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신학적 윤리학
안명준교수 (평택대 신학과)
서론
1. 신학적 윤리학
2. 칼빈에게 신학적 윤리학이 있는가?
3. 칼빈의 신학적 윤리학
4. 칼빈의 신학적 윤리학의 원리들
4.1 하나님의 주권의 윤리학
4.2 그리스도 중심의 윤리학
4.3 성령의 지배의 윤리학
4.4 성경 중심의 윤리학
4.5 해석을 중시한 윤리학
결론
서론
오늘날 한국상황은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 현상과 성적으로 오염된 타락한 우리사회, 다리와 백화점이 맥없이 무너져 수많은 인명이 죽음과 고통으로 얼룩졌으며,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 산, 강 그리고 바다, 주차문제로 이웃을 살인하며, 자동차 추월 경쟁 속에서 파멸하는 광기의 자동차 문화가 우리가 사는 삶의 현장의 모습이다.
기독교인들의 삶은 어떤가? 얼마 전 옷로비 사건으로 인해 전국민이 보는 국회청문회에서 하나님과 성경이 얼마나 많이 오용되었는지 모른다. 현재 우리 기독교인들의 많은 문제점들을 거론 할 필요도 없이 윤리의 문제는 우리들의 삶에서 우리를 도전하고 응답하기를 매순간 기다리고 있다.
오늘날 이런 사회의 심각한 상황이 칼빈을 통하여 기독교 윤리를 재점검하게 하는 동기를 갖게 한다. 칼빈이 살았던 제네바 역시 죄인들이 수많은 문제를 보여준 도시였다. 기록에 의하면 로마 카톨릭신부들과 수도사들이 창녀와 난잡한 여자들 때문에 늘 문제를 일으켰다고 제네바 시의회(Registres du Conseil) 기록에 나와 있다.1) 또 초기 개신교 목사들도 마찬가지로 1545년 시몬 모로(Simon Moraux)를 비롯한 2명의 목사들이 위그노 여신자와 함께 목욕한 일로 해임되었다.2) 당시 제네바 역사에 관하여 서술한 내용을 보면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 당시 제네바 교회의 컨시스토리움은 당시의 부패된 모습속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개혁한 것들을 보여 준다. 제네바 컨시스토리움은 가혹한 아버지들, 가혹한 채권자들, 고리 대금업자들, 독과점자들, 투기꾼들, 고객을 속이는 상인들, 폭악스런 남자들, 아픈 사람을 보살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하여 투쟁했으며 힘없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개혁을 시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3)
이런 현실 속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의 절대적이고도 최종적인 권위에 대한 근본적인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윤리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며 살 수 있는가 하는 실제적인 문제에 관심을 두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좋은 도전이 된다.4)
본 논문은 칼빈의 신학적 윤리학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그의 신학적 윤리학의 원리를 조사함으로써 일반적인 칼빈의 신학적 윤리학의 틀을 보이고자 한다. 논문의 범위는 기독교강요와 그리고 윤리와 관계된 주석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그의 신학적 윤리학의 특징으로서 자기부정, 십자가를 지는 것, 감사, 사랑 등등은 다루지 않았다. 또 윤리학의 다양한 주제로서 노동, 정의, 경제, 생명, 환경, 정치 등등은 개별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1. 신학적 윤리학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미궁에 빠져있다. 특히 Joseph Fletcher의 상황윤리의5) 영향으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혼돈속에서 참된 기독교적인 윤리의 표준과 판단을 잃어가고 있다. 상황윤리와 같은 현대 윤리학에 기초를 제공한 다양한 신학들 특히 자유주의, 포스트모터니즘 영향은 더욱더 복잡하게 우리를 만들고 있으며, 생명공학의 발달과 사용은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한 대표적인 사례로 든다. 이런 상황에서 신학이 기독교인의 삶의 문제를 명료하게 다루어서 올바른 기독교 윤리의 지침을 만들어야 21세기의 기독교는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향하여 전진 할 수 있다.
칼빈의 신학적 윤리학이 무엇인지 또 그의 신학적 윤리학의 방법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신학적 윤리학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Maximilian Forschner는 신학적 윤리학을 신의 의지와 일치하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따라 인간 행위의 도덕적 성질을 판정하는 규범 윤리학의 모든 이론이라고 정의한다. 즉 신학적 윤리학은 모든 유한한 피조물이 절대적으로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신적 의지의 입법적 권위에 의지해서 도덕 원칙과 그 정당화 가능성에 관한 물음에 대답으로 본다.6)
하나님과 수직적인 면을 중요시한 Charles M. Swezey는 말하기를 신학적 윤리학은 하나님의 활동적인 힘과 임재를 강조하며, 하나님의 규칙에 대해 의식적으로 응답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말한다.7)
명신홍박사는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 그리스도, 인간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도덕생활을 아는 궁극적 교훈을 찾게 된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서 신학적 윤리학은 하나님과 성경에 있는 그의 계시를 진리의 궁극적 권위로 인정함으로 말미암아 그 내용을 근본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8)
김영한교수는 말씀을 윤리의 규범으로 받아드리고 성령의 가르침 안에서 양심의 자유로운 행함과 실천을 강조하는 복음주의적 개혁신학의 윤리를 말한다.9)
2. 칼빈에게 신학적 윤리학이 있는가?
