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개역성경 창세기 1:3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라고 직접명령형으로 번역되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70인역[LXX]에서도 “kai eipen o qeo" genhqhtw fw" kai egeneto fw"”라고 번역하였다. 하지만 히브리어 본문은 "r/aAyhiy_w" r/a yhiy_ !yhil|a> rm,aYOw"" 라는 형태의 간접명령문(단축형-Jussive)을 취하고 있다. 간접명령의 형식을 취하여 하나님의 강력한 창조에 대한 의지와 소원, 그리고 피조물에 대한 인격적 배려의 은혜를 강조했다. 이 의미를 KJV에서는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라는 간접명령문 형태로 정확히 번역했다.
신약에서는 대표적으로 마태복음 28:19-20의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이다. 한글성경에서는 두 절에서 나오는 5개의 동사가 모두 본동사처럼 번역되어 5개의 주제로 마지막 명령이 소개되고 있다. 영어번역[KJV]도 “Gotherefore, and make disciples of all the nations, baptizing them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teaching them to observe all things that I have commanded yon,”라고 번역하여 2개가 본동사로 소개되었다.
하지만 헬라어 본문[UBS4]은 “poreuqevnte" ou\n maqhteuvsate pavnta ta; e[qnh, baptivzonte" aujtou;" eij" to; o[noma tou' patro;" kai; tou' uiJou' kai; tou' aJgivou pneuvmato", davskonte" aujtou;" threi'n pavnta o{sa ejneteilavmhn uJmi'n: kai; ijdou; ejgw; meq! uJmw'n eijmi pavsa" ta;" hJmevra" e{w" th'" sunteleiva" tou' aijw'no"”라고 언급하여 1개의 본동사만 제시했다. 즉 “maqhteuvsate”(제자 삼으라)라는 부정과거 2인칭 복수명령만이 본동사고 나머지는 전부 분사형으로 보조문장이다. 결국 마태복음의 지상명령의 주제는 5개가 아니라 “제자를 삼으라”는 하나의 주제가 결론인 것이다. 이런 의미가 라틴어[Latin Vulgate] 번역에서는 euntes ergo docete omnes gentes baptizantes eos in nomine Patris et Filii et Spiritus Sancti 라고 번역하여 “docete”의 2인칭 복수 현재명령 외에 모두 분사로 변역하여 헬라어 본문의 의미를 잘 살렸다.
이와 같이 성경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전을 제대로 읽고 해석해 내지 못하면 본문의 뜻과 다른 내용을 전달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특히 성경을 벗어나지 않고 그 자체를 열심히 해석했다고 해도 문법적 의미를 곡해했다면 해당 본문의 의미를 말하지 않고 자신의 성경해석을 말한 결과가 되는 것이다.


(2) 역사적 해석
역사적 해석은 영감론에서 유기적 영감을 기초로 한다. 성경은 1500년 이상의 시간과 40여명의 다양한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여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경이 기록되던 시대와 공간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기초로 해석해야 한다. 21세기의 문화와 역사적 배경을 성경의 시대로 바로 적용하면 매우 극단적이고, 편협한 해석이 된다.
예를 들면 창세기38장의 유다와 다말의 동침사건이나, 룻기서의 보아스와 룻의 동침사건 등은 이스라엘의 독특한 결혼문화를 이해해야만 한다. “계대결혼(繼代)”이라고 하는 “고엘제도(laeg)” 즉 “형사취수법”의 결혼방식은 이스라엘의 족보가 단절되지 않도록 자손을 낳아주기 위한 특별결혼제도이다. 이런 이스라엘 가문의 자손법은 장차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는 하나님의 언약이기에 결코 단절되어서는 안되는 구약에서만 허락된 독특한 의식법이다. 이것을 오늘날의 윤리적인 기준으로만 해석한다면 신앙의 규범으로 결코 허용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윤리규범이 된다.


