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교회와 로마 교회의 사순절 김헌수 목사 (대전 성은교회) 본 글은 성약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성약출판소식 제 64호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고대 교회의 사순절 고대 교회의 사순절은 부활절 기간에 행하였던 세례식과 함께 발전하였다. 세례를 받을 사람은 상당한 기간 동안 기독교 신앙의 기본 내용을 배웠고, 대체로 부활절 전날 저녁에 세례를 받았다. 그 당시에는 예배당에서도 세례를 받은 사람이 앉는 자리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앉는 자리가 구별되었고, 세례반 혹은 침례단이 교회의 출입구 부근에 있었다. 구도자(求道者)는 예배당 한쪽의 격리된 자리에서 예배에 참여하였고, 3년 정도의 교육을 받은 후에 세례 혹은 침례를 받고서 교회에 가입하였다. 그렇게 충실하게 준비한 그들은 세례를 받기 전에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준비하였다. 세례 받을 사람뿐 아니라 그들을 맞이할 교우들이 함께 금식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교회에서는 세례를 받기 전에 40시간 동안 금식하도록 하였고, - 여기에서 사순절(quadragesima, ‘40번째’라는 뜻으로 ‘40시간’ 혹은 ‘40일’을 가리킴)이라는 말이 나왔다 - 다른 교회에서는 두 주간 동안 부분적인 금식과 기도로 준비하도록 하였다. 기간이나 방식이 달랐다는 것은 그에 대한 사도적인 전통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구체적인 데에서는 달랐지만, 부활절 때에 시행될 성례를 준비하면서 세례자 교육을 하고 금식과 기도로 준비하던 것은 그 당시의 공통된 관행이었다. 사순절이 고대 교회에서 정착된 것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이다. 4세기의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부활절 전의 일곱 주간 동안 매일 3시간씩 세례를 위한 교육을 시켰는데, 313년 기독교가 공인된 다음에는 제국의 다른 지역으로도 전파되었다. 325년에 열린 니케아 종교 회의에서는 사순절을 40일로 정하고 부활절에 있을 성례를 준비하도록 결정하였다. 그러나 모든 교회가 40일을 지킨 것은 아니고, 40일을 정하는 방식도 달랐다. 어느 교회에서는 수난일 6주일 전부터 계산하기도 하였고,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8주일 전부터 금식을 하되, 토요일과 주일은 제외하고 일주일에 5일씩 금식이나 절식(節食)을 하였다. 다른 교회에서는 대략 7주일 전부터 금식의 날로 정하고 그 사이에 있는 여섯 주일을 제외하여 40일을 맞추기도 하였다. 로마 교회의 사순절 사순절이 좀 더 형식을 갖추고 모든 지역에서 지켜지기 시작한 것은 서로마 제국이 476년에 멸망하고 로마 교회가 교권(敎權)과 속권(俗權)을 장악한 때부터이다. 로마 교회의 정치적인 기초를 놓았던 레오 대교황(540-604, 590-604년 재위)은 로마의 전통을 따라서 주일을 제외한 6주일을 금식의 날로 정하여 36일을 지켰고, 7세기에 다른 교황이 ‘재의 수요일’부터 토요일의 4일을 더하여서 40일로 확정하였다. 동방 교회에서는 일곱째 주일 월요일부터 부활절 9일 전 금요일까지를 사순절로 지켰다. 동방 교회가 서방 교회보다 2일 먼저 시작하고 8일 먼저 끝났다. 동방 교회는 주일을 제외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40일의 금욕 기간을 지켰다. 중세에서는 사순절이 게르만 족의 축제와 결합하면서 더 정교하여졌다. 해가 길어지는 시기에 그들은 3일 동안 사육제(謝肉祭, 카니발)의 축제를 하고서 40일 동안 금욕하였다. 금욕의 방법도 지역마다 달랐다. 육류와 달걀은 금하고 빵만 먹는 곳도 있었고, 생선은 허용하는 지역도 있었다. 우유뿐 아니라 우유를 넣어서 만든 음식까지 금하는 경우도 있었다. 엄격한 금식을 행하는 곳도 있었지만 낮에 한 끼만 먹고 절식하면서 기도하는 곳도 있었다.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것이 춘궁기(春窮期)를 이기는 방식이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사육제에서 큰 잔치를 하고 봄 농사를 준비하는데 처음 수확을 할 때까지는 먹을 것이 부족하니까 절식을 하였고, 여기에 종교적인 의미를 붙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확실히 중세의 사순절은 고대 교회의 사순절에 비하여서 달라졌다. 고대 교회에서는 세례와 입교자 교육을 중심으로 사순절을 지켰지만, 중세에서는 성례가 약해지면서 사회적 성격을 지닌 정교한 예식으로 발전하였다. 중세에서는 사순절이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에 사람들은 이마에 재로 십자가를 그리면서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성당 앞에 나무 십자가를 세우고 자기의 죄를 써서 거기에 못 박기도 하였다. 수난의 금요일에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행진하고 거기에 달려서 고통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 기간 동안에 수난극을 상연하였는데, 특히 예수님의 수난을 주제로 하는 연극을 상연하였다. 사순절에 주님의 고난을 준비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주님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의 행위와 감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주님의 수난을 기념하려고 금식한다고 하였지만, 사실은 자기들이 행하는 금식 자체가 강조되고, 수난극 자체가 강조되었다. 이것은 사람의 선행을 강조하려는 로마 교회의 신학과 직결된다. 종교개혁과 사순절 비판 사람의 전통이 아니라 오직 말씀만을 높였던 개혁자들은 사순절의 그릇된 점도 바르게 간파하였다.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했지만 사실은 사람의 선행이 강조되었음을 칼빈 선생은 바르게 지적하였다. 