칼빈은 윤리학을 쓰지 않았으며, 더군다나 자신의 윤리학을 신학적 윤리학으로 말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칼빈은 윤리에 대하여 전혀 말하지 않았고, 신학적인 윤리의 내용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 할 수는 없다. 당시 오늘날과 같이 윤리학이 신학에서 하나의 독립적인 영역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 속에는 윤리가 함께 있었다. 교리와 삶은 서로가 상호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칼빈은 신학적 윤리학이 어떤 것인지 자신이 직접 정의하지 않았다. Johnson에 따르면 칼빈은 윤리(Lt. ethice)라는 말을 기독교강요에서 쓰지 않았다고 하면서, 단지 도덕(Lt. moralia)이라는 단어는 기독교강요에서 17번 사용했고, 윤리와 관계된 순종(Lt. obedentia)이라는 용어는 215번 사용했다고 한다.10) 따라서 이런 단어들의 사용은 칼빈에게 윤리라는 개념과 내용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실제 칼빈은 기독교강요 3권 6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de vita hominis christiani)11)이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윤리학적 내용을 충분하고 설명하고 있다. 윤리에 대한 칼빈의 서술은 그의 십계명 해설에서 잘 나타난다. 칼빈은 펠라기우스가 십계명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다는 주장과 중세로마카톨릭교회가 구원을 위해 율법 준수를 주장한 기존의 잘못된 견해들을 벗어나서 그의 윤리학의 기초로서 십계명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켰다.12) 십계명에 대한 설명은 칼빈의 기독교강요(2,8,1-59), 교리문답(질문 132-233), 그리고 신명기 5 장에 대한 설교에 나타난다.
칼빈의 윤리학을 신학적으로 보는 근거는 칼빈의 윤리는 자신의 윤리적인 내용이 자신의 신학적 입장과 분명하고 일관성 있게 연결되었음을 보여주며 자신의 윤리적인 견해를 철저하게 성경에 근거해서 실제적인 삶과 연결하여 주장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윤리는 신학적 해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올바른 윤리의 근거를 마련해 준다.
Stoker는 칼빈의 윤리를 신학적으로 부르는 이유에 대해서 칼빈의 윤리학이 근본적으로 신학적이기 때문이다고 하면서,13) Stoker는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도덕적 원리들(the principles of morality)을 분명하게 끌어냈지만, 어떤 윤리적인 체계(any ethical system)는 우리에게 전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14) 이렇게 원리 있지만 체계는 없다라는 주장에 대해 van Wyk와 Severijn은 칼빈의 신학은 대체로 윤리적인 구조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15)
칼빈은 철학자들의 윤리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성경에 근거한 하나님 중심적 윤리를 주장한다. 철학자들은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고 인간의 본성을 윤리에 중심으로 보기 때문에 칼빈은 이런 인본주의적인 윤리관을 배격하고, 오히려 인간의 부패성과 나약성과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는 신학적 윤리의 특성을 보여준다. 특히 그의 윤리학이 신학의 여러 주제와도 밀접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령 기독교인들의 삶에서 성령의 역할, 율법의 제 3의 용법, 하나님의 영광, 인간의 전적이 타락, 종말론, 기독록, 섭리론 등등에서 보여진다. 따라서 그의 윤리학은 신학적 윤리학으로 말할 수 있다.
Charles M. Swezey는 칼빈이 인간의 응답 보다는 하나님의 힘과 임재의 우선권을 강조하는 점에서 그가 신학적 윤리학을 사용한 것으로 본다. 또 칼빈의 신학적 윤리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모든 좋은 선물을 제공하시는 창조자이시며 자연과 역사 전체를 통치하시는 분이시며, 현재의 목적를 궁극적으로 밝혀 주시는 구속주라고 Swezey는 말한다.16) 칼빈에 있어서 신학적 윤리학의 목적은 신자들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하는데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칼빈의 윤리학이 신학적이라는 근거는 칼빈이 교리와 기독교인의 삶과의 친밀한 관계를 말하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Doumergue는 모든 윤리가 교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안에서 성장한다고 한다.17)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교리에서 나온다고 말한다.18) 이것은 그의 주장한 교리가 기독교인들의 실제적인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19) 크리스토퍼 프라이는 칼빈은 신앙이 가져오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결과들을 매우 강조한 점이 루터와 대조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하면서, 후에 감리교 신앙이 바로 이 점을 강조하게 되었다고 한다.20)
칼빈의 신학적 윤리학은 칼빈의 신학과 칼빈의 신학적 해석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신학적 해석학 또한 그의 윤리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해석은 성경의 내용을 올바르게 이해하며 신자들의 삶을 현실에 적용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해석원리는 그의 윤리연구에 있어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윤리와 해석의 관계는 현재까지 많은 연구가 없지만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윤리 문제에 관련하여 성경본문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 그리고 그 결과를 삶에 적용할 수 있는 합법한 신학적 윤리의 정당성을 주기 위해서 해석학의 도움은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3. 칼빈의 신학적 윤리학
앞에서 칼빈의 윤리학이 신학적이라는 것을 몇 가지의 근거를 가지고 제시하였다. 이런 근거들을 가지고 칼빈 자신이 신학적 윤리학에 대하여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에 나타난 신학적 윤리와 관련된 내용을 근거로 하여 간접적인 방법으로 그의 신학적 윤리학을 구성해 보려고 한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3권 6장에서 자신의 윤리적인 규칙에 대하여 언급한다. 물론 자신은 이것을 신학적 윤리학이라는 말로서 서술하지 않지만 2권 6장의 제목에서 말한 것처럼 그 주제에 대한 설명에서 칼빈은 성경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어떻게 규정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그 중요성을 시작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칼빈은 기독교인의 삶의 보편적인 규칙을(regulam quandam universalem breviter finiero).21) 말한다. 칼빈은 자신의 신학적 해석학에서 간결성과 용이성22)을 사용한 것처럼 윤리적인 보편적인 규칙 또한 자신의 견해를 장황하게 설명하기를 원치 않고 간결한 방법에 의해서 소개한다.