(3) 교리적(신조중심) 해석
개혁주의는 종교개혁의 원리를 따라서 개인이 각자 성경을 소유하고,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자유를 열어주었다. 하지만 그 자유가 성경해석의 방종까지 허락하는 무한한 자유는 아니다. 이 자유는 반드시 공교회적인 신앙고백과 일치하는 범위에서의 자유인 것이다. 즉 여러 신앙고백들을 통해 공동체 안에서 고백되어진 공교회적 신앙고백의 틀 안에서 성경을 해석하도록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자 개개인의 성경해석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고백서의 전체적인 기준을 근거로 해서 개인의 해석을 인정하는 것이지 신앙고백서를 벗어난 개인의 해석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개혁주의는 베드로전서 1:21에서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in the will of man) 풀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 자신의 뜻과 의지만이 성경해석의 기준이 아니라 공교회가 고백하는 신앙고백의 교리적 기준을 해석의 규범으로 삼았다. 개인의 해석적 자유만을 강조하면 수많은 성경 내용이 나올 수 있고 또한 이단들도 자신들의 성경해석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 즉 그 누구도 잘못된 성경해석을 지적할 수 없는 것이다.
초대교회 때 공교회의 고백인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한 아리우스(신성부정)와 사벨리우스(양태론)를 정죄하고, 예수님의 인성만을 강조한 아폴리네리우스(인성부정), 이성이인격을 주장한 네스토리우스(일인격부정), 단성론을 주장한 유티커스(양성론부정) 등을 정통교회가 이단으로 정죄한 것은 모두 공교회의 신앙고백적 교리기준과 어긋났기 때문이다. 물론 종교개혁시대에도 루터, 쯔빙글리, 칼빈의 입장에서 이신칭의를 부정하는 로마카톨릭의 행위구원이나, 미사, 면죄부 등은 정통교회의 교리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교리적으로 배격한 것이다. 이처럼 교리적 해석은 각 교파의 신학적 입장을 제시하고 이단을 분별하는 중요한 성경해석의 기준이다.
교리적 해석은 교단헌법(대신측)에 “우리의 신학은 어느 개인 신앙의 학적 표명이 아니고, 교회성을 본질로 한 교회신조의 학적 석명으로 본다”라는 선언처럼 성도 한 사람의 신학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공교회적인 신앙고백에 따라서 선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교리적 해석을 정립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교회적인 신조, 신앙고백, 교리문답을 확정해야 한다.
개혁교회는 공교회적 신앙고백으로써 초대교회 5개 신조(사도신조, 니케아 신조,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 칼케돈 신조, 아타나시우스 신조)와 종교개혁의 역사에서 루터파 신조를 제외한 정통파 신조들(제네바교리문답, 프랑스 신조, 스코틀랜드 신조, 벨직 신조, 제2 스위스 신조, 도르트 신조, 웨스트민스터 신조 등)을 인정한다. 즉 개혁교회는 아무 신조나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개혁파 교회가 고백해온 신조들만을 받아들이며, 이 신조를 중심으로 개혁교회의 교리적 기준을 성경해석의 기준으로 제시했다. 이와 같은 의미를 제2 스위스 신조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많은 내용을 몇 마디 말로 표현해 보자.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신비에 관하여 성경이 정의하는 모든 것과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에베소, 칼케돈에서 열린 가장 탁월한 처음 네 에큐메니칼 공의회의 신조들과 결정들에 내포된 것은 무엇이든지 진지한 심정으로 믿고 입을 열어 자유롭게 고백한다. 그리고 아타나시우스 신조와 이와 비슷한 신조들을 역시 귀히 여긴다. 따라서 우리는 이와 같은 것들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정죄 한다.


개혁교회의 신조 중에서 특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교리적 해석의 핵심적 기준이다. 따라서 개혁교회 목사들은 반드시 자신의 성경해석의 결론이 이 신조의 고백과 어긋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고백은 성경의 교리들을 최소한으로 정리한 의미를 갖는다. 즉 이 교리의 내용 이하로 더 내려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요즘은 WCC의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인해서 사도신경의 고백 안에서 머무르려는 움직임이 있다. 또한 12신조로 제한하여 교리적 내용의 범위를 축소하려는 모습도 있다. 하지만 역사적 개혁교회는 항상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최소한으로 삼았고 그 안에서 일치와 다양한 성경해석을 인정했다. 또한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최소한으로 받지만 1907년 수정한 35개 조항은 개혁교회에서 보편적으로 수용하는 범위가 아니다. 개혁교회는 초판을 중심으로 미국장로교회가 1788년 수정 완성한 총33개 조항을 기준으로 한다.


4) 3위1체의 신적 목적
개혁교회의 성경해석에 있어서 또 다른 주된 특징은 구약, 신약 모두 삼위일체적 하나님의 이해가 전제된 하나님 중심의 신론적 특징이다. 칼빈은 자신의 주석에서 삼위 하나님의 자리를 어느 한 위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게 제시했다. 그는 본문에서 성령의 의도를 끊임없이 찾으려고 하며,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의미와 사역을 적절하게 드러내 주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성부 하나님께서 이러한 전체적인 사역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지를 집중적으로 드러냈다.
칼빈은 어느 한 격위(格位)만을 따로 떼어 강조하는 방식에 대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뜻을 파괴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해석법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그리스도만을 따로 떼어 특별하게 언급하지 않은 것은 루터주의와 큰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루터는 의도적으로 성경의 대목을 강해 할 때 그리스도를 중심에 놓았지만 칼빈은 그렇게 하지 않고 성부, 성자, 성령의 구속적인 사역을 종합적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오히려 칼빈은 신격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를 생각하지 않은 채 삼위 중 어떤 한 격위를 따로 떼어 독립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우상숭배와 같은 행위로 취급하고 있다. 즉 성령을 중심으로 삼게 되면 치명적인 주관주의나 신비주의로 빠져들며,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삼게 되면 휴머니즘(자유주의-인본주의)으로 빠져드는 것을 경계했다. 이런 차이점을 바빙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개혁주의 그리스도인은 신론적으로 생각하고, 반면 루터주의 그리스도인은 인간론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개혁주의자는 역사 안에 서서 머물지 아니하고 이념 즉 영원한 하나님의 결정에까지 끌어 올라간다는 것이요, 루터주의자는 그 입장들을 구원사의 중심에서 취하고 더 깊이 하나님의 성정에까지 꿰뚫고 들어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개혁주의자들의 경우 선택이 교회의 핵심이고, 루터주의자들의 경우 칭의가 교회의 항존적이고 항상 출발하는 조항(articulus stantis et cadentis ecclesiae)이다.


