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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신학의 최근동향
강사문(장신대 구약학)
구약신학이란 명칭은 1787년 J. P. Gabler의 Actdorf 대학 취임강연에서부터 출발한다. 과거에 구약성경은 교회교리를 변호하고 고증하는데 불과했다. 그러나 가불러의 구약은 독립된 학문으로 등장하게 되면서 역사적 비평방법에 의존케 되었다. 과거에 있어 구약성경연구가 교리를 위한 철학적 접근방법이었다면 가불러 이후의 구약성경연구는 '역사적'이었다.
'역사적'이란 의미는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개념들을 파악하는데는 객관적으로 고증되는 '역사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역사적이 아닌 것은 종교적 진리와 거리가 멀다는 말이다. 따라서 구약연구는 이스라엘 종교사 연구로 대치되었다. 종교를 연구하는 방법은 진화론적인 변증법적 방법이었다. 이스라엘 종교는 저급한 고대 근동종교에서 승화된 종교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런 종교사학파의 변증법적 방법론은 계시의 특수성과 신앙의 세계를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1930년대 아히크로토(W. Eickrodt)는 구약신학이란 구약의 신앙세계를 찾는 과제로 언약 이란 대명제를 제시했다. 즉 하나님과 백성, 하나님과 세상과 하나님과 사람과의 언약이란 관계로써 설명했다. 그러나 이 언약(Covenant)이란 개념으로도 구약전체 신앙개념을 포용할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라이트(G. E. Wright)교수도 아히크로토를 지지했다(1969년).
그 후, 아히크로토와는 달리 독일의 구약신학자 폰 라트(G. von Rad)는 구약을 일관하고 있는 신앙개념은 하나님의 구원행동으로 구속사(Heilsgeschichte)란 명제를 제창했다. 구약 역사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하나님의 구원 역사뿐임을 주장하여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냈다. 이 구속사의 개념은 신약에서도 연속되며 그리스도의 사역과도 연계시키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영국의 바아(J. Bar)는 폰 라트의 구속사 개념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유인즉 하나님의 구속의 활동이 역사(History) 무대에만 국한되었다는 것은 일방적인 처사라고 하였다(Revelation through History in the Old Testament and in modern Theology, 1963). 그래서 역사적 사건이 나타나지 않은 지혜문학은 하나님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구속사의 일변도에 도전이 아닐 수가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역사와 자연속에 모두 나타나고 있음을 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금에 와서 심각한 문제는 환경파괴와 생태계의 파괴에 대한 성서적인 대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약은 창조보존과 환경보호를 위한 어떠한 복안과 대응책을 갖고 있는지를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약의 자연관 즉 자연에 관한 신학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시대적인 요청에 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이것이 금세기의 구약신학의 과제인 것이다. 구속사의 못지 않게 창조사(Schöptungs geschichte)가 요청된다는 말이다. 구속과 창조는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다. 창조의 결과는 구속이요 구속의 열매는 새로운 창조보존이다.
한편 구약신학이란 기독교의 독점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구약은 유대교의 경전인 동시에 기독교의 경전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은 구약신학에 관심이 없다는데 있다. 다시 말해 기독교는 기독론에 의해 구약을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해석학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구약의 역사적인 면이 약화되기 때문에 구약을 구약자체로써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있다는 것이다. 구약은 한낮 보조에 불과하다는 견해속에서 신구약의 통일성과 균형을 상실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구약과 신약의 관계는 늘 역동적인 상관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 고대 이스라엘과 초대교회에서 계속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동일평면속에서 이해해야 되기 때문이다. 전승의 불연속성은 말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역사 불연속성은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구약은 신약 없이도 존재하지만 신약은 구약 없이는 그 존재가치가 무의미하다. 그러므로 신구약의 역동적인 관계속에서 구속사와 창조사를 재조명하는 일이 우리 시대의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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