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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사상

by 【고동엽】 2021. 11. 1.
  • 『신학대전』의 신학적 기획 전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찰하는 데로 돌아서서, 특히 “그분이 우리가 부활을 통해 불멸의 삶이라는 참행복, 하느님을 충만히 누리는 데에서 성립되는 영속하는 참행복에 도달할 수 있게 해주는 진리의 길임을 입증할 때” 그 ‘완성’에 이르게 된다.(III, 머리말)
    여기서 그리스도론적 문제들은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이 오늘날 선호하는 것보다 훨씬 뒤늦게 등장한다. 분명 토마스는 여러 세기에 걸쳐 일어난(또 지금 여기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처럼 성서 주해서들로부터 따로 떼어내서 연구되리라고는 결코 상상할 수 없었다. 또한 매일같이 규칙적인 경배와 회개의 실천들 등으로 양성되지 않는, 그리스도교적 가르침을 배우는 학생들을 미리 내다볼 수도 없었다. 그들은 전례를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지속적인 명상, 또는 심지어 재-창조라고까지 간주하였다. 그들의 일상은 ‘그리스도의 모방’(imitatio Christi)을 구성한다고 여겨졌다.
    『신학대전』에서 그리스도론은 “하느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사람이 되신 신비인, 육화의 신비”에 관한 문제들로 시작된다. 전적으로 하느님과의 얼굴을 맞댄 복된 사귐(communio)의 전망을 추구하는 신학자는 결코 자신의 신학을 신약성서 주석에 의해 재구성된 ‘역사적 예수’에 기초를 두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토마스는 자신의 설명을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서 신적 본성과 인성의 결합에 관한 고대교회의 신념들 위에 정초하고 있다.

육화하신 말씀(III, 1-26)

  • 여기에는 뚜렷이 토마스의 고유한 사상인 것이 거의 없다. 반대로, 그는 고전 그리스도론의 표준인 운동들을 통해서 우리를 한걸음씩 안내하고 있다. 육화(Incarnatio)의 신비는 “당신 자신을 피조물과 새로운 방식으로(좀더 정확하게는 피조물이 당신과 결합됨으로써) 결합시키시는 하느님에 의해서 발생한다.”(III, 1) 그것은 이를테면 하느님이 지상에 내려오셨다는 것보다는, 세상과 인류가 하느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는데, 그분의 활동 덕분에 그것들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간 예수 그리스도라는 피조물 안에서 창조된 질서 전체가 하느님과 결합된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 존재자들의 머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Cf. III, 8, 1-3) 더욱이 신적인 것과 결합될 때에 피조물의 본성은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존된다.” (이것은 그가 선호하는 주제인데) 피조된 본성은 신적인 것과의 결합에 의해서 (혹자가 두려워하듯이) 위축되거나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되고 치유되며 강화된다.

    토마스가 선호하는 질문들 가운데 하나는 어떤 것이 일어난다고 할 때, 그것이 얼마나 적절하냐는 것이었다. 성서가 가르치는 것처럼, 하느님이 육화했다고 가정할 때, 첫 번째 질문은 그것이 얼마나 ‘적절했느냐’(conveniens)는 것이었다.(III, 3, 1, 1) 하느님의 아들 또는 말씀이 육화하였다는 것은 너무도 이상하고 선례가 없는 것으로, 그리고 심지어 부적절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명백하게 부정할 수 없도록 그것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 사실이 야기할 수 있는 그 어떤 불편도 취급해야 하는 역할은 신학자의 몫이다. 토마스에게 신학적 논거의 주된 기쁨은 하느님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얼마나 적절한 것으로 드러나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일단 일어난 일은 명상하는 정신에 의해서 파악되고 성찰된다.

    육화가 부적절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는 네 가지 이유들이 있다. 1) 신적인 것은 육체와 결합되어서는 안 된다. 2) 하느님은 언제나 피조물의 영역으로부터 무한히 멀리 떨어져 있는 채로 남아 있어야 한다. 3) 신적인 것이 악과 뒤섞여서는 안 된다. 4) 우주 전체를 초월하는 하느님이 여인의 자궁 속에 갇혀서는 안 된다. 분명 이것들은 정확히 물리적 성격을 근본적으로 악한 것으로 간주하는 자들(특히 카타리파들)이 느낄 법한 반론들이다.