이처럼 칼빈의 성경 해석 방식의 독특성은 하나님의 뜻(concilium Dei)과 성령의 뜻(consilium Spiriti sancti)에 중점을 두는 삼위일체적 성격해석이다. 이와 같은 원리에 입각하여 볼 때, 오늘날 급속히 퍼져가는 구속사 중심의 기독론적 성경이해는 매우 깊은 주의를 필요로 한다. 이 해석법은 신약을 중심으로 구약을 해석하면서 일반역사를 무시하고 오직 구속역사만 강조한다. 전통적으로 개혁교회가 칼빈의 삼위일체 중심의 성경해석원리를 따라서 신적작정과 섭리를 강조하고 일반역사에서 일반은총을 강조하며 구원사와 조화를 이루었던 성경해석과 차이가 있다. 즉 하나님의 뜻보다는 인간의 구원에만 초점을 두며, 일반은총과 성화적 윤리론이 무시되는 기독론 중심의 성경해석방식은 주의해야 한다.


5) 개혁주의적 적용원리
개혁교회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성경해석 방식은 적용에 대한 독특성이다. 칼빈은 구약과 신약의 관계성을 바르게 이해하므로 16세기 당시에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을 정확하게 제시해 주었다. 특히 그는 적용과 관련하여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예언이 저에 의해서 경건할 뿐만 아니라, 정직하게 설명되었음을 인정할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더욱이 그는 그것이 현재의 상황에 유효하게 적용되었다는 것도 인정할 것이옵니다”라고 언급하면서 성경해석의 최종목적은 성도의 삶에 정확하게 적용되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런 칼빈의 적용방식은 개혁주의의 주요한 특징으로 자라잡았다. 그의 적용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들을 기초로 이해해야 한다.


(1) 신·구약의 통일성과 차이점 주의
칼빈은 성경을 바르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구약과 신약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정확하게 이해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구약을 잘못 적용하게 되면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며, 성도의 삶을 극단적으로 치우치게 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의미를 그는 기독교 강요(1559) 2권 10-11장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먼저 공통점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점은 구약과 신약의 언약은 그 본질과 내용이 동일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 말은 구약에서도 여전히 동일한 3위1체의 하나님께서 같은 내용을 가지고 역사하셨음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가 아무리 변하고 또한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약의 의식이 폐지될지라도 그 핵심적인 내용은 모두 남아 있게 되어 오늘날 우리에게도 바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차이점에 있어서 칼빈은 언약이 실체와 본질의 통일성을 중심으로 하지만 그 방식에(처리방법) 있어서는 다양성이 존재함을 5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구약은 영적 축복을 현세적 축복으로 표현했다. 둘째, 구약 시대에는 형상과 의식으로 진상을 전하며 그리스도를 예표 했다. 셋째, 구약은 문자적이요 신약은 영적이다. 넷째, 구약은 노예 상태와 신약은 자유이다. 다섯째, 구약은 한 민족에게 신약은 모든 민족에 관계한다.


