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절기 설교[1,404편]〓/성탄절 설교

동방의 박사들처럼 (마태복음 2:1-12)

by 【고동엽】 2021. 10. 16.

동방의 박사들처럼 (마태복음 2:1-12)
      
여러분, 이 우주가 생긴 이래 가장 큰 사건이 무엇인가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 들이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 신 사건입니다. 이것은 이 우주의 역사 속에 가장 큰 사건이며 이적 중의 이적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 에 오시던 그날 밤, 하늘은 매우 바 빴습니다. 하늘의 별이 움직이고 천 사들은 메시야의 탄생을 알렸습니 다. 베들레헴 지경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은 구유에 놓인 아기를 찾아 가서 만나게 되고 동방의 박사들은 멀리 동방에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예루살렘까지 찾아왔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무엇 때문에 아기 예수 계신 곳까지 찾아왔습니 까? 오늘 주신 말씀 2절과 11절을 보세요.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 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 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 라…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 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했습니다. 그렇습 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동방에서 예 루살렘까지 찾아온 가장 중요한 목 적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것이었 습니다. 오늘 동방의 박사들이 어떻 게 성탄을 준비했는지 생각하면서 우리도 성탄을 잘 준비하는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박사들은 예루살렘에 오기 전에 동방에서 별을 보았습니다. 그 별은 보통 별이 아니고 이스라엘이 기다 리고 있던 메시야의 탄생을 알리는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여기에 깊 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경 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수님이 탄 생하셨을 때 예루살렘 성은 너무 조 용했습니다. 저 멀리 동방에서는 메 시야의 탄생을 알고 찾아왔는데 베 들레헴에서 가장 가까운 예루살렘의 시민들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 앞에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동방의 박사 들은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은 유대 땅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지리적으로 우리가 먼 데 있느냐 가까운 데 있느냐 하 는 것이 중요한 것 같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보아도 가까운 데 계 신 분보다 먼 데 계신 분이 오히려 예배 시간에 더 먼저 나오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역사하 십니다. 하나님은 동방에서 영혼의 구원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던 동 방박사들에게 메시야의 탄생을 알리 셨습니다.
아마 동방의 박사들은 천문학자 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부에게는 고기 잡는 일을 통해서, 농부에게는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상인들이 돈 바꾸는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위 대한 비밀을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 께서는 천문학 박사들에게는 하늘의 별을 통해서 예수님의 나심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별 을 사용하시고 역사를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메시야의 나심을 알리기 위해서 동방의 천문학 박사들에게 별이 나 타났습니다. 그들의 걸음을 메시야 에게 인도하기 위해서 별이 나타났 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별을 보 고 유대 땅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은 별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사자들을 별처럼 사용하시고 계십니다. 하나 님께서는 하나님의 사자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메시야이신 그리스도에게 경배하도록 사역하는 것입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그의 별 을 보고' 왔다고 했습니다. 이 별은 메시야의 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별이 될 수 있습니다. 구원 이 필요한 심령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 영혼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할 때 우리는 주님의 별이 될 수 있는 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그리스 도를 나타내는 주님의 별이라는 사 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별이 되려하면 예수님은 사라집니다. 그 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빛만을 드 러내는 그리스도의 별이 될 때 그리 스도가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읽으면서 우 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 그리스도의 별이 동방박사들에게 예 수님의 탄생을 알리고는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 베들레헴의 아기 예수 께로 그들을 인도했습니다. 여기에 도 깊은 진리가 있습니다. 박사들이 동방에서 별을 보고 그 별이 메시야 의 나심을 알리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강의 위험과 산의 험함을 마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별빛만을 따라 유대 땅에까지 왔습니다.
