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화로서의 역사
레싱(Lessing)은 그의 역사 이해를 통해서 역사비평 신학의 기초를 놓았다. 그에 따르면, 복음서 기자들은 하나님과 관계없이 순수한 인간적인 역사를 썼다.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계시는 성경의 영감설과 마찬가지로 부인되었다. 이것이 역사비평 신학에 의하면, ‘진정한 과학적 연구의 시작’인 것이다. 성경은 이미 지나가 버린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당시 옛날의 척도를 가진 사람들이 당시의 독자들을 위해 쓰여졌으므로 이제는 비판을 받아야 하는 책이 되었다.
레싱의 정의에 따르면,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 아니다. 계시는 이점이 있는 것이지만 포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 날에는 성경은 단지 고전에 불과하며 현대인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가 비록 레싱이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 없을지라도 그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지금의 세대가 과거의 세대보다 더 진보되었으므로 우월하다는 계몽주의적 역사 이해는 그리스바하(Griesbach)의 신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레싱의 역사적으로 진보한다는 생각에 동조하면서 사용가설(마태복음 → 마태를 참조한 누가복음 → 마태와 누가를 참조한 마가복음)을 세우고, 복음서의 기원에 대한 고대 교회의 정보는 가치가 없는 신화라고 한다.
계몽주의 기본 사상을 받아들인 신학자들은 복음서가 눈으로 목격한 증인에 의해, 혹은 증인에게서 얻는 진술을 토대로 쓰인 문서로 존중하지 않는다. 그들은 복음서에 의심을 품고 분석을 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복음서가 가장 먼저 쓰였는지를 묻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쓰인 것으로 인정을 받기에 가장 적합한 것은 기적의 이야기가 가장 적은 것이고, 결국 마가우선설이 유력하게 되었다.)
문학비평(복음서에 있는 이야기의 원본을 편집할 때 수정했다고 봄)의 방법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곳에 사용한 것이다. 반-초자연적인 선입관을 근거로 한 계몽주의적 역사 이해가 복음서의 내용을 역사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복음서에로의 접근을 막아버리는 선입관을 받아들이려고 결심한 것이다.)
바우어(Baur)는 철학적 체계를 사용하여서, 헤겔의 변증법에 따른 명제, 반명제, 합의 순서에 따라 초대 교회의 역사를 설명했다. (유대주의적인 베드로주의에 세계주의적인 바울주의가 부딪히면서 타협하여 초기 가톨릭주의가 형성되었다는 것)
양식사는, 시초에는 단편적인 이야기가 전승되었으나 나중에는 이것이 사람에 의해 수집되었다는 생각을 차용했다(야콥 그림과 빌헬름 그림 형제의 동화나 사가의 정의에 영향을 받음). 칼 쉬미트(Schmidt)는 “정확한 장소나 시간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보고, 복음서가 비역사적이라는 부당한 결론을 내렸는데, 이런 잘못된 결론은 양식사의 원칙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과학적인 행위가 아니라 선입관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양식사를 검증된 과학적인 방법으로 붙들고 있는 것은 책임성 없는 행위이다.
2. 진화로서의 정신 역사
헤겔(Hegel)에게 역사는 절대정신의 역사며, 하나님의 변증법적인 자기인식이다. 하나님은 더 이상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이 역사에 종속되어 있다. 계시는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어진 믿음”이 아니라, 정신사적 발전 단계의 각각의 결과다. 헤겔은 성경의 언어를 남용하여 하나님을 창조주요, 보존자요, 다스리는 자요, 계시자요, 구속자이심을 부인하는 일을 신학자로서 처음 시작했다. 결국 남는 것은 하나님과 세상을 구별하는 것을 허용치 않는 경건한 부호와 동화 수준의 어린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사랑스러운 하나님이다.
역사비평 신학은 하나님의 계시에 자신을 묶지 않고 시대에 따른 현대인, 즉 최신의 정신적 업적에서 그리고 기술적 진보에서 자신을 계시한 인간에게(헤겔의 이론) 자신을 맞춘다.
스트라우스(Strauss)는 헤겔의 제자로, 역사적인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으로부터 신화를 벗겨 냄으로써 “역사적 예수”를 찾으려고 했다. 이 때문에 인간이 되신 하나님은 부인되었고, 존경을 받을만한 인격만 남게 되었다. 성경비평 신학자들은 ‘예수의 생애’를 그리기 위한 소재를 성경에서 자의적으로 선정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소위 ‘예수의 생애’는 신학자 자신의 생각이 반영될 뿐이었고, 완전한 파산으로 귀결되었다.
3. 양식사
궁켈(Gunkel)은 종교사학파(여러 개의 종교 서적과 성경을 한 지평에 놓고 비교함)의 대표 가운데 한 사람으로, 관념주의적인 역사 개념과 민속 문학에 관한 그림 형제의 이론을 구약에 적용시켰다. 구약은 역사 가운데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계시인데, 궁켈은 이것을 문학 서적으로 선언하면서 성경을 역사로부터 분리시키며, 구약으로부터 계시로서의 성격을 없애 버린다.
구약의 양식사는 조상에 대한 역사적인 보도를 상상의 산물로,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주신 계시를 하나의 허구로 만들었는데, 이것은 ‘가정’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만들어진 것이다(추정, 거짓).
신약의 양식사 학자들은 4복음서를 편집서라고 선언했다. 처음에는 단독 전승이 있었는데, 전승사의 과정을 거치면서 변형이 되었고, 그러다가 수집이 되었으며, 이것이 상의한 관점에 따라 그룹화 되고, 이것이 나중에 복음서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복음서에 나타난 차이점은 양식사에 의해 공관 복음 전승 법칙성의 결과라고 판정되고, 문학비평에서는 복음서 기자가 나름대로 편집한 결과라고 하며, 편집사에서는 저자들이 그들의 신학적 해석에 따라 바꾼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복음서와 고대 교회의 증언을 믿는 사람은 이것을 목격자의 차이에 그 원인을 둔다.
복음서 기자는 예수님 이야기의 전체를 성령님을 통해 그가 할 수 있는 대로 썼다. 직접 체험을 통한 기억을 통해, 그리고 증인들이 알려준 대로 기록한 것이다.
예수님, 우리의 주님은 공개적으로 말씀하시고 행동하셨다. 그분이 말씀하시고 행동하신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기억하고 보도한 증인들이 있었다. 우리의 4복음서는 여기에 근거한다.
출처 : (안산)회복의교회
글쓴이 : (안산)회복의교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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