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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

by 【고동엽】 2021. 11. 5.
이신건 교수(서울신학대학교 조직신학)


필자가 독일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되돌아 왔을 때, 두 가지 평가를 받았다. 하나는 우수한 독일 신학을 공부했다는 칭찬어린 격려였고,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 혹은 진보주의에 물들어 왔다는 칼날서린 비판이었다. 독일신학이 때로는 과도하게 철학에 의존하거나, 때로는 과도하게 성서 비평을 함으로써, 전통과 성서 그리고 교회의 권위를 훼손할 가능성을 늘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단일 종교, 즉 기독교 정신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이기 때문에 미국처럼 온갖 종교가 성행하지도 않으며, 온갖 급진신학의 실험장도 아니다. 필자의 인상으로는 독일은 미국보다 훨씬 더 전통과 성서의 권위 위에 서 있다. 루터와 칼빈의 건실한 전통, 철두철미한 성서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독일신학은 무모하거나 실험적인 급진적 신학을 잘 용인하지 못한다. 오히려 전통과 성서에 대한 충실성 때문에 독일신학은 좌우로 치우치다가도 쉽게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그에 반해 미국사회는 얼마나 다인종, 다종교, 다문화 사회인가? 미국사회는 얼마나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갖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교회 중에는 독일적 경향의 신학을 무조건 경계하고 근본주의를 고수하려는 경향성을 강하게 띈 교회들이 많이 있으며, 그래서 근본주의가 종종 복음주의와 정통주의의 옷을 걸치고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하여 자유주의 신학, 특히 독일신학의 주된 공격수는 대체로 정통주의 혹은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근본주의적 경향의 미국교회의 신학이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미국 선교사들의 선교를 주로 받았다. 이들은 한국인들의 독립운동만이 아니라 신학공부를 가급적 억압하였으며, 개방적, 진보적인 신학 태도를 정죄하거나 은근히 탄압하였다. 이리하여 한국교회에서도 서구신학, 특히 독일신학은 자유스럽고 위험스럽다는 정서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다.
필자는 이런 선입견 혹은 편견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체험적으로 느끼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런 편견은 학문적으로 제대로 정리되지도 못한 채, 미국의 메카시처럼 특정인을 자유주의자로 분칠하여 매도하려는 불순한 정치가들의 공격무기로서 종종 사용되었다. 그러나 나는 한국교회의 뜨거운 신앙열, 전도열, 교회사랑을 매우 소중히 여기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지금까지 한국 교회의 보편적 정서가 독일교회보다 훨씬 더 자유주의에 가깝다고 생각해 왔다. 신학을 천시하고 감정, 체험을 빌려서라도 교회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보편적인 관행, "꿩 잡은 게 매"라는 식의 실용주의, 자본주의, 상업주의적 발상에 젖은 성장제일주의야말로 바로 성서와 전통, 교리를 가장 약화하는 게 아닌가? 이런 체험주의, 성장주의, 주관주의는 바로 18, 19세기의 독일 자유주의의 가장 분명한 특징이었던 것이다. 샤마니즘의 영향을 받고 온갖 국란을 경험한 한국인의 정서에도 이런 요소가 없지 않지만, 이런 요소들은 대체로 미국 사회의 주된 특징이기 하다. 하지만 나는 미국사회를 몸소 경험해 보지도 않았거니와, 유럽문화의 시각에서 미국문화를 무조건 깎아 내릴 마음도 없다. 그렇지만 무차별적으로 미국문화를 수입하는 한국사회의 풍토에서 미국제 복음의 젖줄만을 열심히 빨면서 급속도로 성장해 온 한국교회는 과연 건강하게 자랐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미국의 것이든 독일의 것이든, 성서와 전통, 우리의 실정에 맞게 비판적으로 걸러야 한다.
"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라는 책의 원제목은 "Made in America?"(미국제?)이다. 이 책의 저자(Michael Scott Horton)는 캘리포니아의 '누가 개혁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는 복음주의적 장로교 계통의 목사이다. 자유주의자가 아닌, 복음주의자인 바로 그가 미국 복음주의의 병폐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어서, 이 책은 더 한층 강한 설득력을 준다. 이 책은 "복음주의 신학이 특히 미국 내에서 어떻게 현대의 주관주의(자유주의의 특징)와 타협해 나갔는가?"를 알기 쉽게 풀어 나간다. 읽기에 부담이 없도록 매끄럽게 번역한 김재영 씨의 말대로 "지금 한국교회는 이 책이 비판하고 있는 미국 복음주의의 부정적인 것들, 즉 주관주의, 감각주의, 물량주의와의 대타협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가?
이 책은 386쪽을 달하는 작지 않는 책이다. 그러나 목차만을 대충 읽어보아도 미국의 복음주의가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알 수 있다. 세계적인 복음주의의 지도자 프란시스 쉐퍼(F. A. Scheffer)의 말대로 "복음주의를 파괴하고 있는 것은 복음주의라는 이름만을 가진 복음주의다." 가장 권위적이고 학문적인 복음주의자의 이런 진단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복음주의자들은 책임을 다른 데로 돌리고 있다.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린 자들이, 아니 스스로 복음의 진수를 버리고 현실에 타협한 자들이 자신의 실패, 그것도 윤리적 실패나 사회적 영향력의 상실이 아닌, 교회 성장의 둔화를 소위 자유주의자의 탓으로 돌리고, 종종 마녀 사냥을 일삼는 경우를 볼 수가 있는데, 얼마나 비겁한 소행인가? 미국의 정신과 혼합된 신학, 미국인의 정서에 영합한 복음, 자본주의적 상업주의에 편승한 목회는 분명히 복음의 정신을 훼손하기 쉽다. 여기에는 십자가의 신학, 제자의 길, 종말론적 삶의 태도가 들어 설 자리가 없다. 여기에는 영광과 번영의 신학, 그것도 미국과 미국적 자본주의의 번영을 뒷받침하는 신학만이 우세를 떨치기 쉽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미국교회의 영향을 과도하게 받고 있는 한국교회를 영적으로 갱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유익한 참고서가 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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