그때 그들은 유대 땅에 왔으니 까 왕은 당연히 예루살렘에 계실 것 으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으로 왔습니 다. 인간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데 그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새로 나 신 메시야, 아기 예수를 만났습니 까? 아닙니다. 오히려 큰 소동이 났 습니다.
헤롯왕은 모든 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 서 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유대 땅 베들 레헴이라고 성경에서 선지자들이 예 언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헤롯왕 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다가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물으면서 베들 레헴으로 보내며
"가서 아기에 대하 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 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별을 따르는 동안은 바른 길을 걸어왔지만, 사람 의 상식이나 생각을 따르자 결국 혼 란만 초래된 것입니다. 결국 사라졌 던 그 별이 다시 나타나서 그들을 베들레헴의 아기 예수께로 인도했습 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동방박사들 이 아기 예수님을 만나 뵙고 그분께 경배했을 때 그들을 인도했던 그 별 은 사라졌습니다. 그 별은 주님을 증거하고 사람들의 발걸음을 주님께 로 인도했습니다. 그리고는 사라졌 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것으로 별의 사명은 끝났기 때문입 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하나님께서 보 여 주신 별을 보고서 고향을 떠나 메시야를 찾아가는 위대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1절 을 다시 한번 보세요.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라고 했습니다. 동방 의 박사들이 그 별을 보고 나서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별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별 이 증거하려고 하는 그리스도를 만 나고 싶어서 예루살렘까지 찾아왔습 니다.
어떤 상징이 있다면 그 상징 자 체가 아니라 그 상징의 실체가 중요 합니다. 여기 강단에 십자가가 서 있습니다. 이것은 상징입니다. 이 상 징은 오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 도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런데 십자가를 보고 십자가를 사랑 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 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 다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우리가 교회에서 일년에 몇 차 례 성찬식을 거행합니다. 그런데 성 찬식에 참여하면서도 나 위해 피흘 리시고 그 몸을 버리신 예수님을 만 나지 못한다면 성찬이 아무 뜻도 없 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지난 주일 저녁에 세례식을 거행했습니다. 그 런데 세례를 받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하여 주 안에 서 새로운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런데 동방의 박사들은 그 별의 메시지를 알았습니다. 별이 증언하는 것을 이 해했습니다. 그 별은 그리스도를 위 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동방의 박사 들은 그 별이 증언했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께 경배하기 위해서 예 루살렘까지 온 것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오기까지 얼 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하는 것은 현 대문명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로서는 짐작도 하기 어렵습니다. 그 들은 험한 산을 넘었고 유브라데강 과 티그리스강을 건넜을 것입니다. 사막을 지나면서 낮의 뜨거운 태양 열과 밤의 싸늘한 한기를 느꼈을 것 입니다. 집에 두고 온 가족들도 마 음에 걸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의 관심사 는 메시야를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메시야를 만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어려움도 어려움으로 여겨지지 않았 습니다. 우리는 우리 위해 오신 예 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 무엇 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는 다닌다고 하지만 우리의 삶이 아직도 옛날 그 대로, 그 자리에 서 있지는 않습니 까?
내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면, 내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면 가는 길이 아무리 험하고 어렵다고 해도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겠다 는 굳은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 리고 동방의 박사들처럼 떠나야 합 니다. 옛날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 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말씀하실 때
"어디로 가야 합니까?"
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믿고 무조건 떠났습니다. 믿고 떠나면 하 나님께서는 매일 매일, 한 걸음 한 걸음, 순간 순간 인도하여 주십니다. 여러분 역시 하나님의 인도로 지금 이 천년의 마지막에까지 오신 것을 믿습니까?