    그렇지만 토마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적인 것들을 눈에 보이는 것들을 통해서 드러내는 것이 매우 적절하다. 왜냐하면 사도 바오로가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로마 1,20)라고 말하는 것처럼, 바로 이것이야말로 온 세상이 창조된 이유이기 때문이다. 특히 토마스가 고대 교회의 위대한 전통 안에 자리매김하면서 의심의 여지없이 동방 교회의 위대한 신학자라고 여기는 요한 다마셰누스가 말하는 것처럼, 육화의 신비를 통해서 일어난 것은 ‘하느님의 선하심, 지혜, 정의, 그리고 능력을 우리가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Cf. III, 1, 1)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물에 적합한 것은 그 고유의 본성의 정의에 따라 그것에 어울리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인간이 그 본성상 이성적인 한에서 추론이 사람들에게 적합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하느님의 본성은 디오니시우스가 말하는 것처럼, 선성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선의 의미에 속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하느님께 어울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순간에 성 토마스는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지타에게 호소하고 있다. 결국 그것은 하느님을 최고선으로 보는 심층적으로 신플라톤주의적인 개념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확산적인 함의를 담고 있는 선성이다. “그런데 바로 선 개념 자체가 디오니시우스가 말하는 것처럼, 그것이 다른 것들에게 자신을 전해준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것이 최고도로 피조물들에게 자기 자신을 전해주는 최고선 관념과 어울린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는 것처럼, 이것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이] ‘피조물의 본성을 당신 자신과 결합시켜서 말씀으로부터 하나의 위격이 영혼과 육체가 될 때 발생한다.”

    요컨대, 육화의 사실을 전제할 때, 만일 디오니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요한 다마셰누스 등과 더불어 우리가 이미 하느님을 자유롭고 관대하게 당신 자신을 전해주는 최고선으로 이해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기대해야 하는 그것이다. 그 실존과 본성이 이미 고대의 위대한 철학자들에 의해서 세상의 존재로부터 (어느 정도까지) 작업되었고, 또 (토마스가 덧붙이듯이) 계약의 백성의 역사 안에서 그 본성이 좀더 드러나게 된 하느님은 새로운 방식으로 피조물을 당신 자신과 결합시키신 하느님인 것으로 드러난다(III, 1, 1). 그런데 이 사건이 일어났으니, 그리스도교적 신학자가 그것이 비록 단편적이고 모호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자연 종교와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미리 예시되었는지를 작업해 내는 것이 가능하고 참으로 바람직하게 되었다.

    토마스에게는 아담의 타락이 없었더라면 죄에 대한 치료제로서의 육화란 없었을 것이라고 종종 주장되었다. 그러나 토마스가 육화가 죄많은 인류를 단죄로부터 구원하는 데 필요했느냐는 질문을 고찰하는 데로 돌아서는 것은 오로지 육화를 (창조 자체라는 선물을 넘어) 신적 선성의 더 이상의 수교로서 고찰한 이후의 일이다.(III, 1, 2) 또한 그는 육화를 (아우구스티누스를 인용해서) “인간 존재자들을 선을 향해 진보시키고” “하느님은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사람이 되셨다”는 전통적인 교부학적 공리에서 절정에 이르는 것으로 부각시킨다. 더욱이 그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의해서 우리에게 허용되는, 참으로 인간의 참행복이요 인생의 목적인, 신성에의 총체적 참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때에야 비로소 토마스는 인류가 범죄하지 않았더라도 하느님이 육화했겠느냐는 문제를 고찰한다(III, 1, 3). 그는 이 문제에 관한 상충되는 견해들을 알고 있다. 그의 스승인 알베르투스 마뉴스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지 않았더라도 하느님의 아들은 육화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그의 프란치스코회 동료인 보나벤투라는 하느님의 의지에 관한 우리의 유일한 원천이 성서인데, 성서에서는 어디에서나 육화가 죄와 연결되어 있다고 논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토마스가 육화 사건을 보고 있는 전망이 하느님을 자유롭고 은혜롭게 자기 증여하는 최고선으로 보는 디오니시우스의 관점임을 전제할 때, 타락이 없었더라면 육화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이 관점을 견지하는 이유가 “피조물에 기인하는 것을 넘어 오로지 하느님의 의지 덕분에만 오는 것은 하느님의 의지가 우리에게 알려지게 되는 성서에서 제공되는 것을 제외한다면, 우리에게 알려질 수 없다”(III, 1, 3)는 것이라는 것 사이에는 확실히 긴장이 있다. 성서에서 계시되는 것 외에는 하느님의 목적이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는다는 원리는 육화 사건이 하느님의 선성의 더 없이 위대한 현현이라는 확신(III, 1, 1)에 의해서 허를 찔리는 것으로 보인다.

