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경 구속사 제6강 선지자들의 예언 속에 계시된 하나님 나라 (렘31:31-34, 겔11:19-20, 36:26-28, 사42:9, 55:3, 59:21, 61:1-3를 찾아
정독하신 후 본 공부 요망)
Ⅰ. 도입 에덴에 계시된 하나님 나라 사상(아담언약, 여자의 후손 언약)은 아브라함 언약과 시내산 언약, 그리고 다윗 언약에 근거해 통일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그 예비적 성취를 이룹니다. 통일 이스라엘의 신정적(神政的) 통치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존재양식은 분명히 보여짐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온전치 못한 부족과 결핍이 여전히 존재함을 봅니다. 이는 처음부터 이스라엘 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 나라는 선취적이기는 하지만 예비적 성격을 띤 채, 그림자적으로 현시 됨에 다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실제적 표상으로서 에덴은 구조적 성격상 여자의 후손 언약으로 말미암는 구속의 원리가 온전히 실현되는 것을 전제로 회복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죄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됨이 없이는 에덴의 회복이나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실현은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통치를 통한 신정적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비록 존재양식으로 봐서는 틀림없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현시 됨에도 불구하고, 순종을 관장하는 시내산 언약에 대한 불순종의 범죄 행위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상황하에서 실질적인 하나님 나라는 여전히 한계를 드러내게 됩니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선지자들의 예언 속에 계시된 보다 진전된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살펴 볼 필요가 있음이 이런 사실에 근거합니다. 결국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가시적이긴 하지만 예비적이며 예표적인 성격을 띠고 나타납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이제 선지자들의 예언과 새 언약 속에서 구속사의 진행방향은 보다 실체에 가깝게 접근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이것이 선지자들의 예언 속에 담긴 하나님 나라의 계시적 성격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구속사 진행은 계시의 점진성의 원리를 좇아서 보다 명시적이고 실제적인 단계로 옮겨갑니다. Ⅱ. 전개 다윗과 솔로몬 통치 속에서 찬연히 현시 됐던 하나님 나라로서 신정적 통치체제는 급기야 남북으로 분열(왕상12장)되는 것을 통해 신정왕국의 모습이 한시적이고 제한적으로 계시된 것임을 간파하게 됩니다. 더욱 다윗 왕조의 근간인 남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1차, 2차, 3차에 걸쳐 침략을 당한 끝에 마침내 멸망당하고 수많은 사람이 포로로 잡혀간 나머지, 끝내는 다윗 왕조가 몰락한 사건은 민족적인 비상사태일 뿐 아니라 언약 신학적 관점에서도 중대한 문제를 제기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만일 지상의 다윗 왕조가 이런 식으로 멸망당해야하고, 그리고 이것이 다윗 왕조의 최후로 기록된다면, 다윗 언약 속에 굳게 약속돼 있는 다윗 왕조의 영원성과 영속성의 문제(삼하7:13-16)는 향후 어떻게 처리될 것인가 하는 것이 여전히 의문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런 의구심과 국가적 비상사태는 포로기 전후의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된 여러 예언과 이 예언의 총화적 성격을 띠고 있는 '새 언약' 안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됩니다. 다시 말해 이때의 해결책은 다름 아닌 아브라함 언약과 시내산 언약, 그리고 다윗 언약 속에 내포된 보다 본질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또 다른 측면의 구체적 성취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새 언약을 통해서는 성도들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직접적으로 내주하시고 능력으로 후원해 주심으로 육체가 죄성으로 인해 연약해서 할 수 없는 율법에 대한 순종을 넉넉히 감당케 하신다는 약속입니다(렘31:31-34, 겔11:19-20, 36:26-28, 롬8:3-4). 이런 사실은 결국 인간의 죄성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없이는 진정한 의미의 참된 하나님 나라의 실현은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합니다(창3:15). 따라서 선지자들의 예언 속에 담긴 새 언약의 요지는 바로 이 죄의 문제의 해결을 통한 실제적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성취를 전망하고 있습니다. 1. 다윗 왕조의 몰락 포로기 전후의 선지자들에 의해 제기된 신정왕국으로서 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들은 아래 기술된 세 가지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특별히 다윗 왕조의 몰락은 처음부터 다윗 언약이 지향하고 있는 왕조의 구속사적 성격이 현재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이중성을 띠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성경의 신적 언약들은 구속사 진행에 있어서 계시의 점진성과 관련해 내용상 이중적 성격을 띤 채 보다 본질적인 실체를 향해 진행됨을 봅니다. 이 사실에 대한 바른 이해는 오늘날 종교 개혁자들에 의해 성경해석의 고전적 명제가 되다시피 한 '구약은 신약의 빛 안에서 밝히 드러나고, 신약은 구약 속에 감춰져 있다'(The Old Testament is patent in the New Testament, and The New Testament is latent in the Old Testament)는 말속에서 다시 한번 포괄적으로 확인됩니다. 1)솔로몬의 신정적 통치체제의 붕괴(향후 남북 왕조를 포함)는 철저히 다윗의 유언을 통해 재차 강조된 '시내산 언약을 불순종'하는 데서 찾아집니다(왕상2:3-4, 3:1, 11:1-13, 신17:15-19). (1)백성의 대표자인 솔로몬 왕이 이일에 앞장섰습니다. 이는 전 이스라엘의 변질과 타락을 조장하는 패역한 행위입니다. 왕은 백성들의 머리를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a.이방의 여인을 아내로 삼았습니다(왕상3:1, 11:1). 화친을 통해 국가적 평화와 안정을 도모한다는 명분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선지직의 본격적인 등장과 관련해서 이미 살펴 본대로 왕정의 부정적 측면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바 있습니다. b.이로 인해 이방 여인들이 섬기던 우상숭배를 허용합니다(왕상11:2-8, 33). c.이는 시내산 언약의 위배인 동시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반역적 처사입니다(출34:16. 신7:3-5, 17:15-19). (2)솔로몬의 우상숭배 허용은 다윗 왕조가 솔로몬 사후에 남북으로 분열되는 결정적인 원인제공으로 작용합니다(왕상11:31-33). a.하나님은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이스라엘 10지파를 여로보암에게 주실 것을 통보합니다(30-31절). b.그러나 이런 의도는 처음부터 남북으로 가르고자 함이 아닙니다. c.남 유다를 징계하기 위한 한시적 심판일 뿐입니다(39절). 언약적 심판 말입니다. (가)예루살렘과 다윗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적 보증이 이를 증명합니다(36절). (나)이는 이스라엘의 정통성이 하나님의 신정적 통치의 상징인 남 유다의 예루살렘에 여전히 머물고 있음을 시사함에 다름이 아닙니다. (3)솔로몬이 죽은 후 아들 르호보암 때, 솔로몬을 피해 애굽으로 도망갔던 여로보암이 돌아와 르호보암에 반기를 든 10지파의 지도자로 등장합니다(왕상12:24). (4)그러나 여로보암은 정치적 불안을 느낀 나머지 철저히 정권유지의 목적을 위해 일단의 왜곡된 사이비 종교개혁을 단행합니다(왕상12:25-33) a.단과 벧엘에 산당을 짓고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을 형상화시켜 경배케 합니다(28-30절).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도구화시킵니다. 순전히 개인의 목적과 세속적 행복과 안일을 위해서 말입니다. 신앙이 인간을 위한 수단과 방편으로 전락될 때 거기에는 인간의 기복적인 종교적 욕구만을 충족시키기 위한 탐심만이 난무하게 됩니다. 왕상12:37-38의 순종의 약속은 여지없이 무너져 버립니다. b.보통사람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아 봉직하게 합니다(31절). 무자격 성도의 남발입니다. 물질적 성공지상주의 폐해입니다. 이로 인해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도리가 무참히 짓밟힙니다. 철저히 왜곡됩니다. 형식상의 기독교 종교인만을 양산하게 됩니다. c.절기 일자를 임의로 변경합니다(32-33절). 말씀의 자의적 해석과 편의적 적용입니다. 신앙이 인간의 편의성만을 지향해 추구될 때 하나님의 뜻과 본의는 실종됩니다. 곧 불법적이고 불복종적인 신앙으로 판정받게 될 뿐입니다(롬10:2-3, 마7:21-23). (5)이런 식으로 북 이스라엘은 분열 초기부터 철저히 불순종으로 일관합니다. 열왕기서 기자는 여로보암의 불법적 종교개혁을 일컬어 '여로보암의 죄'(왕상14:16), '여로보암의 길'(왕상15:34) 등으로 표현합니다. 