칼빈은 자신의 보편적인 규칙을 철학적 방법과 전혀 다른 성령에 의한 순종과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을 설명한다. 윤리와 관련하여 칼빈이 철학에 대하여 갖는 태도는 부정적인 면이 많이 나타난다. 칼빈은 철학자들은 올바른 것과 존경할 만한 것들에 제한을 두고 개인의 의무와 많은 덕목을 이끌어 낸다고 한다.23) 칼빈은 삶의 가르침에 관하여 철학적 윤리(philsophiam moralem)을 말할 때 한마디로 인간이 본성대로 살라는 것이라고 한다.24) 즉 인본주의적인 윤리이다. 씨세로는 인간의 자연적인 존엄성(hominis naturalem dignitatem)을 강조했지만, 칼빈은 이런 인간의 존엄성은 한계가 있기에 인간으로 하여금 완전한 변화를 주지 못하며 심령이 새로워 지지 못함을 말한다.25) 칼빈은 철학자들이 심령으로 새롭게 변화가 되어 생명으로 완전하게 들어가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그들은 이성만을 사람 안에 있는 지배 원리로 설정하고 이성의 소리만을 따르라고 한다고 한다. 그들은 인생 행로를 오직 이성에게만 맡긴다고 보았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윤리는 어떤 것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그것은 어떤 방법적으로 이성화 된 이론을 정확하게 계속적으로 준수하는 것이 아니다(non ita exacte nect perpetuo methodicam ratinem observavit, CO 2.1)라고 한다. 이에 반하여 기독교 철학은 성령에게 양보하며 항복하며 복종하라고 이성에게 명령한다고 한다.26) 여기서 칼빈이 말한 기독교철학은 기독교윤리와 밀접하게 관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칼빈은 이어서 말하기를 이렇게 성령에 의해 순종하며 따르는 삶이란 더 이상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살며 또 그가 지배하시는 것을 듣으며 사는 것이라고 한다.27) 칼빈에 따르면 윤리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함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칼빈은 철학적 윤리와 달리 자신의 신학적인 윤리학의 또 다른 기초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된 사건을 말한다. 이것은 신학적이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하다. 이런 화해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였기 때문에 철학자들이 도덕으로 사는 것 보다도 우리는 올바른 윤리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견해는 성경에서 그 교훈을 끌어 왔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생명을 맡기며 그리스도의 모범을 우리의 생활에서 실현하도록 한다고 한다.28)
칼빈은 자신의 신학적 윤리학의 기초로서 주님의 법을 말한다. 칼빈은 인간 생활의 정리를 위하여 가장 잘 마련된 방법을 주님의 율법이 제공한다고 한다. 이어서 그는 말하기를 하늘 교사(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그 율법에 제시된 준칙과 부합하도록 더욱 명백한 계획에 따라서 인도하는 것을 좋게 보셨다 라고 한다.29) 여기서 칼빈은 주님의 법을 인간의 삶을 질서 있게 세우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배열된 방법으로 말한다. 즉 그의 신학적 윤리학의 근거가 바로 하나님의 법이라고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또 이어서 칼빈은 그 법안에 그 규칙(regulam)을 만들었다고 한다.30) 그리고 이런 규칙의 목적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하는 것이라 한다.31)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중생의 목적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즉 중생의 목적은 크리스챤이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의와 크리스챤의 순종 사이에 조화와 일치를 보여주는 것으로 말한다. 여기서 칼빈의 율법의 제 3의 용법을 생각나게 한다. 즉 하나님의 뜻으로서 율법에 대하여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들은 순종하며, 성화의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계명에 가르침을 받아야 함을 보여준다. 칼빈은 여기서 하나님의 법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킬 수 있는 신선한 힘이 내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칼빈은 우리는 우둔하여 많은 도움도 필요하고 또 잘못된 길에 들지 않기 위해서 다양한 성경본문들을 근거로 기독교인의 삶의 행동을 위한 패턴을 정립해야 한다(proderit ex variis scripturae locis ratinem vitae formande colligere)32)고 말한다.
칼빈에 있어서 신학적 윤리의 동기는 하나님의 의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거룩하신 분이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주입하셔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의에 대한 열의를 가지고 삶의 준칙을 정하라는 것이다. 그의 거룩한 부르심에 우리는 응답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한다.33) 여기서 칼빈의 신학적 윤리학은 하나님의 소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신학적 윤리학의 동기는 하나님이 먼저 죄인을 새롭게 하시며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주도권을 보여준다. 여기서의 소명은 그리스도인의 직업에 대한 소명이 아닌 그리스도인 각자의 삶의 거룩함 곧 성화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칼빈이 말하고 있다.
이런 모든 내용들을 종합하여 칼빈의 신학적 윤리학이란 무엇인가라고 정의를 내린다면 성령으로 거듭난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령과 그리스도가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4. 칼빈의 신학적 윤리학의 원리들
칼빈이 신학적 윤리학을 형성하는 원리를 다루려고 한다. 물론 칼빈은 신학적 윤리학의 원리들에 대하여 전혀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윤리에 대한 견해를 분석하여 종합한 결과로서 몇 가지의 요소들을 말하려고 한다.
칼빈의 신학적 윤리는 균형 있게 삼위의 하나님을 강조한다. 또 그의 신학적 윤리학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며, 본문에 대한 올바른 해석은 신학적 윤리학의 올바른 기초를 위해서 절실히 필요한 것이었다.