    첫 26개 문제는 “육화의 형이상학”이라고 불림직한 것, [곧] 하느님의 아들의 신성이 어떻게 실제적으로 그리고 참되게, 신적인 것도 인간적인 것도 서로 침식하지 않는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 본성과 결합되는 것으로 개념되어야 하는지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초심자들’이 많은 그릇된 가능성들이 가차없이 배제된다는 논거들에 사로잡히는 것 같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한다. 하나하나의 논거가 토마스가 작업중에 있음을 증명해준다: 신적인 것과 피조물이 어떻게 육화한 하느님의 아들 안에서 결합되는지는 오로지 신적인 것에 인간적인 것보다 더 특전을 주는 제언들을 근면하게 배제함으로써만 조명될 수 있는 어떤 것(그는 ‘신비’라고 말할 것이다)이다. 다른 중세 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토마스에게도, 개연적인 반대 이론들을 배격함으로써만 정확한 관점에 도달할 수 있다. 상충되는 관점들이 배격되었을 때 남아 있는 것이 진정한 관점이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말하자면, 우리가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증명되었을 때 남아 있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집트의 이단자 아리우스(Arius, ?336)에게 돌려지고 있는 유혹, 곧 그리스도의 충만한 신성을 부정하려는 유혹을 의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토마스는 전반적으로 그리스도의 진정한 인간성을 단언하는 데 좀더 집중하고 있다. 그는 심지어 그리스도의 지식이 너무도 완벽해서 그는 어떤 것을 발견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자신의 초창기 명제를 수정하기까지 한다. 이제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도움을 받아서 그리스도가 다른 모든 이와 마찬가지로 지식을 획득했다는 것을 깨닫는다.(III, 3, 9: 『신학대전』 전체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유일한 부분)

우리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 (III, 27-30)

  • 현대의 일부 가톨릭 신학자들과는 달리 토마스는 ‘마리아론’(Mariologia)을 어떤 독립적인 신학 영역으로 다루기 않고, 전적으로 그리스도론의 맥락 속에서, 곧 육화에 관한 문들과, 그리스도의 생애, 수난, 부활에 관한 문들(III, 38-59) 사이에서 다루고 있다. 유명하게, 복되신 동정녀의 수태를 경축하는 다른 전통들 안에서의 실천이 관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양보하면서도, 토마스는 그녀의 ‘원죄 없으신 잉태’(III, 27, 2) 교리를 견지할 그 어떤 필요도 없다고 보았다. 마리아는 (세례자 요한과 마찬가지로) 어머니 자궁에서부터 성화된다. 그는 그녀가 (그녀의 하느님의 어머니로서의 운명의 관점에서 유일하게 그러한) 원죄로부터 자유롭게 회임하였다고 말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 1854년에 로마 가톨릭 신자가 믿어야 하는 교의로 규정된 이 교리는 먼저 영국에서 발전하였다. 그것은 둔스 스코투스가 옥스퍼드와 파리에서 제안했던 것이고, 이후에는 프란치스코회 신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지지한 가르침이며,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충실한 도미니코 회원들의 오랜 저항에도 불구하고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널리 받아들여진 가르침이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 (III, 46-59)