나아가 '여로보암의 종교'는 여로보암의 뒤를 이은 북 이스라엘 왕들에게 한결 같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정적인 올무로 작용하고 있음을 의도적으로 부각시켜 기술합니다. 그리고 시내산 언약에 대한 이런 유(類)의 불순종은 남 유다의 통치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2)선지자들의 예언적 메시지의 두 번째 요지는 시내산 언약에 근거한 '심판'의 경고와 '회개'의 촉구입니다. 이는 시내산 언약에 내포된 조건적 성격에서 나와진 결과입니다. 즉 순종 시에는 복을, 불순종 시에는 화가 임할 것을 조건으로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1)이사야 선지자는 남 유다의 우상숭배와 형식적이며 외식적인 성전 제사를 혹독하게 비난하며(사1:10-15) 회개를 촉구(16-18)합니다. 심판을 경고합니다((19-20절). (2)호세아는 전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여인의 음행에 비유하며 회개를 촉구합니다. 하나님은 음행한 여인이라도 회개하며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임을 선포합니다(호1, 6장). (3)아모스 또한 이스라엘의 형식주의의 제사를 통렬히 비난합니다(암5:21-27). (4)하박국은 유다의 강포와 간악을 고발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이방을 통해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십니다(합1:1-11). (5)예레미야는 유다의 우상숭배를 힐책하며 바벨론을 채찍 삼아 유다를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중을 선포합니다(렘25:7-11). 3)선지자들의 예언의 세 번째 요소는 '구원'과 '회복'입니다. 이 부분을 통해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이 재확인됩니다. 이때 선지자들은 한결 같이 아브라함 언약과 시내산 언약 및 다윗 언약에 근거해서 이스라엘의 회복의 당위성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이때의 이스라엘의 회복은 역사적 이스라엘이라기 보다는 종말론적 새 이스라엘로서 곧 참 다윗 왕으로 오시는 메시아적 왕국의 도래를 역설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의 객관적인 근거로 새 언약을 통해 계시된 성령의 내주와 이로 말미암는 죄의 사면 및 율법에 대한 온전한 순종을 지적합니다. (1)이들 선지자들의 구원 메시지의 근간이 곧 새 언약(렘31:31-34, 33:19-26, 사54:8-10, 55:3, 겔11:19-20, 36:26-28, 히8:6-12, 10:15-18)의 내용입니다. (2)이는 사실상 아브라함 언약과 시내산 언약 및 다윗 언약의 갱신이며 큰 발전입니다. (3)나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우시는 새 언약(눅22:19-20)의 근거가 됩니다. (4)이런 사실을 통해 신적 언약의 연계성과 연속성 및 성취의 필연성을 확인하게 됩니다. (5)이 언약의 종말론적 성취의 일환으로 하나님은 당신의 신실한 남은 자를 역사 속에서 구원하십니다. 이들을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삼으시고 마침내 재림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최종적으로 완성하십니다. 때문에 성도는 이미 여기서부터 그 나라를 기업으로 상속받고 그 왕적 통치를 현재적으로 받아 누리는 것을 통해 천국백성으로서 구원의 실질과 영생의 삶을 만끽하는 자들로 존재합니다. 2. 새 언약과 다윗 왕조의 회복 통일 이스라엘의 남북 분열과 강대국에 의한 이스라엘의 멸망, 특별히 다윗 왕조의 붕괴는 선민으로 자부하던 이스라엘에게 민족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커다란 충격과 실망, 그리고 깊은 회의를 안겨 줍니다. 더욱이 하나님도 없이 우상만을 숭배하는 외세에 의한 신정왕국의 멸망예언은 당시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합1:13). 그러나 선지자들은 한결 같이 불순종과 우상숭배 및 신앙의 형식주의와 의식주의에 깊이 빠져있는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의 준엄한 언약적 심판과 멸망을 예언했을 뿐 아니라, 구원과 회복을 아울러 예언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이 여전히 종말론적 효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이런 사실은 특별히 새 이스라엘의 회복을 총체적으로 확약하고 있는 '새 언약' 속에서 그 절정을 이룹니다. 새 언약과 관련된 이스라엘의 회복의 내용을 예레미야와 에스겔 및 이사야서를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1)예레미야의 예언 속에 계시된 새 언약(렘31:31-34) 예레미야 선지자는 저 유명한 하나님의 '새 언약'을 선포하기 전, 먼저 유다의 멸망과 회복을 예언합니다. 그리고 이런 남 유다의 회복을 북 이스라엘에게 확대 적용시키는 가운데 역사적 통일 이스라엘의 회복을 새 언약 안에서 재해석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결국 예레미야 선지자는 독자들에게 새 언약 안에서 회복되는 이스라엘이란 역사적 이스라엘을 뛰어 넘는 종말론적 새 이스라엘을 부각시킴으로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으로 세상 가운데 출현하게 될 교회공동체를 지향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이는 결국 또 다른 의미에서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 나라를 가리킴에 다름 아닙니다. (1)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시내산 언약에 근거해 유다의 불순종을 책망하시는 가운데 바벨론을 채찍으로 삼아 언약적 심판을 내리실 것을 예언하십니다(렘25:7-10). (2)그러나 아주 멸하지는 않으시고 70년으로 제한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11절). 이는 유다의 회복을 보증하시는 말씀(렘29:10-14, 30:1-3)으로 다윗 언약을 통해 다윗 왕조를 영원히 지속시키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에 근거한 내용입니다. a.70년이 찰 때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 중 일단의 무리를 포로로 잡혀갔던 이방으로부터 회복시키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예레미야는 이들을 '남은 자'라고 명명합니다(렘23:3). 구속사 진행에 있어서 '남은 자' 사상은 하나님의 친 백성을 가리키는 언약적 용어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구원받을 '택자' 사상과 동일한 의미를 간직합니다(엡1:4-6). 신구약 역사를 막론하고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성도들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성경은 자증합니다(롬11:4-6). b.아울러 다윗에게서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켜 그로 하여금 회복된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을 삼아 공평과 정의를 행사하게 할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 때 비로소 참 된 구원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왕을 통해 여호와의 의가 온 백성에게 전가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렘23:5-6, 롬3:21-22). 그리고 이들은 참 다윗 왕으로 오시는 메시아를 통해 창조자이시며 구원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계시적 실체로 보게 될 것입니다(렘23:7-8). c.이상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회복이 여전히 다윗 언약에 근거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로 인해 다윗 언약은 자체 속에 처음부터 이중적 성격을 띠고 주어졌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모든 언약은 구속사적 계시의 점진성이라는 원리적 측면에서 접근할 때 본질적으로 종말론적 성취를 지향하는 것으로 이중적 구조를 띠고 진행됨을 보게 됩니다. 현재적이며 동시에 미래적이고 종말론적인 측면 말입니다. (3)대신 심판의 도구로 삼았던 바벨론의 죄를 물어 이들을 멸망시키실 것을 아울러 말씀해 주십니다(렘25:12). 이런 사실은 구약의 역사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하나님의 구속사인 사실을 명백히 증거함에 다름 아닙니다. 역사의 본질이 구속사인 사실 말입니다. 이런 원리는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시공을 초월한 불변의 원칙으로 적용됩니다. 그렇습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와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교회:엡2:11-22)가 차기까지 세상의 종말은 한시적으로 유보될 뿐입니다(롬11:25-27). 세상의 중심에 교회가 위치해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로 인해 온 세상이 교회에 의존되고 종속돼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이시며 주인 되시는 분은 다름 아닌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때의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의 바른 교회를 가리킵니다. 어떤 교회는 실상은 죽어있는 명목상의 교회들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계3:1). 심지어 '사단적인 교회'도 있을 수 있다고 성경은 경계를 촉구합니다(계2:9). (4)이렇게 렘29-30장에 걸쳐 집중적으로 바벨론으로부터 유다와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에 대해 기술하던 예레미야는 31장에 이르러 회복된 유다와 이스라엘을 향해 '새 언약'을 선포합니다(렘31:31-34). 