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신학 제17강
지난 시간에는 내어줌의 형식까지 했다.
6)하나님 아들
그 다음에 바울은 하나님 아들을 그의 복음이라고 한다(갈1:11,18ff/롬1:2-4,9/살전1:10/행9:20). 바울은 이런 본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로 정의하거나 아니면 요약을 한다.(비슷한 성경구절은 롬8:3). 이것은 복음의 정의 쓰여졌을 때에 하나님 아들은 율법을 완성해서 죄와 율법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고 가장 잘 표현하는 칭호였기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로 복음을 즐겨 정의하고 요약했다.
(1)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 우편에 높임 받으신 하나님 아들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가 계시되었을 때에 바울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모세 율법을 완성하고 능가하신 분이구나’ 하고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바울은 율법식학을 표현했던 지혜신학을 하나님의 아들에게 적용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로 지혜신학을 표현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에는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의 수단으로서의 율법을 능가한 이’라는 뜻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을 능가해서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에 완전한 수단이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다. 복음은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 아들이 계시와 구원의 수단이니까 하나님 아들이 곧 복음이다. 이런 점에 롬 1:2-4까지에 나오는 기독론적인 복음의 정의와 롬 1:16-17에 나오는 구원론적인 복음의 정의가 내용적으로 일치함을 이해할 수 있다. 롬 1:2-4에서는 복음을 ‘그의 아들에 관한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로 기독론적으로 정의한다. 그 다음 롬 1:16-17에서는 복음을 구원론적으로 ‘복음은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구원론적으로 전개한다. 지금까지 많은 주석가들은 롬 1:16ff의 구원론적인 복음의 정의가 바울의 정의이고 로마서 전체에서 롬 1:16-17에 내려진 정의를 바울이 펼친다고 보았고 그런데 이러기 전에 자기의 복음의 정의를 롬 1:16-17에 내리고 그 다음에 로마서 본론에서 그 정의를 이제 신학적으로 전개하지 전에 로마서 서두에 복음을 아들에 관한 것이라고 하면서 초대교회-하나님 아들에 대한 신앙고백-의 신앙고백을 인용한 것은 자기가 세우지 않은 로마교회에 자기의 복음을 소개하며서 자신의 복음의 전체 이해와 같은 이해를 보여줌으로서 로마 교인들에게 우선 환심을 살려고 로마서 서두에 초대교회의 공통된 ‘하나님 아들에 관한 신앙고백’을 바울이 인용하였다는 식으로 주석가들이 많이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고 바울에게 있어서는 앞의 여러 곳에서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 아들이라는 칭호가 복음을 가장 잘 정의하는 기독론적인 칭호이다. 왜 그러냐면 하나님 아들이 율법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이 인류를 위한 사랑의 체현이라는 뜻을 하나님 아들이라는 칭호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날 유대신학에 있어서는 율법이 계시의 수단이고 율법이 인간들에게 구원의 힘이었다.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었다. 그런데 바울은 이제 복음이 구원의 힘이라고 한다.
복음이 구원의 힘인 것은 복음의 내용이 하나님 아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 하나님 아들이 율법을 능가하는 계시와 구원의 수단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라든가, 주라는 칭호들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 아들이라는 칭호는 아주 아껴서 사용ㅎ나다. 그러나 대게 ‘하나님 아들’을 쓰는 곳에는 신학적인 논점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쓰고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에서 인용한 논문에서 보듯이 복음을 정의할 때 쓴다16). 또 하나 염두해 둘 것은 바울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다른 신학-요한복음,히브리서-에 있어서도마찬가지인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됨은 또 우리에게는 하나님 아들들 되게 해주는 분이라는 뜻이 있다. 예수가 하나님 아들인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들 되게 해주는 분이라는 것이다 특히 갈 4:1-6/롬8:1-23 등이 성경에 보면 잘 나타나고 있다.
①갈4:1-6에 보면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서 여자에게서 낳게 하고 율법 아래 있게 한 것은 우리를 율법으로부터 속량하여서 하나님의 아들들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되어 있다. 예수가 하나님 아들로 오시고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심은 우리를 하나님 아들들 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예수의 하나님 아들됨은 우리를 하나님 아들들 되게 하는 분이라는 듯이 포함되어 있다. 이 context에서 바울은 예수의 독특한 하나님에 대한 부름인 아빠 αββα라는 말을 인용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건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해방이 되어서 율법 아래 있던 노예 취급에서 벗어나서 하나님 아들의 영을 받아서 하나님께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아들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자녀들 되어서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데 이것이 곧 구원이라는 말이다.
