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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탈진 (<목회와 신학> 부록 <그말씀> / 김서택 목사

by 【고동엽】 2021. 10. 19.

설교와 설교자 - 김서택 목사의 설교론/ 설교자와 목회자(마지막회)

▶ 김서택 | 대구동부교회 목사

목회자의 탈진과 목회비전

 

우선 탈진(Burnout)이라는 말은 남을 도와 주는 일을 하던 사람이 좋지 않은 일을 당함으로
해서 마음이 다 상하여 더 이상 그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목회자도 인간이기 때
문에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일로 인하여 너무나도 마음이 상한 나머지 더 이상 목회를 감
당할 수 없을 정도의 탈진에 이를 때가 있다. 이때 그 목회자에게는 위기 상황이 발생한 것
이며 그 위기를 지혜롭게 잘 극복하지 못하면 목회자의 건강이나 경력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될 것이다.

하루는 어떤 목회자에게 늦은 시간에 한 교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분은 다짜고짜로 자
기 교회 목사에게 평소에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교회에 대한 불만을 다 쏟아놓은 후에 이제
다른 교회로 가겠다고 통보성(?)의 말을 한다. 그리고 그 후에는 아무리 찾아가서 권면하고
같이 신앙 생활을 하자고 해도 막무가내인 것이다.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으면 목회자의 입
에서 ‘못해먹겠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목회자는 너무나도 거룩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부
러워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사실 목회자는 언제나 깔끔한 옷차림으로 설교
를 하며 교인들이 목사의 집을 방문해도 우선 책장에 빼곡하게 책이 꽂혀 있고 깔끔한 응접
실에 단정하게 앉아서 상냥하고 친절하게 사람들을 맞이한다. 물론 일부 성공한 목회자들은
아주 큰 교회에서 좋은 대접을 받으면서 품위 있는 목회 생활을 하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목
회자들은 교회 안에서 많은 일과 사람들과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마음의 상처도 받고 낙심하
기도 하는 것이다.

처음에 개척 교회를 해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교회로 오는 것을 접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인생에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거기에다가 교회를 방해하는
도저히 말로 상대할 수 없는 자들이 있다. 특히 그런 교인들의 가족들 중에 목회자들을 힘
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의처증 부인을 둔 남편은 예배 시간 도중에 교회에 들어와서 자
기 부인 머리채를 잡고 끌고 나가는가 하면, 어떤 아버지는 자기 허락도 없이 딸이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기 딸의 따귀를 때리고 끌고 나가는 사람도 있다.
여자 집사들 중에서는 부부 싸움을 해서 눈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 목사를 찾아와서 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편의 외도 때문에 이혼을 해야겠다는 부인도 있다.

또 어떤 남자 집사는 술을 끊지 못해 포장마차에서 몰래 술을 마시다가 다른 일행과 패싸움
이 붙어서 유치장에 붙들려 간 바람에 경찰서로 심방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또
어떤 처녀는 교회 다니는 청년에게 실연을 당했다고 음독 자살을 기도하는 바람에 병원 응
급실로 달려가야 하기도 하고, 어떤 불량배는 자기 애인이 교회에 와서 다른 남자를 좋아하
게 되었다고 교회에 불을 지르겠다고 오는 경우도 있다. 거기에다가 교인들 중에는 자기 불
만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몇 시간씩 전화통을 붙들고 늘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직회
때가 되면 말도 되지도 않는 이유로 트집을 잡아서 고함을 질러대는 집사도 있다. 거기에다
가 자기 남편에게 채움을 받지 못하는 불만을 목사로부터 채움을 받으려고 은근히 목사를
유혹하는 여성도들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로 목사에 대한 불만을 교회 홈페이
지에 익명으로 올려서 온갖 소리를 다 하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는 말도 되지 않는 이유
로 목사를 검찰에 고발하는 바람에 계속 검찰에 불려 다녀야 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당회 때 목사와 힘 겨루기를 하는 장로가 있어서 그 장로가 사사건건 일일이 목사를
걸고 넘어진다면 그 목사의 목회는 너무너무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거기다가 교회 안에 이
목사에 대한 반대파가 있어서 목사를 교회에서 몰아내려고 반대 세력을 규합해 나가거나 예
배나 회의 때 노골적으로 목사를 훼방할 때 목사는 더 이상 교회를 이끌어갈 의욕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사실 목사는 설교 하나 만드는 것만 해도 너무나도 벅찬 일이고, 어려움을 당
한 성도들을 심방하는 것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닌데, 생각지도 못한 많은 어려움들이 목사로
하여금 자신감을 잃게 하고 의욕을 빼앗아 가는 것이다.