  • 수난에 관한 질문들(III, 46-52)에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특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점이 부각된다. ‘그리스도는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서 수난을 받아야만 했는지’를 고찰하는 첫 번째 질문(III, 46, 1)은 신약 성서 텍스트들에 대한 명상으로서, 하느님이 인류를 이런 식으로 구원하도록 강요되지 않았다는 것과, 그리스도가 죽기를 선택하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하느님은 우리를 다른 방식으로 구속하실 수도 있었다.(III, 46, 2) 그러나 [실제로 발생한] 이 방식은 하느님이 인류를 얼마나 극진히 사랑하는지를 입증하고, 순종의 모범을 제공한다.(III, 46, 3) 여기서는 어떤 것도 당대의 어떤 다른 신학자가 말했을 것으로부터 심각하게 거리를 두지 않는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조처가 있다. 왜 그리스도의 죽음이 십자 처형이었느냐고 물으면서 토마스는 여러 교부학적 동기들을 한꺼번에 검토한다: 십자가의 다중의 상징(곧 생명의 나무, 그리스도의 고양됨, 온 세상을 다 포용한다는 표지 등), 노아의 방주, 모세의 지팡이, 계약의 궤 등에서 선취된 십자 나무 등. 이것들은 토마스가 몬테카시노에서 소년으로서 몰두했으나 흔히 겉으로 드러나지 않던 풍부하게 상징적인 우화적 신학의 드문 증거들이다. 회고적으로 볼 때, 두 명의 강도들 사이에서 십자 처형되는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토마스는 크리소스토무스, 히에로니무스, 레오, 힐라리우스, 존자 베다, 오리게네스, 아우구스티누스 등의 교부들을 인용하고 있다. 제46문은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에 관심을 집중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하고 싶어하는) 사실들을 작업해 내기보다는 실제로 우주적이고 상징적인 용어로 되어 있는 그 사건의 의미를 추적하는 데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토마스에 따르면, 인간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생애 전반에 걸쳐,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느님에 대한 지복직관에 몰두하였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뇌를 최대한 견뎌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지복직관을 누렸다.(III, 46, 8. Cf. III, 9, 2; 10, 1-4) 토마스는 언제나 그의 까다로운 이론적 문제들에서 주요 권위로 인정되는 요한 다마셰누스를 인용한다: 그리스도의 신성이 “그의 육체로 하여금 적절한 것을 행하고 또 겪도록 허용했다.” 토마스는 버려졌다는 외침(마태 27,46)이 “그리스도가 자신을 박해자들의 힘에 내맡긴 한에서 하느님이 그를 죽음 속에 내버려 둔 것을 의미한다”고, 그리고 “그[하느님]는 당신의 보호를 철회하였지만, 결합은 유지하였다”고 단언할 것이다.(III, 50, 2, ad1) 말하자면 버려졌다는 외침은 자기 아버지의 사랑을 확신하고 있는 채로 남아 있는 거룩한 사람의 외침이다. 그 외침의 출전인 시편(22[21])은, 시편작가가 자기 고뇌의 한 가운데에서 구원을 미리 내다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게 되는 끝에서부터 거꾸로 읽을 필요가 있다.

    물론 여기서 토마스는 다만 전통적 가르침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현대의 그리스도교적 감수성을 시험한다. 시편 22[21]편을 끝에서부터 읽음으로써 그 버려졌다는 외침을, 그로부터 그리스도가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믿을 끔찍한 오류를 제거하는 맥락 속에 자리매김 하는 것이 한 가지이다. 그 방기(放棄)를 결국 그가 이제껏 누리던, 적들로부터의 보호가 이제 철회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러나 현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시험은 아직 남아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전통적 언어로 말하자면, 예수는 ‘여정자’(viator)이자 동시에 ‘달관자’(comprehensor)로서, 복된 이들이 하늘나라에서 하느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직관을 이 지상에서 지니고 있는 채 걷고 있는 것이다. 토마스에게 있어서, 지복직관에 함축되어 있는 하느님과의 지속적인 결합은 다만 위격적 결합(unio hypostatica)의 함의일 뿐이다. 만일 그 신적 본성과 인성이 육화에서 결합되어야 한다면, 신적 본성이 그 결합을 깨뜨림 없이 있는 것이기를 유보하거나 중단함이 있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토마스에게는, 전통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수가 아버지와 동일한 신적 본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가 아버지와 결합되어 있음은 해체될 수 없다. 그것이 논리적 요점이다. 삼위 가운데 어느 위격도 다른 두 위격과의 관계에서 벗어나서는 실존할 수 없다.