4.1 하나님의 주권의 윤리학
칼빈은 자신의 신학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중요하게 여긴 것처럼 그리스도의 삶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주도권을 강조한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생활의 핵심으로서 자기 부정을 말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심을 말한다.34) 여기서 칼빈은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말한다(nostri non sumus, sed Domini).35) 이어서 칼빈은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nostri non sumus)36)라는 말을 3번 사용하며, 또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다(Dei sumus)37)라는 말은 2번 표현한다. 칼빈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행동을 그의 지혜와 그의 뜻이 우리를 주관하도록 한다. 또 오직 그 분만을 유일하고 합당한 목표로 삼고 우리의 생활의 모든 부분이 그분만을 향하여 경주하도록 노력하라고 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님을 배우고 자기의 이성에서 지배권을 빼앗아 하나님께 드리라고 한다. 우리는 우리의 사욕을 위해서 살지 말고 모든 능력을 바쳐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한다.38)
칼빈은 우리가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gloriam Dei)을 위해서 살아야 함을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상대로 살며, 하나님의 결정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고 한다.39)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성별되며 바치어져, 금후로는 그의 영광만을 위서 생각하고 말하며 명상하며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거룩한 것을 속되게 사용하면 반드시 하나님께 현저한 손실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고(고전 6: 19 참조) 주의 것이라면 멀리 피해야 할 오류가 무엇이며, 일생의 모든 행동을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는 분명하다.”40)
결국 칼빈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말한다. Singer는 말하기를 칼빈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신학적 개념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활동에서 통치원리이다.41) 또 칼빈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때 사회의 복지에 공헌할 수 있다고 한다.42) 칼빈은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태어 났다고 말한다.43)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하나님의 영광을 예증하는 것을 우리의 최우선적인 존재의 동기로 삼아야 한다고 한다.44)
손봉호교수는 칼빈의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는 하나님 중심사상은 사람의 구원조차도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더 큰 목적의 수단으로 간주하게 한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개종이전의 인문주의자로서의 칼빈과 개종이후의 기독교 신학자로서의 칼빈의 근본적인 차이를 엿볼 수 있다. 문예부흥에서는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요 목적이라면 종교개혁자인 루터와 칼빈에게는 하나님의 모든 것의 주인이요 목적이며 사람은 단순히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그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는 수단에 불과하다.45)
결국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라는 그의 철저한 하나님 주권사상이 그의 신학적 윤리학에 드러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46)
4.2 그리스도 중심의 윤리학
칼빈의 신학적 윤리학에 있어서 그리스도 중심적인 원리는 그의 십계명 해석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율법과 복음의 철저한 구별을 주장한 루터에 있어서 둘 사이에 있어서 연결되는 개념은 거의 약하다. 루터와는 달리 칼빈은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과 복음은 통일성이 있다고 한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목적이라고 한다.47) 칼빈은 십계명은 그리스도와 연결될 때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성취자 이시다. 따라서 그리스도은 율법의 최고의 해석자라고 말한다.48) 칼빈의 신학적 윤리학의 기초로서 율법이 그리스도와 관련되었기 때문에 그의 신학적 윤리학의 원리가 바로 그리스도 중심적인 것을 보여준다.
칼빈의 신학적 윤리학을 기독론적인 관점에서 연구한 글이 많이 발표되지 보다도 않았는데 최근 미국 에르스킨 신학교의 Merwyn S. Johnson가 그리스도 중심의 관점에서 칼빈의 윤리학을 미국 칼빈학회에서 발표하였다. 그는 자신의 논문에서 칼빈의 윤리를 한마디로 참여의 윤리(ethic of participation)로 보았다. Johnson은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강조하는 칼빈의 주장을 근거로 참여의 윤리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의 그리고 전진하는 삶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다.49) 특히 Johnson는 칼빈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리스도에게 대하여, 복음에 대하여 구원의 은총에 대하여 인간적으로 응답하는 응답의 윤리(an ethic of response)를 배제했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뜻과 현재의 활동을 현재 순간에 찾아야 하는데, 바로 성령에 의하여 그리스도와 연합 안에서 발견된다고 한다.50)
4.3 성령의 지배의 윤리학
칼빈은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말함으로써 인간의 죄에 대한 부패성과 참된 선을 행하지 못하는 무능한 인간을 주장한다. 이런 그의 인간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가 그의 윤리학에도 철저하게 나타난다. 칼빈은 죄로 오염된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며 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으로 거듭난 중생한 인간을 하나님 앞에 내세운다. 따라서 그의 신학적 윤리학을 이해하는데 성령으로 새로워진 그리스도인의 윤리적인 삶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인도함을 받아야 함을 말한다.51) 특히 거듭나지 못한 이성의 주도권을 반대한 칼빈은 성령에 의해서 완전한 변화란 심령으로 새롭게 된 것으로 본다. 또 그는 철학자들이 이성의 지배를 주장하는 것에 비판을 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이성이 전적으로 성령께 순종할 것을 주장한다.52) 우리가 성령에게 전적으로 의존 할 때 성령은 우리의 삶에 필요한 말씀의 진정한 뜻을 이해하게 우리를 도와 주신다고 칼빈은 말한다.53)
윤리적인 판단에 있어서 자연인간의 이성은 한계를 가지며 또 하나님의 뜻을 알수 없으며 기독교인의 삶을 가르치지 못한다고 본다. 성령의 신학자 칼빈은 성령의 지배를 강조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살며 지배하시는 것이라고 한다. 칼빈은 철학자들이 이성에 따라 윤리적인 방법을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안하 무인격이며 자기들의 덕을 추구하는 것으로 비판한다. 기독교 윤리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함을 받은 것이다.