 

 

1. 탈진의 개인적인 이유

 

(1) 목회에 대한 불분명한 부르심
목회자가 목회에 대한 부르심이 분명치 않을 때 목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위기들을 극
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선 어떤 경우에 사람들은 자신에게 목회의 부르심이 있다고 생각
하는가? 다음 몇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첫째는 예수 믿고 난 후 구원 받은 감격 때문에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려
고 하는 경우이다. 사실 구원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런 마음이 생기는 것이 정상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여 주셨는데 내가 주님을 위하여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서 구원의 감격 때문에 자신의 삶을 모두 하나님께 바치기 위하여 목
회에 헌신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개인적인 어떤 특별한 성령의 체험을 목회에 대한 부르
심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즉 기도하는 가운데 뜨거운 불을 체험했다든지 아니면 기적
적으로 병이 낫는 체험이나 다른 어떤 성령의 신비로운 체험을 했을 때 그것을 하나님께서
자신을 목회의 길로 부르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령의 뜨
거운 체험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된 영광의 체험이지 그것 자체
가 목회자가 되라는 뜻은 아니다. 세 번째는 다른 사람의 권유에 의하여 목회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워낙 사람이 성실하고 열심이 있으니까 목사님이나 다른 교인들
이 목회자가 되라고 권하거나 아니면 부모님의 서원이나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권할 때 그런 결심을 하게 될 때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목회에 대한 부르심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목
사는 하나님의 말씀의 종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전하지 않고서는 죽을 것 같은 불타는 마음
이 있어야 한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인 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엄청난 영혼
의 부담감, 특히 설교를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열정이 있어야 한다. 단지 목회자가 고상
해 보이는 것 같고 자기 시간도 많이 가지는 것 같아서 쉽게 생각하고 지원을 했다가 두고
두고 갈등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여러 가지 경우를 통하여 목회에 대한 부르심을
받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속이 타서 죽을 것 같은 부
담감이 있어야 한다.

 

(2) 설교에 대한 부담
많은 사람들이 목회자를 지원할 때에 다른 영혼을 구하려고 하는 열정 때문에 지원하는 경
우가 많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멸망을 행하여 가는 자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이 있어야 하고 목회자들에게는 그들을 구원하려고 하는 열정이 더 뜨거워야 한다. 그러나
목회에는 전도나 기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말씀으로 잘 가르쳐서 설득을 시켜
야 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목회를 지망한 어떤 분들 중에서는 지적인 능력이 부족
하거나 가르치는 부분에는 전혀 재능이 없는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은 말씀으로 다른 사람
을 설득해서 바른 길로 가게 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특히 설교를 자기 자신의 힘
으로 만들어낼 수 없을 때, 매 설교 시간이 돌아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큰 고역이 될 것
이다. 특히 자기 스스로 설교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설교를 베껴서 설교를 할
경우 누군가가 그 사실을 알 것 같은 불안이 생기기도 할 것이며 또 교회 안에서 설교 표절
의 시비라도 생긴다면 큰 곤역을 치르게 되는 것이다.
목회자의 길을 가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상당한 수준의 지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지적인 수준이 떨어지는 분들은 남을 가르치는 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적인 능력이 부족한 목회자들은 남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
하기 때문에 대화가 잘 되지 않고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밀어붙이려고 한다. 그래
서 목회자와 교인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3) 목회자의 교리적인 혼동
최근 목회 현장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인가 하면 교단이나 교리의 특성이 없이 목회의
실용주의를 따라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무조건 교회가 부흥되기만 하면 성공한 목회자로
인정을 받기 때문에 목회자들은 분명한 신학적인 근거 없이 여러 가지 성공 사례들을 따라
갈 가능성이 많다. 물론 여러 목회 프로그램들 중에서는 비성경적이고 목회자의 양심에 잘
받아지지 않지만 대세에 밀려 어쩔 수 없어서 따라가는 것들도 있다. 그래서 잘 모르고 어
떤 유행하는 프로그램을 교회 안에 도입을 했는데 그것 때문에 교회가 큰 시험에 들게 되었
을 때 결국 그 책임은 목회자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또한 아주 유명한 부흥회 강사라고 해
서 초청해서 집회를 했는데 그 사람이 비성경적인 가르침만 쏟아 놓았을 때 혹은 이미 그
강사가 그런 줄 알면서도 교회의 현실적인 필요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그런 집회를 열었을
때 목회자의 마음에 회의가 오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교회의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실 리가 없는 것이다.