(2) 율법의 구분(도덕법·의식법·정치법)
구약의 율법에 대한 이해는 구약 전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내용이다. 그 중에서 율법의 내용을 도덕법, 의식법(제사법), 정치법(사회법)(Dei legem, in mores, caeremonias, iudicia)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 이해하는 것은 칼빈 이후로 개혁교회가 지켜왔던 전통적인 방식이다. 칼빈은 “모세에 의해 공포된 하나님의 율법 전체를 도덕법, 의식법, 재판법으로 나누는 것은 일반적인 분류법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들의 각 부분을 검토해야 하고 그러면 어느 것이 우리와 관계되며 어느 것이 무관한지를 이해할 수 있다”라고 하여 율법의 3부분에 대한 기초와 형식을 명확하게 정리해 주었다.
먼저 도덕법은 자신의 생활을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기를 원하는 모든 족속과 모든 시대의 사람들을 위하여 규정된 참되고도 영원한 의의 법칙이라는 뜻이다. 의식법은 제사와 예배를 위한 모든 의식들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유대인을 위한 초보교육이다. 따라서 신약 이후는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히8:5; 9:10)는 말씀을 따라서 구약의 의식법은 폐지되었고, 예배의 본질적인 것만 도덕법 안으로 자리 잡았다.
마지막으로 정치법(재판법)은 시민통치를 위해 그들에게 주어졌는데, 마치 예배의식들이 원래 경건의 교리에 속한 것이었으나, 경건 자체와는 구별될 수 있는 것처럼 재판법의 형식도 사랑의 계명 자체와는 뭔가 다른 점이 있다. 마지막 부분은 좀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여러 부분에 걸쳐 유대인에게 한정된 부분이 있는 가하면 또한 도덕법적 성격으로 깊이 스며들어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3) 율법의 제3사용의 이해(십계명)
이것은 위의 도덕법에 대한 이해와 관련을 갖고 있지만 좀 더 세분화 시키고자 나눠 보았다. 개혁교회는 성경 전체의 교리적 체계를 단순히 학문적이고 사변적인 체계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성경 계시에는 그 자체로서 인간의 삶을 위한 실제적인, 즉 실천적인 성격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어떠한 교리도 인간의 삶의 전 과정을 떠나서 사고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인간의 삶을 이끌어 가고 또한 그 속으로 들어와 자리를 함께하는 특성이 있다. 이처럼 성경을 도덕법으로 이해하여 삶의 규범으로 적용시키고 했던 개혁교회의 율법에 대한 독특한 이해를 “율법의 제3사용”이라고 부른다.
칼빈은 율법의 3사용의 원리를 따라서 성경 교리의 실천적 면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그것은(율법) 부단히 그들을 가르치고 권면하여 선을 행하도록 촉구하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인들의 전 삶은 경건의 연습과 같은 것이 되어야 하는데, 이는 우리가 성결을 위하여 부름 받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성경이 신자에게 있어서 영원한 삶의 규범으로 사용되고 또한 신자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바로 그 기초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궁극적인 삶의 원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서 그 속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적용하며 살아가는 것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원리가 기독교 강요 초판의 헌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 된다


나의 목적은 단지 어떤 기초적인 사실들을 전달함으로 그것에 의해 종교에 열심을 가진 사람들이 참된 경건(veram pietatem)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 그리스도에 대해 약간의 지식이라도 가지고 있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 책 자체도 그것이 나의 의도였다는 것을 증거 하는데 그 이유는 이 책이 단순하고도 초보적인 가르침의 형태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ad simplicem scilicet rudemque docendi formam appositus).


이처럼 칼빈이『기독교강요』를 저술하게 된 목적은 단순한 사변적인 논쟁의 목적이 아니라 당시의 박해받는 성도들이 실제적으로 의지하고 소망할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지식을 정립해 주고자 했던 것이다. 즉 성도들의 삶을 하나님의 바른 지식을 통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창출하고자 했던 것이다.
루터가 율법의 사용에 있어서 구원으로 인도하는 제1사용(죄의 제거)과 불신자들의 마음을 억제하는 제2사용(죄의 억제)만을 제시한 것과는 달리 칼빈은 성경이 성도의 전 삶의 규범으로서 항상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삶의 규범으로써의 제3사용의 기능을 더 중요하게 취급했다. 즉 성경을 십계명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는 성화의 구체적인 규범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모세오경을 주석하면서 창세기를 제외하고 나머지 네 부분을 십계명의 구조를 따라서 전부 다시 조화시켰다. 이런 시도는 종교개혁 당시 부처나 불링거 등 개혁교회에서 찾아 볼 수 없었던 칼빈 자신의 독특한 시도였다. 이 차이가 루터주의와 칼빈주의의 성경해석과 주경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나가는 말
지금까지 살펴 본 것처럼 개혁교회의 성경해석 원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규범을 따라서 오직 성경, 전체 성경, 문법적 역사적 교리적 해석, 삼위일체 중심의 해석인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적용원리에서는 신·구약의 통일성과 차이점을 주의하며, 도덕법, 의식법, 정치법에 대한 율법의 3구분과 십계명을 중심으로 성경을 삶의 규범으로 사용하는 율법의 제3사용을 고려한 적용방법이 매우 중요하다. 선조들이 지켜온 이 해석원리를 잘 이어받기 위해서 우리는 개혁주의의 대표적 주석가인 칼빈의 주석과 성경해석원리를 더 많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 아들의 교회들아, 너희들은 이 위대한 칼빈 목사님의 주석들을 쉬지 말고 정독하여라(Beza).”
출처 : 영적 분별력
글쓴이 : 진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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