왜? 천지를 지으시고 역사를 다스리는 무한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므로 그렇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들,자녀들 된다는 말은 하나님의 상속자-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신적 부요함에 참여하여 영생을 얻게 된다.
②롬 8:1-23에도 갈 4:1-6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여기서도 바울이 예수의 독특한 기도형식 중의 하나인 αββα라는 말을 쓰고 있다. 그래서 이 점에서 바울은 예수의 말을 별로 직접 인용하지 않지만 예수의 가르침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예수께서 하나님을 독특하게 αββα라고 부르셨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부를 때 αββα로 부르도록 가르치셨다. 이와 같이 예수의 αββα라는 말 사용에서 예수의 가지 이해를 밝힐 수 있냐면 하나님의 독특한 아들로서 그의 추종자들을 하나님 아들들되게 하는 분이라는 자기 이해가 나타난다. 그러니까 예수가 하나님을 독특하게 αββα로 부르면서 그의 추종자들에게 하나님을 αββα라고 부르도록-유대인들은 하나님을 αββα라고 부르지 않았다-한 것은 예수가 하나님의 독특한 아들로서 우리를 하나님 아들들 되게 해주는 분이라는 뜻이 들어 있는데 이 사상을 그대로 바울이 갈4:1-6과 롬8:1-23에서 해석하고 있다. 예수의 하나님 아들됨은 우리를 하나님 아들들 되게 해주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통해서 하나님 아들들 되는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는 맏아들과 동생들과의 관계이다.
πρωτοτοκος(맏으들)⇨첫열매(First Born)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πρωτοτοκος(맏아들,첫아들)이고 우리들은 그의 형제들로 나타난다. 롬 8:29에 보면 예수가 독특한 의미로 하나님 아들이다. 이것을 요한복음에서는 μονογενης라는 말로 표현한다. 독특한 의미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즉 ‘독생자라는 말로 했다. 그런데 바울은 이것을 첫 아들-맏아들-이라는 말은 첫열매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의 형제들이어서 하나님 아들의 형상을 담도록 예정된 것으로 바울은 말을 하고 있다. 이리하여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들됨에 참여해서 그와 더불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요함을 상속받아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을 말한다.
출처 : 잭슨빌 교회개혁포럼
글쓴이 : JaxHopes 원글보기
지난 시간에는 내어줌의 형식까지 했다.
6)하나님 아들
그 다음에 바울은 하나님 아들을 그의 복음이라고 한다(갈1:11,18ff/롬1:2-4,9/살전1:10/행9:20). 바울은 이런 본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로 정의하거나 아니면 요약을 한다.(비슷한 성경구절은 롬8:3). 이것은 복음의 정의 쓰여졌을 때에 하나님 아들은 율법을 완성해서 죄와 율법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고 가장 잘 표현하는 칭호였기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로 복음을 즐겨 정의하고 요약했다.
(1)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 우편에 높임 받으신 하나님 아들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가 계시되었을 때에 바울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모세 율법을 완성하고 능가하신 분이구나’ 하고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바울은 율법식학을 표현했던 지혜신학을 하나님의 아들에게 적용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로 지혜신학을 표현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에는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의 수단으로서의 율법을 능가한 이’라는 뜻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을 능가해서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에 완전한 수단이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다. 복음은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 아들이 계시와 구원의 수단이니까 하나님 아들이 곧 복음이다. 이런 점에 롬 1:2-4까지에 나오는 기독론적인 복음의 정의와 롬 1:16-17에 나오는 구원론적인 복음의 정의가 내용적으로 일치함을 이해할 수 있다. 롬 1:2-4에서는 복음을 ‘그의 아들에 관한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로 기독론적으로 정의한다. 그 다음 롬 1:16-17에서는 복음을 구원론적으로 ‘복음은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구원론적으로 전개한다. 지금까지 많은 주석가들은 롬 1:16ff의 구원론적인 복음의 정의가 바울의 정의이고 로마서 전체에서 롬 1:16-17에 내려진 정의를 바울이 펼친다고 보았고 그런데 이러기 전에 자기의 복음의 정의를 롬 1:16-17에 내리고 그 다음에 로마서 본론에서 그 정의를 이제 신학적으로 전개하지 전에 로마서 서두에 복음을 아들에 관한 것이라고 하면서 초대교회-하나님 아들에 대한 신앙고백-의 신앙고백을 인용한 것은 자기가 세우지 않은 로마교회에 자기의 복음을 소개하며서 자신의 복음의 전체 이해와 같은 이해를 보여줌으로서 로마 교인들에게 우선 환심을 살려고 로마서 서두에 초대교회의 공통된 ‘하나님 아들에 관한 신앙고백’을 바울이 인용하였다는 식으로 주석가들이 많이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고 바울에게 있어서는 앞의 여러 곳에서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 아들이라는 칭호가 복음을 가장 잘 정의하는 기독론적인 칭호이다. 왜 그러냐면 하나님 아들이 율법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이 인류를 위한 사랑의 체현이라는 뜻을 하나님 아들이라는 칭호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날 유대신학에 있어서는 율법이 계시의 수단이고 율법이 인간들에게 구원의 힘이었다.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었다. 그런데 바울은 이제 복음이 구원의 힘이라고 한다.