 

(4) 목회자의 숨은 죄
목회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남 모르게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 그것을 고백하고 회개하기가 비교적 쉬운데 목회자는 자신의 죄를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잘못해서 그 소문이 여러 곳에 퍼지기라도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될
뿐만 아니라 교회를 사임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죄를 지어도 회개
하지 못하고 자꾸 감추어두려고 한다. 그런데 죄는 감추어둔다고 해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
니라 진행이 되기 때문에 나중에 그 죄가 드러나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곪을 대로 곪은 상
태이어서 수습하기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목회자가 자신에게 죄가 있을 때에는 우선
설교를 담대하게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언제나 자기 양심에 가책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교인들에게 여유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사소한 일에도 지나치게 민감하게 되고 가정
에서도 모든 것이 불만스러워지게 된다. 결국 기쁨이 없는 목회는 목회자 자신의 영혼을 죽
일 뿐만 아니라 다른 영혼까지도 죽이게 되는 것이다.

 

(5) 지나친 목표 지향적인 성향
대개 목회자들은 주님의 일에 대하여 특별한 열심히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다가 교회의
규모가 적을 때 모든 것을 목사 혼자가 해결하던 것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나중에 교회
의 규모가 커진 후에도 모든 것을 자신이 해야만 안심이 되는 분이 있다. 특히 목사가 교회
를 행사 중심으로 이끌어갈 때 교인들이 많아짐에 따라서 그 일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어 결국 그 언젠가는 그 모든 일들을 다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지게 된다. 더욱이 목회자
들 중에서는 무엇인가 일거리를 만들지 않으면 교회가 부흥되지 않을 것 같은 강박증을 가
지는 분들도 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목회를 교인들의 양육이나 인격적인 관계에서 목회를
하지 않고 행사나 일 중심으로 이끌어왔기 때문에 결국 그것이 만성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런 경우에 결국 일에 대한 피곤이 쌓인 나머지 나중에는 지쳐서 쓰러지고 만다. 한 번 이렇
게 쓰러지게 되면 자기 자신이나 교회도 큰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6) 목회자의 질병
목회자가 아무리 의욕이 넘친다 하더라도 결국 건강이 따라주지 않으면 목회를 장기간에 성
공적으로 해낼 수가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주의 일을 하다가 너무 자신의 건강
을 돌아보지 않는 바람에 금방 낫지 않거나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병에 걸리면 결국 목회
를 중도하차 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서 간염이나 신장 계통의 질환, 중풍이나 당뇨 혹은 각종 암에 걸리면 결국 목회
를 제대로 감당해 낼 수가 없다. 그리고 처음에 목회자가 병에 걸리면 교인들이 동정도 하
고 보살펴주지만 기간이 오래 되면 결국 교인들은 싫어하게 되고 교회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는 자신의 경건만큼이나 건강에 유념해서 운동도 정기적으로 하고
건강 진단도 정기적으로 받는 것이 필요하다. 참으로 훌륭한 목회자들이 자신의 건강을 돌
보지 않고 주님의 일에 열심을 내는 바람에 한창 일할 때에 건강으로 쓰러지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2. 탈진의 교회적인 이유

 