4.4 성경 중심의 윤리학
성경은 종교 개혁자들에게 중요한 신학의 원천이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의 삶 즉 윤리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었다. 다른 어떤 권위와도 비교가 안되는 성경는 우리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근원이 되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을 위한 윤리적 방향과 도덕적 안내를 주는 자료가 되었다.54)
칼빈의 제네바 신앙고백서(The Genevan Confession)는 그가 sola Scriptura 원리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준다.55) 여기서 칼빈은 우리가 성경만을 믿음과 종교의 규칙으로 따를 것을(to follow Scripture alone as rule of faith and religion) 강하게 주장한다. 칼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에 의해 영감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 들였다.56) 즉 성경의 참된 저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57) 성경의 신적 영감에 대한 칼빈의 견해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의 주석에서 잘 나타난다.58) 그에게 있어서 오직 성경이란 권위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성령에 의해 구술되었기 때문이었다.59) sola Scriptura 원리는 성령의 영감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스스로가 권위를 갖는다.60) 칼빈에 있어서 말씀 중심적인 그의 윤리의 특징은 분명하게 나타난다. Wyk는 말하기를 칼빈의 윤리는 성경적인 윤리라고 하면서, 말씀은 윤리체계 안에서 결정인 요소이며, 말씀은 모든 영역과 삶의 분야에 적용된다고 한다.61) 칼빈이 그의 신학적 윤리학의 방법으로 성경 중심을 강조하는 것은 성경이 바로 윤리의 원리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칼빈은 잘못된 엄격한 금욕과 잘못된 방종에 대하여 설명 할 때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에 대하여 말한다. 칼빈은 즐거움이나 우리에게 필요를 위한 것에 대해 주의 말씀이 방침을 정한 것이 있다고 말함으로써 그의 윤리학을 성경중심에 기초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62) 칼빈은 물질 사용에있어서 육의 무절제를 변명하는 사람들과 방종한 쾌락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경계하면서 성경에 물질 사용에 대하여 일반적인 규칙을 정한 것이(scriptura generales legitimi usus tradat regulas) 있다고 말한다.63)
4.5 해석을 중시한 윤리학
칼빈은 자신의 신학적 윤리학의 원리가 신학적 해석학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밝힌다. 율법을 잘못 해석했던 신약시대의 바리새파, 교회사에 나타난 도나티우스, 로마 카톨릭교회, 재세례파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합법적인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신학적 윤리학에 있어서 해석학적 몇 가지의 접근 방법을 말한다.
칼빈은 율법의 해석자로서 그리스도를 말함으로써 그가 해석에 얼마나 중요함을 인식하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윤리와 관련된 본문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본문을 왜곡시켜 자신들의 교리를 정당화 시키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신학자들을 잘못을 칼빈은 여러차례 말한다.
우리의 믿음과 삶의 최고의 권위로서 성경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한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삶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기 위하여 성경의 다양한 본문들을 어떻게 해석하는 가는 신학적인 관점 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관점에서도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64)
칼빈이 윤리학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해석학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칼빈의 신학 역시 그의 해석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신학과 연결되고 신학은 성경의 올바른 해석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신학에 있어서 해석학적인 역할이 학자들에 의해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데 칼빈은 루터와 더불어 신학에 있어서 해석학의 중요성과 그 자신의 해석학적 방법을 기독교강요와 주석들 특히 로마서주석에서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칼빈은 잘못된 성경의 해석이 잘못된 교리를 만들고 잘못된 교리들이 기독교인들의 삶을 올바르게 지도하지 못한다고 본다. 칼빈은 도나투스파 사람들이 잘못된 해석을 가지고 잘못된 확신을 가짐으로써 위정자와 말썽을 일으키며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 시키는 것을 지적한다.65) 칼빈은 로마카톨릭교회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상과 공덕사상에 대한 견해는 잘못된 해석에서 근거한 것으로 비판한다.66) 또 그는 재세례파 사람들이 단어 하나를 물고 늘어지며, 또 문맥을 무시한다고 지적한다.67)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칼빈은 성경을 해석하여 윤리적인 규칙을 적용하는데 있어서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의 예리한 해석학적 자세를 발견 할 수 있다.
현대 철학자로서 해석학 방면에 탁월한 가다머의 경우에 윤리의 해석학적 방법을 다루는데 있어서 윤리의 보편 타당한 의미를 현실 자체에서 찾으며, 추상적인 연역보다는 역사적 경험의 우위를 주장하며, 인간 생활양식의 관점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68) 이에 반하여 칼빈은 성경에 나타난 보편원리를 제시하며, 인간이성에 의한 해석 보다는 성령의 조명에 의한 이해를 강조하며, 성경저자의 의도를 찾는데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율법의 최고의 해석자인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 윤리의 해석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칼빈은 율법이 우리의 생활의 규칙이라고 보면서 우리는 율법이 사람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그 해석에 따라 고찰해야 함을 말한다.69) 칼빈은 문자적 해석으로만 부족하다고 말한다. 특히 율법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율법의 외형적 문자적 적용을 말하는 바래새파를 비판하면서 성경저자의 의도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70) 여기서 그는 율법은 사랑의 완성이라고 말한다. 특히 바라세파는 성경의 단순한 의미를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고 숨겨진 의미를 알지 못하며 자신들의 의도에 따라 율법을 왜곡시키기 때문에 완전한 해석자들이 아니라고 한다.71)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리스도는 율법의 본질과 목적 그리고 목표를 가르치는 성실한 해석자로(a faithful expounder) 칼빈은 말한다.72)
칼빈은 율법의 해석의 중요성과 올바른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둘째 소견은, 명령과 금지에는 말로 표현된 것 이상의 것이 항상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라나 우리는 이 원칙을 조절해서 레스보스 섬의 잣대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 말씀을 함부로 곡해해서, 무슨 해석이든지 원하는 대로 하게 된다. 그들은 이렇게 함부로 다룸으로써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는 율법의 권를 떨어뜨리며,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율법을 이해할 희망을 부수어 버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향해서 똑바르고 확실하게 걸어갈수 있는 길을 발견해야 한다. 바꿔 말하면, 해석이 어구의 범위를 어는 정도로 넘어가는 것이 옳은가를 탐구해야 한다. 즉, 하나님의 율법에 사람이 설명을 덧붙인 해석이 되지 않고, 입법자의 순수하고 진정한 뜻을 충실히 나타낸 해석이 되게 해야 한다. 분명히 계명들은 거의 전부가 명백한 제유법(또는 부분적 표현법)이 사용되었으므로, 율법 해석을 언어의 좁은 범위내에 국한하려는 사람은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건전한 율법 해석은 언어의 범위를 넘어야 한다는 것이 명백하다.73)