    토마스의 논의의 나머지 부분에서도 같은 종류의 관심을 보여준다. 여기저기에서 그는 근대 이전의 관점을 요약하고, 이리하여 비교와 가끔은 도전을 위한 간결한 출발점을 제공하고 있다.

성사 (III, 60-90)

  • 토마스는 그리스도론에서 곧바로 움직여 성사들을 고찰하는 데로 나아간다. 그는 교회 자체의 본성을 논의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대전』 전반에 걸쳐 흩어져 있어서, 그로부터 신학적 설명이 만들어 질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한 멋진 구절에서 토마스는 “하느님의 백성”을 “신앙인들의 모임”(congregatio fidelium)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는 주교들과 위계 구조, 특히 디오니시우스를 가끔 인용하는 전례 모임에 관하여 할 말을 잔뜩 가지고 있다. 물론 그는 이단, 이교, 그리고 교회 내 다른 내부적 불일치 형식들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카타리파(Cathari) 성직자와 평신도들은 그의 평생에 걸쳐서 문제거리로 남아 있다. 그렇지만 교회 자체의 본성이 조직 신학에서 주목받는 주제로 부각되는 것은 서구 그리스도교의 대이교(1378년)와 더불어 15세기가 되어서야 일어난다.

    토마스는 바로 “그들이 육화한 말씀 자신으로부터 그 효력을 받기”(III, 60, 머리말) 때문에, 육화한 말씀의 신비들로부터 신앙의 성사들로 움직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발견한다. 토마스에게 세례와 성체 성사는 일차적으로 그리스도론적 사건들이다. 교회의 성사들, 특히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적 삶의 여정에 따라 하느님 경배를 통해 인간을 완성하는 것과, 둘째로 죄에 의한 실패들에 대응하기 위해서”(III, 65, 1)라는 두 가지 주요 목적을 위해 제정되었다는 점이 곧 부각된다. 그 가운데 우선성이 지적되어야 한다. 자연적으로 이성적 피조물들에게 오는 경배를 완성하는 것이 죄스러움의 결과들에 대적하는 것보다 더 먼저 언급되고 있다.

    ‘성사’라는 말은 아프리카의 교부인 테르툴리아누스(c.160-220)에 의해서 교회적 언어로 도입되었다. 성사로서의 성사 개념에 대한 최초의 위대한 탐색은 또 한 명의 아프리카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354-430)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성사는 거듭거듭 그 고유의 구별되는 특정 형식을 넘어 그 자체를 넘는 어떤 더 이상의 실재를 불러오는 활동이다.