(1) 교인들의 불평
우리 믿는 사람들은 아직 천사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들어져가고 있는 과정에 있
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다양한 개성과 기질을 가지고 있고 아직 덜 다듬어진 기질
때문에 교회 안에서 충돌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교인들 중에 아직 어린 분들은 목회자가
교인들의 모든 불편한 점을 다 책임져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분들은
교회 안에서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거나 혹은 자신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들을 목회자에
게 개인적으로나 전화로 불평을 하게 된다. 물론 그런 불평들 중에 타당한 것이나 금방 시
정할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지만 목회자의 인격에 대한 공격이나 비방은 목회
자를 매우 힘들게 만든다.

 

(2) 교인들의 신앙이 변화가 없음
목회자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보상은 교인들이 설교 말씀을 듣고 변하는 모습을 보일 때이
다. 그러나 교인들이 전혀 신앙적으로 성장하지 않고 늘 어린아이처럼 유치한 상태에 있을
때 목회자는 기운이 빠지게 된다. 특히 오래 믿은 사람들이 늘 예배 시간에 졸기나 하고 많
은 관심과 사랑을 쏟은 교인들이 아주 사소한 이유로 교회를 떠날 때 목회자는 허탈감에 빠
지게 된다.
그래서 목회자는 할 수 있는 대로 너무 지나친 인간적인 사랑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목회자가 인간적으로 많이 사랑했던 사람이 기대한 만큼 자라지 않거나 오히려 자
신을 실망시킬 때 그만큼 실망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3) 교회가 양적으로 부흥되지 않을 때
오늘날 교회의 모든 평가는 양적인 증가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리고 교인들의 숫자는 결
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교회에 새로운 신자들이 자꾸 들어오면 교회에 생기가 돌고 활
기차게 된다. 그런데 수년이 지나도록 교인의 증가가 없으면 교회가 자꾸 자신감을 잃게 되
고 목회자 자신도 낙심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주위에 있는 교회들은 빨리 성장하여 예배당
을 넓히거나 새로운 예배당을 건축하고 또 신학교 때 동기들은 목회에 성공해서 여기 저기
강사로 불려 다니는데 자신은 수년동안 애를 쓰고 몸부림을 쳐도 교회가 수적으로 자라지
못할 때 낙심하게 된다.

 

(4) 교회 안의 반대파와의 갈등
교회도 죄성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파벌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마치 정치하는
사람들처럼 목사를 지지하는 세력과 특정 장로나 집사를 지지하는 세력이 대립하여 갈등을
일으킬 때 목사는 목회의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런 파벌의 형성은 교회 안에 특
정 집안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거나 아니면 다른 교회로 한꺼번에 이동한 사람들이 있을
때 혹은 부정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비슷한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서 세력을 형성할
때 생기게 된다. 혹은 교인들이 교회 밖의 어떤 특정 은사 집회나 혹은 기도원 같은 곳에
몰려다니다가 결국 반대 세력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럴 때 자칫 잘못하면 교회가 분열되
는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다. 목사가 교회를 사임하고 일부 교인들을 데리고 나가서 교회를
개척하거나 혹은 특정 사람을 중심으로 한 반대 세력이 교회를 나와 자기들 나름대로 새로
운 교회를 개척하기도 한다.

 

 

3. 탈진의 사회적인 이유

 

(1) 세속적인 사회적 분위기
사회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수준이 되면 신앙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고 주
로 여행을 다니거나 아니면 세상적인 일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주말이 되면 거
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변이나 산으로 놀러가기 때문에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현
상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세상이 세속화되면 세속화될수록 점점 더 교회는 텅텅 비게 되
고 사람들은 개인적인 취미 생활이나 여행 같은 것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그래서 영국
교회처럼 주일 예배에도 교회는 거의 비고 노인들만 모여서 자리를 지킬 때 목회자들은 목
회의 의욕을 잃게 될 것이다.