새 언약의 내용은 계시적 성격상 시내산 언약에 근거하고 있으나 괄목할만한 갱신과 발전을 통해 확대돼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죄의 용서와 심비에 새겨진 율법으로 인해 율법의 자율적 순종이 보장되고 있음은 시내산 옛 언약에 비해 현격한 계시의 비약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새 언약의 구속사적 특징을 살펴봅니다. a.새 언약의 발효시기는 하나님의 섭리적 작정의 때가 이르러야 할 것입니다. b.새 언약이 유효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표현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지칭할 때 사용된 표현입니다(출6:2-9). c.새 언약의 성격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옛 언약(시내산 언약)과 비교해서 내용적으로는 동일하게 순종을 요구합니다. 이는 옛 언약이나 새 언약이 내적 통일성과 연속적인 관계성을 맺고 있음을 증거하는 것으로 본질상 동질성을 띠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의미적으로는 불연속성을 갖기도 합니다. (가)옛 언약은 역사적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거부되었습니다. 불순종했습니다. (나)그러나 새 언약은 회복된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지켜질 것입니다. 순종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법을 회복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새겨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성령의 내주와 후원하시는 능력의 역사로 가능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d.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게 하십니다(34절상). e.이로 인해 죄로부터 온전히 용서를 받습니다(34절하). 의롭다라고 인정을 받습니다. 사실상 예레미야에 의해 선포된 새 언약에 있어서 종전의 언약과 비교해 괄목할만한 언약의 갱신과 발전을 가져 온 부분은 새 언약이 성취되는 시대가 다름 아닌 '죄용서의 시대'란 사실입니다. 한 번에 그리고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지는 시대 말입니다(히10:17-18). 물론 옛 언약 하에서도 죄용서가 가능했습니다(히9:13). 그러나 그것은 실체를 향한 예표적 제도로서 한시적으로 효력을 발생했을 뿐입니다(히10:11). 그래서 해마다 거듭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새 언약 하에서는 실체 되신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위해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심으로 그 안에서 모든 죄가 영원히 도말(塗抹) 된 것입니다(히9:12, 10:14, 17-18절). f.이런 결과로 '하나님은 저들의 하나님이 되시며,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곧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가 성취됩니다. 마침내 임마누엘의 종말론적 성취가 실현됩니다. 여기서 '나는 저들의 하나님이 되시며 저들은 내 백성이 된다'는 구속사적 표현은 언약의 본질로서 곧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성취를 가리킵니다(계21:3, 창17:8, 출19:5, 레26:12). 성경에 약속된 신적 언약의 핵심사상은 한결 같이 이상의 주제를 본질로 삼아 역사 속에서 진행돼 나왔습니다. 이런 사실은 언약의 궁극적 목적이 하나님 나라의 성취를 지향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5)이상의 새 언약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작정하신 섭리적 기간이 찰 때 회복될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을 통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 때 이 모든 일들이 다윗의 위를 좇아 세우신 한 의로운 가지에 의해 성취될 것이며(렘23:5-6), 그 나라와 그 백성들은 결코 다시 멸망하지 않으며 영속될 것입니다(렘33:14-18).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의 영속성과 불변성을 자연법칙을 담보로 보증하십니다(25-26절). 이는 온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은 필연적이고 영원할 것에 대한 확약입니다. 이는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이스라엘로 일컫는 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된 새로운 교회공동체를 전망하는 내용입니다(엡2:14-15). 2)에스겔의 예언 속에 계시된 새 언약(겔36:26-38, 37:24-28, 11:19-20) 에스겔서에서는 언약의 개념이 그다지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지 않은 듯이 보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포로귀환을 기술하고 있는 중요한 부분들에서 언약(베리트)이라는 용어가 자주 발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서의 전체 예언은 새 언약적 관점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로서는 아직은 미래적인 이스라엘의 회복사건을 다양한 측면에서 예언의 중심내용으로 삼아 기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에스겔의 예언은 예레미야의 새 언약의 개념을 보다 발전, 확대시켜서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 두 선지자의 목적하는 바는 동일하게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을 통한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최종 성취에 모아집니다. (1)겔36:16이하에서 에스겔은 회복된 이스라엘 민족 앞에 설정된 미래적 이상들이 어떤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a.먼저 약속의 땅 가나안을 상실하게 된 요인들이 시내산 언약을 배경으로 회고됩니다(16-20절).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멸망과 가나안 땅의 상실은 철저히 율법에 대한 불순종과 특별히 우상숭배에 초점을 맞춰 설명됩니다. 여기서 우상숭배란 실제로 가나안 족속을 비롯한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겼을 뿐 아니라,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정당한 지식이 결핍돼 사사로운 종교적 감정만을 부추겨 형식적이고 습관적이며 이기적인 목적 차원에서 자의적으로 섬긴 사실을 포함하기도 합니다(사1:11-14). b.21-23절에 소개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동기는 그 강조점에 있어서 상당히 예레미야적입니다. 즉 이스라엘에 대한 언약의 회복 및 갱신은 이스라엘이 철저히 회개해서가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인 것으로 기술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열방 중에 회복시키기 위해 스스로 이스라엘의 회복을 결심하셨다는 지적입니다. W.J.Dumbrell은 그의 저서 Covenant and Creation(언약과 창조, 크리스챤 서적, 1999년)에서 21-23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행동하시는 근거를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가)이스라엘의 조상들과 맺은 신적 언약을 기필코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신실성의 문제 때문입니다(21절). 신실성은 하나님의 불변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회복을 통해 동시적으로 당신의 실추된 신실하심을 열방 중에서 영화롭게 회복시키기 위함입니다. (나)이스라엘의 회복은 이스라엘 민족의 자랑이라기보다는 단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회복하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22절). (다)이스라엘의 회복을 통해 열국으로 하여금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보게 하고, 이로 인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열방에서도 인정함을 받도록 하시기 위함이란 사실입니다(23절). (2)겔36:24-25에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구체화될 수 있는 '외적' 세부내용들이 열거됩니다. 곧 열국에서 먼저 취해 내십니다. 그리고 고토로 데리고 가십니다. 정결 의식을 통해 더러운 행동과 우상숭배로부터 이들을 깨끗케 합니다. 이로 인해 우선적으로 이스라엘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들이 공식적으로 분리돼야 합니다. 회복의 전제조건으로서 말입니다. (3)26절 이후부터 본격적인 새 언약의 내용으로서 회복의 '내적' 요소들이 제시됩니다. a. 새 영을 부어주십니다. 이로 인해 새 마음, 곧 거듭난 새 성품을 소유하게 됩니다. b. 27절에서는 26절의 새 영을 주신 목적이 설명됩니다. 곧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육신이 연약해서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가능케 하시기 때문입니다(롬8:3-4). 옛 언약 하에서는 이 부분이 결핍돼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옛 언약을 가리켜 '낡아지게 하신 것'(히8:13)과 '개혁할 때까지 육체의 예법으로서의 기능을 수행케 하기 위함'(히9:10)이라고 설명하는 이유가 이런 사실에 기인합니다. 