칼빈은 여기서 몇가지의 중요한 것을 제시하는데 첫째로 율법의 해석에서 있어서 본문에 표현 언어 그 자체에 지나치게 얽매여서는 말씀을 함부로 왜곡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두 번째 칼빈은 율법에 인간의 설명을 덧붙이는 해석을 반대한다. 이렇게 될 때 흔히 말하는 알레고리식으로 해석이 된다. 세 번째 칼빈은 율법의 저자인 하나님의 뜻을 충실하게 나타내는 해석이 될 것을 요구한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법을 올바르게 해석할 수 없다. 오직 거듭난 영혼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경 저자의 의도 곧 하나님의 의도 참으로 이해 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해석에 있어서 칼빈의 신학적 교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칼빈은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되었음을 말한다.74)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에베소서 5:8의 주석에서 칼빈은 타락한 인간을 자연인이요 어두움이라고 불렀다. “어두움은 중생하기 이전의 모든 자연인에게 주어진 이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비추지 않고, 오직 두려운 어둠만이 있기 때문이다.”75)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향하기 전에 또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인간은 죄와 어두움 아래 있게 된다. 칼빈은 아담의 타락 이후에 인류는 전적으로 타락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죄 아래 있는 자연인은 성령의 조명 없이는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성경의 영적 진리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육은 하나님의 영으로 조명되지 아니하면 하나님과 하나님께 속한 것을 결코 깨달을 수 없다.”76)
칼빈은 거듭나기 이전의 인간 이성은 성경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다고 본다. 인간 이성의 빛은 어두움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본성의 타락이 인간 이성을 질식시킨다고 칼빈은 생각하였다.77) 우리는 올바르게 생각할 자격이 없다. 우리의 이성적인 기능은 비참하게 타락하였다.78)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의 이성은 단지 헛된 것이 될 것이다.79) 칼빈은 말하기를 복음을 깨닫는 것은 우리의 이성이나 우리의 명석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이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한다.80) 칼빈은 지적하기를 심지어 그리스도까지도 우리의 이성을 의지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81)
칼빈은 믿음의 사람이 성경을 해석할 때, 성령은 해석의 인간적 과정을 지배한다고 말한다.82) 인간의 불안전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해석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새롭게 하셔야 한다.83) 칼빈은 성령은 우리의 정신으로 깨닫게 하고, 우리의 마음에 영향을 줄 수 있다84)고 한다. “성령의 힘에 의하여 마음이 힘을 얻지 못한다면 그 마음은 성령에 의하여 조명을 받을 수 없다.”85) 하나님께서 성령의 빛을 우리에게 비추지 않는다면, 성경해석 시에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 “주님께서 그의 영으로서 사람을 고치시고 새롭게 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의 이해를 가지고 성경을 이해할 수 없다.”86) 칼빈은 1545년 제네바 교회 교리 문답서에서 우리의 마음과 성령의 조명과의 관계성을 말한다. 칼빈은 말하기를 우리의 생각은 너무 오만하여 영적인 하나님의 지혜를 파악할 수 없고, 오직 믿음을 통하여 그것이 계시되고, 성령의 조명을 받는다면 우리가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성경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87)
결론
칼빈의 윤리는 철저하게 신학적 윤리였으며, 그것은 자신의 신학에 뿌리를 두고 성경에서 자신의 원리를 형성했음을 보여주었다. 비록 그의 윤리학은 오늘날 많은 윤리학의 주제들을 다루지 못하고 있지만 윤리를 다루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윤리학을 좀더 신학적 성경적인 관점에서 다루어야 함을 교훈하고 있다. 즉 칼빈은 자신이 확신한 신학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그의 윤리가 이루어진 것을 보여주었다.
칼빈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삶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시작하고, 하나님에 의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존재의 의미를 갖으며,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분명한 멧세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현대 생명공학의 발전과 전망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칼빈의 교훈을 적용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 우리의 세포와 유전자까지 우리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라 전적으로 창조주 되신 하나님의 소유물인 것을 먼저 그리스도인들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생명공학의 방법과 방향에 대해 우리가 신중해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유전자정보를 포함한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하나님의 것이기에 우리를 위해서 사용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어떻게 연구되고 발전되어야 할 것을 성경에 근거하여 말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인식 속에서 하나님의 피조물에 대한 청직이로서 책임 있는 윤리를 보여 주어야 한다.88) 따라서 생명공학이나 유전공학에 참여하는 자들은 생명의 창조주의 설계와 목적과 그 분의 의도에 맞게 자연과 생명 공동체에 대하여 좀더 책임 있는 윤리 의식을 가지고 두려움과 경외 속에서 자신들의 소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칼빈의 신학적 윤리학이 보여 주는 또 다른 중요한 교훈은 철학자들의 윤리학을 뛰어넘는 기독교인들의 삶의 보편적인 규칙을 제시한 점이다. 즉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성령의 인도하심과 말씀의 근거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신학적 윤리학을 강조한 점이다. 여기서 인간 이성은 전적으로 활동하지 못하는 멸절이 아닌 성령에게 순종할 것을 말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성령에 의해서 인도함을 받는 자들이기에 칼빈은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살며 그의 지배를 받을 것을 말한다. 이런 삶을 살 때 우리는 진정 땅위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인간이 산출한 현대의 많은 기술과 정보의 최고 결정체로서 인터넷의 등장은 우리에게 윤리적으로 많은 도전을 주고 있다. 인터넷을 통하여 정보화를 누리여 사는 현대인에게 참된 인간 즉 하나님 앞에서 참된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으로서 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89) 따라서 인터넷 문화는 성경적 문명관과 참된 인간성을 동반해야 한다. 또한 인터넷은 기본적으로 개인적 활동이 강화되기 때문에 개인이 공동체에 참여하는 시간을 줄이는 고립의 기술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인터넷 만능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문명 시대에 사는 우리는 이런 인터넷을 피하거나 죄악시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사용되는 편리한 수단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런 인식들은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문화에 대한 우리의 윤리적인 자세가 만들어 질 것이다. 따라서 신학적 윤리학의 발전은 얼마만큼 성경을 이 시대에 필요한 우리의 삶에 대한 보편적인 원리로서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는 가에 관건이 달려 있다. 신학적 윤리학에 있어서 해석학의 역할은 좀더 많은 연구가 요청되고 있다.