    한 가지 뚜렷한 논점은 그 문제에 대해서 성사들이 표지들인지 아니면 원인들인지, 그리스도인의 삶에 그리스도가 개입한다는 다만 상징들인지, 아니면 실재적인 행위 주체들인지에 관한 (당시와 그 뒤에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토마스의 해결책과 관계된다. 그의 동시대인들 가운데 일부는 성사들이 (하느님이 말하자면 당신의 호의를 수여하기 위한 기회를 활용한다는 의미에서) ‘은총의 원인’이라고 주장하였다. 예컨대 세례 예식은 하느님이 영혼 안에서 작용할 기회일 것이지만, 그 예식 자체는 단지 그 수용자를 적절한 상황에 선호할 만하게 준비시킬 뿐이다. 샘물 속에 잠김 그 자체가 세례를 받고 있는 그 사람 안에 어떤 변화를 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수도원장이 직무에 서임될 때 그에게 지팡이가 주어지고, 주교에게는 반지가 주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예식은 단순히 상징적일 것이다. 지팡이와 반지가 그들을 대수도원장과 주교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토마스는 고대 교부적 권위와 함께, 성사들이 한 인물의 조건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을 실제로 효력화한다고 논하고 있다. 물론 그가 서둘러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은총의 원인이 되고, 그 개인을 성화하는 일은 오로지 하느님께만 속한다. “은총이란 신적 본성에 참여한 어떤 유사성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강조하는 것처럼, “새 법의 성사들은 원인들이자 동시에 표지들이다.”(III, 62, 1) “그는 거듭 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셨습니다.”(티토 3,5) 토마스는 표지와 원인 사이의 선택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한다. 예식은 그들이 상징하는 것을 초래한다. 곧 성사들은 그것들이 의미하는 것을 실제로 결과시키는 것이다. 성사적 사건들로서 세례와 성찬례는, 많은 이들이 한때 믿었던 것처럼, 그것들이 신적 개입이 예식들과 일치하리라는 희망을 제시하는 순간들만이 아니다. 오히려 토마스에게 있어서 그 예식들은 그것들이 또한 상징하는 것을 성취한다.(세례는 깨끗이 씻음을, 성찬례는 영양섭취를 성취하는 것이다.) 요컨대, 토마스는 그가 반복적으로 배제하고자 추구하던, 기회주의라는 또 다른 번안을 배격하고 있었다. 세례에서 물속에 잠기는 것은 재생을 상징화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며, 성찬례에서 축성되는 빵과 포도주도 단지 그리스도의 몸과 피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이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토마스가 선호하는 주제인 이중 작용의 한 예이다. 하느님의 행위는 인간의 활동이 또한 실재적으로 그리고 참으로 효과적일 수 있게 만드는 그런 행위이다.

성체성사 (III, 73-83)

  • 성찬례에서의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화된다는 생각은 이미 호교론자이자 순교자인 유스티누스(c.100-65) 안에도 있다. 그렇지만 토마스에게 보다 현대적으로 말하자면, 파리를 중심으로 9세기 이래로 ‘상징적으로’(in figura)와 ‘진실로’(in veritate) 현존하는 것 사이의 구별에 관한 거친 논쟁이 있어 왔다. 1140년 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익명의 (그러나 모르긴 몰라도 파리에서 옥스퍼드 신학자인 로베르투스 풀렌(Robertus Pullen, +1146)에 뿌리를 두고 있는) 논설은 성찬례에 관련되는 어떤 쇄신으로 읽힐 수 있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성질의 변화가 아니라,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하나의 실체(substantia)에서 다른 실체로 넘어가는 어떤 실체변화(transsubstantio) 또는 변화(transmutatio)”이다. 1170년 경, 이 단어는 명사로서뿐만 아니라 동사와 부사 형식으로도 널리 사용되었다. 그 단어는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에서 동사 형식으로 처음으로 나타난다: “신적 능력에 의해서 빵과 포도주는 몸과 피로 실체변화 되었다(transsubstantiatis).”

    50년이 지난 뒤에 토마스는 성찬례에서 빵과 포도주의 축성에서 일어나는 것에 대한 세 가지 서로 다른 이해 방식들을 잘 알고 있다: 빵과 포도주의 실체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실체들과 ‘공존하고 있다’(co-existere); 그것들은 ‘제거되었다.’(annihilati);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실체들로 ‘전환되었다’(convertiti). 그는 이 의미들 가운데 오직 세 번째 것만이 수용될 수 있다고 논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단지 ‘상징적으로’(secundum figuram sive sicut in signo)뿐만 아니라, ‘참으로’(secundum veritatem)도 축성된 빵과 포도주 안에 현존한다는 것을 보장하고 싶었다.(III, 75, 1) 어떤 이들은 공동 현존의 입장을 내세웠지만, 토마스는 그것을 많은 논의 없이 ‘이단적’인 것으로 기각시킨다.(III, 75, 2) 다른 이들은 빵과 포도주의 실체들이 제거되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실체들로 대체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거짓이다.’ 그것은 그릇된 물질주의적 변화 관념에 기초를 두고 있다.(III, 75, 3) 에메사의 에우세비우스,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와 같은 4세기의 주교들을 인용함으로써 초기 그리스도교 권위자들에 신중하게 접근하면서, 그는 이 ‘전환’(conversio)이 다른 모든 자연적 변화들과는 달리 “하느님의 능력에 의해서만 결과되는 전적으로 초자연적인 것”이고, 따라서 그 자체에 고유한 이름인 ‘실체변화’(transsubstantiatio)라 불릴 수 있다고 말한다.(III, 75, 4)