실체를 위한 모형적 역할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에스겔은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새로운 순종의 관계를 설정하신 이가 하나님 자신임을 언급하면서 예레미야의 새 언약의 개념을 확대하고 보다 구체화시켜 설명합니다. 그러나 모든 언약은 신적 기원(起源)상 동일한 목적을 지향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성취 말입니다. c. 35절에서는 회복된 가나안 고토가 마치 에덴동산을 방불케 하는 새로운 환경으로 회복될 것임을 지적합니다. 이런 사실이야말로 이스라엘의 회복이 지향하는 바가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성취를 목적 삼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고 있는 새 언약의 계시적 성격은 계시의 점진성이라는 구속사 진행의 원리에 입각해 아담의 창조언약, 여자의 후손언약, 아브라함 언약 및 시내산 언약과 다윗 언약의 갱신 및 발전적 확대를 총체적으로 함의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8절에서 새 언약의 성취로 나타나는 결과가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는 선언적 말씀 속에서 언약의 내적 통일성과 연속성이 확인됩니다. 이 말씀은 언약의 핵심적 사상이 곧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성취인 사실과 임마누엘의 궁극적 실현인 사실을 의미합니다. d. 따라서 29-38절에 기술된 '환경'의 회복기사 내용에 앞서서 26-28절에 소개된 새 영(성령)의 내주로 말미암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회복과 이로 인한 순종력의 발휘기사를 소개함은 '환경'의 회복에 앞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먼저 변화돼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적으로 시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창조의 면류관으로서 인간의 타락이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부정적 영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당초 에덴의 천상적 환경은 아담과 하와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범죄와 타락으로 하나님 나라로서의 본래적 성격을 상실합니다. 그러나 여자의 후손 언약의 궁극적 성취를 통해 죄의 문제가 해결 될 때 다시 회복될 것을 보장받습니다(창3:15). 지금 에스겔의 새 언약의 일차적 강조점이 새 영의 내주와 후원의 역사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백성(이스라엘)들의 영적 회복에 일차적 초점을 맞추는 이유가 이런 사실에 근거합니다. (4)나아가 '새 영'이 부은바 됨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고 있는 에스겔의 새 언약(겔36:26-28)의 내용은 에스겔서 37장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특별히 겔37:26에서 언급되고 있는 에스겔의 '화평의 언약' 속에서 보다 확장되고 구체화됩니다. 이 화평의 언약 또한 내용적 성격상 아담의 창조언약, 시내산 언약 및 다윗 언약의 갱신과 확대를 지향합니다. 이런 사실은 예레미야의 새 언약(렘31:31-34)의 내용이 그랬듯이 동일하게 신적 언약의 내적 통일성과 연속성을 견지합니다. a. 먼저 이스라엘의 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게 될 새 영(겔36:26)으로서 성령의 역사가 구체적으로 소개됩니다. 에스겔은 이를 소위 '마른 뼈의 소생' 사건을 통해 설명합니다(겔37:1-14). 이는 '마른 뼈'를 통해 이스라엘의 소망 없는 영적 상태를 묵시적이며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것도 철저히 죽어버린 이스라엘의 현재적 영적 상태를 말입니다. 이런 사실은 절대 타자로서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자력으로 소생 불가능한 절망의 상태를 극명히 기술함에 다름 아닙니다. 마치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생기가 불어넣어질 때 단지 사람의 모양으로 빚어진 진흙 덩어리가 생령(生靈)으로 변화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창2:7). 그렇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만 의존돼 있을 뿐입니다. (가)마른 뼈에 비유된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은 두 단계를 거쳐 진행됩니다. 먼저는 사람의 '외적 형태'를 갖춥니다. 골짜기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수많은 뼈 조각들이 상합하고 연락해 서로 맞춰집니다. 그 위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마지막으로 가죽이 덮입니다(겔37:7-8). 완연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생명이 없습니다. 아직은 죽어있는 시체나 다름없습니다. (나)다음으로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즉시 죽은 상태에서 소생합니다. 에스겔은 살아난 사람들을 군대라 칭합니다. 수많은 사람들로 구성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고 해명해 주십니다(10-11절). 남북이 연합된 통일 이스라엘의 회복 말입니다. 이어서 보여주신 두 막대기의 상징적 비유(15-17절)를 통해 이런 사실을 확증해 주십니다. (다)계속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신 곧 성령을 부어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고토(가나안)로 돌아오게 하실 것을 부연해 약속하십니다. 이런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을 구체화시켜 천명하십니다(12-14). b. 다음으로 겔37:15-28까지의 내용을 통해서는 '두 막대기'(15-16절)의 묵시적 비유를 통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정치적으로 통합돼 한 나라를 이룰 것(17절)과, 이들을 가나안 고토로 인도해서 한 왕에 의해 영속적으로 다스림 받게 될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보다 진전된 언약적 계시의 내용입니다. 이 약속을 소위 에스겔의 '화평의 언약', 일명 '영원한 언약'(26절)이라 부릅니다. 그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회복된 이스라엘을 다스릴 한 임금이란 다름 아닌 회복된 다윗을 가리킵니다. 즉 회복된 다윗 왕이 회복된 다윗 왕조인 신정국(神政國)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릅니다. 그리고 영원히 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이는 다윗 언약의 회복과 다윗 왕조의 영속적인 보전(保全)을 가리킵니다. (나)온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영원히 거합니다. 이는 아브라함 언약과 시내산 언약의 성취로 말미암는 궁극적 구원의 안식에 참여하고 있음을 암시적으로 시사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궁극적 안식이란 또 다른 의미에서 회복된 에덴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에스겔과 예레미야의 새 언약의 주된 강조점은 이스라엘의 회복의 근간이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는 죄사함의 역사와 이로 인한 순종력의 발휘 및 다윗 왕조의 영속성에 계시의 초점이 모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죄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이 갖는 구속사적 의미는 다름 아닌 재창조로서 에덴의 회복을 함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창2:1-3, 2:17, 3:6, 3:15). 이런 식으로 가나안과 에덴은 구속사의 경륜 속에서 동질성을 발휘하는 가운데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인 천상의 도성을 동일하게 지향합니다. (다)이스라엘을 번성케 하고 성소를 저들 가운데 둠으로써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된다"는 언약의 본질이 종말론적으로 성취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는 다름 아닌 임마누엘의 궁극적 성취를 의미합니다(계21:3). 그리고 이 사건은 성소의 실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예비적으로 성취됩니다(요2:19-21, 고전3:16, 6:19, 12:13). 따라서 에스겔의 '화평의 언약'은 예레미아의 '새 언약'과 더불어 아브라함 언약과 시내산 언약 및 다윗 언약의 종말론적 완성을 지향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통해 온전한 성취가 보장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화평의 언약과 새 언약은 동일한 목적의 다른 표현으로서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최종 목표로 삼아 진행됩니다. 3)이사야의 예언 속에 계시된 새 언약(40-66장) 이사야는 예레미야(BC628-586)와 에스겔(BC595-572)이 포로시대 선지자로 활약한 것에 비해, 포로기전 선지자로서 유다의 웃시야 왕의 치세 말기에서 히스기야 왕에 이르기까지 약 60년간(BC740-680년경)에 걸쳐 예언 활동을 한 문서 선지자입니다. 남 왕국 유다 역사에서 이 기간은 평화와 전쟁이 교차하는 정치 군사적 격변기로 평가됩니다. 