 

(2) 사회적으로 목사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을 때
요즘 우리 사회에서 목사들에 대한 이미지는 그렇게 나쁜 것 같지가 않다. 그러나 과거에는
여대생들이 결혼을 희망하는 순서에서 이발사 다음이었다고 해서 말이 많았다. 최근에는 교
회들이 많이 성장하는 바람에 목회자에 대한 대우가 많이 좋아졌고 목회자들의 학력 수준도
높아져서 대교회 목회자의 경우에는 웬만한 사람들보다 높은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러나 농
촌 교회나 개척 교회의 경우에는 여전히 목회자들의 생활이 어렵고 자녀들 교육에 어려움을
겪으며 목회자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기에는 어려운 형편이다.

 

(3) 사회적으로 반기독교적인 분위기일 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목회자에 대하여 사회적인 분위기가 적대적이지 않지만 공산권 국가라
든지 회교권의 국가인 경우에는 신분이 목회자라고 할 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적대적인 느낌
을 받을 것이다. 단지 목회자라는 이유만으로 경찰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거나 혹은 핍박을
받을 때 목회자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

 

 

4. 목회자가 탈진을 벗는 방법

 

(1) 바른 교회관의 정립
목회자는 교회라는 필드를 통하여 성도들을 섬기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목회자 자
신이 건강한 교회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신앙적으로 건강한 목회자가 건강
한 교회를 이끌어가게 되는데 여기서 신앙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결국 교회관이 건강하고
신학이 건강한 것을 의미한다. 많은 훌륭한 신학자나 목회자들 중에서 교회관이 건전하지
못해서 교회에 대하여 지나치게 비판적인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의 목회는 결코 건강할 수
가 없다. 물론 교회는 죄성을 가진 인간들의 모임이지만 이 안에 성령이 계시며 주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하시겠다(마18:20)고 말씀을 하셨다. 교회는 그리
스도의 신부로서 비록 지금은 누추하고 보잘 것 없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말씀과 성령으로
정결하게 되어 눈보다 더 희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사도 신경에서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라고 고백하는 것은 교회가 전혀 오류가
없다거나 하는 모든 일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
여 사람의 구원을 이루시며 세상 마지막 날까지 교회와 함께 하실 것을 믿는 것이다. 사람
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곳이 교회이며 교회에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
이다. 그래서 목회자 자신이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하며 건전한 교회관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그 교회를 지키고 있는 목회자가 자신이 하는 일에 비전과 소망을 가질 수 있
는 것이다.

 

(2) 가족으로서의 교회
오늘 현대 사회가 도시화되면서 사람들은 좋은 이웃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이제는 좋은 일
이나 나쁜 일이나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없어졌으며 심지어는 가족 관계조차도 깨어
지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잃어버린 이웃과 가족을 우리는 교회 안에서 되찾을 수 있
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지나치게 사업 위주나 행사 위주가 아니라 건전한 가족이나 이웃
등의 관계 중심으로 성장할 때 목회자 자신이 교인들로부터 소중하게 여겨지고 채움을 받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목회자가 교회 운영을 마치 회사를 경영하듯이 부장이나 과장이나 직
원을 대하듯이 하는데 그러면 비인간화가 일어나서 서로가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3) 동역자의 양성과 권한의 위임
결국 교회 일이라는 것이 목회자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거창한
일이다. 그래서 교회의 규모가 적을 때부터 모든 일을 혼자서 다 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함
께 동역할 수 있는 일꾼들을 길러야 하고 어느 정도 기른 후에는 과감하게 권한을 맡겨주어
서 혼자 모든 부담을 떠 안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혜로울 것이다. 어차피 교회는 주님이 머
리요 때가 되면 누구든지 교회를 다음 사람에게 물려주고 떠나야 한다. 그런데 목회자들 중
에는 교회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기 자신과 동일시해서 도무지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못
하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그 교회가 주님의 교회가 아니고 자기 교회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가끔 보면 결국 교회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못하고 아들에게 세습하는 것도 교회
를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 것이다.