    그렇지만 축성된 이후에 이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 빵과 포도주는 아직도 빵과 포도주처럼 보이고 그런 맛을 낸다. 그 당시의 특수용어로 빵과 포도주의 속성들 또는 ‘우유들’(accidentia)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III, 75, 3), 이전에 그 주체들이었던 빵과 포도주의 실체들은 제거되었고, 그래서 지금은 내속(內屬)하는 어떤 주체가 없이 우유들로서 존재하고 있다.(III, 77, 1-2)

    물론, 실체와 우유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들이다. 그러나 토마스는 명시적으로 자신의 이론의 기초를 신플라톤주의적인 『원인론』(Liber de Causis)의 제1 공리에 두고 있다. 제1 원인은 제2 원인을 유보할 수 있고, 그래서 본래 그 우유들의 주체였던 실체가 부재하는 중에 그 우유들을 현존하고 있는 채로 유지할 수 있다.(III, 75, 3) 요컨대, 토마스에게 있어서 이 독특한 현상은 오로지 창조에 관한 신플라톤주의적 존재론과 연관지어서만 이해될 수 있는 가능성을 얻을 수 있다. 창조 교리 자체와 마찬가지로, 성체 축성에 대한 이 이해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을 완전히 초월한다.

    그것에 직면해서, 이 실체변화에 대한 설명은 사물들이 나타나는 방식이 그것들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한 보증이 될 수 없다는 회의적인 형이상학적 가르침과 결탁된 것으로 보인다. 사물들이 통상적으로는 그렇게 보이는 대로 존재한다는 상식적 실재주의에 대한 이러한 근본적인 부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개념할 수 있었던 것으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실재 속에서 토마스가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는 신뢰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성체 축성 이후에도 존속하는 빵과 포도주의 속성들을 토마스는 어떤 의미로도 환상(착각)[이것이 토마스가 검토하는 첫 번째 가능성이다]으로 개념하지 않는다.(III, 77, 11) 그는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는 ‘전환’을 세계 창조와 비교한다. “전자에도 후자에도 밑에 놓여 있는 어떤 주체가 없다.”(III, 75, 8) ‘전환’(conversio)이라는 단어는 창조에서 배제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비존재가 존재로 전환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토마스의 설명에서 성체 축성에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 또는 ‘전환’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이를테면) 무로부터 창조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일반적인 자연 질서는 어떤 우유가 어떤 주체 안에 내속해야 한다고 명한다.” 그러나 “어떤 특별한 은총의 특전 때문에 어떤 반대되는 배치가 아주 질서정연하게 있는” 사례들은 많다.(III, 77, 1) 토마스는 죽은 이의 부활, 맹인에게 시력을 줌 등을 인용하고, 또 다른 차원에서 “어떤 이들에게 어떻게 통상적인 법칙을 넘어 특수한 특전들이 허용되는지”를 살펴본다. 그는 방금 전에 그리스도가 ‘남자의 정액이 없이’ 동정녀의 품 속에 수태되는 경우를 인용하였다. 이런 기적같은 또는 특전적인 사건들의 배치의 맥락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여기서, 곧 성체 축성에서, 특별한 이유로 그리고 은총의 질서에서 ‘주체 없는 우유들’을 경계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반대로, “모든 결과들이 제2 원인들보다는 제1 원인들에 좀 더 의존한다고 보기 때문에, 실체와 우유 모두의 제1 원인인 하느님은 자신의 무한한 능력을 사용함으로써, 이제껏 그 직접적인 원인으로서 그것을 존재 속에 보존하고 있던 실체가 사라졌을 때에 어떤 우유를 존재 속에 보존할 수 있다.”(같은 곳)