즉 웃시야와 요담 치하에서 남 왕국 유다는 번영의 세월을 누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와 번영은 필연적으로 종교적 외식과 도덕적 부패를 야기시키며 불가피하게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이 이스라엘 전(全)역사의 진행구도입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서에 이어 가나안 실지 정복과정을 기술하고 있는 사사기서에서 구속사 진행상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이런 순환적 계시패턴(구원-타락- 심판-회개)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하스는 수리아와 에브라임 연합군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고(왕하16:5),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략을 방어해야만 했습니다(왕하18:13). 그러나 이 모든 전쟁사건은 선지자에 의해 '신정왕국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에 따른 여호와의 필연적 심판'으로 선포됩니다. 이사야는 이런 남 유다 왕국의 정치적 격동기에 하나님의 예언자적 소명을 받습니다(사6:1-8). 특별히 유다의 죄악상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과 미래적 회복 및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선포하는데 선지적 역량을 집중시킵니다. 여기서 이사야의 예언적 언약 속에 내포된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로서 새 하늘과 새 땅이란 다름 아닌 다윗 왕조의 회복으로 말미암는 메시아 왕국의 궁극적 실현을 가리킵니다(사65:17-19, 66:22). 그러나 이사야의 예언에 의하면 이 종말론적 메시아 왕국의 출현은 먼저 '고난의 종'의 대속적 사역(사53장)을 전제로 성취될 것임을 이중적으로 시사합니다. 이제 유다와 관련된 이사야의 당면한 예언과 새 언약 안에서 회복될 이스라엘의 미래상을 살펴봅니다. (1)이사야는 그의 선지서를 기록함에 있어서 유다의 언약파기와 배역의 죄악상과 관련해 원색적인 독설과 이에 상응하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단도직입적으로 선포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선지적 사역을 시작합니다(사1:24, 28-31). 그러나 본 장(사1장)에서 말하는 심판은 완전한 멸망을 선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화(淨化)적 차원의 언약적 심판의 성격을 띱니다. 그러기에 심판의 예언 중에도 구원과 회복의 소망을 주는 메시지가 수반됩니다(25-27절). a. 먼저 과거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한 회상과 현재 유다의 패역에 대한 책망을 기록합니다(2-9절). 유다는 그 죄악상의 격심함과 이에 따른 심판의 철저함에서 소돔과 고모라에 비견되기도 합니다. 이런 비교는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부하는 이스라엘에게는 그야말로 충격적이며 수치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하나님께서는 이들 중 소수의 남은 자들을 보존해 주신다고 약속하심으로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와는 구별되기도 합니다(9절). b. 앞에서(2-9절) 유다의 총체적 타락과 부패에 대해 개괄적으로 고발하며 책망하던 이사야는 본 절(10-17절)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이들의 죄악상을 지적합니다. 특별히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영역에 대해 언급하기 이전에 먼저 유다의 범죄가 제의(祭儀)적 영역에서부터 비롯됐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이는 당시 유다의 국가적 정체성이 내외적으로 심각히 도전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약에 근거해 여전히 신정왕국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당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제사의식은 시내산 언약에 근거해 주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은혜의 수단입니다. 제의에 드려지는 제물로 인해 이스라엘의 죄악은 한시적으로나마 대속적 사죄를 받게되며 이로 인해 하나님과의 교제는 회복됩니다. 당시 이런 방식의 이스라엘의 제사의식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체로 성취될 구속사역의 예표적 성격을 내포합니다. (나)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령과 진정이 결여된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제사만을 습관적으로만 반복했던 것입니다. 나아가 이런 가식적인 제사행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으로 여기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이에 상응하는 보상심리를 발동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제사의 본질을 망각한 파렴치한 행위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북 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사건(BC722)과 남 왕국 유다에 대한 책망과 심판의 경고는 유다인들에는 경악할 일이었습니다. 이런 영적 관점과 상황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인해 때때로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적잖은 고난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어용(御用)선지자들에 의한 왕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제사를 적극 거절하셨을 뿐 아니라 혐오하신다고까지 말씀하심으로 이들의 형식적인 예배행위를 신랄히 정죄하십니다. c. 이와 같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부패와 타락상을 고발하면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성애적 사랑과 자비에 호소하는 회개를 촉구합니다(18절). 참으로 언약백성의 특권이란 그들의 죄가 아무리 중(重)할지라도 충심(衷心)으로 드려지는 회개를 통해 온전히 용서를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다시는 기억됨이 없도록 영원히 도말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히10:14-18). (2)이제 이사야는 사39장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명시적으로 유다의 멸망을 예언합니다. 그렇습니다. 사역의 초기부터 유다의 범죄와 타락상을 책망하며 줄곧 심판을 경고해 오던 이사야는 마침내 유다의 멸망이 당시 대제국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는 바벨론에 의해 집행될 것임을 선포합니다. a. 당시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자신의 병이 하나님에 의해 기적적으로 치유된 사실(사30:21-22)과 이에 대한 증거로 해시계의 그림자가 뒤로 십 도 물러간 이적기사의 내용(사38:5-8)을 듣고 자신을 방문한 바벨론의 사신에게 궁전의 모든 보물과 군사력을 모두 보여줍니다(사39:1-2). 이는 자기과시이며 곧 교만의 표출입니다. 하나님의 철저한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는 신정왕국의 정체성을 망각하고 자신의 개인적인 왕적 능력과 치세의 공로로 모든 것을 돌리려는 망령된 처사입니다. b.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자초지종을 묻습니다. 왕은 사실대로 얘기합니다(4절). 이사야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향후 바벨론에 의해 유다 궁전의 온갖 기물과 소유가 탈취당할 것을 예언합니다. 왕족의 후손 몇몇이 잡혀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의 자리에 봉직될 것까지를 예언합니다. 유다의 멸망예언은 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한 1차, 2차, 3차에 걸친 침공 끝에 마침내 성취됩니다(BC586). 이사야의 예언은 후에 다니엘서 기자를 통해 명백히 확인됩니다(단1:1-2, 3-7). (3)사39장에서 바벨론에 의한 유다의 침공과 멸망을 예언한 이사야는 사40-66장에 걸쳐서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의 역사를 중심으로 한 '새 언약'의 내용을 예언합니다. 이런 이사야의 새 언약 속에는 비단 이스라엘의 미래적 회복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회복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성취까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편의상 '새 언약과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라는 주제로 계속해서 살펴볼 것입니다. a. 사40:1-2에서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예루살렘에게 위로의 메시지, 희망과 소망의 메시지를 선포할 것을 명하십니다. 이는 다름 아닌 곧 다가 올 유다와 예루살렘의 미래적 회복에 대한 약속을 가리킵니다. 곧 이사야 선지자의 '새 언약' 말입니다. b. 이사야의 '새 언약'의 내용인즉 "예루살렘의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다"는 것입니다(2절). 예례미야의 새 언약의 내용을 빌리자면 유다의 바벨론 포로기간 70년의 때가 거의 찼다는 것입니다(렘25:11, 29:10). 이제 가나안 고토로의 포로귀환과 이로 인한 회복의 때가 다가온다는 얘기입니다(사14:1, 겔37:21). 이는 제 2의 출애굽 사건에 비교되기도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으로부터의 제 2의 출애굽 사건을 애굽으로부터의 제 1의 출애굽 사건의 실체로 암시하면서 포로귀환의 구속사적 의미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구원사역과 동일한 계시적 관점에서 취급합니다(렘23:5-8). 