복음이 구원의 힘인 것은 복음의 내용이 하나님 아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 하나님 아들이 율법을 능가하는 계시와 구원의 수단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라든가, 주라는 칭호들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 아들이라는 칭호는 아주 아껴서 사용ㅎ나다. 그러나 대게 ‘하나님 아들’을 쓰는 곳에는 신학적인 논점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쓰고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에서 인용한 논문에서 보듯이 복음을 정의할 때 쓴다16). 또 하나 염두해 둘 것은 바울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다른 신학-요한복음,히브리서-에 있어서도마찬가지인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됨은 또 우리에게는 하나님 아들들 되게 해주는 분이라는 뜻이 있다. 예수가 하나님 아들인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들 되게 해주는 분이라는 것이다 특히 갈 4:1-6/롬8:1-23 등이 성경에 보면 잘 나타나고 있다.
①갈4:1-6에 보면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서 여자에게서 낳게 하고 율법 아래 있게 한 것은 우리를 율법으로부터 속량하여서 하나님의 아들들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되어 있다. 예수가 하나님 아들로 오시고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심은 우리를 하나님 아들들 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예수의 하나님 아들됨은 우리를 하나님 아들들 되게 하는 분이라는 듯이 포함되어 있다. 이 context에서 바울은 예수의 독특한 하나님에 대한 부름인 아빠 αββα라는 말을 인용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건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해방이 되어서 율법 아래 있던 노예 취급에서 벗어나서 하나님 아들의 영을 받아서 하나님께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아들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자녀들 되어서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데 이것이 곧 구원이라는 말이다.
왜? 천지를 지으시고 역사를 다스리는 무한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므로 그렇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들,자녀들 된다는 말은 하나님의 상속자-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신적 부요함에 참여하여 영생을 얻게 된다.
②롬 8:1-23에도 갈 4:1-6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여기서도 바울이 예수의 독특한 기도형식 중의 하나인 αββα라는 말을 쓰고 있다. 그래서 이 점에서 바울은 예수의 말을 별로 직접 인용하지 않지만 예수의 가르침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예수께서 하나님을 독특하게 αββα라고 부르셨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부를 때 αββα로 부르도록 가르치셨다. 이와 같이 예수의 αββα라는 말 사용에서 예수의 가지 이해를 밝힐 수 있냐면 하나님의 독특한 아들로서 그의 추종자들을 하나님 아들들되게 하는 분이라는 자기 이해가 나타난다. 그러니까 예수가 하나님을 독특하게 αββα로 부르면서 그의 추종자들에게 하나님을 αββα라고 부르도록-유대인들은 하나님을 αββα라고 부르지 않았다-한 것은 예수가 하나님의 독특한 아들로서 우리를 하나님 아들들 되게 해주는 분이라는 뜻이 들어 있는데 이 사상을 그대로 바울이 갈4:1-6과 롬8:1-23에서 해석하고 있다. 예수의 하나님 아들됨은 우리를 하나님 아들들 되게 해주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통해서 하나님 아들들 되는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는 맏아들과 동생들과의 관계이다.
πρωτοτοκος(맏으들)⇨첫열매(First Born)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πρωτοτοκος(맏아들,첫아들)이고 우리들은 그의 형제들로 나타난다. 롬 8:29에 보면 예수가 독특한 의미로 하나님 아들이다. 이것을 요한복음에서는 μονογενης라는 말로 표현한다. 독특한 의미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즉 ‘독생자라는 말로 했다. 그런데 바울은 이것을 첫 아들-맏아들-이라는 말은 첫열매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의 형제들이어서 하나님 아들의 형상을 담도록 예정된 것으로 바울은 말을 하고 있다. 이리하여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들됨에 참여해서 그와 더불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요함을 상속받아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을 말한다.
출처 : 잭슨빌 교회개혁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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