    축성 후에도, 말하자면, 자유로이 떠도는 채로 남아 있는 빵과 포도주의 속성들은 하느님의 능력에 의해서 존재에 있어서 자립하는 지위가 부여된다. 여기서 전적으로 하느님께 의존하고 있는 피조물의 조건이 잘 밝혀지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창조 교리를 이해하는 토마스의 방식이다. 만일 조셉 피퍼(Josef Pieper)가 제언하듯이, 이런 피조물성 관념이 그것에 의해서 ‘그의 세계관의 기초 개념들이 결정되는’ 열쇠라면, 우리는 어쩌면 대체로 성체 축성의 기적에 관한 토마스의 설명이 오로지 그가 창조 교리에 빚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신학대전』이 성찬례에 관한 이 질문들에서 절정에 달한다는 것은 어쩌면 매우 적합한 것일지 모른다(III, 73-83). 비교해 보면, 속죄의 성사에 관한 나머지 여섯 개의 문들은 피상적이 아니라면, 차라리 의무로 가득찬 일상인 것으로 보인다.

    토마스가 그로 하여금 절필하기로 결정하게 만든 것은 그가 미사를 봉헌하던 중이었다. 매일 미사는 그의 학생들의 생활 중심이었다. 그들로 하여금 육화를 하느님의 너그러우심의 또 한 가지 예로 보도록 가르쳤기 때문에, 비밀-가현주의적(crypto-docetic) 경향들을 거슬러 그리스도의 참된 인간성을 강조하였으며, 성사들을 그리스도의 행위들로 제시한 것에 토마스는 만족했을 것이다.

마무리

  • 물론, 토마스가 다른 곳은 접어두더라도 『신학대전』에서 논하는 많은 것들이 오늘날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수 없을 것이다. 예컨대, 그는 만일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지 않았더라면, 새로 태어나는 아기들의 처지가 어떠했을지를 고찰한다.(I, 99, 1) 그들은 태어나는 바로 그 순간에 신체적 능력들을 충만히 가지고 있었을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성인들이었을까? 토마스는 이렇게 보장한다. “그 어떤 가톨릭 신자도 그럴 수 있으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아기들에게는 뇌의 습기가 너무도 많기 때문에. 운동의 도구인 힘줄이 사지를 움직이는 데 적합하지 못한 것이 자연스럽다.” 어떤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사지를 사용하기도 하는데,(토마스는 그 분야에서 자신이 관찰한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에서 읽은 것을 전해주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들의 뇌가 건조하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계속해서,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원조들의 타락이 없었더라도 여자가 태어났겠는지를 고찰한다(I, 99, 2). 아리스토텔레스는 결국 여성을 ‘결핍된 남성’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한번을 제외하고는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정서에 의해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토마스가 여자가 사제나 주교로 서품될 수 있는 가능성에 반대하는 주요 논거는 그들이 자연질서에서, 그리고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도 지도력을 수행하거나 심지어 의미할 수조차 없다는 것이다. 토마스가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던 수녀원장들이나 여왕들과 같은 여자들을 얼마나 많이 마주 대했었는지는 우리로서는 알지 못한다. 그는 어쩌면 그들을 영예로운 사람들로 간주했을 것이다.

    물론 어떤 13세기 텍스트 안에서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또는 우리의 흥미를 전혀 끌 수 없는, 당대의 신념들과 관습에 젖어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다른 한편, 우리 자신의 것과는 매우 다른 지성적 분위기에서 어느 위대한 사상가가 집필한 텍스트는, 바로 그것이 그토록 낯설거나 색다르기 때문에,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들을 제공하고 (우리 자신이 믿는 것에 관하여 좀더 분명해지고 좀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길들에 대한) 전망을 열어 제칠 수도 있다. (토마스 자신이 의심의 여지없이 의도했듯이) 여러 해가 걸릴 수 있는, 『신학대전』에 대한 정밀독서에 가담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앞의 세 장에 걸쳐서) 주목한 의미 있는 요점들의 요약은 거룩한 가르침에 대한 토마스의 가르침에 접근할 수 있는 안내역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는 자신의 독자들이 계속해서 성서를 연구하고, 거기서 제기되는 질문들에 관한 토론에 참여하기를 기대하였다. 이제 우리는 이 선별적인 독서를 마무리지으면서, 토마스가 자신의 이 유명한 작품이 어떻게 사용되기를 바랐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지적하고 싶다.

출처 : http://stik.or.kr/contents/tms_201.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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