동방박사들은 예루살렘에 와서 물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한 사람이 모 르면 다른 사람을 붙들고 물었습니 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 디 계십니까?"
그런데 예루살렘의 시민들의 반응에 박사들은 깜짝 놀 랐습니다. 유대인의 왕일 뿐 아니라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나 셨는데 예루살렘 시민들이 이렇게 모를 수가 있습니까? 그들은
"아무 래도 그 왕이 별 볼일 없는 왕이신 가 보다. 돌아가자. 공연히 시간과 물질만 낭비하고 헛고생했다"라고 하면서 동방으로 되돌아 갈 수도 있 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 각하건 간에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 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메시야 의 탄생을 알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그 분을 어떻게 생각 하든 그들은 하나님이 알려주신 사 실에 응답해야 할 책임만을 느꼈습 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음을 들려주시고 그리스도를 알게 해 주셨다면 이제 우리의 전 인격으 로 그것에 응답해야만 합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관심이 없으니까 우리도 그분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 겠습니까? 오늘의 이 역사가 그리스 도를 거절하니까 우리도 그리스도를 거절해야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하 늘을 열어 우리에게 별을 보여 주시 고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나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주님의 죽으심 과, 성령님의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영광스러운 복음을 주심에 우리는 우리의 전 인격을 걸고 응답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 디 계십니까?"
동방의 박사들은 이 질문을 던 지는 데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은 박사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아는 체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진솔하게 말했습니 다. 그들은 물으면서 찾아 다녔습니 다. 그렇습니다. 모를 때는 묻는 것 이 중요합니다. 묻는 사람에게는 반 드시 대답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찾는 자는 반드시 찾습니다. 두드리 면 열립니다.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멸 망을 향해 걸어가고 있으면서도 이 위대한 복음의 진리를 구하지 않고 있습니까? 모르면 누군가를 붙들고 물어 보셔야 합니다. 몰라서 묻는 것은 조금도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 다. 모르면서도 아는 체 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모르면 물으세 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내 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 는지를 물어 보세요. 우리는 동방의 박사들에게서 정직한 구도의 열정과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그들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어 낼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의 왕 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그 들은 찾고 또 찾았습니다.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기 예수 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동방의 박사들은 드디어 아기로 탄생하신 메시야를 보게 되었습니 다. 우리가 동방 박사가 되어 베들 레헴까지 찾아가 어느 집 마구간에 누워있는 그 아기의 모습을 보았다 고 상상해 보세요. 그때 우리의 감 회가 어떨까요? 우리가 보고 있는 그 아기는 평범한 아기가 아닙니다. 그 아기는 비록 말구유 위에 누워 있지만 하나님이십니다. 우주를 창 조하신 그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은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그 하나 님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장면이 동방 박 사들의 가슴을 얼마나 설레고 벅차 게 했을까요? 그들은 지금까지 별을 보고 그 별의 인도를 따라 베들레헴 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기를 뵙는 순간, 그들의 관심은 더 이상 별에게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의 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고 있었던 별은 이 장엄한 태양이 떠오를 때 사라져야만 했습니다.
성탄계절이 되면 집집마다 상점 마다 교회마다 성탄장식을 하고 성 탄카드를 서로 나눕니다. 이 카드를 장식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동방의 박사들과 찬란하게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입니다. 그러나 동방의 박사들이 찾아왔던 예수 그리스도, 그 별이 증언했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대 의 비극을 보십니까?
호텔이나 백화점에 가면 황홀할 정도의 성탄장식을 해 놓았습니다. 교회가 아무리 해도 호텔이나 백화 점의 장식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오래 전부터 호 텔이나 백화점의 성탄장식 같은 것 은 할 수도 없거니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장사하는 사람 들과 우리는 성탄을 맞는 내용이 완 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성탄계절에 한 몫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탄 계절에 아기 예수를 뵈어야 합니다. 별이여 잠잠하라. 모든 인간이여 조 용하라. 지금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 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역사 속 에 임하셨습니다.