 

(4) 교회 성장의 규모
과거에는 많은 목회자들이 교회의 성장 신화에 빠져서 교인들이 수년만에 수천 명씩 증가하
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목회자들이 이제는 그런 성장이 가능하지 않게 되었을 뿐
아니라 바람직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대개 한꺼번에 교인들이 수백 명이
나 수천 명씩 증가한다면 이것은 새로 전도되어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아
니고 기존 신자들이 교회를 수평적으로 이동하는 것을 말하는데,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나
라를 확장되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은 것이다. 과거에는 새로운 대단위 아파트 개발 지역
에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어서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일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곳에 교회들도 많이 생겨서 치열한 경쟁이 되기 때문에 폭발적인 성장은 용이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목회자들 중에서 어떤 분들은 교회만 비대하게 할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를 돕는 의미에서 지역 사회와 함께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봉사하는 목회를 하
는 분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이런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5) 목회의 목표를 보다 높은 데 두라
목회자로서 교인들의 숫자나 교회의 양적인 성장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
다. 그만큼 모든 목회자들은 교인들의 출석 숫자에 민감한 편이다.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생각만큼 교회가 빨리 자라지 않는데 숫자만 가지고 애를 쓰다가는 결국 모든 에너지
를 탈진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목회의 목표를 더 높은 데 두면 견디기 쉬울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과 씨름을 하는 것이다. 성경은 마치 거대한 열대 지방의 정글
처럼 사람들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목회자가 성경을 착실하게 연구하고 그
것을 가지고 설교나 성경 공부로 교인들을 먹인다면 결국 교회는 서서히 자라게 되어 있고
또 교회가 생각만큼 덜 자란다 하더라도 목회자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얼
마든지 주의 일을 감당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씀 중심으로 목회를 하면 일단
일 중심에서 벗어날 수 있고 좋은 동역자들을 길러낼 수 있으며 교회가 말씀 중심의 공동체
로서 건강하게 자라게 되는 많은 이점이 있다.

 

(6) 목회자의 건강한 부부 생활
많은 경우 목회자들은 지나친 열심 때문에 가정을 소홀히 하고 교회 일에 몰두하기가 쉽다.
그런 과정에서 자칫 잘못하면 목회자 자신의 부부 관계가 멀어질 수 있는 것이다. 목회자는
교인들과 어울려서 늘 밖에 있는데 부인은 아이들을 키우고 목회 뒷바라지하느라고 뒤에서
수고만 하게 된다. 또 부인은 남편과 거의 대화할 시간도 없는데다가 남편의 관심이 다른
여자에게 쏠린다는 느낌이 들면 사모의 마음에 배신감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래서 결국 사
모가 믿어주거나 지지해주지 않는 목회는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 정
도는 반드시 부인과 함께 드라이브를 하거나 혹은 외식을 하면서 결코 그녀가 덜 중요한 사
람이 아니며 오직 그의 신뢰와 도움으로 목회를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어야 한
다. 그리고 주로 목회자들의 아이들이 신앙적으로 냉소적인 이유는 목회자 부부가 교회의
어려움들을 아이들이 듣는 데서 자꾸 말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마음속에 자기도 모르게
교회에 대하여 부정적인 자세가 생기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를 듣지 않고 평범한 아이들로 잘 자랄 수 있도록 보호를 해 주어야 한다.

 

(7) 목회자의 취미 생활
목회자들은 지나치게 영적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과 사탄이 주는 시험이라는 흑
백 논리로 보기 쉽다. 그러면 목회자의 마음에 여유가 없어져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자꾸 어려운 쪽으로 끌고 가게 된다. 예를 들어서 사람들의 기질의 차이일 수 있는 문제를
사탄의 역사로 본다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목회자들도 할 수 있는 대로 좋은 취미를 하나씩 가져서 짧은 순간이나마 목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존 스토트 같은 분은 독신이지만 새에 대해서는 어느 전문가보다
박식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어떤 분은 그림을 거의 프로 급에
가깝게 그리는 분도 있고 어떤 목회자는 스포츠에 탁월한 분들도 있다. 등산 같은 것을 자
주 하면 좋을 것이다. 암벽 등반 같은 재능이 있으면 거기에 빠질 수가 있어서 좋기는 한데
혹시 바위에서 떨어지면 목회에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클래식 음악에 깊은 조예가 있으면
그것도 좋은 취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인들에게 별로 좋지 않은 이미지를 주는
취미들도 있다. 예를 들어서 낚시 같은 것이나 바둑 같은 것에 대해서는 너무 할 일이 없는
사람 같은 이미지를 준다면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목회자가 컴퓨터 채팅에 너무 빠지는
것은 좋지 못하며 영화광이 되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다.