그때에 [고대 교회에서, 필자 주] 벌써 사순절을 ‘미신적으로 지키는 풍습’이 있었다. 이것은 사람들이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특별히 봉사를 한다고 생각하였고 그리스도를 거룩하게 모방하는 것이라고 해서 목사들이 권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금식하신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복음 선포를 시작하심으로써 복음은 사람의 교훈이 아니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임을 증명하시려는 것이었음이 분명하다(마 4:2). (ꡔ기독교 강요ꡕ, 4권 12장 20절) 칼빈 선생은 사순절 기간에 행하여지는 것이 ‘미신적으로 지키는 풍습’이라고 하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교훈을 믿지 않고 사람의 행위를 의지하기 때문에 미신적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칼빈 선생은 많은 경우에 고대 교부들을 인용하면서 로마 교회의 그릇된 것을 지적하였지만 사순절 문제에서는 고대 교회의 약점도 지적하였다. 사순절의 관행이 복음을 가리기 때문에 그렇게 분명한 어조로 말씀하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40일 금식을 모방하려는 것도 사람의 행위를 의지하는 일이기 때문에 칼빈 선생은 그렇게 비판한 것이다. 중세에서는 사순절 동안에 수난극을 상연하였는데, 그리스도의 수난을 연극으로 재현한다는 것은 로마 교회의 미사와 통하는 생각이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눈앞에서 재현하려고 하는 점에서는 기본 사상이 동일하다. 로마 교회에서는 성찬의 떡과 잔이 사제가 축성(祝聖)하는 순간에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칼빈 선생은 로마 가톨릭의 화체설(化體說)을 비판하면서 이렇게 지적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떡 속에 가둔다. 우리는 그와 반대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끌어내리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이 신비는 천상적인 것이며, 그리스도와 우리가 연합되기 위해서 그를 지상에 끌어내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ꡔ기독교 강요ꡕ, 4권 17장 31절) 사순절 이야기를 하면서 성찬까지 거론하였다. 이것은 로마 가톨릭에서 이야기하는 사순절은 그리스도를 떡 속에 가두고 기념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고 성경적인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칼빈의 표현을 빌리면, 로마 교회의 사순절은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끌어내리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개혁은 말씀을 바르고 깊고 풍부하게 전파하는 것이었고 동시에 성례를 개혁하는 것이었다. 성찬에 대하여서도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성신으로 임재하신다는 것을 바르게 선포하였다. 오늘날의 사순절 오늘날에는 심지어 개신교에서도 로마 교회를 본받아 고난 주간과 더불어 사순절을 지키는 일들이 있다. 기독교 서점가에서 봄철 베스트셀러는 ‘사순절에 대한 묵상’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이야기하되 사람의 감성에 호소하는 말랑말랑한 책들이 기독교 서점에서 가장 잘 팔리고 있다. 2004년 수난 주간에 상영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중세의 수난극 전통을 할리우드 식으로 각색한 영화이다. 감독인 멜 깁슨(Mel Gibson)은 보수적인 로마 교회 신자이고 마리아의 시각에서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신 마지막 12시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그 시즌에 200만이 넘는 사람이 그 영화를 보았다고 하고, 멜 깁슨은 그 영화로 큰 돈을 벌었다고 한다. 어느 개신교 교회에서는 단체로 그 영화를 관람하는 것으로 수난 주간 집회를 대신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개혁과 개혁 아닌 것의 구별이 실질적으로 없어진 단적인 예라 하겠다.1) 물론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것처럼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주님께서는 성찬을 행하여서 주님의 수난을 기념하라고 하셨으므로 우리는 성찬에서 주님의 수난을 기념해야 하고, 또한 주님께서 돌아가신 그 주간과 금요일을 경건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 그러나 그것에서 더 지나서 수난의 40일을 지키려는 것은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 주님께서는 하늘의 교훈으로 우리를 하늘로 인도하시려고 하는데, 그것을 땅에 붙잡아 두려고 하는 것은 복음의 근본을 허무는 중대한 잘못인 것이다. |
다음검색 저작자 표시 컨텐츠변경 비영리 |
'◑ 자료 18,185편 ◑ > 자료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덜란드 개혁교회와 역사(1) 분리 또는 복귀의 선언(1934년) (0) | 2021.10.20 |
---|---|
기독교적 역사관 (0) | 2021.10.20 |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 (0) | 2021.10.20 |
칼빈에 있어서 오직 성경 (0) | 2021.10.20 |
성경에 대해서(김영규 목사) (0) | 2021.10.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