1) W. Fred Graham, "Church and Society: The Difficulty of Sheating Swords," in Redings in Calvin's Theology, Donald K. McKim (Grand Rapid: Baker Book House, 1984).
2) Ibid.
3) Ibid. p. 279.
4) 신복윤, “칼빈의 윤리관,” 신학지남, 1969, 가을, 36, 3, p. 44.
5) Joseph Fletcher, Situation Ethics: The New Morality (Philadelphia: Westminster, 1966).
6) Maximilian Forschner, “신학적 윤리학”, 윤리학 사전, 오트프리트 회페 엮음 (서울: 예경, 1998).
7) “Theological Ethics," Encyclopedia of the Reformed Faith, Ed. Donald K. McKim (Louisville: Westminster/John Knox Press, 1992).
8) 명신홍, 개혁파 윤리학 (서울:신망애 출판사, 1971), p. 13.
9) 김영한, “복음주의 신학과 현대 기독교윤리: 포스트모던 사회 속에서의 기독교윤리,” 복음주의 신학과 기독교윤리, 제 32차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 논문 발표회 (서울: 한국복음주의 신학회, 1998), p.12.
10) Merwyn S. Johnson, "Calvin's Ethical Legacy," in The Legacy of John Calvin, ed. Calvin Studies Society (Grand Rapids: CRC Product Services, 2000), p. 63
11) Ioannis Calvini opera quae supersunt omnia, vol. 2, eds., Guilielmus Baum, Eduardus Cunitz and Eduardus Reuss (Brunsvigae: C. A. Schwetschke, 1864), p. 501. 이후로는 CO로 표시함.
12) Gordon H. Clark, "Calvinistic Ethics," Baker Dictionary of Christian Ethics. ed. Carl F. H. Henry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78).
13) H. G. Stoker, "Calvin and Ethics," in John Calvin: Contemporary Prophet, Jacob T. Hoogstra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59).
14) Ibid.
15) J. H van Wyk, “Calvin on the Christian Ethics," in Our Reformational Tradition, ed Institute for Reformational Studies (Potchefstroom: Potchefstroom University of CHE), p. 231. Cf. J. Severijn, Geschiedenis der Ethiek (Kampen: J. H. Kok, 1940).
16) “Theological Ethics," Encylopedia of the Reformed Faith, Donald K. McKim, ed., (Louisville: Westminster/John Knox Press, 1992).
17) J. H. van Wyk, Calvin on the Christian Life, p. 231
18) CO 2. 505.
19) 신복윤, “칼빈의 윤리관”, 신학지남, 1969, 36.3 p, 44
20) 크리스토퍼 프라이, 개신교 윤리사 (서울: 보문출판사, 1993).
21) CO 2. 501.
22) 칼빈의 신학적 해석학의 핵심으로서 간결성과 용이성에 관한 연구는 본인의 논문 Brevitas et Facilitas: A Study of a Vital Aspect in the Theological Hermeneutics of John Calvin (Ph. D. diss., University of Pretoria, 1998), 그리고 The Ideal of Brevitas et Facilitas: The Theological Hermeneutics of John Calvin ," Skrif en Kerk, 20/2, (1999): 270-281. 마지막으로 "칼빈의 신학적 해석학: 간결성과 용이성의 방법론,“ 생명복제와 개혁신학, 한국개혁신학회 논문집 제 7권 (서울: 한들 출판사, 2000), 208-235. 인터넷으로 본 논문들을 보기 위하여서는 ”안명준교수의 신학논문 게시판,“ http://www.theologia. co.kr.
23) CO 2. 502
24) CO 2. 503.
25) CO 2. 504.
26) CO 2. 506.
27) CO 2. 506.
28) CO 2. 503.
29) 기독교강요 3.7.1, p. 200. CO 2. 506. "Etsi optimanm et aptissime dispositam constituendae vitae methodum havet lex Doimini, visum tamen est coelesti magistro, accuratiore etiamnum ratie ad ipsam, quam in lege praescripserat, regulam suos formare."
30) CO 2. 506.
31) CO 2. 506.
32) CO 2. 501.
33) CO 2. 502.
34) CO 2. 506.
35) CO 2. 505.
36) CO 2. 506.
37) CO 2. 506.
38) CO 2. 506.
39) CO 2. 505.
40) 존 칼빈, 기독교강요 3.7.1,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1).
41) C. Gregg Singer, "Calvin and the Social Order," in John Calvin : Contemporary Prophet, p. 228.
42) Ibid.
43) Joannis Calvini Opera Selecta. eds. Peter Barth and Wilhelm Niesel. vol. 1 (Munchen: Kaiser Verlag, 1962-52), pp. 363-4. 이후로는 OS로 인용함.
44) OS 1. 363-4.
45) 손봉호, 칼빈의 사회사상. 자료출처 http://plaza.snu.ac.kr/~bongson/
46) 칼빈의 신학적 윤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준다는 것에 대한 연구로 John H. Leith, John Calvin's Doctrine of the Christian Life (Louisville: Westminster/John Knox Press, 1989), pp. 37-45. 여기서 Leith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개념을 3 가지로 질문하나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가? 두 번째로 인간의 복지와 하나님의 영광은 어떻게 관계 되는가? 세 번째로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가?
47) Comm. on James 1: 25.
48)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ed. John T. McNeil, vol., 2.8.26 (Philadelphia: Westminster, 1960). 이후로는 Inst.로 표기한다.
49) Merwyn S. Johnson, "Calvin's Ethical Legacy," The Legacy of John Calvin, Calvin Studies Society (Grand Rapid: Calvin Studies Society, 1990). pp. 63-83.
50) Ibid., p. 69.
51) Inst. 3.7.1.