"아기를 보고."
불원천리 별만 보고 좇아온 동 방의 박사들은 메시야이신 예수 그 리스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가슴을 가장 설레게 하는 성경의 증 언은
"보라"는 내용입니다. 요한복 음 1장 29절에 세례요한이 그의 제 자들에게 앞으로 지나가시는 예수님 을 가리키며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한 번 본 사람은 그 인생이 변합니다. 예수님을 본 막달 라 마리아가 새사람으로 변했습니 다. 예수님을 본 삭개오가 새사람이 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보면 새사람으로 변합니 다. 그런데 오늘 사람들이 이 예수 님을 보지 못하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의 십자가를 보면 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면서, 하나 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 강단에 꽃장식을 하 시는 구권사님은 10여년 동안을 하 루같이 정성껏 봉사하십니다. 권사 님 모녀는 이 강단 장식을 하시면서 '주님, 이 강단의 장식을 보면서 성 도들이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신다고 합니 다. 목사가 설교 준비를 위해서 고 심하는 것 이상 권사님은 강단의 장 식을 새롭게 하시기 위해서 애쓰신 다고 합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 니다.

여러분, 성탄의 메시지는
"아기 를 보라"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박사들은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 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했습니다. 그렇 습니다. 우리의 경배의 대상은 하나 님 한 분뿐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베들레헴에 찾아와 아기께 경배했다 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 고 있습니까? 이 아기가 바로 하나 님이란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박사들은 생명의 창조주이신 거룩하 신 하나님을 만나는 위대한 경험 속 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동방의 박사들은 아기께 경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함을 열어 황 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 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또는 성경학 자들이 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어 떤 것을 상징하는지 이야기하고 열 심히 연구합니다. 이야기하자면 깁 니다. 그러나 이 예물에 영적인 의 미를 꼭 붙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 니다. 그저 황금은 보석 중에서 가 장 귀한 것입니다. 유향과 몰약은 그 당시 얻을 수 있는 향유 가운데 서 가장 귀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귀 하게 여기는 것을 하나님께 드린 것 입니다.
그들이 그 예물을 팔았으면 넉 넉하게 여행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박사들은 이 소중한 예물을 절대로 자신을 위해 쓰지 않았습니 다. 그들은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리기를 원했습니다. 여러분, 하나 님의 은혜가 감사합니까? 성령의 인 도하심이 감사합니까? 예수 안에서 얻은 영원한 생명에 감사합니까? 그 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주님께 드려 야겠습니까? 가장 귀한 것을 드리시 기 바랍니다.
지난 주일 2부 예배를 마치고 제 방에 있는데 어느 여집사님이 잠 깐 만나 뵙기 원하신다고 해서 나가 뵈었더니 이 집사님이 가방에서 십 자가 금목걸이를 내 놓으시면서
"목 사님, 아시다시피 저는 지금 성구 장만하는 데 헌금을 내 놓을 형편이 못 됩니다. 그러나 우리 당대 한 번 짓는 예배당에 입당하면서 성구를 준비하는데 나는 무엇을 드릴까 생 각하고 기도하다가 이것을 가져 왔 습니다. 금 한량중입니다. 목사님께 서 필요하신 데 써 주세요"라고 말 씀하셨습니다. 저는 사양했습니다.
"집사님,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보 시니까 벌써 다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목걸이는 그대로 쓰세 요"
그러나 이 집사님은 그대로 놓 고 나가 버리셨습니다. 저는 그 목 걸이를 받고 마음의 감격을 금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자신에 게 있어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 렸습니다. 이런 정성이 제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주님께 드릴 때 쓰다가 남은 것 드리지 맙시다. 주님은 정성을 받으 십니다. 마귀가 옆에서 보고 비웃을 것 드리지 맙시다. 피 묻으신 주님 의 손에 부끄러울 것 없는 것으로 드릴 때 주님이 받으십니다.

이제 별은 사라졌습니다. 동방 의 박사들을 인도하던 별은 더 이상 우리에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별이 증언한 예수님은 아직도 우리 에게 남아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 왔던 동방의 박사들은 우리 시야에 서 사라졌지만 그들이 만났던 그 예 수님은 아직도 우리와 함께 하고 계 십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했던 수많 은 설교자들과 하나님의 사람들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들 이 증언한 예수님은 아직도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사람들에게 그리스 도를 증거하고 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하나의 별이 되기 위해서 위대한 발걸음을 옮겨야 할 시간입 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제 자들의 가장 환희에 찬 고백은
"우 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는 것이었 습니다. 여러분은 메시야를 만났습 니까? 아직도 찾고 계십니까? 찾고 계신다면 그 일을 중단하지 마세요. 계속해서 찾으세요. 방해되는 일이 있으면 극복하세요. 예수 그리스도 를 만나는 사람마다 변화될 수 있 고, 그 인생이 새로워질 수 있다면,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 로 영접하고 그분을 만나시기 바랍 니다.

언젠가 우리 인생의 마지막 성 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해마다 성탄 계절이 되면 그리스도에 관한 메시지를 들으면서도 진정 주님을 만나지 못한 채 주님 앞에 서야 한 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때 우리 는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했다고 고 백할 수 있겠습니까? 이 뜻깊은 성 탄절이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헌신을 결단 할 수 있는 위대한 기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댓글