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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하던 독립

by 【고동엽】 2021. 10. 16.

본문 행1:6-11
정흥우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기미년 3월 1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 3·1절 기념예배 때마다 부르는 이 노래는 우리 선진들의 복받쳐 올랐던 대한독립의 소망과 의지를 잘 전해 주고 있습니다. 나라 잃은 지 10년, 한이 되고 피눈물이 되고 터지는 함성이 되어 온 천지를 뒤흔들던 배달민족의 기미독립만세 소리는 73주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들의 가슴을 흔들어 주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3·1 운동을 잊지 않고 특별절기로 예배를 드리며 기억해야 하는 데는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국권을 상실한 민족의 눈물과 비통을 씻어 준 것이 교회였으며, 둘째, 3·1 운동의 주체와 진원이 교회였으며, 셋째, 3·1 운동 후에 직접적으로 박해받은 것이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한국 민족의 피묻은 삶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대망하던 독립의치는 3·1 운동에서 어떻게 반영되었으며, 성서적인 대답은 어떠하였던가를 살피려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독립을 대망하던 제자들에게 주신 만고의 진리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1. 독립은 하나님의 권한에 위임하라는 것입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1 : 7). 얼마나 많은 독립지사들과 민족지도자들이 잃어버린 조국을 회복하려고 애써 왔던가? 그들의 의지, 그들의 결단, 그들의 희생은 눈물과 희생으로 얼룩진 생애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 속에는 인류의 역사와 민족들의 흥망성쇠는 주 여호와 하나님의 장중에 두셨다는 것을 선언하고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나 소원과는 초월하신 하나님의 권한에서 출발하고 결정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기본적인 신앙은 민족과 국가의 문제를 다루는 위정자들이나 민족지도자들이 유념해야 하며, 조국을 사랑하는 신앙인들이 확신하고 있어야 될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최고의 통치자임을 인정하는 민족적 자각에 설 때까지 주 하나님은 그 나라의 독립과 번영과 통일을 연기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의 주권이 배제된 독립, 번영, 통일은 곧 파멸과 혼란으로 가는 첩경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 144 : 15)라고 한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 인간의 때와 기한의 문제에 조급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도 주님의 권한 아래 두셨으니 우리는 인내와 기다림의 신앙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은'카이로스'로서 천기(天機)에 해당합니다

3·1 운동이 일어난 후 26년이 지나서야 맞게 된 해방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찾아왔던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나라의 독립과 아직 남은 이 나라의 통일도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그 때도 주께 위임하는 위대한 신앙의 공감대를 민족적으로 형성해 가야 할 것입니다.

2. 독립은 민족의 능력을 비축해 가는 데서 시작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 .8). 힘이 비축되고 예비되지 않는데 독립을 성취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가실 때 그의 제자들에게 먼저 부어 주신 것은 성령의 권능이었습니다. 권능은 '엑수시아'라는 말로 능력과 권세에 해당합니다. 이 권능을 받은 제자들은 1세기가 다 가기 전에 전그레코-로만 사회를 석권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능력의 비축 없이 독립이나 국가건설이 불가능한 것을 가르치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3·1 운동이 일시적이나마 승승장구한 것은 거기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그것은 평화만세시위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평화민주시민운동으로 확산되어 호응을 얻었고, 다음으로는 세계상 비폭력적인 독립운동의 시발이 3·1 운동이었으며, 이것은 성경의 정신이었습니다. 빈손 든 만세운동은 비폭력의 전형인, 그리고 3·1 운동은 정의시위운동이었습니다. 나라 잃은 민족이 주권을 되찾겠다는 것은 정의로운 명분이었습니다. 이것은 전민족적 의지로 결집되었고 실천되는 힘을 발휘했으나 폭력과 억압 앞에서 지속적 힘을 공급할 수가 없었습니다. 힘의 한계성은 3·1 운동의 한계성입니다. 방법과 자세가 아무리 좋아도 능력을 비축하지 않은 거사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피묻은 교훈을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3. 독립운동은 다시 오게 될 주권의 대망을 포기치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11절 하). 독립에 대한 소망은 나라 잃은 민족의 열 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망은 대망이 되어 지속적인 신앙을 요구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의 기초를 놓으시고 그 나 라의 건설과 확장은 그의 제자들에게 위임하고 승천해 가셨습니다. 그가 위임하셨던 대업은 위험하고 목숨 건 순교까지 요청하는 일이었기에 그 나라에 대한 확신과 대망 없이는 중도에 포기하거나 배교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엔가 그리스도께서 만국의 통치권으로 다시 오시게 될 것을 확신하고 지속적으로 인내하며 대망했다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수많은 민족지도자들이 후에 변절하고 친일 했던 일은 그것을 증거합니다. 그러나 안창호 선생은 "내 묘비에 내 눈을 그려라. 조국의 독립을 보고야 말리라" 했고, 백범 선생은 "내 묘비명에는 독립, 독립, 독립이라고 쓰라." 하였습니다. 크리스천들이 망각하지 않아야 할 그 나라의 도래는 곧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째림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이 그 나라의 독립과 해방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대망하는자 편에 서 계심을 확신하는 일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이 같은 맥락에서'제 2의 독립이요 광복인 통일'을 대망하면서 좌절하거나 희망을 끊지 말고 그 나라의 도래를 기다리는 신앙적 확신을 새롭게 하자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지금도 메아리치는 3·1 만세운동의 만세소리는 우리의 선열들의 비폭력 평화의 외침이었음을 기억합시다. 조선 민족은 조선 민족의 주권으로 살아야겠다는 울부짖음이었음을 잊지 맙시다. 교회는 민족의 아픔을 십자가로 나눠질 수 있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손안에 민족과 통일의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그 뜻에 순복합시다. 제 2의 독립인 통일은 크나큰 힘의 비축에서 시작합니다. 당장이 아니라도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자 편에 서 있음을 확신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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