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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운동에 대하여 / 정성욱목사

by 【고동엽】 2021. 11. 5.

에큐메니칼운동은 교회들간의 일치와 연합을 목표로 20세기에 시작된 운동입니다. 다양한 교단과 교파들이 서로 나누어져서 분쟁하거나 경쟁하거나 갈등하는 것이 기독교 선교에 거침돌이 된다는 의식을 가지고 교단과 교파들의 가시적인 연합을 이루어내자는 것이 이 운동의 근본 취지였습니다.


에큐메니칼운동이 처음으로 규모를 갖춘 모임을 가졌던 것은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World Council of Churches (세계 교회 협의회) 1차 대회였습니다. 그 이후 여러차례 전 지구적 규모의 대회가 열려왔습니다.


저는 에큐메니칼운동의 정신은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께서는 교회가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리신 바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고, 연합되고, 일치된다는 것은 바른 일이고 바람직한 일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문제는 WCC를 중심으로한 에큐메니칼 운동이 진리에 기초한 내적 연합을 추구하기 보다는 합의에 기초한 외적, 조직적 연합을 추구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진리에 대한 관심보다는 혹 성경과 괴리된다 하더라도 각 교단들이 합의할 수 있는 어떤 공통분모를 찾는 일에 에너지를 모아왔다는 사실입니다. 개신교의 대표적 교단들, 로마카톨릭, 그리스 정교회, 심지어 불교, 이슬람, 힌두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교회의 외적 일치를 강조하다 보니 복음적이고 성경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다양한 교파와 교단과 신학들이 WCC내에서 큰 목소리를 내게 되었죠. 예를 들어 다양한 종류의 해방신학 (남미, 흑인, 민중, 여성)과 종교다원주의에 근접하는 보편구원론적 입장, 맑스주의적 사회분석의 수용, 폭력적 혁명의 정당성 등을 용인하게 됩니다.


교회의 일치와 연합이 좋은 이상이고 목표이긴 해도 그 일치의 토대가 성경 진리에서 벗어난 것이라면 우리 복음주의자들은 그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없는 노릇이죠.


에큐메니칼운동을 주도한 개신교 신학자들은 대부분 자유주의권이나 신정통권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주의권의 계속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죠.


에큐메니칼운동에 대한 하나의 응전으로서 복음주의운동은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대회를 열고 '로잔 언약'을 제정하면서 복음주의적 입장의 교회 일치와 연합운동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21세기 초반 지금의 상황은 에큐메니칼운동의 쇠퇴와 복음주의운동의 부흥으로 특징지울 수 있습니다. 특별히 에큐메니칼권의 교단과 교파들의 비복음적 신학과 신앙에 신물을 느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주의권의 교단과 교회들로 옮기게 되면서 유럽과 미국의 에큐메니칼 교단들은 급격한 수적 감소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장로교단 PCUSA는 1950년대 500만명 이상의 교인수를 자랑했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250만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떠난 성도들은 대부분 좀더 복음적인 PCA나 EPC 또는 침례교단으로 옮겨 갔죠. 같은 에큐메니칼권의 연합감리교단, 연합그리스도교단, 최근 동성애자 목사 안수를 찬성한 미국 성공회, 루터교회 등은 수십년 동안 계속적인 수적 감소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반면에 미국의 보수적인 복음주의권을 대표하는 남침례교단은 계속적인 성장을 통해 지금 교인이 약 2000만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카톨릭을 제외하고 미국내에서 가장 수적으로 큰 교단입니다.


알리스터 맥그래스 교수는 에큐메니칼권의 소위 개신교 주류교단들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합니다. 이 교단들 내에서 복음적인 그룹들이 교단의 갱신을 위해 애쓰고 있지만 역부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한국은 에큐메니칼권에 속한 교단들 (예장 통합, 기장, 기감, 기하성, 등등)이 에큐메니칼의 자유주의적인 신학의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있어서 그 교단에 속한 대부분의 교회들이 그래도 복음적인 신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장 통합과 기장과 기감에 속한 신학교에서 에큐메니칼적 신학이 비판없이 가르쳐지고 있기 때문에 멀지 않은 장래에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국 복음주의신학이 더 견고한 미래를 가지기 위해서는 젊은 인재들을 계속적으로 기르는 일에 교회들이 많은 투자를 해야한다고 봅니다.


오해를 정리합니다.
에큐메니칼이라는 말 자체가 종교다원주의적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에큐메니칼은 헬라어 오이코노미아에서 나온 말로서 역사를 지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경륜과 관계된 말인데 그것이 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지향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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