이런 사실은 다윗 왕조로서 역사적 이스라엘의 회복이 갖는 새 언약의 계시적 의미가 결국은 참 다윗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게 되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교회공동체와 불가분리의 계시적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동시적으로 갖게 됨을 지향합니다. 이때 두 공동체간 계시의 연속성이란 신적 언약의 점진적 갱신과 발전적 확대 안에서 언약의 직접적인 수혜자들로 존재한다는 의미이며, 계시의 불연속성이란 구약교회는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들로 구성돼 있는 반면에 신약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갈3:7, 29, 롬9:6-8). (4)단순한 역사적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만이 아닙니다. 사43:19에서는 '새 일'을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과거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과 광야생활과는 비교가 안 되는 보다 실제적이고 실질적인 구속사를 집행하시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십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회복 뿐 아니라, 회복 속에 담긴 보다 본질적인 구속사의 경륜을 실행하기겠다는 강력한 시사입니다. a. 하나님의 신을 부어주십니다(사44:3) b. 허물과 죄를 기억치 않으십니다(사43:25). 이미 죄사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사40:2, 44:22). 구약의 역사 속에서 이런 일은 예표적이고 한시적으로만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의 새 언약 안에서 보다 진전되고 확대된 구속사의 경륜이 집행될 것입니다(사48:6-7). c. 파괴된 예루살렘과 솔로몬 성전(사44:28) 및 시온의 회복을 약속합니다(사46:13). 이는 다름 아닌 다윗 언약의 회복을 시사하는 내용입니다. 그렇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과 성전 및 시온의 회복은 다윗 왕조의 부활을 암시하는 것으로 곧 다윗 언약의 지속적인 성취를 가리킵니다. (5)새 언약의 내용은 보다 명시적으로 확대됩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고레스 왕(메데-파샤)이 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키는 것을 계기로 이루어질 것입니다(사45:1-7). 당시의 열강들의 정치, 군사적 판도 속에서 대제국 바벨론의 멸망을 기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광활한 지역을 지배하는 막강한 세력이었기에 말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당신의 기름부은 종으로 삼아 새 일을 시작하시겠다고 천명하십니다. 여기서 고레스란 이름을 구체적으로 지명해 부르심은 그만큼 새 언약의 집행이 확실하며 사실적임을 강조합니다. 나아가 역사의 주관자가 천지상간에 여호와 하나님이신 사실을 극명하게 현시하시는 대목입니다(5-7절). 이 예언적 약속의 말씀은 에스라1:1-4을 통해 성취됩니다. (6)새 언약의 내용은 보다 진전됩니다. 절정을 향해 달려갑니다. 마침내 이스라엘의 회복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통치적 왕권을 가져올 구원자의 도래를 예언합니다(사52:7). a. 그는 처녀에게서 잉태될 것입니다.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일컫습니다(사7:14). b. 그의 본체와 속성은 하나님과 동일시 여김을 받습니다(사9:6). c. 그는 다윗 왕조를 회복하시며 친히 참 다윗 왕으로 통치하십니다. 그 나라는 공평과 정의로 다스려지는 진정한 메시아 왕국이 될 것입니다(사9:7, 32:1, 55:3). d. 다윗 왕으로 오실 구원자는 이새의 계보를 통해 오십니다. 그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게 될 것입니다(사11:1-2). 이런 사실은 야곱이 임종에 즈음해 열 두 아들들을 불러 놓고 예언적 축복을 하는 과정에서 유다에게 선언한 복의 내용 속에서 이미 확인됩니다(창49:10). 이런 식으로 유다는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메시아의 가문으로 택정을 입습니다. e. 여호와를 아는 지식에 세상에 충만하게 됩니다. 메시아의 왕적 통치하에서 모든 피조물은 죄의 권세에서 풀려납니다. 허무한 데 더 이상 굴복치 않습니다(롬8:19-23). 본래의 창조적 질서를 회복하게 됩니다. 마치 회복된 에덴처럼 말입니다. 결국 평화와 공존의 새 질서와 새 창조의 시대가 도래하는 셈입니다(사11:6-9). 그러나 이런 새 시대는 사실상 구속사의 절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역에 근거해 본격적으로 출현한 교회시대를 거쳐 주의 재림으로 말미암는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도래 때 온전히 실현될 것입니다. 이런 식의 종말론적 메시아 왕국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21:5)고 선언하고 있는 사도 요한의 계시록에서 그 진정한 이상(理想)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구속사적 계시의 점진성이라는 원리 하에서 선지자들의 예언 속에 계시된 새 언약의 성격도 당시 역사적 이스라엘의 회복 뿐 아니라, 보다 미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중심으로 한 초림의 사역 및 종말론적으로 성취될 재림의 사역까지를 포괄적으로 망라해서 전망하고 있음을 간파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의 지상적 생애가 이렇게 오묘하신 하나님의 전(全)구속사의 경륜 속에서 호리만큼의 차착(差錯)도 없이 시종일관하게 섭리적으로 통치와 인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생명의 도리로 붙들고 살아가는 일은 가장 큰 믿음의 능력입니다. (7)그러나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구원자의 도래는 왕적 메시아의 신분(사52:13, 15)으로 확인되기 이전에 '고난의 종'의 신분으로 제시되고 있음이 이사야의 새 언약이 간직한 구속사적 특징입니다(사52:14, 53:1-12). 동일한 메시아에 대한 이중적 예언 말입니다(사52:13, 15절과 14절의 비교). 당시 이스라엘로서는 메시아 도래의 예언이 먼 미래적 사건으로 남아 있었기에 마치 겹쳐진 두 산 봉우리를 멀리서 보면서 하나의 산인 양 착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때문에 당시 열강들의 정치, 군사적 각축장(角逐場)을 방불케 하는 가나안 지역의 지정학적 특성상 이스라엘의 메시아 대망(待望) 사상은 자연히 정치적 메시아의 도래를 기대하는 쪽으로 표출됨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이제 고난의 종으로서 메시아의 인격과 사역을 살펴봅니다. a. 구원자로서 종의 승귀와 함께 고난받는 종의 처절한 모습을 총체적으로 먼저 예고합니다(사52:13-15). b. 사53장에서는 종의 모습을 보다 세밀하게 언급합니다. (가)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어서 흠모할만한 요소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끝내 싫어 버림을 받게 됩니다(1-3절). (나)그 종은 본격적으로 고난을 받습니다. 그는 찔림을 받습니다. 그는 심하게 상처를 받습니다. 그는 징계를 받습니다. 그는 채찍에 맞습니다. 심지어 죽기까지 합니다(8-9절). 그러나 이 모든 고난은 오직 우리를 죄와 허물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대속적 고난입니다. 영원한 평화와 안식을 주기 위해 애매히 당한 고난입니다. 헌신적인 희생의 고난입니다. 그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그 분에게 대속적으로 짐지게 하심으로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신 영광스러운 고난입니다(사53:4-6). 성도의 구원뿐만 아니라 주님 자신의 부활과 하늘 보좌로의 승귀가 보장된 대속적 죽음이었기에 말입니다(히12:2, 롬8:34). (다)결국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종을 위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실 것이며, 만인의 무릎을 그 분의 이름 앞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그 분을 주라 시인하게 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실 것입니다(사53:10-12, 52:13, 15, 빌2:9-11). (8)사61:1-3의 예언을 통해 이사야는 메시아 사역의 구속사적 성격을 이스라엘의 희년 절기(레25:10-11)의 종말론적 성취로 설명합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역의 성격이 사61:1-3을 구체적으로 성취하기 위한 것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하심으로 구약예언의 성취자로 오신 고난의 종된 메시아이심을 공개적으로 그러나 암시적으로 증거하십니다(눅4:16-19). 3. 새 언약에 내포된 계시의 이중성 분열 이스라엘 왕국의 포로기 전후 선지자들이 예언한 약속들 중, 특별히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에 맞춰 선포한 예언들을 총체적으로 일컬어 '새 언약'이라 부릅니다. 새 언약의 핵심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사상들은 구속사적 언약의 특성상 이전에 주어졌던 언약들과 불가피하게 연관돼 내적으로 통일성과 연속성을 띠고 나타납니다. 물론 언약내용에 대한 계시적 성격은 계시의 점진성의 원칙에 입각해 보다 갱신되고 발전했으며 비약적으로 확대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선지자들에 의해 선포된 '새 언약'의 일차적 강조점은 한결 같이 역사적 이스라엘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다름 아닌 다윗 왕조의 재건과 복원(復元)을 의미하는 것으로 곧 신정왕국의 재현을 지향함에 다름 아닙니다. 