52) Inst. 3.7.1.
53) Inst. 3.18.6.
54) Hermeneutics and Ethics, Reformed Ecumenical Council (Grand Rapids: REC, 1992), p. 12. 자료출처 http://www.gospelcom.net/rec.
55) “The Genevan Confession (1536),“ in Calvin: Theological Treatises, ed. J. K. S. Reid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54), p. 26.
56) John Murray, "Calvin's Doctrine of Scripture," in Collected Writings of John Murray, vol. 4, Studies in Theology (Edinburgh: The Banner of Truth Trust, 1982), pp. 156-175.
57) Inst. 1.7.1. "Hence the Scriptures obtain full authority among believers only when men regard them as having sprung from heaven, as if there the living words of God were heard." 이 말은 성경 권위의 궁극적인 증거는 성경 안에서 하나님 자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라는 것이다.
58) "First, he commends the Scripture on account of its authority. . . . In order to uphold the authority of the Scripture, he declares that it is divinely inspired; for, if it be so, it is beyond all controversy that men ought to receive it with reverence. This is a principle which distinguishes our religion from all others, that we know that God hath spoken to us, and are fully convinced that the prophets did not speak at their own suggestion, but that, being organs of the Holy Spirit, they only uttered what they had been commissioned from heaven to declare. Whoever then wishes to profit in the Scriptures, let him, first of all, lay down this as a settled point, that the Law and the Prophets are not a doctrine delivered according to the will and pleasure of men, but dictated by the Holy Spirit. . . . Moses and the prophets did not utter at random what we have received from their hand, but, speaking at the suggestion of God, they boldly and fearlessly testified, what was actually true, that it was the mouth of the Lord that spake. . . . This is the first clause, that we owe to the Scripture the same reverence which we owe God; because it has proceeded from him with it." Comm. on 1 Ti. 3:16.
59) 성경의 영감론에 대한 칼빈의 견해를 참조하기 위하여 A. D. R. Polman, "Calvin on the Inspiration of Scripture," in John Calvin: Contemporary Prophet, ed., Jacob T. Hoogstra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59), pp. 97-112; R. C. Sproul, "The Internal Testimony of the Holy Spirit," in Inerrancy, ed., Norman L. Geisler (Grand Rapids: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80), pp. 337-354; John Murray, "Calvin and the Authority of Scripture," in Collected Writings of John Murray, vol. 4, Studies in Theology, pp. 176-190; Douwe Johannes de Groot, Calvijns opvatting over de inspiratie der Heilige Schrift (Zutphen: N.V. Nauta & Co's Drukkerij, 1931); Donald K. McKim, "Calvin's View of Scripture," in Readings in Calvin's Theology (Grand Rapids: Baker, 1984), pp. 43-68; Philip Edgcumbe Hughes, "The Inspiration of Scripture in the English Reformers Illuminated by John Calvin,"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23 (1960-1): 140; Werner Krusche, Das Wirken des Heiligen Geistes nach Calvin (Go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75), pp. 161-84; Leon McDill Allison, "The Doctrine of Scripture in Theology of John Calvin and Francis Turretin" (Th.M. thesis,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 1958).
60) Von Hans Helmut Eßer, "Die Lehre vom testimonium Spiritus Sancti internum bei Calvin innerhalb seiner Lehre von der Heiligen Schrift," In Verbindliches Zeugnis: Schriftauslegung-Lehramt-Rezeption, eds. W. Pannenberg und T. Schneider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95), pp. 246-258 .
61) J. H. van Wyk, Calvin on the Christian Life, pp. 267-8.
62) Inst. 3.10.1.
63) CO 3.529.
64) 성경본문의 해석과 윤리에 관한 국내 연구로 유승원, “본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가? 규범적 제안들,” 자료출처 http://dove.nazarene.ac.kr/~swyu/useoftext.html.
65) Commentary on Matthew 5: 12, in Commentary on a Harmony of the Evangelists, Matthew, Mark, and Luke. Vol. 1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79). 이후로는
Comm. on Matt.로 표기함.
66) Comm. on Matt. 5: 12.
67) Comm. on Matt. 5: 12.
68) “윤리학의 방법론,“ 윤리학사전, 오크프리트 회페 (서울: 예경, 1998).
69) Inst. 2.5.7.
70) Comm. on Matt. 5: 22. Cf. Comm. on Matt. 5: 40.
71) Comm. on Matt. 5: 21.
72) Comm. on Matt. 5: 21.
73) 기독교강요, 2.8.8.
74) Inst. 2.1.11.
75) Comm. on Eph. 5:8.
76) Inst. 2.2.19.
77) Comm. on Eph. 4:17.
78) Comm. on Jn. 1:5.
79) Comm. on Ex. 25:32.
80) Comm. on Col. 2:2.
81) Comm. on Jn. 20:29.
82) H. W. Rossouw, "Calvin's Hermeneutics of Holy Scripture," in Calvinus Reformator His Contribution to Theology, Church and Society (Potchefstroom: Potchefstroom University for Christian Higher Education, 1982), p. 172.
83) Kenneth Sealer Kantzer, "John Calvin's Theory of the Knowledge of God and the Word of God" (Ph.D. diss., Harvard University, 1950), pp. 397-405. Cf. Kenneth S. Kantzer, "Calvin and the Holy Scripture," in Inspiration and Interpretation, ed. John F. Walvood (Grand Rapids: Eermands Publishing Co. 1957), p. 133.
84) Comm. on Ps. 143:10.
85) Inst. 3.2.33.
86) Comm. on Is. 53:3.
87) "The Catechism of the Church of Geneva," in Calvin: Theolgical Treatises, , p. 105.
88) 김영한, “생명복제와 개혁신앙,“ 생명복제와 개혁신앙, p. 22.
89) 안명준, “기독교 정보화의 실태와 과제,” 자료 출처 http://www.theolog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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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양무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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