 

 

5. 아름다운 목회의 비전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일 것이
다. 그래서 성경의 시편은 “호흡있는 자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찬양은 호흡이 있는 자가 할 수 있는 최고로 영광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목회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며 다른 사람들
을 영적으로 바른 길로 이끄는 일이다. 이것은 이 세상의 어떤 다른 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최고로 영광스러운 부르심이다. 그러나 목회의 일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다른 사람들의 많은
아픔은 포용하는 ‘선한 목자’의 심정이 있어야 하며, 날마다 깨어서 성도들을 위하여 기
도하는 제사장적인 사명이 있어야 한다.
목회가 이렇게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아름답게 감당하지 못하는 이
유는 아름다운 목회의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좋은 목회 비전을 가지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1) 위대한 선배를 본받으라
신앙이라는 것은 독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라면서 보고 배우는 것이다. 특히 좋은 목회자
가 되려면 목회자 자신이 아름다운 목회자상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좋은 목회
자상으로 수만 명의 교인들이 있는 교회의 유명한 목회자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역사에 영원히 남는 것은 탁월한 설교자들이다. 영국에서는 스펄전 목사나 마틴 로이드 존
즈 목사의 이름이 지금도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탁월한 설교자들이었고 하나님의 말씀
에 헌신한 종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직접 이런 목사를 만나지 못했지만 그의 설교집을
통해서나 그들의 전기를 통해서 이런 위대한 목사들을 만날 수 있고 또 이들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옛날의 훌륭한 목사님들은 자기가 존경하는 목사님들의 전기를 즐겨 읽었
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위대한 종들의 전기를 읽으면 그들이 얼마나 탁월하게 하나님을 섬
겼든지 지금 자기가 하는 목회는 그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늘 겸손
할 수가 있는 것이다.

 

(2) 사랑으로 양들을 먹이라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주셨다. 그리고 목회자들로 하여금 이 교회를 먹
이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에게 양들을
먹이는 일을 맡기시기 전에 세 번씩이나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어보셨다. 이것은 주님의 양
을 먹이는 일을 자기 야망이나 욕심에 따라서 하면 안되고 철저하게 사랑으로 먹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목회자들 중에서는 자신의 출세를 위하여 교회를 그 수단이나 발판
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주님 앞에서 책망을 받게 될 것이다. 교인들은
사랑을 먹으면서 자라게 되어 있는데 목회자 자신이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야 교인들을 사
랑으로 먹일 수가 있다.
목회자가 목회를 지망하는 이유는 자기가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양들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목회자가 망하려고 하면 교회는 살 것이며
목회자가 살려고 하면 교인들은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3)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먹이라
어린아이들이 자랄 때 배탈이 나면 우유나 젖을 먹지 못하고 설탕물을 먹여야 할 때가 있
다. 그러나 역시 설탕물을 먹이면 아이들이 살이 오르지 않고 금방 홀쭉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힘을 내게 되어있다. 세상
적인 지식이나 성공 사례를 잔뜩 먹이면 그 당시에는 입에 달기 때문에 맛있게 먹는데 결국
그런 수준으로는 이 복잡하고 경쟁적인 세상을 절대로 이길 수가 없다. 그러니까 결국 교인
들이 세상에서는 이기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만 서로 잘났다고 큰 소리를 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목회자는 교인들에게 단단한 음식인 성경을 먹여야 한다. 목회자는 할 수 있는 대로
강해설교를 해서 깊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임으로 교인들이 아주 튼튼하게 되어서 능히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김서택 / 대구동부교회 목사
서울대 공대와 대학원을 나와 총신대신대원(M. Div.)에서 공부했다. 지금은 대구 동부교회
담임목사로 있다. 10권 짜리 창세기 강해서를 비롯해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고난의 시대에 찾아온 하나님」 등 40여 권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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