사실상 과거 다윗과 솔로몬에 의해 찬연히 꽃피웠던 신정적 통일 이스라엘 왕국은 비록 외적 존재양식으로 봐서는 틀림없는 하나님 나라로서의 정체성을 뚜렷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내산 언약(모세 율법)에 근거한 온전한 순종이 담보되지 못함으로 실제적 하나님 나라로 현시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한계를 드러냈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로 인해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이스라엘은 시내산 언약에 종속된 불순종의 대가로 이방의 침략을 받아 멸망의 치욕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역사적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전(全)구속사 경륜에 있어서 단지 보다 온전한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현시를 위한 예표적 계시도구와 방편으로 선용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런 사실에 근거합니다. 이제 본 장에서는 위에서 살펴봤던 새 언약의 내용들을 종합적으로 집약해 보면서 새 언약에 담긴 계시의 이중적 구조에 대해 접근해 보고자 합니다. 그렇습니다. 새 언약은 자체 속에 일면 역사적 이스라엘로서 과거 신정왕국으로 존재했던 다윗 왕조의 회복을 지향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메시아의 도래로 말미암는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명백히 시사하기도 합니다. 1)새 언약의 종합적 고찰(考察) (1)회복된 이스라엘은 다른 무엇에 앞서 율법에 자율적으로 순종하는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옛 언약 하에서는 불순종의 죄가 저들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았기 때문입니다. 새 언약 하에서는 율법을 저들의 심비에 새겨 주십니다(렘31:33). 이는 성령의 인침과 내주하심의 역사로 가능해집니다(겔36:26). 그래서 육체가 연약해서 할 수 없었던 것을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하게 하심으로 온전한 순종을 보장해 주십니다(겔36:27). 이는 다름 아닌 시내산 언약의 궁극적 성취와 실현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실로 인해 새 언약의 으뜸가는 계시적 특징은 뭐니뭐니 해도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로 인해 죄사함을 받게되며(렘31:34) 이로 인해 죄의 권세를 넉넉히 제어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의 내주와 후원으로 말미암는 순종의 보장이 이래서 가능합니다. (2)하나님께서는 회복된 이들 하나님의 친 백성들을 특별히 '남은 자'라고 호칭하십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닷가의 모래알 같이 많을지라도 오직 '남은 자'만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사10:20-22). 그래서 새 언약에 의한 이스라엘의 회복은 곧 남은 자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남은 자를 보존하시는 가운데 이들을 선택적으로 부르셔서 당신의 구속사를 운반케 하십니다(롬11:4-5). 이들은 오직 하나님의 음성만을 들으며 그 분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그 분의 양무리들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그 분을 왕으로 모시고 그 분의 왕적 통치에 기꺼이 순응하는 백성 된 당위의 실질 속에서 비로소 그 정체성이 확인됩니다. 입술의 고백이나 지적동의 및 습관적인 기독교 종교활동에 의존하는 것이 결코 천국백성 됨을 보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종교일 뿐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인도가 아니라 사단의 미혹일 뿐입니다. 자기 소견에 좋을 대로의 자의적 숭배신앙 말입니다. (3)하나님께서는 이들 남은 자들을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시킵니다. 제 2의 출애굽을 시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정하신 방식을 좇아서 이 크신 일을 섭리적으로 이루십니다. 바로 약속의 땅 가나안 고토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렘30:3, 겔37:14, 21, 25). 이를 다른 표현으로 예루살렘의 회복, 시온의 회복, 그리고 솔로몬 성전의 회복이라고도 부릅니다(겔37:26-28, 사44:28, 52:1-2). 이런 표현은 한결 같이 신정왕국의 정체성과 왕적 통치권을 물리적으로 상징하는 계시의 도구들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그곳 가나안 땅에 거주하게 하십니다. 궁극적 안식이 보장됩니다. 이런 사실로 인해 새 언약의 계시적 성격은 아브라함 언약과 시내산 언약 및 다윗 언약의 갱신 및 확장의 의미를 갖습니다. 언약의 내적 통일성과 연속성의 원리에 입각해서 말입니다. (4)하나님께서는 회복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 다윗 왕조를 회복시킵니다. 다윗 가문에서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키십니다(렘23:5). 그로 하여금 다윗의 위에 앉아서 회복된 이스라엘을 공평과 정의로 영원토록 다스리게 하실 것입니다(사9:7). 그래서 다윗 언약이 지속적으로 효력을 발생할 수 있도록 섭리적으로 간섭하십니다. 다시는 다윗의 왕위가 단절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의 왕조가 붕괴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시는 이름으로 이를 보증하십니다. (5)그러나 새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종 된 메시아는 회복된 다윗 왕조의 왕으로 즉위하기 전, 고난의 종으로서의 대속적 사역을 먼저 담당합니다(사52:13-15). 그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저들의 죄의 질고를 대신 담당합니다(사53:4-6). 그러므로 그의 찔림과 상함과 징계와 채찍에 맞음은 오직 하나님의 남은 자들을 구원하기 위한 대속적 고난의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 분에게 담당시키십니다. 그러나 고난의 종으로서 그의 대속적 사역의 성취는 왕적 메시아로서의 영광스러운 복귀(復歸)를 보증하는 표지(標識)로 작용합니다(사53:12, 마28:18, 행7:55-56, 롬8:34, 히12:2). 동일한 메시아 안에 감춰진 이중적 계시의 정체성, 곧 종과 왕으로서의 양 극단적 신분 말입니다. 이는 신약의 복음의 빛 안에서 밝혀진 구원과 심판이라는 메시아의 이중적 사역의 성격과 밀접히 연관돼 있는 구속사적 계시의 비밀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구약계시는 신약 안에서 그 계시적 진의와 실체가 밝혀지고, 신약계시는 반대로 구약 안에서 그 실제적 전모가 예표적으로 감춰져 있습니다. 따라서 '선(先)언약-후(後)성취'(언약사)의 구속사적 계시 진행의 구조 속에서 계시의 점진성의 원리에 입각해 신구약 성경에 대한 총체적인 계시관에 깊이 접촉돼 있지 않으면 성경계시에 대한 하나님의 본의를 바르게 해명하기란 그리 수월한 작업이 아닙니다. 성경 전체에 대한 계시의 내적 통일성과 연속성을 밝히는 작업을 통해서만 성경의 총체적 계시의 핵심인 하나님의 구속사에 깊이 접촉될 수 있습니다. 이 영광스런 영적 경지는 하나님의 구속사가 신적 언약을 도구로 선용해 진행되고 있음을 간파함으로 가능합니다. 그렇습니다. 언약사의 연구는 구속사를 해명하는 결정적인 열쇠입니다. 구속사를 일명 언약적 구속사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에 있습니다. (6)우리는 이상의 새 언약의 종합적 고찰을 살펴보면서 동일하게 그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형성하는 세 가지 본질적 요소를 발견합니다. 이런 사실은 언약의 통일성과 연속성의 원리에서 볼 때 이미 아담의 창조언약, 노아의 보존언약, 그리고 아브라함 언약 속에서도 살펴본 바 있습니다. 특별히 앞의 이 모든 언약들을 총체적으로 갱신해서 발전시키고 확장시킨 언약의 결정판 격인 새 언약 안에서는 이런 요소들이 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확인됩니다. 구속사 진행과 관련해 계시의 점진성의 원리에 입각해서 볼 때, 그만큼 계시의 실체에 근접해 있기 때문입니다. a. 백성으로서 남은 자 사상입니다(사10:20-22, 렘23:3). b. 땅으로서 가나안 고토와 에덴의 영적 회복입니다(겔36:24, 37:21, 25, 사65:18-24, 11:6-9, 25). c. 통치권자로서 참 다윗 왕이신 메시아의 출현입니다(사9:6-7, 52:13-15, 53장, 렘23:5-6, 33:13-15, 겔37:24-28). d. 그리고 이 모든 요소들을 하나로 묶는 '새 하늘과 새 땅' 사상입니다(사65:17, 66:22). 이 사상 속에는 위의 삼 요소(백성-땅-왕)가 동시적으로 존재합니다. 이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 분의 백성"(렘31:33, 겔36:28, 마1:22-23, 계21:3, 7)이 되는 언약적 구속사의 최종 목표가 성취의 절정을 이루는 역사적 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임마누엘 신학의 최종 완성을 의미합니다. 