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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학(고광필 / 광신대 교수) 1강 - 서론

by 【고동엽】 2021.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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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학(1) - 해석학 서론/ 고광필 (광신대 교수)



I. 해석학 서론
리치드 E. 팔머, 해석학이란 무엇인가, 이문출판사
고광필, 팜프렛
벌코프, 성경해석학


2. 랍비 성경해석학의 논리
A Short History of the Interpretation of the Bible, Robert M. Grant with David Tracy
고광필, 팜프렛
Biblical Interpretaion in the Early Church, Ed. Karlfried Froehlich(Philadelphia:Fortress Press, 1984)

벌코프, 성경해석학

3. 사도 바울의 성경 해석 논리
고광필, 팜프렛
벌코프, 성경해석학

4. 교부 성경해석의 논리
고광필, 팜프렛
벌코프, 성경해석학

5. 모형론적 성경해석 논리
<모형론>, 레온하르트 고펠트/최종테옮김(새순출판사, 1991)
고광필, 팜프렛
구약성경해석학, 크라우스 베스터만편집, 크리스찬다이제스트
A. 버클리 마이켈슨, 성경해석학,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벌코프, 성경해석학

6. 중세 성경해석의 논리
고광필, 팜프렛
벌코프, 성경해석학

7. 칼빈의 성경해석 논리
Richard C. Gamble, Calvin and hermeneutics(New York: Garland Publishing, INC, 1992)
간하배편집, <성경무오와 해석학>(도서출판 엠마오, 1988)
루이 벌코프, <성경해석학>(개혁주의 신행협회, 1979)
고 광 필, 팜프렛
벌코프, 성경해석학

8. 두 지평의 논리
<두 지평>, Anthony C. 씨슬톤/권성수역(총신대학출판부, 1995)
고 광 필, “Ludwig Wittgenstein의 입장에서 본 신학의 기능과 언어”(나누어준 팜플렛)
<신약해석학>, I. 하워드 마샬 편저/이승호/박영호 공역(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4)
고 광 필, “두 지평의 논리”(나누어준 팜플렛)
벌코프, 성경해석학

9. 비유해석의 논리
<비유해석학>, 로버트 H. 스타인‘ 오광만 옮김(엠마오, 1993)
C.H. Dodd, The Parables of the Kingdom(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 1961)
고 광 필, “비유해석의 논리”(팜푸렛)
<구약해석학>, 클라우스 베스터만 편집.박문재 옮김(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5)
고 광 필, “강의 요약” 팜플렛
마이켈슨, 성경해석학
Joachim Jeremias, The Parables of Jesus
벌코프, 성경해석학


해석(ερμηνεια)의 논리

성경 주석의 이론으로서 해석학이라는 멀로 사용된 것은 1654년 J.C. 단하우어에 의해 출판된 <성서주석의 방법으로서의 성서해석학>(Hermeneutica Sacra sive Methodus Exponendarum Sacrum Literarum)이다. 신학은 해석학이라고 한다. 이 말은 최근에 나온 말이다(17세기). 따라서, 오늘날의 신학의 중점은 해석학에 두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그래서 교회사란 성경해석 역사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결국 신학의 모든 분야는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현상학적 실존철학의 해석의 길을 연 마틴 하이데거도 철학을 해석학(philosophy as heremeneutics)으로 봤다. 언어철학의 거장 루드이그 비트겐스타인은 문법으로서의 신학(theology as grammar)을 말했다. 신학이란 성경 언어 사용을 봄우로서 성경의 자연스럽고 단순한 의미를 ?고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로서 서로 연결되어있다. 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철학은 그 자체로서 의미라기보다는 신학의 문제를 분석하고 명료화시키는 방법으로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성경 해석학의 거장 칼빈은 성경 해석은 저자의 의도를 밝이는 것으로서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성경의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의미를 밝히는 것이라고 했다. 이미이런점에서 볼 때 성경해석의 논리를 올바로 이해한다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학은 성경해석에서 시작된다.

I. 어원

해석학의 단어의 어원은 일반적으로 해석하다(to interpret)로 번역되는 희랍어 동사 “ερμηνευω”과 해석으로 번역되는 명사 “ερμηνεια”이다. 이 단어의 기원은 날개 달린 使者神 헤르메스에서 기인하며 헤르메스 사자신은 신의 메시지를 인간이 이해하도록 전환시켜 주는 기능과 관련이 있다. 서구학문은 희랍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받었다.