2)새 언약의 이중적 계시구조 - 회복된 새 이스라엘과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 - (1)이상 새 언약의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새 언약이 함의하고 있는 총체적 성격이 신(新)다윗 왕조의 회복과 복원인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 다윗 왕조로서 새 이스라엘이 과거 신정적 왕국으로서 역사적 이스라엘을 계승하고 재현한다는 의미에서는 언약적 연속성을 갖지만, 철저한 사죄와 온전한 순종력의 발휘 및 멸망을 극복한 영존하는 메시아 왕국을 지향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언약적 불연속성을 띠고 있습니다. (2)이런 사실은 고레스 왕의 칙령에 의해 개시된 바벨론 포로귀환 조치가 1차(BC537), 2차(458), 3차(444)에 걸쳐 시행됐으며, 성전의 재건과 시내산 언약의 갱신으로 인한 상당한 수준의 종교개혁(스9-10장)이 뒤따랐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회복된 이스라엘의 정치, 종교, 사회적 상태는 새 언약에서 전망했던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열악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는 데서 확인됩니다. 우리는 이런 구체적 확증을 학개, 스가랴, 말라기서를 통해 진단할 수 있습니다. 1차 포로귀환 후 거의 100여 년에 이르는 시점에서 회복된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상은 다윗 왕조를 몰락시켰던 시절과 비교해 결코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이는 새 언약에서 지향하고 있는 신(新) 다윗 왕조의 회복이 가깝게는 포로귀환으로 말미암는 역사적 이스라엘의 회복에서 일차적 성취를 보았으나(에스라-느혜미야서), 보다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먼 미래를 지향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따라서 새 언약의 핵심 사상이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회복된 신(新) 다윗 왕조가 단순히 역사적 이스라엘을 반영하고 재현한다는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훨씬 더 미래지향적이며 본질적인 의미를 내포합니다. 다시 말해 구속사적 계시의 '실체'로서 왕적 메시아의 도래로 말미암는 이상적인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며 전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3)이제 이런 미래 지향적 전망은 새 언약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 사상에서 극명히 확인됩니다. a. 이사야는 메시아의 통치가 실현될 그날에 공의와 정직이 통치의 수단이 될 뿐 아니라, 죄로 인해 상호 적대하던 세력들이 더불어 함께 공존하는 평화와 안식의 새 시대가 도래할 것을 강조합니다. 이사야는 이런 이상적인 메시아 왕국의 시대를 회복된 '에덴의 표상'을 통해 극명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사11:6-9). 이런 관점에서 사실상 선지자의 환상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도래한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지나 재림으로 이루어질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까지를 전망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b. 다음 단계로 이사야 선지자는 회복된 에덴의 표상을 통해 기대했던 메시아 왕국을 '새 하늘과 새 땅'(사65:17, 66:22)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더욱 구체화시켜 설명합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을 기록하면서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동일하게 '새 하늘과 새 땅'(계21:1)으로 묘사함으로 이사야 선지자의 표현을 그대로 차용합니다. 그리고 이사야에 예언(사65:20-25)에 근거해 그곳의 삶의 특징을 현세(現世)와 차별화시켜 설명합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21:4-5). 그렇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서 회복된 다윗 왕국의 본질은 더 이상 지상적이 아닙니다. 천상 지향적입니다. 만물이 새롭게 갱신된 새로운 가치와 질서의 새 시대입니다. 새 언약의 계시적 본질을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에 더 큰 비중을 두고 해석하는 이유가 이런 사실에 근거합니다. c.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는 새 하늘과 새 땅의 표현을 일단 예루살렘의 회복과 연결시킴으로 여전히 과거 다윗 왕조의 복원을 시사합니다(사65:18-19). 그러나 이내 회복된 예루살렘에서의 삶의 성격이 초자연적이고 초현실적으로 전개될 것임을 기술함으로 예루살렘이 의미하는 바가 천상의 도성, 곧 하늘의 예루살렘인 사실을 암시합니다(히11:10, 16, 12:22). 위에서 살펴봤듯이 포로귀환으로 말미암는 역사적 이스라엘의 회복은 새 언약의 핵심사상인 종말론적 메시아 왕국의 영적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이로 인해 이사야 선지자의 새 언약이 지향하고 있는 중심사상은 근본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묘사되고 있는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를 시사하고 있음을 확증하게 됩니다. 새 언약의 계시적 성격이 한결 같이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렘31:33, 겔36:28, 37:23, 레26:12, 출19:5-6, 창17:8, 1:28, 계21:5, 7)는 언약적 선언 속에서 이런 사실이 재확인됩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씀은 언약의 핵심사상인 바, 임마누엘 신학의 최종적 구현으로서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으로 예비적 성취를 보았고 이제 그 분의 재림으로 절정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상의 진술을 통해 새 언약은 처음부터 계시적 성격상 이중성을 띠고 있음을 재확인하게 됩니다. Ⅲ. 결론 선지자들의 새 언약 속에 약속된 신(新)다윗 왕조의 회복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섭리적 간섭하심으로 때가 차매 마침내 성취됩니다. 그러나 포로귀환과 성전재건 및 시내산 언약의 갱신을 통한 일단의 강력한 종교개혁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전히 다윗 왕조의 몰락 시 나타났던 제반 타락상이 재현됩니다. 이런 사실은 결국 불순종을 야기시키는 죄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음을 적극적으로 시사합니다. 그런데 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과 관련해서 선지자들은 그들의 '새 언약'을 통해 새 신(神)과 새 영(靈)을 부어주셔서 굳은 마음을 제하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율례를 온전히 지키게 해 주실 것을 보증합니다. 새 영을 통해 율법을 심비에 심어 주겠다는 얘깁니다. 이 말은 육체가 연약해서 할 수 없는 것을 성령의 내주하심과 후원하심의 역사로 넉넉히 순종할 수 있게 된다는 지적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실상 새 언약의 강조점은 새 영으로 말미암는 죄 사함과 죄의 도말에 집중됩니다. 그래야 임마누엘의 관계가 온전히 실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새 언약의 성취의 일환으로 가능했던 역사적 이스라엘의 회복사건 속에서는 저들의 죄사함의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저들이 또 다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죄의 문제를 극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옛 언약 하에서 저질렀던 범죄행위를 새 언약 하에서도 동일하게 답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새 언약은 약속하기를 새 신을 마음에 내주시켜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례를 자원해서 순종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새 언약의 '약속과 성취' 사이에 상호 모순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모순을 정당하게 해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언약의 이중성입니다. 이는 새 언약이 지향하는 목표가 처음부터 양면성을 띠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새 언약의 계시적 성격은 처음부터 불가피하게 한편으로는 역사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다른 한편으로는 보다 본질적인 차원에서 종말론적인 메시아 왕국을 지향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역사적 이스라엘의 회복이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성취로 끝나버린 이상, 이제 남은 것은 새 언약 사상의 근본인 종말론적 메시아 왕국, 곧 참 다윗 왕으로 말미암는 진정한 의미의 다윗 왕조의 회복뿐입니다. 우리는 이 왕국의 참 모습을 참 다윗 왕이시며 참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분의 대속적 사역 안에서 우리의 죄책은 사면되고 성령의 내주와 인도하심으로 죄를 이기는 권세를 부여받게 됩니다. 진정한 구원의 안식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합되는 것으로 소유될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1:16)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 나라의 주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당위성이 이에 있습니다. 그것은 언약의 최종 완성이며 구원의 절정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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