II.해석학의 언어

ερμνευω,  ερμνεια, ερμηνευτης, διερμνευω, διερμνεια, διερμηνευτης,
εξηνησις(석의, 설명, 해석, exegesis) εξηγεομαι(석의하다/의미를 읽어내다/이끌어 내다)

III. 해석학의 세가지 의미

i) 말하다로써 해석(ερμνευω)

말하다, 표현하다 혹은 선포하다로써의 해석은 신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헤르메네누오의 어두인 헤르메는 말하다라는 라틴어의 세르모(sermo/설교)및 말(word/말씀)이라는 라틴어 베르붐(verbum)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성직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헤르메스 신이나 델피 신탁의 사제와 같이 신으로부터 운명에 관한 소식을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여기서 선포라는 언어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하다(κηρυσσω)에서 “선포”의 의미는 기록된 말씀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설교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κηρυγμα)이다. 희랍에서 해석이란 호머의 시를 낭송(oral interpretation)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낭송은 낭송하는 사람의 억양, 제스처, 표정, 스타일을 통해서 낭송하는 시나 선포를 표현함으로써 그 시를 해석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구어체와 문어체의 구별이 이루어진다. 구어체를 문어체로 바꾸면 그 의미가 죽어 버린다. 살리려면 구어체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서 설교를 듣는 것과 그것을 문자화해서 듣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기 전에 성경말씀을 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기시기 때문이다.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3:9)

ii) 설명하다로써의 해석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문 <해석에 관하여>(Peri hermeneias)는 해석을 언명(enunciation/ 이론 학설을 진술하다)이라고 정의 한다. 그래서 해석이란 “참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발화행위”(17a2)이다. 참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사물에 대한 진술이다. 혹은 종합과 분석을 통한 합리적인 설명이다.
우리 주님도 제자들이 주님 자신을 잘 모를 때, 성경에서 어떻게 자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가를 설명함으로서 깨닫게 해주었다. 누가복음 24:25-27 He said to them, How foolish you are, and how slow of heart to believe all that the prophets have spoken! Did not the Christ have to(εδει) suffer these things and then enter his glory? And begining with Moses and all the prophets, he explained(διερμηνευσιν) to them what was said in all the Scriptures concerning himself.여기서 “설명한다”는 말은 이론적이거나 사변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고난과 부활이 성경에 기록(역사적인)된 사실이며 성경 전체가 그것을 말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데 있다. 즉 우리 주님의 죽음은 성경에 예언된 사실이며 우리 주님은 그 예언의 성취를 이루시는 것임을 알게 해주었다. 따라서, 제자들처럼 주님의 죽음 때문에 절망에 빠지는 것은 우리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iii)번역하다로써 해석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구성되었으며 구약은 희브리어로 신약은 헬라어로 쓰여졌다. 이것을 한국말로 번역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해석작업이다. 번역에는 직역과 의역이 있다. 의역의 문제는 성경저자의 의도보다는 번역자의 의도가 중요시 되는 것이 문제이다. 언어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는 매체라고 하다면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두 언어를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문화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성경의 두 언어와 한국말 사이의 큰 갭을 어떻게 매꿀 것인가는 해석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또한 번역자와 성경간의 관계성의 확립은 해석에 있어서 중요하다.


초대 교부요 신구약을 라틴어로 번역(라틴 벌게이트)한 제롬은 가장 좋은 번역방법은 지나친 자꾸주의(literalism)가 아니라 원문의 의미(not word for word, but sense for sense)를 살리는 것이라고 했다.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Vol. 6, second series, Jerom: Letters and Selected Works Ed. Philip Schaff( Hendrickson Publishers, 1994), 112-114, letter LVII.
예를 들면 Talitha Cumi(막 5:41)은 “곧 소녀야 내가 너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달리 다쿰은 아람어로서 מוק אתילט로서 달리다는 소녀라는 말이요 쿰이라는 말은 일어나라라는 말로서 직역하면 “소녀야 일어나라”라는 말이다. “내가 너게 말하노니가”라는 말은 없다. 이것은 사도 마가가 문맥상 집어넣은 것이다. 달리다 쿰이라는 말은 아침에 어머니가 아이를 깨우는 일상어로서 이해할 때 예수님의 신적인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 마가가 첨가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IV.정리

해석에 있어서 세가지 의미(말하다, 설명하다, 번역하다)는 연속적인 것이거나 순서적인 것이 아니라 해석 과정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해석에 있어서 해석한다고 하는 것은 어떤 텍스트의 의미(해석되어진 의미)와 그 의미의 현 시점에 적용을 수반한다. 텍스트의 의미 파악과 그 적용은 두 가지 분리된 작업이 아니라 하나의 동시적인 작업이다. 따라서, 성경 해석이란 성경 저자의 의미를 파악함과 동시에 그 의미가 오늘날 기독교 공동체에 어떤 의미를 주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다.그래서 본 강의에서는 단순히 성경 해석 룰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선포하고, 가르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가에 중점을 둔다. 이와같은 전 과정을 파악하는 것이 해석논리요, 성경적으로 말한다면 성경해석 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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